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108
백소운이 신선계에 들어온 지 벌써 사흘이 지났다.
그동안 그는 공력을 회복하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였으나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금단환 백 알의 효력 또한 모두 사라진 상태라, 그거라도 복용을 다시 해두려 했으나 금단비고 자체가 열리지 않았다.
아마도 긴급한 경우가 아니면 다시 열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되자 백소운은 다시 평범한 젊은이가 되었고, 그 사실을 옥려군에게 알려주었다.
“백 공자.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사흘 전 지옥총도사와 지옥대살수를 제거한 것처럼 위기가 닥치면 다시 능력을 발휘하실 수 있을 거예요.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운공요상에 몰두하세요. 다행히 놈들도 위기감을 느꼈는지 사흘 전부터 별다른 움직임이 없으니까요.”
“평화협정이나 혼사 제의가 없었다는 말씀입니까?”
“네. 아무래도 지옥맹 최고수들이라 할 수 있는 지옥총도사와 지옥대살수의 죽음에 충격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아니면 또 다른 술수를 부리고 있을 수도······.”
“술수라 하면?”
“사실 지난 사흘간 지옥맹이 너무 조용했어요. 아무 움직임이 없으니 뭔가 이상해요. 이대로 포기할 놈들이 아니거든요.”
“그렇군요. 한데 옥 소저께서는 지옥대공자 그자와 거짓 혼인을 하려는 계획은 계속 유지하고 있습니까?”
백소운의 물음에 옥려군이 얼굴을 조금 붉혔다.
“놈들이 우리 의도를 간파한 이상 더 이상 효과가 없을 것 같아 혼사 추진은 공식적으로 취소되었어요.”
“잘되었군요. 평화협정 체결은 어떻게 하기로 했습니까?”
“천년협약 말씀인가요? 협약 체결은 계속 추진 중이에요. 아무래도 전면전은 무리가 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놈들의 수뇌부를 교체해 새로운 협상 대상자가 나서게 만들자는 계획도 있고, 아예 총공격을 가하자는 분도 계시고,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에요.”
“지옥맹주를 제거할 생각인가요?”
“네. 지옥맹주와 지옥대공자, 그리고 지옥염라 등 지옥맹 핵심 지휘부를 제거할 수 있다면 평화협정도 가능할 거예요. 물론 가장 좋은 것은 지옥맹 놈들을 모조리 제거해 화근을 남기지 않는 것이지만, 괴수왕들과 지옥신전이 버티고 있어 개인적으로 그건 어려울 듯해요.”
“으음, 지옥신전이 변수인 것 같군요. 그리고 괴수왕이란 내게 죽은 괴어왕과 유령귀왕 같은 자들을 말하는 것 같은데, 모두 백 명이 넘는 게 사실입니까?”
“네. 그래서 108 괴수왕이라고 하지요. 중원에 맨 처음 출몰했던 말벌왕은 아직도 건재하고, 다른 괴수왕들도 지옥맹에 득실거려요. 그 힘이 너무 강해 지옥맹주 또한 완전히 장악을 못 하고 있지요. 사실 괴수왕들 사이에도 등급이 있어 말벌왕이나 죽은 괴어왕, 유령귀왕 세 놈은 최하급이라 할 수 있어요. 만약 괴수왕들이 모두 공격해온다면 정말 속수무책일거예요.”
“으음, 괴수왕들과 지옥신전을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지옥신전은 아직 그 힘이 완전히 드러나지 않아서 비교하기 힘들어요. 괴수왕 중에 가장 강하다는 십대괴수왕(十大怪獸王) 역시 지옥맹 심처에 은둔해 있지요. 다만 지옥신전의 문지기라 할 수 있는 지옥신조의 힘을 생각해볼 때, 아마 괴수왕들이 신전의 힘을 감당하기 힘들 거예요. 지옥신전은 마계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정설이니까요.”
“마계에 어떤 신들이 살고 있다는 뜻입니까? 천족이 살고 있다는 천계와 대립하는 곳 같은데,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을까요?”
“백 공자를 천족의 후예로 생각하는 분들 때문에 물어보시는 것 같군요. 하지만 천족의 후예란 것도 어떤 증명을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신선계 내에서 비범한 사람이 나타나면 한번쯤 천족의 후예가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하곤 하지요. 하지만 여태까지 천족의 후예로 밝혀진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우리 등선맹에는 지옥신전과 같은 곳이 없기에 천족의 후예를 기다리는 것이지만, 사실 막연한 기대감이라 할 수 있어요. 다만 지옥신전이 열려 상상을 초월하는 고수들이 공격해오면 우리도 천계가 열려 이를 막아줄 거라는 믿음은 가지고 있지요. 지옥맹 놈들은 마계의 고수들을 마신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지옥신전을 만들어 그 신들의 도래를 기원하고 있는 게 사실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놈들이 숭배하는 지옥악마신은 마계의 절대고수로 마족의 후예일 가능성이 높아요.”
