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11
총단으로 돌아온 백소운 일행은 최씨 부인과 진호, 그리고 장씨 사내의 거처부터 마련해주었다.
사실 외부인이 들어오게 되면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했다. 하지만 환자가 둘이나 있는데다가 천향이 백리영에게 먼저 연락을 취했다.
곧바로 모든 편의를 제공하라는 명이 떨어져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먼저 신의당 무사들이 최씨 부인과 장씨 사내를 계속 치료해주기로 했다. 진호 역시 식부에서 진하림과 가까운 식녀들이 돌봐주기로 약속이 되었다.
내일 아침이면 백소운을 비롯한 다섯 하인은 천룡궁으로 출발해야 하기 때문에, 정말 숨 가쁘게 그 모든 일이 진행되었다.
밤이 되자 백소운 등 다섯 하인은 수련동에 다시 모였다.
마지막 점검을 하는 자리였다.
낮에 있었던 낙양사흉의 죽음에 대한 처리결과를 듣는 자리이기도 했다.
조금 전 천향을 만나고 온 정기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이 잘 처리되었다고 합니다. 황금방에 소식을 전해 낙양사흉의 시신을 가지고 가게 했으며, 황금방 소방주는 자신과 전혀 관련이 없는 일이며 이 일을 문제 삼지 않겠다고 말했다 합니다. 아무래도 아가씨께서 직접 개입하려는 움직임에 겁을 집어먹은 것 같습니다. 하림이에겐 잘된 일이지요.”
“으음, 예상대로군. 하지만 우리가 돌아올 때까지 방심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 사람을 총단에 데려온 것은 무척 잘한 일인 것 같군.”
유덕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하림은 다시 한번 도움을 준 네 사람에게 감사를 표했다.
이후 각자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푹 자고 내일 새벽 다시 모여 운송대에 합류하기로 했다.
각자 방으로 돌아가려던 찰나.
맹찬이 또 수련동에 내려왔다.
그는 매우 화가 난 상태였다.
백소운 등을 보자마자 버럭 소리를 질렀다.
“사고를 쳤다고 들었다. 낙양사흉을 죽였다는 게 사실이냐?”
“저희가 죽인 게 아니라 천 호위가 처단했습니다. 저희에게 그럴 실력이 없다는 것은 부총관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하지만 놈들은 지금까지의 악행으로 보아 죽어 마땅했습니다. 직접 보고를 못 드린 점은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면 다냐? 그런 일이 있었으면 직속 상관인 내게 먼저 보고를 했어야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맹찬이 내공을 끌어올리며 다가왔다.
“어떻게 하시려는 겁니까?”
“후후후! 상관에게 보고를 게을리 한 죄는 따끔히 벌 줄 수 있지. 하지만 네놈들에게도 기회를 주겠다. 누구든 나를 무공으로 제압하면 그대로 돌아가겠다. 다만 네놈들이 다쳐 내일 천룡궁으로 떠나지 못해도 내 책임은 아니다.”
“너무하시군요. 상부 보고는 천 호위가 일괄적으로 한 거로 알고 있습니다만······.”
유덕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맹찬이 무력을 사용한다면 그나마 무공이 제일 강한 자신이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맹찬이 멈춰 서서 껄껄 웃었다.
“누구든 좋다. 나를 넘어뜨릴 수만 있다면 이번 일과 관련해 더 이상 간섭하지 않겠다. 대신 네놈들도 쓰러지면 패배를 인정하고 운송에 참가하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 상처를 입으면 일을 시키지 못하니 그렇게 하는 게 제일 좋겠군. 어떻게 하겠느냐?”
“좋습니다. 대신 저희 무공이 부족하니 합공을 가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그렇게 해주시면 말씀대로 따르겠습니다.”
유덕이 말을 한 후 내공을 끌어올렸다.
하인들의 대표 자격을 가지고 있는 그가 결단을 내린 것이었다.
지켜보고 있던 정기와 막총, 진하림도 합세해 그의 옆에 섰다.
