God of Blackfield RAW novel - Chapter (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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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0 눈에는 눈.
식사를 모두 호텔에서 해결하고 방에 앉아 있자니 마치 감금된 느낌이었다.
“밖에 나가지 않으면 되는 거냐?”
강대경이 TV를 보면서 은근슬쩍 입을 열었다.
어차피 이렇게 꼼짝도 않고 있으려면 집이 더 편하다는 의미로 들렸다.
유혜숙도 은근히 기대하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이런 싸움을 몰라서 하는 소리다.
칼도 아니고 총이다.
건너편 아파트 옥상이나 계단 유리창에서 사격을 가하면 강대경과 유혜숙은 피할 방법이 없다.
무엇보다 찜찜함이 떨어지지 않은 탓이 컸다.
“아무래도 어렵겠지?”
“이번 주까지는 그러실 거예요.”
강대경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투로 고개를 끄덕였다.
강찬도 집이 그리운 마당이다.
강대경과 유혜숙이 왜 힘들지 않겠나?
“많이 힘드시죠?”
“그렇다기보다는 비싼 호텔비 내면서 이러고 있으려니까 미안하기도 하고, 옷 갈아입는 것도 좀 그렇고 해서 물어본 거다. 너무 신경 쓰지 마라.”
셋이서 다시 TV에 시선을 돌렸다.
월요일이라 디아이에서 제작하는 드라마를 같이 볼 생각이었다.
웅웅웅. 웅웅웅. 웅웅우.
그러고 보니 석강호가 혼자 있다.
이 새끼 심심했겠구나.
그런데 막상 전화기를 들자 김형정의 이름이 올라와 있었다.
“예, 팀장님.”
[“강찬 씨. 최성곤 장군이 습격으로 사망했습니다.”]강찬은 강대경과 유혜숙에게 눈빛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왼손 엄지와 검지로 눈을 천천히 눌렀다.
“지금 어디세요?”
[“삼성동입니다.”]“제가 그리 갈게요.”
[“알겠습니다. 지하에 있는 승합차를 이용하시면 됩니다.”]숨을 조절한 강찬은 억지로 표정을 눌렀다.
“삼성동 사무실에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늦게 오면 옆방에서 자고 내일 인사드릴게요.”
“그럴래?”
걱정되는 눈치였는데 강대경은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다녀오겠습니다.”
“조심해, 아들.”
“그럴게요.”
강찬은 곧바로 방을 나와 옆방으로 움직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소파에 기대있던 석강호가 시선을 돌렸다가 화들짝 놀란 눈을 했다.
“무슨 일이요?”
“최 장군이 당했단다. 지금 삼성동으로 가기로 했어.”
“뭐요? 최 장군이? 상태는요?”
강찬은 이를 깨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이런, 씨발 놈들이!”
석강호가 불쑥 일어나며 재킷을 집어 드는 순간에 강찬은 방을 나섰다.
복도에 선 요원들의 표정도 무거웠다.
경계가 강화된 느낌이다.
복도와 엘리베이터에 있는 요원들의 숫자가 늘었다.
승합차를 타고 삼성동에 도착할 때까지 강찬은 입을 열지 않았다.
화가 치솟아서 참아내기 어려웠다.
이건 전쟁과 다름없는 일이다.
국가정보원 임원이 죽은 것이 엊그제인데 오늘 또 특수팀 사령관이 죽었다.
아파트 지하에서 총질도 했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 계속 벌어지는 거다.
지하에서 내린 강찬과 석강호는 곧장 5층으로 올라갔다.
김형정이 문을 열어주었는데 방에는 전대극과 김태진이 있었다.
간단하게 인사를 마친 강찬은 바로 탁자에 앉았다.
“어떻게 된 겁니까?”
“차동균의 집으로 간다고 단출하게 나섰던 모양이다. 트럭으로 먼저 공격하고, 대검으로 살해했는데, 목 주변에만 열 곳 넘게 찔린 자리가 있다고 들었다.”
