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104
“으으······.”
머리를 만지며 서서히 일어나는 사람은 바로 백소운이었다.
정신을 잃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는 그도 몰랐다.
“내가 정신을 잃었었구나. 통증이 어마어마했었지.”
백소운이 먼저 자신의 몸 상태를 점검했다.
한데 뭔가 이상했다.
감지되어야 할 무형공력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외부인은 간파하지 못해도 자신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게 무형공력이었다.
“이럴 수가······.”
백소운이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공력을 모두 잃었구나.”
백소운이 급히 금단비공을 일으켜 보았다.
하지만 직후 단전에서 엄청난 통증이 느껴져 급히 그만두었다.
공력을 모두 잃었다 해도 다시 운공을 하면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으리라 믿었는데, 운공 자체가 불가능하게 된 것이었다.
‘단전이 파괴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상태라면 무공이 폐쇄된 것과 마찬가지가 아닌가. 이 모두가 정말 천무성자 그분이 남기신 내단을 복용한 때문인가.’
인정하기 싫었지만, 지금으로서 그 이유밖에 없었다.
즉시 상태창에게 질문을 던졌다.
‘내 몸이 왜 이렇게 된 것이냐?’
하지만 아무 답변이 없었다.
아니 답변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자신과 연결이 끊어진 것 같았다.
당황한 그가 석실 안을 거닐면서 팔다리의 근육을 시험해봤다.
그 결과 지극히 평범한 청년의 힘 정도가 느껴졌다.
‘아예 평범한 사람이 되었구나. 설마 이 모든 게 함정이었단 말인가. 아니다. 상태창 역시 확인을 해주었다. 천무성자 그분이 틀림없다고. 그렇다면 내 몸이 아직 그분의 내단을 받아들이기에 부족해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인가. 아니면 일시적인 현상인가.’
백소운이 다시 석실 바닥에 앉았다.
흥분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어쩌면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해결될 가능성도 있는 게 사실이었다.
‘마음을 편히 하자. 묵상하면서 추이를 살펴보자.’
백소운이 가부좌를 하고 눈을 감았다.
물론 억지로 운공요상을 하지도 않았다.
내공이나 무형공력을 운용하기 시작하면 엄청난 고통이 밀려온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그 모든 능력 또한 내 것이 아니었다. 안배에 의해 강제로 얻게 된 힘이라 할 수 있었지. 집착을 버리자.’
백소운이 진정을 하며 다시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내심 반성도 했다.
사실 천무성자가 남긴 내단을 먹으면서 기대가 컸던 것이다.
절대적인 힘을 가지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리하여 지옥신조 같은 괴수들을 제거하는데 한층 더 수월하리라 생각했는데, 결과는 뜻밖이었다.
지금으로서는 내단을 복용하기 전의 상태라도 돌아가면 무척 기쁠 것 같았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또 지났을까.
대략 하루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고 느꼈을 때 백소운이 다시 운공을 시도했다.
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단전 부위에 엄청난 통증이 느껴져 도저히 기를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은 알 수 있었다.
‘천무성자님의 내단이 기해혈에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해 벌어진 현상이다. 뭐가 부족한 걸까. 아무래도 나의 깨달음이 모자랐기 때문이 아닐까.’
백소운이 눈을 빛냈다.
기실 아무리 무림고수라도 내단을 남기는 일은 극히 드문 일이었다.
하지만 천무성자는 등선에 성공한 사람이었고, 그가 남긴 내단은 가짜가 아니었다.
‘하루아침에 해결될 일이 아닌 것 같군. 다행히 움직이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으니, 일단 이곳을 떠나는 게 좋겠다. 하림이도 날 기다리면서 걱정을 많이 하고 있을 듯하군.’
백소운이 천천히 일어나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려 했다.
그때였다.
석실 전체가 우우웅, 하는 굉음과 함께 무너져버렸다.
백소운이 급히 문이 있던 쪽을 향해 몸을 날리려 했으나, 이미 그쪽은 막힌 후였다.
반사적으로 몸을 돌린 그가 발견한 것은 반대쪽 벽에 나 있는 금빛 막이었다.
원래는 평범한 석벽이었다. 굉음과 함께 원래 있던 출입구가 폐쇄되고 새로운 출구가 생긴 셈이었다.
금빛 막은 흐릿했지만, 그 안에 통로가 있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백소운은 주저 없이 금빛 막 안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 * *
“아니! 이곳은?”
백소운은 갑자기 나타난 별천지 같은 환경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마치 무릉도원처럼 멋진 풍광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멀리 보이는 봉우리 숫자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백소운은 한눈에 자신이 살던 중원과 많은 점에 있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단정 지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백소운이 주위를 둘러봤으나 자신이 있었던 석실 같은 곳은 보이지 않았다.
