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102
“백 공자 자네가 아니었다면 더 큰 피해를 보았을 것이네. 삼만이나 되는 놈들을 혼자서 물리쳤으니 정말 감탄할 뿐이네.”
무림맹 태상호법 방고륭은 수채로 돌아온 백소운을 향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백소운은 그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수적들이 돌아간 후 그는 동정협에서 기다리던 사람들과 함께 수채로 돌아왔다.
뒤늦게 따라왔던 진하림, 정기탁, 화미앙, 한조도 함께 돌아왔음은 물론이었다.
수채에 있던 정흥, 정수심, 김기성, 이미린도 백소운의 무사함을 매우 기뻐했다.
물론 그렇다고 마냥 축제 분위기는 절대 아니었다.
이천 명에 가까운 무사들이 전사한 것은 뼈아픈 대목이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건가? 염치없는 부탁이지만, 총군사께서 오실 때까지 여기 좀 머물러줬으면 하는데······.”
방고륭이 말을 돌리지 않고 직접 말했다.
내일 아침 날이 밝으면 백소운이 다시 섬서성으로 떠날 것을 짐작했기 때문이었다.
“죄송합니다. 예정된 일이 있어서······.”
“중요한 사적인 일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네. 하지만 하루 이틀만 있으면 총군사와 백리 아가씨께서 이곳으로 오실 걸세. 그때까지만 어떻게 안 되겠나? 사실 표물 운반도 더 할 필요가 없어진 게 아닌가. 화산파 장문인께서 직접 이곳으로 오시고 계시니 말일세.”
“표행은 저와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화산까지 가지 않아도 된 것은 잘된 일이지만, 그렇다고 제 일이 마무리된 것은 아니지요.”
백소운이 정중하게 다시 한번 거절하자, 방고륭도 더는 권하지 못했다.
이렇게 되자 섬서성으로 떠나게 된 사람은 백소운과 진하림, 정흥, 정수심 네 사람으로 결정되었다.
정기탁과 화미앙, 김기성, 이미린은 수채에서 화산파 장문인을 기다리기로 했다.
백소운이 정흥, 정수심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두 분도 이곳에 남아 화산파 장문인을 만나 뵙는 게 어떻겠습니까?”
“저보고 화산파 제자로 들어가라는 말씀인가요?”
“그건 소저께서 결정하실 문제이지요. 그보다 일정이 늦어져 마차 대신 경공을 펼쳐 천무산까지 가볼 생각입니다. 한 사람 정도는 데리고 갈 수 있지만, 더 이상은 무리일 것 같군요. 어차피 볼일을 본 후 낙양에 갈 생각이니, 무림맹 총단에서 다시 만나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때까지 기초를 좀 더 닦고 계시는 게 좋을듯합니다.”
백소운의 말에 정수심이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정흥은 그녀의 의사에 따를 생각이라 별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 역시 백소운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기초를 좀 더 닦으라는 것은 바로 무명심공을 연마하고 있으라는 뜻이기 때문이었다.
정수심이 결심을 굳힌 듯 입을 열었다.
“좋아요. 백 대협 뜻대로 하겠어요. 화산파 장문인께도 제 뜻을 확실히 말씀드려 깨끗이 마무리한 후 무림맹 총단에 가서 백 대협을 기다리겠어요. 총단에는 꼭 오실 거죠?”
“네. 물론입니다. 꼭 처리해야 할 일도 있고 해서 안 가볼 수가 없을 듯합니다. 그럼 그때 뵙기로 하지요.”
백소운이 홀가분한 표정을 지었다.
정씨 남매가 귀찮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화산파 장문인이 직접 이곳으로 오는 마당에 그들 남매가 갈 곳이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그 때문에 자칫하면 천무산까지 동행할 가능성도 컸다. 하지만 그곳은 자신의 신세내력과 관련된 은밀한 장소라 최대한 비공개로 진행하고 싶은 게 사실이었다.
‘그 괴조가 나 보고 분명 천족 출신이냐고 물었다. 허투루 들을 이야기가 아니다.’
백소운이 눈을 빛냈다.
진하림이 말했다.
“오라버니. 이왕 가기로 한 것 내일 아침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나요? 지금 바로 떠나기로 해요. 오라버니만 피곤하지 않으시면 전 상관없어요.”
“그럴까?”
백소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아침까지 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진하림 말대로 바로 떠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정수심이 말했다.
“백 대협. 언제 가시든 예정대로 마차를 타고 가세요. 섬서성까지는 먼 길이니, 경공으로 가시면 분명 무리가 있을 거예요.”