“범인은 물론 안 잡혔겠지요?”
전대극이 입술에 힘을 꾹 준 다음,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북한 특수팀을 보낸 놈은 누굽니까?”
전대극과 김형정이 눈만 움직여 강찬을 보았다.
“위민국이 중국의 정보국에서 일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북한군 특수팀 파견을 명령한 놈이 있을 것 아닙니까? 그게 누굽니까?”
“흥분할 일이 아니다.”
“실장님. 제 부모님에게 총질한 건 테러라고 치겠습니다. 하지만 국가정보원 간부를 죽이고, 그것도 모자라 특수팀 사령관을 대놓고 공격한 건 전쟁입니다. 전쟁은 밀리면 끝입니다.”
강찬의 눈을 본 김태진은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말씀 못 하시면 제가 프랑스 정보총국에 알아보겠습니다.”
“그걸 알아서 어떻게 하려고?”
강찬이 피식 웃었다.
“엉뚱한 생각 하지 마라.”
“적은 서울에서 저 지랄을 떠는데 우리는 왜 안 됩니까?”
“강찬! 전쟁이라도 벌이겠다는 거냐?”
“지금이 전쟁입니다.”
전대극이 커다랗게 숨을 들이마신 다음, 천천히 내쉬었다.
“저놈들은 잃을 게 없어. 정권 유지와 경제가 모두 어려워서 국지전이 벌어지면 오히려 고마워할 참이다. 이 싸움은 우리끼리 싸우는 것으로 끝나지 않아. 미국과 중국이 나서고, 러시아, 일본이 한반도에 개입할 빌미가 된다. 미사일을 주고받으면 우리 손해가 훨씬 커!”
강찬은 전대극을 똑바로 보았다.
“제가 아는 건 하나밖에 없습니다. 내 사람을 지키지 못하면 그것보다 큰 것은 절대 못 지킵니다. 러시아와 중국이 개입하지 못하도록 해보겠습니다. 미국이나 일본은 정부와 국가정보원에서 막으십시오.”
“우선 흥분을 가라앉혀.”
“누굽니까?”
“강찬. 마음 같으면 나도 당장 달려가고 싶다.”
“어차피 못 가실 거잖습니까?”
당돌한 질문이었다.
전대극은 말문이 막힌 사람처럼 멍하니 있었다.
“선제공격을 나설 수 있게 도와달라고 안성까지 오셨으면서 정작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할 일이 생기니까 계산 먼저 하십니까?”
“꼭 그런 건 아닙니다.”
잠자코 있던 김형정이 끼어들었다.
“강찬 씨가 생각하는 보복전 때문에 휴전선 근처의 민간인들이 죽거나 다칠 수 있다는 점도 계산해야 합니다.”
강찬은 보란 듯이 고개를 저었다.
“정말 해볼 마음이 있다면 위험하다고 여겨지는 지역의 민간인들을 뒤로 빼세요. 너희가 이렇게 나온다면 어디 한번 해보자고 한 번이라도 보여주세요. 칼을 들고, 총을 쏘면서 달려드는 적에게 국가정보원 간부가 죽고, 특수팀 사령관이 죽는데 민간인 핑계 대지 마시고, 단 한 번이라도 당당하게 맞서보시자구요!”
더 이상 대꾸는 없었다.
강찬은 한쪽 입술을 올리며 웃었다.
“최성곤 장군이 죽었습니다. 다음은요? 실장님. 다음은 누굽니까? 언젠가 제가 말씀드렸던 것 같은데요? 맞기만 하면 버릇이 된다구요. 하나만 더 말씀드리죠. 한번, 두 번, 세 번, 네 번은 막아도 백번, 천 번은 못 막습니다. 그중 한 번만 뚫려도 누군가는 죽는 겁니다.”
이건 아니다.
강찬은 말을 멈췄다.
갑작스러운 침묵이 무척이나 어색하게 느껴졌다.
“제가 고집을 피운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죄송합니다.”
강찬은 말을 마치고 테이블을 노려보았다.