백소운은 그들 뒤에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형식적으로나마 합공에 참여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맹찬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후후후. 주제 파악들을 전혀 못 하고 있군. 좋다. 원하는 대로 해주지. 그동안 무공실력을 보여주지 않아서 다들 날 우습게 보는군. 네놈들이 익힌 무공이 얼마나 하잘것없는 것인지 똑똑히 알게 해주마.”
맹찬이 말을 마치자마자 빠르게 다가와 양손을 뻗어 진하림과 막총 두 사람의 어깨를 가격했다.
그 손놀림이 매우 빠르고 위력적이었다. 미처 준비하지 못한 두 사람은 그만 옆으로 쓰러져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유덕과 정기 두 사람의 안색이 굳어진 것은 물론이었다.
진하림은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막총은 그들 두 사람과 함께 합공을 가해야 할 자원이었다.
세 사람이 합공을 가하면 맹찬을 쓰러뜨릴 수 있다는 게 그들의 판단이었던 것이다.
한데 바로 막총이 맥없이 쓰러졌으니 당황할 만했다.
“후후후. 나는 삼십 년 전에 이미 정식무사가 되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무공수련을 게을리 한 적이 없었지. 왜냐고? 그건 바로 총관이 되기 위해서였다. 총관 직책은 무공이 약하면 임무 수행이 어려운 자리이니까.”
맹찬이 득의양양할 때 정기와 유덕 두 사람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두 사람 중 먼저 공격을 가한 자는 정기였다. 그는 내공을 최대한 끌어올려 양 주먹으로 맹찬의 관자놀이를 노렸다.
맹찬이 양손을 뻗어 주먹을 잡은 후 휙, 돌려버리자 정기의 신형이 바닥에 그대로 내팽개쳐지고 말았다.
마치 서장의 유술을 익힌 것처럼 가볍게 처리한 것이었다.
그 순간 유덕이 일직선으로 다가와 오른 주먹으로 복부를 가격했다.
맹찬이 흠칫하며 뒤로 미끄러지듯이 삼 장 정도 물러났다. 유덕이 따라붙으며 이번에는 양 주먹을 뻗었다.
휙휙.
“제법이군.”
맹찬이 다시 대여섯 걸음 물러나며 벼락같이 장력을 날렸다.
쏴아아.
강한 경력이 쏟아지자 유덕이 주먹을 교차해 이를 막았다.
꽝.
폭음이 울리며 유덕이 뒤로 쭈르르 밀려 나가 벽에 부딪힌 후 앞으로 쓰러졌다.
“으윽.”
비록 내상은 입지 않았지만 패배한 것이었다.
유덕은 그제야 자신이 오판했음을 깨달았다.
맹찬의 무공은 자신과 같은 하인 수십 명이 합공을 가해도 이길 수 없는 수준인 것이다.
“후후후. 네놈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고수가 될 수 없다. 무엇보다 하인 주제에 무슨 정식무사가 되겠다고 이런 짓거리를 벌이는 것이냐? 아가씨께서 마음이 여린 것을 이용해 이런 터무니없는 상황을 만들어낸 것도 모자라, 황금방의 낙양사흉까지 죽게 했으니 내 손에 죽어도 할 말은 없을 것이다. 아무튼, 네놈들이 졌으니 내일 천룡궁에 가지 않는 것으로 알겠다. 아가씨께는 직접 말씀드리도록 해라.”
맹찬이 일장연설을 한 후 득의한 표정을 지었다.
애당초 유덕 등 하인들이 무공을 배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코웃음을 치던 그였다.
하심수련동에 비치된 무공이라 해봤자, 육합권 계통뿐이었다.
무엇보다 그것으로 정식무사가 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물론 유덕처럼 오랫동안 한 무공을 연마한 사람은 나름대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등룡관을 최종 통과할 정도는 아니었다.
“지금까지 내가 아무런 소리를 하지 않은 것은 네놈들의 불만을 풀 수 있는 곳이 이곳뿐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한데 불만 해소를 넘어서 정말로 정식무사가 되려 하다니. 네놈들 실력으로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했느냐?”