“금빛 막 안으로 들어왔을 뿐인데, 정말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것 같구나.”
백소운이 다시 한번 주위를 살펴보니 거대한 산맥의 어느 한 지점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근처에는 온갖 기화이초와 수목들이 울창하게 자라나 있었다. 이름 모를 새들의 울음소리도 기이한 분위기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이곳이 대체 어디란 말인가.”
백소운이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최대한 침착하려 했다.
일단 몸 상태부터 다시 점검했다.
공력이 없어지고 운공 또한 하지 못하게 된 상태는 여전했다.
그야말로 평범한 사람이 된 것이라, 위축되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아무리 새로운 환경이라도 무공이 받쳐주면 두려움을 없앨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지가 못한 것이다.
‘위축될 필요 없다. 모든 일에는 장단점이 있으니까. 일단 길을 따라 가보면 사람들을 만나게 되겠지.’
백소운이 무명검을 들고 천천히 소로를 따라 걸어갔다.
그렇게 얼마를 걸었을까.
큰 길이 나오며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십여 명 정도였는데, 모두 한곳으로 가는 중이었다.
정작 백소운이 놀란 것은 바로 그들이 타고 있는 것이었다.
믿을 수 없게도 그들 모두 구름을 타고 길을 가고 있었다.
바닥에서의 높이는 이삼 장 정도로 그렇게 높지도 않았다.
마치 마차를 타고 가고 있는 것처럼 구름을 타고 가는 그들의 표정은 조금 긴장되어 있었다.
백소운이 나타나자, 그들 모두는 한번 쳐다볼 뿐 가던 길을 계속 갔다.
백소운이 맨 뒤에서 구름을 타고 가던 한 노인에게 물었다.
“어르신. 여기가 어딥니까? 혹시 신선이십니까?”
백소운이 예의 백의노인이 타고 있는 구름을 보며 안색을 굳혔다.
“허허허. 신선이면 얼마나 좋겠소? 한데 그대는 운운술(運雲術)을 배우지 않았소? 등선봉(登仙峰)에 가려면 아직 몇 개의 봉우리를 더 넘어야 하는데, 어찌 가려고 하는 것이오?”
“네? 운운술이요? 지금 어르신께서 타고 계시는 것이 정말 구름입니까?”
백소운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겉으로 봐서는 틀림없이 구름이었다. 하지만 일종의 환술로 생각했었다.
“구름이지 그럼 무엇이겠나? 보아하니 아직 출도(出道)를 하지 않은 것 같은데, 어서 내 등선운(登仙雲)에 올라타게. 등선회의가 정오에 열리니, 구름을 타고 가지 않으면 도착하기 힘들 걸세. 우리가 제일 마지막이거든.”
“아, 네.”
백소운이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백의노인의 말이 모두 이해가 되는 게 아니었지만,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면서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알아내려는 것 같았다.
“그럼 실례를 하겠습니다.”
마침 백의노인이 타고 있던 구름이 내려왔기 때문에 백소운이 올라탔다.
무공을 잃어버린 것과 마찬가지 상태인 백소운은 자칫 구름 속에 빠질까봐 조심스러워했다.
하지만 등선운은 역시 보통 구름이 아니었다.
발을 갖다 대자 구름 조각이 포근히 감싸주어 안정감을 주었다.
둥실둥실.
구름이 다시 오르더니 백의노인과 백소운을 태우고 앞으로 날아갔다.
앞에 가던 사람들이 어느새 속력을 내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 또한 쫓아가려는 것 같았다.
“이곳이 어디입니까?”
백소운이 의문을 참지 못하고 직접 물었다.
“이곳은 신선계(神仙界)라고 하네. 수도 중 주화입마를 당해 기억을 상실한 것 같군. 그렇지 않으면 신선계를 모를 리가 없을 테니 말일세.”
“바로 그렇습니다. 수도 중 정신을 잃었는데, 깨어보니 아무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역시 그랬군. 수련을 하다 보면 가끔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게 마련이지. 나는 만우노인(萬憂老人)이라 하네. 자네 이름은 무엇인가?”
“백소운입니다.”
“으음······ 좋은 이름이군. 자네도 이번 등선회의에 참석하려는 것인가?”
“등선회의요?”
“아니. 등선회의도 잊어버렸는가?”
“네. 죄송하지만 설명 좀 해주시겠습니까?”
“으음, 이번 등선회의는 우리 등선맹과 지옥맹의 전면전을 결정할 중요한 회의라 할 수 있네.”
“아······.”