시선을 떨군 거다.
미안해서라기보다는 더는 얼굴을 보고 싶지 않다는 의미였다. 그러고 보니 김형정은 아직 커피도 가져오지 못했다.
“왜 이렇게 흥분해서 그래?”
김태진이 달래는 것처럼 말을 꺼냈다.
“솔직히 말할 테니까 듣고 판단해. 난 국가정보원 간부도 아니고, 경호실 직원도 아니지만 대강 알 것 같다. 자네야 러시아와 중국을 막아보겠다고 할만하지. 그렇지만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에 대비하고 손익을 따져볼 최소한의 시간은 필요해.”
말이 끝나고 잠시 침묵이 흐른 다음이다.
“대표님. 지금까지 특수팀이 공식적으로 작전 나간 적이 있습니까?”
김태진은 무거운 표정으로 다음 말을 기다렸다.
“태극기를 달고 나간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매번 죽거나 잡히면 누구 핑계를 대라고 하고 내보냈습니다. 그런데 왜 이번은 전쟁을 계산하고, 미국과 일본을 핑계 대는지 전 잘 모르겠습니다.”
세 사람 모두 말문이 막히는 모양이었다.
“대한민국의 힘이 약해서라면 이럴 때 저를 이용하세요. 제가 라노크대사님과 바실리, 중국의 양범에게 매달려서라도 주변국은 막아보겠습니다. 대신 대통령님과 실장님, 원장님이 나서서 미국과 일본을 상대해주세요.”
“그런 다음은? 그다음에 네가 하려는 일이 뭐냐?”
“북한에 들어가서 이 특수팀 파견한 놈 목에 칼을 박아줘야지요.”
김태진이 소리도 내지 못한 채로 숨을 들이켰다.
“한 가지가 너무 화가 납니다.”
강찬은 세 사람을 차례로 보았다.
“국가를 위해 모든 것을 던진 사람이 죽었는데 정작 국가는 이것저것 핑계를 대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전대극의 볼이 씰룩했다.
반응을 바라고 한 일은 아니다.
“장례식장은 어딥니까?”
“야전병원에 있어서 아직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가겠습니다. 장례식장이 결정되면 알려주십시오.”
강찬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을 열고 나올 때까지 전대극은 강찬이 노려보던 탁자를 향해 시선을 둔 채로 앉아 있었다.
김형정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주었다.
“맞은 편 커피전문점에서 차 한잔 마시고 갈게요. 이대로 호텔로 돌아가면 속이 터져서 못 있을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말려봐야 소용없다고 여겼는지 김형정은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1층에 내려서자 김형정의 연락을 받았는지 커피전문점에 요원만 다섯이 넘게 있었다.
“내가 얼른 커피 사올 테니까 앉아계쇼.”
강찬은 테라스에 자리 잡고 앉아서 담배를 입에 물었다.
최성곤이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어떤 사람인 줄 몰랐다면 어땠을까?
강찬은 치밀어오르는 화를 참기 어려웠다.
죽지만 않았다면!
병원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면 피를 뽑다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어떻게든 해봤을 텐데!
대한민국이 주변국의 눈치를 봐야 한다고?
그렇다면 눈치 안 보는 강한 나라를 만들면 되는 건가?
강찬은 이를 악물었다.
“커피부터 마십시다.”
강찬의 눈을 본 석강호가 커피를 놔주고 담배를 꺼내 물었다. 강찬을 달래고 있었지만 석강호의 눈빛도 번들거리는 참이다.
북한으로 들어가겠다고 하고 살아 돌아오기를 바라기는 어렵다.
지금까지의 작전과는 차원이 다른 거다.
하지만 강찬은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소중한 사람이 하나, 둘 죽어가는 것을 보느니 다시는 그런 짓을 못하게 막아놓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이번 일도 허하수, 그 매국노 새끼는 알고 있지 않았겠소?”
맞다. 그 개새끼를 잊고 있었다.
강찬은 눈을 번들거리며 웃었다.
“왜 그러쇼?”
