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10
“아, 백소운님.”
진하림이 놀란 눈으로 방금 나타난 사람, 즉 백소운을 바라보았다.
사흉에게 허리를 잡혀 정신이 없었기도 하지만, 그야말로 갑자기 나타난 백소운을 보고 놀란 것이다.
“저들은?”
백소운이 신음과 함께 쓰러져 있는 낙양사흉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제야 진하림이 정신을 차린 듯 대답했다.
“황금방의 하수인들인 낙양사흉이에요. 저기 누워 계신 분은 장 아저씨고요.”
진하림이 조심스레 장씨 사내에게 가서 상태를 살폈다.
물론 이는 낙양사흉이 끙끙거리며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외상이 심하나 죽을 정도는 아닌 것 같소. 어떻게 하시겠소?”
뒤따라온 백소운이 물었다.
“의원을 모셔 와야 할 것 같아요. 일단 우리 집으로 데려가지요. 문제는 저놈들인데······.”
진하림이 여전히 끙끙거리고 있는 낙양사흉을 가리켰다.
생각 같아서는 모두 죽이고 싶었으나, 어느 정도 부상을 당했는지 잘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때 일흉이 정신을 조금 차린 듯 말했다.
“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
그는 자신을 비롯하여 동생들이 당한 것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제야 진하림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누군가 자신을 도와준 게 분명했다. 하지만 정신이 없어 그것을 확인하지도 못했던 것이다.
일흉이 안간힘을 써서 겨우 일어난 후 백소운을 가리켰다.
“설마······ 네놈 짓이냐?”
“무슨 말이오? 내가 왔을 때 여러분은 모두 쓰러져 있었소.”
“그럼 대체······ 어느 놈이?”
일흉이 비틀거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중심을 아직 잡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 아직도 충격이 가시지 않은 것 같았다.
그동안 백소운은 장씨 사내를 등에 업었다.
불행 중 다행인지 장씨 사내는 혼자 사는 사람이라 집에 다른 가족은 없었다.
“진 소저. 일단 소저 집으로 갑시다. 가서 어머님과 동생을 데리고 총단으로 가는 게 어떻겠소? 조금 전에 보니까 어머님께서 차도를 보이시는 것 같던데, 그게 가장 좋겠소이다.”
백소운이 자신을 향해 소저라 불러주자 진하림은 기분이 묘했지만, 지금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다만 어머니가 괜찮아졌다는 말에 무척 기쁠 따름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낙양사흉이었다.
비록 정체 모를 고수의 타격을 받아 지금은 더 이상 공격을 가해오기 힘들어 보이지만, 어떻게라도 매듭을 지어야만 했다.
“백소운님. 혹시 이곳에 오실 때 다른 분은 보지 못하셨나요? 아무래도 맹의 고수분이 다녀가신 것 같은데······.”
진하림의 물음에 백소운이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린 것 같았다.
‘으음, 어떻게든 낙양사흉이란 저놈들을 겁주려는 것 같군. 총명하구나.’
백소운이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사실 문안으로 들어오기 전 한 분이 바람처럼 사라지는 것을 본 것도 같소.”
“역시 그랬군요. 그분은 아마도 십일 년 전 절 구해주신 송 장로님의 친구분이실 거예요. 정마대전 중에 돌아가신 송 장로님에 이어 저를 계속 돌봐주시겠다고 했는데, 이렇게 절 도와주셨군요.”
진하림이 주위를 향해 절을 네 번 했다.
“감사드립니다. 이제 다시는 황금방 놈들이 저를 해코지 못할 거예요. 한번은 봐주지만 두 번째부터는 목숨을 빼앗는다는 게 어르신의 특징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진하림의 말에 일흉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송자기(宋紫奇)의 친구가 우릴 공격했다는 말이냐?”
“그렇다. 그분은 네놈들을 상대할 배분이 아니라 일부러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신 것이지.”
“그, 그게 사실이냐?”
일흉이 두려운 표정을 지었다.
한편 그러는 동안 이흉과 삼흉, 사흉 세 사람도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뭔가 큰 충격을 받았다가 서서히 회복되는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아직 눈빛이 흐릿했다.
“돌아가자.”
일흉이 앞장서자, 그들 세 사람도 뒤를 따라 집 밖으로 나가려 했다.
대문 옆에 서 있던 진하림은 길을 비켜줬다.
그때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며 겨우 걸어가던 일흉이 갑자기 허리에 찬 비수를 뽑아 진하림의 목을 겨눈 것이었다.
“으윽!”
혈도까지 찍힌 진하림이 꿈쩍도 못 하고 신음을 내뱉었다.
일흉이 두 눈을 번들거리며 주위를 향해 소리쳤다.
“송자기의 친구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그놈은 벌써 가고 없다. 그러니 내 어찌 그냥 가겠느냐? 무엇보다 네년의 말을 믿을 수가 없다. 우리가 뭐라고 그만한 고수가 몸을 숨긴단 말이냐?”