백소운이 탄성을 터뜨렸다.
조금 전까지 의구심을 가지고도 애써 자제를 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도 어쩔 수 없었던 것 같았다.
‘역시 등선맹과 지옥맹이 있는 세상으로 오게 된 것이로구나. 보아하니 많은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거대 환상 진법 안인 것 같은데, 이런 세상이 있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백소운이 상념에 잠겨 있을 때.
만우노인이 마침 신선계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이전에도 자네처럼 충격을 받아 기억을 상실한 친구에게 설명을 해준 적이 있었지. 결론적으로 말해 우리 신선계는 일종의 무림계(武林界)라 할 수 있네. 신선계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공을 알고 있으니까 말일세.”
“유일한 무림세계입니까?”
“으음, 자네도 그 소문을 들은 모양이군. 하기야 오늘 등선회의도 신강호 때문에 열리는 셈이지.”
“신강호라 함은 새롭게 발견된 중원 무림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허허허. 그러하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신선계를 원강호라 부르기도 하지.”
“한데 지옥맹과 등선맹 사이에 무슨 협약을 맺어 서로 싸우지 않기로 했다던데, 그건 무슨 뜻입니까?”
“백년협약 말인가? 그것은 백 년 전 우리 등선맹과 지옥맹 간에 큰 싸움이 일어나 그 수습방안으로 맺은 협약이네. 일종의 불가침 조약이라 할 수 있지. 신선계는 그 넓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넓은 곳이고, 아직 미개척 지역도 무수히 많네. 신비백맹이란 말이 괜히 생겨난 게 아니지. 아무튼, 여러 가지 이유로 굳이 두 맹이 싸울 필요가 없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본 것이지. 세력이 대등했으니까. 하지만 삼 년 전 신강호를 발견하면서 그 약속이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네. 최근에야 제대로 알려진 신강호는 비록 무공 수준이 매우 낮지만 우리와 비교도 할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살고 있네. 지옥맹 놈들이 눈독을 들일 만 하지. 더욱 자세한 것은 오늘 등선회의에서 알 수 있을 걸세. 사실 신강호에 대해서는 분란을 방지하기 위해 언급하는 것조차 금기시되어 왔었네. 그 때문에 오늘 처음 그 세세한 사정을 알게 되는 사람들도 무척 많을 것이네. 자네는 내 옆에만 있으면 편하게 구경할 수 있을 걸세.”
“알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그래. 그럼 속도를 조금 내볼까.”
만우노인이 두 발로 진기를 불어넣자, 등선운이 수십 장 이상 높이로 떠올랐다.
“저기 보이는 거대한 봉우리가 바로 등선봉이네. 보이나?”
“네. 대단하군요.”
구름 때문에 보이지 않았던 거대한 봉우리, 등선봉 주위로 벌써 사람들을 태운 구름이 떠다니고 있었다.
대략 봐도 천여 명이 넘었다.
아직 행사가 시작되지 않았는지 봉우리 위까지는 올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수도자들이 기다리고 있군. 아, 여기선 무림인들을 서로 수도자라 부르기도 한다네. 혹자는 신선에 가까워진 사람들이라 해서 반선(半仙)이라 부르지.”
“역사가 오래되었군요.”
“그렇지. 자네가 살고 있는 신강호 또한 오래되기는 마찬가지가 아닌가?”
“아!”
백소운이 안색을 굳혔다.
만우노인이 껄껄 웃었다.
“허허허. 놀라지 말게. 자네가 신강호에서 온 것을 처음부터 안 것은 아니네. 자네 이름을 듣고 안 것이네. 혹시 옥려군 소저라고 아는가?”
“네. 옥 소저에게 제 이름을 들었습니까?”
“그러하네. 사실 나는 등선맹의 장로 신분을 가지고 있네. 공간의 왜곡 현상이 일어난 것을 발견하고 자네가 있던 곳으로 왔었지. 특이한 것을 못 찾고 돌아가고 있었는데, 다행히 자네가 내게 말을 걸어 이렇게 함께 가게 된 것이네.”
“죄송합니다. 처음부터 말씀드려야 했는데······.”
“아닐세. 자네가 옥 소저와 함께 지옥맹 놈들을 처단한 사실을 잘 알고 있네. 우리는 한편이니 어찌 책망하겠나? 앞으로도 잘 부탁하네. 한데 무공이 정말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군. 완벽한 반박귀진이네.”
“그게······ 사정이 있습니다. 차차 아시게 될 겁니다.”
백소운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공력을 모두 잃었다는 사실을 굳이 미리 알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등선맹 내에도 지옥맹의 간세가 있을 가능성이 높으니, 조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