“지옥악마신은 그 존재가 증명되었습니까?”
“지옥신조가 가끔 보고를 올리고 명을 하달 받는다고 하니, 완전히 거짓은 아닐 거예요. 하지만 어떤 금제에 의해 지옥악마신 또한 활동이 억제되고 있다고 보는 게 사실이지요.”
“일리가 있군요. 그럼 108 괴수왕과 지옥악마신은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그것도 확실히는 몰라요. 다만 괴수왕 위에 지옥악마신이 있다는 것은 확실해요. 그리고 마계의 마신은 지옥악마신만 있는 게 아니에요. 천계에 천신(天神)들이 있듯이 마계에도 무수히 많은 마신이 있지요.”
“그렇군요. 그럼 신비백맹이란 곳은 어떤 곳입니까? 여기 신선계와 같은 곳이 백 개나 더 있다는 뜻인가요?”
“호호호. 신비백맹까지 걱정하고 계신 건가요? 하지만 지금 거기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어요. 지옥맹 하나만 상대하는 데도 힘이 벅차기 때문이지요. 다만 이왕 물어보셨으니 답변을 드린다면, 신비백맹 역시 천신이나 마신과 관련이 있다는 게 정설이에요. 또 다른 천신이나 마신을 숭배하는 곳일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예상하시겠지만, 이는 신선계에 미개척지가 많은 것과도 관련이 깊어요.”
“말은 미개척지라 하지만 실제는 또 다른 신선계라 할 수 있겠군요. 쉽게 말해 백 명의 천신과 백 명의 마신들이 신선계에 살고 있고, 그 구역은 어떤 힘으로 나누어져 있다고 하면 신선계가 백 개가 되는 것이지요. 한데 지금까지 활성화된 것은 이곳뿐이고요. 제 말이 맞나요?”
“그럴 가능성도 배제 못 해요. 사실 지옥맹 놈들이 모시는 지옥악마신에 대항해 우리가 숭배하는 천신의 이름도 따로 있으니까요.”
“그 천신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천무신(天武神)이라고 해요. 혹시 천무신을 아세요?”
“천무신?”
“네. 만약 백 공자가 천족의 후예라면 아마도 천무신의 안배를 받았을 거예요. 사실 나중에 아버님을 비롯해 본맹의 지휘부 고수들께서 공자께 할 질문이었어요. 어쩌다 보니 제가 먼저 하게 되었네요.”
“천무신이라······.”
백소운이 잠시 고민했다.
천무성자와 관련 있을 것으로 판단되었지만, 웬일인지 아직 밝히고 싶지 않았다.
‘내가 천족의 후예일 가능성이 확실히 높구나. 하지만 천무성자님과 나와의 관계가 밝혀지면 상황이 더욱 복잡해질 수 있다. 지옥맹에서 그 사실을 알게 되면 또 다른 음모를 꾸밀 수도 있고, 무엇보다 나는 지금 공력을 잃어버린 상태가 아닌가. 그것도 천무성자님이 남기신 내단을 먹고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섣불리 천무성자님과 나와의 관계를 밝히면 표적이 되어 더욱 곤란해질 가능성이 높다. 일단 공력을 회복할 때까지는 천무성자님과 관련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게 좋겠구나.’
백소운이 결단을 내린 후 말했다.
“천무신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분이 천신이셨습니까?”
“네. 역시 모르고 계셨군요. 하지만 천무신께서는 워낙 신비한 분이라 신분을 밝히지 않고 모든 안배를 하셨을 가능성이 커요. 아니면 그분의 후예가 안배를 하셨을 수도 있고요. 조금 전의 답변은 아버님을 비롯해 모든 분들에게 전해드리도록 하지요.”
“감사합니다. 제가 만약 천족의 후예로 밝혀진다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야 등선맹의 정식맹주가 되시는 것이지요. 사실 지금 아버님께서 맡고 계신 맹주 자리는 임시직이에요. 천족의 후예가 나타날 때까지 한시적으로 맡는 의미가 강하지요. 그래서 수도자들이 십 년에 한 번씩 돌아가면서 맡는 것이고요. 사실 개인적으로 백 공자께서 천족의 후예가 밝혀지더라도 말씀 안 하시는 게 더 좋다는 생각도 들어요. 천족의 후예로 밝혀지면 그만큼 맡을 책임이 커져 무척 힘들 것이니까요.”
“그럴 수도 있겠군요. 참고하겠습니다.”
백소운이 속으로 생각했다.
‘옥 소저는 아마 내가 신선계에 너무 매일 것을 염려하는 모양인데, 그건 그렇지 않다. 내가 확실히 천족인 것이 밝혀지면 못 밝힐 이유도 없는 것이지.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 확실하지도 않고.’
백소운이 생각에 잠기자, 옥려군이 말했다.
“그럼 좀 더 쉬고 계세요. 아마 오늘 밤 최종회의 때 공자님을 부를 거예요. 그때 뵙도록 해요.”