득의에 찬 목소리였다. 그의 예상대로 이번에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일흉은 자신의 도박이 성공했다고 판단했다. 그런대로 회복이 빠른 이흉에게 명을 내렸다.
“저놈 둘을 일단 죽여라. 사실 오늘 일은 소방주께서 지시한 일이다. 과거에 무림맹과 관련된 껄끄러운 일들을 모조리 지우라고 하셨다. 이 계집과 관련한 일도 그중 하나이지.”
“역시 그랬었구나. 그렇다면 날 기루에 팔아먹으려 했다는 것도 거짓말이었군. 소방주 그놈이 결국 아무 죄 없는 내 아버님을 죽인 게 걸려서 나까지 죽이려 했던 것이었구나.”
진하림이 한탄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 역시 직감적으로 그런 의도를 느꼈던 것이다. 처음부터 놈들을 죽이려 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일흉이 껄껄 웃었다.
“그렇다. 죽인다고 하면 그전에 우리가 재미를 볼 때 반항이 너무 심할 것 같아서 해본 말이었다. 하지만 네년 혼자 죽이지는 않을 것이니 안심해라. 이미 너를 유인하는 데 성공했으니 네 어미와 동생 역시 불에 태워 죽여야겠다. 사람들은 집에 불이 나서 죽은 것으로 알 것이니, 행여나 문제 삼지는 않을 것이다. 하기야 일개 식녀에 불과한 네년을 누가 신경써줄까.”
“잔인한 놈. 그동안 네놈들 때문에 죄 없는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다고 들었다. 어찌 하늘은 네놈들을 이렇게 내버려두는 것인가.”
진하림이 노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하지만 그녀를 돕고자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이흉이 도끼를 들고 천천히 백소운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장씨 사내를 업고 있던 백소운은 그 와중에 다시 내려두고 있는 상태였다.
“어서 피하세요. 놈은 부상을 당해 뛰어가면 쉽게 쫓아오지 못할 거예요.”
진하림이 백소운을 걱정하며 소리쳤다.
하지만 정작 백소운은 태연한 모습이었다.
“으음, 결국 이 모든 게 황금방 소방주란 자가 지시한 일이라는 것이로군.”
“그렇다면 어찌할 것이냐? 곧 죽을 놈이 겁이 너무 없군.”
이흉이 도끼를 머리 위로 들어 붕붕 돌렸다.
자신에게 그만한 힘이 있다는 것을 과시하려는 것이었다. 내심 백소운이 도주하면 그대로 도끼를 던져 죽일 생각이었다.
지금까지 그런 식으로 죽인 양민만 백여 명에 가까워 그에게는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백소운은 지금까지 그가 죽인 상대와는 너무나 달랐다.
일단 너무나 태연했다.
사실 그 때문에 처음엔 아까 자신들을 쓰러뜨린 사람도 백소운인 줄 알았다.
“잘 가라. 어린놈.”
이흉이 도끼로 백소운의 머리를 쪼개려는 순간.
대문 쪽에서 비수 한 자루가 날아와 그의 목에 박혔다.
“크윽!”
이흉이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옆으로 쓰러졌다.
삼흉이 급히 그를 부축하려 했으나 이미 숨져 있는 게 아닌가.
“웬 놈들이냐?”
일흉이 급히 고개를 돌려보니 집 안으로 삼남 일녀가 들어오고 있었다.
한데 그들은 바로 유덕, 정기, 막총 세 사람과 천향이 아닌가.
특히 천향은 오른손에 조금 전 날아온 것과 같은 모양의 비수 세 자루를 들고 있었다.
“네년이 둘째를 죽였구나.”
일흉이 천향을 노려봤다.
천향이 코웃음을 쳤다.
“낙양사흉 네놈들의 악행은 익히 들었다. 백주 대낮에 사람을 해치려 하다니, 오늘 명줄을 끊어주마.”
천향이 대답도 들어보지 않고 바로 비수를 날렸다.
슈욱. 슉.
진하림을 인질로 삼아 도주를 하려 했던 일흉이 가장 먼저 이마에 비수가 박혀 절명했다.
삼흉과 사흉 역시 도끼를 들고 덤비려다 그대로 목에 비수를 맞고 절명했다.
쿵쿵.
그야말로 순식간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천향이 말없이 다가와 진하림의 혈도를 풀어줬다.
쓰러져 있는 장씨 사내도 살펴줬는데, 처음으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생각보다 부상이 심하지 않군요. 외상으로 봐서 내상도 깊을 줄 알았어요. 이대로라면 그대로 둬도 며칠 이내로 완쾌할 거예요.”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되자, 백소운이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진하림 역시 고개를 숙였다.
유덕이 상황을 설명해줬다.