“허하수, 그 개새끼 속을 뒤집어 주려고.”
석강호가 고개를 갸웃한 순간이었다.
강찬은 전화기를 꺼내서 통화기록을 뒤지기 시작했다.
언젠가 통화를 한 적이 있는데?
한참을 거슬러 가던 강찬은 번호를 찾았고, 버튼을 눌렀다.
큰 기대를 한 것은 아니다.
여차하면 라노크에게 물어봐도 되는 일이다.
두르르르. 두르르르. 두르르르.
얼추 밤 9시다.
[“여보세요?”]거짓말처럼 양범이 전화를 받았다.
“강찬입니다.”
[“알고 있습니다.”]양범은 당당한 음성이었다.
“부탁이 하나 있어서 전화했습니다.”
[“강찬 씨의 부탁이라면 거절하기 어렵지요. 어떤 일이십니까?”]석강호가 누군가 하는 얼굴로 바라보는 앞이다.
“허상수 체포하셨다고 하셨죠?”
[“현재 간첩 혐의로 체포했고, 증거도 확보했습니다.”]“죽여주실 수 있나요?”
양범은 잠시 말이 없었다.
잠시 후다.
[“이유를 알려줄 수 있습니까?”]“제가 진행하는 일에 필요합니다. 사고로 죽든, 총을 맞아 죽든 상관없습니다. 확실하게 죽기만 하면 됩니다.”
강찬의 답이 있고 나서 또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해놓고 보니 참 뻑뻑한 요청이긴 했다.
중국이 아무리 힘이 있어도 한국의 국회의원을 죽이기는 어려운 일이다.
“너무 무리한 청을 드렸나 봅니다. 제가 하려던 일에 필요해서 그런데 괜찮으니까…….”
[“내일 처리하겠습니다.”]강찬은 귀를 의심했다.
[“내일 중으로 처리하고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대신 한국 정부에서 오해하는 일은 없도록 해주십시오.”]“이건 제 개인적인 부탁입니다. 정부에서는 다른 판단을 할 수도 있습니다.”
양범이 웃는 소리가 먼저 들렸다.
[“강찬 씨가 나서지만 않으면 됩니다.”]이건 무슨 뜻이지?
강찬은 당장 알아듣지 못했다.
[“일주일 안으로 중국 내부 사태는 정리될 겁니다. 허상수의 처리는 지난번에 강찬 씨가 도와준 것에 대한 제 보답으로 생각해 주세요. 일주일 후에 제가 정식으로 초대하겠습니다. 다른 말씀은 없습니까?”]“고맙습니다.”
[“인사는 제가 드려야죠. 내일 발표하겠습니다. 그럼 일주일 뒤에 연락하지요.”]전화를 끊자 석강호가 히죽거리며 입을 열었다.
“허하수를 건드릴 생각인 거요?”
“할 수 있는 걸 다 하는 거다.”
“라노크 대사를 만나보는 건 어떻소?”
외인부대 특수팀을 부르자는 뜻인 거다.
강찬은 피식 웃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대한민국을 위해서 일할 생각은 안 해 봤다.”
“그럼 그동안 한 일들은 뭐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움직였던 거지. 너, 부모님, 그리고 나를 감동시킨 사람들을 위해서. 그런데 최성곤 장군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니까 생각이 바뀐다.”
잘 알아듣던 석강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우리가 프랑스에 태어났거나 미국인이었다고 해도 이랬겠냐? 나 이제부터 대한민국을 그렇게 만들어 봐야겠다. 적어도 최성곤 장군 같은 사람을 건드릴 계획을 세우려면 전쟁부터 각오해야 하는 그런 힘 있고, 강단 있는 대한민국을 만들어봐야겠어.”
“일이 더럽게 많겠소.”
강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내부에 있는 개새끼부터 처리하자.”
히죽.
석강호가 눈을 번들거리며 웃었다.
***
밤이 깊은 시간이었다.
김형정의 사무실에 앉은 전대극은 계속 책상만을 노려볼 뿐이었다.
