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Cooking RAW novel - Chapter (735)
요리의 신-734화(735/736)
< Epilogue >
케냐는 여름은 시원하고 겨울은 따뜻한 나라다. 사실상 여름과 겨울을 구별하는 게 의미가 있나 싶을 정도로 사시사철 날씨가 거기서 거기인 편이었다. 그리고 나이로비의 겨울이라고 해서 다르진 않았다.
그래서일까. 메리는 매년 해가 바뀔 때마다, 그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똑같이 따뜻하고, 똑같이 시원한 날들이 계속되는데, TV에서는 신년이라며 새해를 축복한다 말한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뭔가 달랐다. 분명 따뜻해야 할 이 겨울의 공기가 어쩐지 싸늘하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메리는 그 이유를 알았다.
<< 민준을 처음 봤을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클 거라고는 생각 못했지. 그 때는 그냥 설거지도 안 하는 얌체 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
금발머리 사내가 단정해보이는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게 어린애처럼 툴툴대고 있다. 그랜드 셰프로 데뷔해, 미슐랭 스타를 따낸 고양이의 하품을 운영 중인 셰프계의 엘리트, 앤더슨이었다. 방송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셰프라면 모를 수가 없는 인물.
하지만 그 인물조차, 이 남자 옆에서는 빛을 잃는다.
<< 설거지 이야기 좀 이제 그만하자. 미안하다니까? >>
메리는 멍한 표정으로 화면 속 사내를 지켜보았다. 별 대단한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다. 일전에 설거지를 안 한 것 가지고 투닥대는,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하지만 메리에게는 그조차도 눈부시게 보였다. 저 사람은 조민준이었으니까. 아무 것도 없이 맨손으로 미국에 건너가, 세상 그 어떤 셰프들도 따라가지 못할 눈부신 업적들을 밥 먹듯이 쌓아낸 전설. 그녀의 영웅.
사실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든, 그녀의 눈 속에서 저들은 영웅일 수밖에 없었다. 같은 셰프로서, 같은 셰프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다른 세계에서 사는 사람들이었으니까. 그녀가 버거집에서 식비를 생각하며 패티를 구울 때, 저들은 무엇을 표현할까 생각하면서 요리를 한다. 예술을 한다.
멋있었다. 부러웠다. 동경했고, 질투했다. 이 겨울의 따뜻함이, 따뜻함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건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빛나고 있는 저들을 바라보다 보면, 그녀가 쥐고 있던 빛은 사실 서늘한 그늘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는 걸 느끼게 된다. 외면하고 싶어도, 외면할 수가 없다.
어쩔 수 없다. 그녀가 바라보는 건 단순히 세계 정상에 오른 셰프들이 아니다. 꿈이었다. 어려서부터 늘 가슴 속에 품고 있었던, 하지만 언젠가부터 당연하다는 듯 놓쳐버린 꿈.
이게 어른이 되는 과정이다 자신에게 속삭이려 할 때마다, 눈앞에 보이는 저들의 모습은 메리에게 그게 핑계라 말해주고 있었다. 결국 저들은 메리가 꿈 속에서나 꾸던 걸, 현실에서도 이뤄냈으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메리는 저들과 같은 자리에 서고 싶다 생각하면서, 그게 불가능한 수십 가지 이유를 머릿속에서 세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동시에 혐오하고 있다.
끔찍한 쳇바퀴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우스운 건, 그 쳇바퀴 위에 발을 올리면 괴로운 생각만 떠오를 걸 잘 알고 있으면서도, 메리는 누군가에 홀린 사람처럼 이렇게 TV를 켜면 바로 그들과 관련된 영상들부터 찾았다.
어쩌면 괴롭더라도, 그렇게 꿈을 바라보는 게 차라리 행복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꿈을 잊은 채 웃어도, 그 웃음에는 사실 진짜 행복이 담겨있지 않다는 걸 깨달아버렸기 때문에, 그래서······.
“······당신들의 팬 중에, 나보다 못난 사람이 있을까.”
메리가 우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차마 더 견딜 수가 없어 TV를 껐다. 오늘의 자가 고문은 이 정도로 족하다. 이제는 또 자고, 일어나서, 그렇게 또 레스토랑에 출근을 하고······ 자기만의 철학 따위는 별로 담겨있지도 않은, 흔하고 흔한 버거를 만들어야겠지.
그렇게 침대에 누웠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마음이 무거운 만큼 눈꺼풀도 무거우면 좋을 텐데. 결국 그녀는 폰을 꺼내들었다. 하루 종일 만들어낸 케냐식 카츔바리와 쿠쿠 쵸마 버거의 사진을 올리고, 잘난 척 멘션을 붙였다.
Mary Kabaka : 나이로비에서 가장 맛있는 버거. 다들 소문은 들어봤겠지?
글을 쓰면서도 어처구니가 없다. 먹고 살기 위해 버거만 만들고 있는 인생에 질릴대로 질렸으면서, 정작 스타북에는 이런 식으로 자신의 인생이 자랑스러워 어쩔 줄 모르는 척이나 하고 있다니. 스스로 돌아보기에도 너무 멋이 없어 안쓰러울 지경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희극적인 점은, 그런 글에 달리는 감탄 댓글 하나하나에 위안을 받는 그녀였다. ‘버거가 맛있어 보인다.’ ‘역시 셰프가 만든 버거라 뭔가 다르구나.’ ‘예술혼이 느껴진다.’
이 버거 안에 담긴 건 예술혼이 아니라 패배하고 지친 영혼의 찌꺼기 정도밖에는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그들의 저 의례적인 감탄사는 메리에게 면죄부가 되어주었다. 아직 그래도 사람들이 보기에 너는 셰프다. 너는 초라하지 않다.
하지만 그랬던 메리의 머릿속을 헝클어놓은 건 딱 한 줄의 댓글이었다.
Jack Daniel’s : 아직 꿈을 꾸시나요?
맥락 없이 튀어나온 댓글 하나. 양주 이름 뒤에 숨은 익명의 누군가가 던진 의미 모를 헛소리 정도로 치부하면 끝날 일이다. 하지만 메리는 순간 비명을 지르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그녀의 어설픈 기만과 허세가 한순간에 간파된 듯한 기분이었다. 발가벗겨진 채 시내로 내몰려도 지금처럼 수치스럽진 않으리라.
메리는 철천지 원수라도 보듯 화면을 노려보았다.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꿈을 꾸냐고? 그래. 꾼다. 꾸기만 한다. 늘 그랬듯, 현실과 꿈은 양립할 수 없다면서, 그렇게.
그렇게 고백해야 하는가. 누군지도 모를 이 양주에게? 그런 우스운 설전의 주인공이 되어야 할까. 온갖 생각이 들었고, 온갖 감정이 들끓었고, 그리고 다시 추워졌다. 메리는 이불을 꽉 움켜쥐고선, 핸드폰을 쥔 손을 늘어뜨렸다. 어떤 말을 해도 변명일 뿐이다.
······하지만 꿈을 이루지 못했단 이유로 변명조차 할 수 없다면, 그건 너무 잔혹하지 않은가.
결국 메리는 폰을 들었다. 추해질 걸 알면서도 변명을 뱉었다. 글 몇 줄을 통해 절규를 내질렀다.
그리고 잭 다니엘은 답했다.
< Epilogue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