호법당에 마침 천향이 와 있었는데, 이야기를 듣고 곧장 이곳으로 출동했다는 것이었다.
“마침 현무당에 정보 하나가 들어온 게 있었어요. 낙양사흉이 황금방 소방주의 뒤치다꺼리를 하고 있는데, 그 대상 중에 진하림씨 이름도 있었지요.”
“아. 그럼 앞으로 황금방과는?”
“맹주님께서는 황금방의 입맹을 불허하실 생각이세요. 지금까지는 자금력이 모자라 신경을 쓰지 못했지만, 백성의 고혈을 짜내는 그놈들을 이제는 오히려 처단해야 할 때이지요.”
천향이 말을 하며 눈을 빛냈다.
‘하루아침에 사람이 달라져 보이는군. 풍기는 기운도 그렇고 당당한 여협의 기운이 넘쳐나는구나. 무공도 어제보다 훨씬 강해 보인다.’
백소운이 의아해했다. 그리고 낙양사흉의 시체를 쳐다봤다.
애당초 그들에게 손을 쓴 사람은 그였다.
하지만 천향 등이 오는 것을 알고 상황을 좀 더 살폈었다. 한데 이런 결과가 나타난 것이었다.
물론 장씨 사내의 내상을 치료해준 것도 바로 그였다.
“일단 우리 집으로 가시지요.”
진하림이 어머니와 동생 걱정을 하며 자신의 집으로 갔다.
백소운과 천향 등이 그녀를 뒤따랐다.
* * *
최씨 부인의 상태는 극적으로 좋아져 있었다.
백소운과 진하림 등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깨어나 진호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장씨 사내도 천향이 한번 내공을 주입하자 곧바로 깨어났다.
그가 입은 외상 역시 천향이 가지고 있던 금창약을 발라주자 곧바로 효험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게 천 호위님 덕분입니다.”
진하림이 거듭 감사를 표시했다.
그러면서 아까 있었던 정체 모를 고수의 등장에 관해서 설명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시간차는 조금 있었지만, 혹시라도 그 고수가 천향이 아닐까 하는 기대도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천향은 그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는 표정이었다.
“이상하군요. 진 소저 말대로 송 장로님의 벗일 수도 있겠지만, 그럴 확률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거예요. 송 장로님은 늘 혼자서 지냈던 분이라, 그런 친구분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어요. 아, 그리고 뭔가 지나가는 사람을 봤다는 이야기도 거짓이라 했지요?”
“네. 저는 장단을 맞춰 줬을 뿐입니다. 제가 왔을 때는 이미 낙양사흉이 모두 쓰러져 있는 상태였습니다.”
“알겠어요. 아무튼 다들 상태가 생각보다 훨씬 양호해 안심이에요. 하지만 만에 하나 황금방에서 비밀리에 복수할 수도 있으니 모두 총단으로 가시지요. 안정이 될 때까지 제가 관사를 구해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진하림과 최씨 부인, 장씨 사내는 그저 고맙다는 말만 할 뿐이었다.
진호 역시 총단으로 간다고 하니 매우 기뻐한 것은 물론이었다.
그렇게 얼마 후 약간의 짐을 챙긴 사람들은 모두 총단으로 향했다.
가면서 천향은 오늘 일을 상부에 알려 황금방에 경고할 생각이라 말하였다.
그렇게 하면 황금방 수뇌부에서 이일을 문제 삼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수하들의 복수보다는 자신들의 안전에 관해 관심이 더 큰 사람들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그녀의 말은 한마디 한마디가 확신에 차 있었다. 이는 듣는 이로 하여금 편안함을 주었다.
내친김에 천향이 최씨 부인과 진호, 그리고 장씨 사내를 보며 말했다.
“차라리 이번 기회에 세분 역시 앞으로 계속 총단 안에서 생활하도록 하세요. 물론 그렇다고 하인 생활을 하라는 것은 아니에요. 관사에 계시면서 틈틈이 돈이 되는 일거리를 가질 수 있도록 조처해드릴게요. 제게 그만한 힘은 있답니다.”
“그렇게만 해주시면 정말 소원이 없겠습니다. 저는 하인도 괜찮습니다.”
그동안 일거리가 없어 궁핍했던 장씨 사내가 매우 기뻐했다.
진하림이 최씨 부인과 몇 마디 나눈 후 미소를 지었다.
“안 그래도 이번에 제가 정식무사가 되면 가족을 불러들이려고 했어요. 천 호위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별말씀을요. 진 소저는 이번에 돌아오면 반드시 정식무사가 되실 거예요. 내일 함께 출발하는 것에 변함이 없지요?”
“네.”
진하림이 대답과 함께 눈을 빛냈다.
오늘 경험을 통해 좀 더 무공을 연마해야겠다는 생각이 확실하게 든 것 같았다.
무엇보다 아직 그녀의 복수는 끝나지 않았기에 더욱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