김태진의 한숨 소리가 나직하게 들린 다음이었다.
“김 팀장.”
전대극이 고개를 들었다.
“우리가 보복전에 나서면 미국이 어떻게 나올까?”
김형정이 빠르게 김태진을 보았다.
“또 옛날처럼 있는 대로 압박을 가하겠지? 도끼 만행이 있어도, 외국 순방 중에 폭탄을 터트려서 능력을 발휘할 인재를 모조리 죽여도, 결국 우리는 미국의 압력에 굴복할 수밖에 없겠지? 만약, 만약에 말이다. 그래도 지난번 작전처럼 미국의 의견을 무시하고 작전을 감행하면 어떻게 될 거 같으냐?”
말을 마친 전대극이 이를 악물었는지 볼이 씰룩했다.
“북한을 상대로 한 작전은 전혀 차원이 다릅니다. 전시 작전권이 미국에 있습니다. 최악의 상황에 미국 CIA는 암살을 계획할 수 있습니다.”
누구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셋 모두 짐작하고 남음이 있었다.
“김태진. 비무장 지역을 통해서 북한으로 넘어갈 수 있겠나?”
“상현이가 있고, 지금 활동하는 대원 중 한 명이 도와준다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뜻밖에도 김태진은 전대극을 말리지 않았다.
“국가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강찬의 말이 너무 아프다. 지금까지 그랬었다는 것도 알았고. 프랑스로 작전 나가고, 중국에 달려갔어도, 정작 우리를 직접 공격한 것에 대한 응징은 없었던 것 같다.”
“대통령님이 허가하기에는 사안이 너무 큽니다.”
“그렇지. 이런 걸 그분께 전부 감당해 달라고 하기는 어렵지. 우리가 아직 그 정도의 힘도 없고.”
전대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이대로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국가를 위해 한평생을 바친 장군이 적의 손에 무참하게 죽었는데 눈치를 보는 건 정말 아닌 것 같다.”
“실장님. 우선 시간을 가지고 생각하십시오.”
전대극이 피식 웃었다.
“아무렴 내가 불쑥 북한이라도 가겠냐? 난 이제 늙었다.”
마법에서 깨어난 것처럼 전대극이 두 사람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그렇더라도 말이지, 최성곤을 이대로 땅에 묻을 수는 없다. 그렇게 하면 나는 다시 내 후배들에게 국가를 위해 피를 흘리는 것이 행복한 일이라고 말하지 못할 거다.”
복잡한 감정이 사무실 안을 떠돌았다.
“각하를 만나서 솔직하게 말씀드리겠다.”
“실장님. 우선 원장님을 먼저 만나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전대극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되면 이건 국가의 결정이 돼.”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십니까? 강찬 씨도 순간적으로 화가 나서 저럴 겁니다.”
전대극의 눈빛을 본 김형정은 말을 잇지 못했다.
“자넨 아까 강찬의 눈을 제대로 못 봤구나. 저 친구는 절대로 물러서지 않을 거다. 나이 먹은 우리가 계산을 핑계로 주춤대면 우리는 또 인재를 잃게 된다. 언제 다시 볼지 모를 정도로 엄청난 인재를 말이지.”
“실장님. 북한으로 작전을 나가서 살아오기를 바라지는 못합니다.”
“왜? 저놈들은 잠수함에서 빠져나온 일반병이 우리의 땅을 가로질러 북으로 돌아가기도 했는데? 그때도 내 말대로 작전을 펼쳤다면 절대 그런 일은 없었어. 그 작전 끝에 눈물을 흘리며 분해하던 최성곤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전대극은 결심을 굳힌 얼굴이었다.
“국가를 위해 기쁘게 피를 흘리겠다는 후배를 지키지 못했다. 국가가 나서지 못하는 것은 이해한다. 우리가 그 정도로 힘 있는 나라를 만들지 못했으니까. 그렇다고 이번에도 이대로 주저앉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전대극의 각오가 사무실을 가득 채웠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