“알겠습니다. 나중에 뵙지요.”
* * *
저녁 식사를 마친 백소운은 기다리고 있던 옥려군과 함께 회의실로 향했다.
회의실은 맹주동 안에 있었다. 물론 그곳 역시 지하였다.
다만 또 하나의 광장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넓은 곳이었다.
회의실 중앙에는 작은 연못도 하나 있었다.
금빛 연꽃이 무성하게 피어 있는 그곳에는 이미 백여 명 정도의 수도자들이 둘러앉아 회의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옥려군과 백소운이 모습을 드러내자, 등선맹주 옥평이 기뻐했다.
“백 공자. 몸은 좀 어떻소?”
“염려 덕분에 많이 좋아졌습니다.”
백소운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옥평은 어제도 자신의 거처에 와서 상태를 살피고 갔었다.
무무선인과 함께 왔었는데, 아직 공력을 되찾지 못한 백소운의 상태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사실 그는 기세를 몰아 지옥맹을 총공격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백소운의 공력 회복이 최우선이었다.
지옥총도사와 지옥대살수를 죽일 때 보여준 백소운의 신위는 확실히 압도적이었다. 그를 앞세우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다시 공력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고 하니 아쉬움은 커져만 갔다.
“백 공자도 참석했고 하니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놈들의 동향에 대해서는 아직도 새로운 정보가 없습니까?”
옥평이 회색 도포를 입은 한 노인을 쳐다봤다.
그는 탕평도인(蕩平道人)이란 수도자로 등선맹에서는 부맹주 직함을 맡고 있었다.
그는 어제 맹에 복귀를 했다. 그전까지는 지옥맹과 대립하고 있는 북쪽 경계선이라 할 수 있는 신선하(神仙河) 인근에 주둔하고 있었다.
신선하는 등선맹과 지옥맹의 지배 권역을 나누는 강으로, 신선하 남쪽에 등선맹 수도자 이천 명이 진영을 펼치고 있었다.
물론 진영이라고 해서 군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막사 형태는 아니었다.
진법으로 이루어져 있는 그곳은 일종의 요새였다. 신선계 특성에 따라 각자 개별 공간에서 수도도 할 수 있었다.
탕평도인이 돌아온 이유는 바로 지옥맹의 동태에 대해 보고하기 위해서였다.
“부맹주께서 보기에 지금이 공격의 적기라고 생각하십니까?”
옥평이 담담히 물었다.
엄숙한 표정에서 이번에야말로 지옥맹을 완전히 제거하려는 의지가 보였다.
“물론입니다. 사흘 전 지옥총도사와 지옥대살수가 여기 와서 죽임을 당한 후 놈들이 당황하는 움직임이 역력합니다. 어차피 싸워야 한다면 지금 바로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총군사의 생각은 어떠합니까?”
옥평이 옆자리에 앉아 있는 백의노인을 쳐다봤다.
그는 등선서생(登仙書生)이란 사람으로 등선맹의 총군사였다.
“백 공자의 무공 회복이 변수입니다. 백 공자가 108 괴수왕과 지옥신조를 제거할 수 있다면 우리에게 충분한 승산이 있습니다. 백 공자가 사흘 전 보여주었던 신위를 발휘할 수 없다면 차라리 원래 계획대로 지옥맹주와 지옥대공자 두 사람을 암살하는 것이 좋을 겁니다. 놈들이 맹주 자리를 놓고 자중지란을 벌일 수도 있으니까요.”
등선서생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잘 나서지는 않으나 실제로는 옥평의 뒤에서 맹의 대소사를 결정하고 있었다.
옥평이 이번에는 백소운에게 물었다.
“백 공자의 의견은 어떠합니까?”
“저는 맹주님 의견에 따르겠습니다. 다만 저의 몸 상태가 매우 나빠 힘이 되어드린다고 장담하기 어렵다는 것을 미리 밝힙니다.”
“백 공자는 긴급할 경우에 한 번씩 힘을 보태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 정도는 가능할 것 같습니다. 맹주님. 승기를 잡은 이때를 놓치면 천추의 한이 될 겁니다. 결단을 내려주십시오.”
무무선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옥평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나머지 회의 참석자들이 모두 일어나 허리를 숙여 동의를 표했다.
옥평이 반례를 하며 말했다.
“여러분의 뜻이 모였는데, 제가 어찌 거부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 전에 백 공자께 묻겠습니다. 우리와 함께 전장에 가겠습니까? 백 공자의 몸 상태를 알고 있으니 다른 부탁은 드리지 않겠습니다.”
“함께 하겠습니다.”
백소운이 흔쾌히 수락했다.
그 어떤 조건도 달지 않았다.
옥평이 기뻐했다.
“명을 하달하겠습니다. 지금, 이 시각부터 본맹은 지옥맹과 싸울 겁니다. 전면전을 선언하는 바입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