“으음, 알겠습니다. 듣고 보니 그 말씀도 일리가 있군요.”
백소운이 동의를 하며 미소를 지었다.
사실 마차를 버리고 경공으로 가겠다는 것은 정씨 남매를 남겨두기 위해 일부러 한 말이기도 했다.
한데 정수심이 눈치 빠르게 그 사실을 간파하고 배려를 해준 것이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나중에 백리 소저께서 오시면 잘 말씀드려 주십시오.”
“알겠네. 잘 가게.”
방고륭이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백소운 등이 타고 온 마차를 몰고 오게 했다.
무사 한 명이 급히 나가 마차를 끌고 왔다. 대청 밖으로 나온 사람들은 모두 백소운과 진하림 두 사람을 배웅했다.
동방표국의 이미린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 역시 표물을 전달하고 당분간 무림맹 총단에 머물 계획이니 그때 뵙기로 해요.”
“아, 그렇습니까? 잘 되었군요.”
백소운이 한번 웃어준 후 마차에 올라탔다.
그가 마부석에 앉자, 진하림이 얼굴을 조금 붉히며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백소운과 다시 단둘이 가게 되어 내심 무척 기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경험이 쌓인 탓인지 내색하지 않고 신중한 표정이었다.
“그럼, 다들 무운을 빌겠습니다.”
백소운이 다시 한번 포권한 후 채찍을 휘둘렀다.
“이럇!”
두두두.
마차가 빠르게 움직이며 수채 뒤쪽에 나 있는 육로를 통해 북쪽으로 향했다.
* * *
“오라버니. 우리 둘이 다시 이렇게 가게 된 것은 좋은데, 아저씨들을 뵙지 못한 것은 아쉬워요.”
“어쩔 수 없지 않겠느냐? 나 역시 뵙고 싶지만, 아저씨들은 이제 정식무사가 되셨으니 당분간은 사적으로 만나는 일은 자중해야지. 안 그래도 너와 나 둘이 맹에서 나와 말은 안 하지만 섭섭해 하실 수도 있을 것이다.”
“하기야 말이 십년 이상 하인 생활을 하면 구속을 당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실제는 다르지 않나요? 총단 하인 중에 우리처럼 마음대로 나와 버린 사람은 극히 드물 거예요. 오라버니 명성이 높아지지 않았다면 아마 저 역시 맹에서 쉽게 나오지 못했을 거예요.”
“하하하. 그래서 후회를 하느냐?”
호남성을 벗어나 막 호북성에 접어든 백소운이 마차 속도를 조금 늦췄다.
밤새 마차를 달린 결과 제법 많이 오게 된 것이다.
물론 새벽 무렵 백소운도 진하림과 교대하고 잠시 눈을 붙였었다.
“후회는 절대 안 해요. 다만 제 무공이 너무 약해 오라버니께 짐이 되는 것 같아 그게 가장 아쉬워요.”
“으음, 무명심공 수련은 어떻게 되어 가느냐?”
“처음에는 잘 되었는데, 요즘은 별 진도가 없어요. 아마 마음을 조급하게 먹어서 그런 것 같아요. 시간도 얼마 없었고······.”
“알고 있구나. 무공이 지극해질 때까지는 조용히 닦아 나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무학의 이치가 무궁함을 깊이 깨닫고 항상 스스로 부족한 생각을 지닌다면, 어찌 발전이 없겠느냐?”
“알고 있어요. 하지만 뜻대로 안 되는 것 같아요. 무슨 비법이라도 없을까요?”
“속성으로 무공을 익히는 방법 말이냐?”
“네. 영약을 먹고 내공이라도 높아진다면 좋으련만······.”
“영약이라······.”
백소운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안 그래도 진하림의 안전 때문에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 내가 인도만 잘해주면 영약으로 내공을 높일 수 있다. 아직 내 무형공력을 받아 흡수할 경지는 아니지만, 영약으로 내공을 일갑자 정도 올려두는 것은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백소운이 금단비고 안에 있는 여러 영약들을 살펴봤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지금까지 제법 효과를 받던 금단환이 있었다.
하지만 이 금단환은 치료 목적이 강해 내공을 높이는 용도로 사용하기에는 적절치 않았다.
비고 안을 좀 더 살펴본 그가 눈을 빛냈다.
여인 전용으로 만들어진 영약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그래. 저게 좋겠군. 천봉환(天鳳丸) 한 알 정도면 내공 일갑자 정도는 올릴 수 있을 것이다. 더 이상의 내공은 지금 하림이가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니, 저 정도가 좋겠군.’
백소운이 천봉환 한 알을 금단비고에서 꺼냈다.
마차를 인근 숲 공터에 세운 것은 얼마 후였다.
“조금 쉬었다가 가자.”
“네. 오라버니.”
“그냥 쉬는 것이 아니다. 조금 전에 말한 대로 너의 내공을 높여야겠다. 고통을 느끼지 않게 해줄 테니, 너는 무명심공으로 운기할 준비를 해라.”
“그게 정말인가요?”
진하림이 매우 기뻐했다.
백소운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근처에 있던 평평한 바위를 가리켰다.
“호들갑 떨지 말고 저 바위에 앉아라. 무명심공으로 일주천을 한 후 마음을 가라앉혀라.”
“네. 뭐 돌릴만한 기도 없어요.”
진하림이 애써 흥분을 가라앉힌 후 바위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미약하나마 일주천을 하고 나자, 백소운이 천봉환을 내밀었다.
“어서 먹어라. 소림사 대환단 보다 더 좋은 것이니, 마음을 편히 해서 삼켜라. 조급한 마음을 먹게 되면 기혈이 불안정해져 내공 흡수에 큰 지장을 초래할 것이다.”
“알겠어요.”
백소운이 겁을 준 것이 먹혔을까.
진하림이 진지한 표정으로 천봉환을 받아 입속에 넣었다.
천봉환은 입 안에 들어가자마자 그대로 녹았다.
진하림이 뭔가 달콤한 이슬 같은 것을 먹은 느낌에 절로 미소를 지었다.
게다가 향기는 얼마나 향기로운지 기분이 더욱 상쾌했다.
하지만 액체로 변한 천봉환이 뱃속으로 들어간 순간, 명치 부근에서 엄청난 고통이 밀려왔다.
“아!”
진하림이 신음을 내었다.
백소운이 예상했다는 듯 그녀의 명문혈에 오른 손바닥을 대고 기를 넣어주었다.
바로 그의 무형공력이었다.
진하림이 한숨을 돌리며 평온을 되찾은 것은 그 직후였다.
“무명심공으로 새로 몸에 들어온 기운을 기혈을 따라 돌려라. 비워야 채워지는 것이니, 구결에 따라 통로를 넓히면 새로운 힘이 자연스럽게 자리할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무명심공으로 만들어진 무명진기(無名眞氣)가 주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 너의 성취 정도는 오직 네게 달려있다. 깨달음을 얻게 된다면 온전한 일갑자의 내공을 얻게 되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반갑자도 벅찰 것이다.”
“······.”
진하림이 대답 대신 무명심공으로 계속 일주천을 시도했다.
하지만 또다시 조급한 마음이 일어났다. 이번에는 그 정도가 너무 심해 안색이 창백해질 정도였다.
바로 주화입마의 조짐이었다.
이는 백소운 또한 예기치 못한 상황이었다.
물론 지금이라도 천봉환의 기운을 몰아내 주화입마의 위기를 해소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그럴 정도는 아니었다.
백소운이 넣어준 무형공력이 보호막 구실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이번에 내공 증진에 실패하면 다음에는 배로 어려워진다는 것이 문제였다.
실패한 경험이 고착화되면 자신도 모르게 다음에도 불안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너 자신을 믿어라. 지극히 허한 가운데 지극히 실한 것이 있는 법이니, 비우고 또 비워라. 그리고 그 비운다는 생각마저도 비워야 할 것이다.”
백소운이 무명심공 구결 일부를 쉽게 풀이해주었다.
진하림이 어느 순간 눈을 빛냈다.
‘허하면서도 실함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허가 없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 이것은 그 허에서 실을 인정하려는 것일 뿐, 본래 허가 없고 실만 있다는 말이 아니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자연스러움이구나.’
진하림의 표정이 평온해졌다.
마음이 안정되자 기의 움직임이 부드러워졌다.
‘마음이 기가 되고, 기가 바로 마음이다.’
그때였다.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진하림의 몸이 바위 위에서 한 자 정도 떠오른 것이었다.
동시에 그녀의 입에서 금빛 연기 같은 것이 나왔다. 그 연기는 곧바로 콧속으로 들어갔다.
백소운이 뒤로 물러나며 매우 기뻐했다.
‘깨달음을 얻었구나. 아직 초보 수준이긴 하나 머지않아 무림에 여협 한 명이 탄생하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