“시도를 해보는 것도 나쁜 겁니까?”
“그 말이 아니다. 유덕 너도 알겠지만 등룡관 삼차 시험은 매우 어렵다. 아가씨께서 주신다는 가점이 없이는 올해도 역시 결과는 마찬가지일 터. 하지만 마지막 기회라 하니 네놈 혼자는 천룡궁으로 보내주려 했던 것이다. 한데 배은망덕하게 작당을 하여 나를 번거롭게 만드니, 내 어찌 화가 나지 않겠느냐?”
“부총관께서는 저희 마음을 절대 이해 못 하실 겁니다. 하지만 지금 와서 그런 말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저희가 졌으니 약속대로 내일 운송 임무에 참가하는 것을 포기······.”
유덕이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포기를 선언하려 할 때였다.
백소운이 담담히 말했다.
“잠깐. 아직 저는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맹찬이 재미있다는 듯 껄껄 웃었다.
“하하하. 네 말이 맞다. 아직 네놈이 남아 있었군. 하지만 무공도 배우지 못한 놈이 나를 넘어뜨릴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네. 부총관님께서는 조금 전 진기를 과도하게 사용하셨으니, 실수를 하실 수도 있지 않을까요?”
“황당한 놈이군.”
“그냥 제 생각입니다. 저는 무공을 배우지 않았으니까요.”
“무공을 모르는 놈이 무슨 수로?”
“배우지 않았다고 사용도 못 하는 것은 아니지요. 배우지 않고 사용할 수 있어야 진정한 배움이 아닐까요?”
“서고에 오래 있었다더니 이상한 말장난만 배웠군. 네 녀석과 입씨름할 시간이 없다. 약속은 했으니 깨끗하게 네놈마저 눕혀 주마.”
맹찬이 우수를 들어 살짝 장풍을 날렸다.
너무 심하게 날리면 백소운이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의 무공은 매우 강했다.
평판이 좋지 못함에도, 무림맹 수뇌부에서 그를 차기 총관으로 염두에 두고 있는 것도 바로 높은 무공 때문이었다.
“사실 네놈들 각자에게 악감정은 없다. 다만 허황된 꿈을 꾸는 것이 보기 싫었을 뿐이다. 하인이면 하인답게 굴어야지. 제멋대로 굴면 어찌 위계질서가 잡히겠느냐?”
장풍을 날린 후 백소운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맹찬이 입을 열었다.
한데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제야 맹찬이 백소운을 보니 그대로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맹찬이 대경실색하며 내공을 다시 끌어올렸다.
조금 전 장풍을 날렸다고 생각했는데 조금도 경력이 발출되지 않았던 것이다.
한데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할 수 없이 내공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던 맹찬이 그만 목덜미를 부여잡고 뒤로 쓰러지고 말았다.
쿵.
맹찬이 정신이 바짝 들었는지 다시 일어섰다. 하지만 이미 그가 패한 이후였다.
기이한 것은 이제는 내공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조금 전에 넘어지면서 막혀있던 혈이 뚫린 것인가.’
맹찬이 어이없어하며 백소운을 바라보았다.
백소운이 태연스럽게 말했다.
“제 말이 맞지요? 부총관님께서는 소인배가 아니시니 분명 약속을 지키시리라 믿습니다. 이제 운송 임무와 가점 등 어떤 것에도 관여하지 않고 불이익 또한 당연히 주지 않으시리라 믿습니다.”
“이런 황당한······.”
맹찬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했다.
그러다 별말 없이 신형을 돌려 수련동에서 나가고 말았다.
“허허허. 이런 일이 다 있구나.”
“우리가 이긴 건가요?”
유덕과 정기, 막총, 진하림 네 사람이 기뻐하며 백소운에게 모였다.
정기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운아. 부총관이 일시적으로 기혈폐쇄가 될 줄 알았느냐?”
“이전에 서고에서 봤던 의서에서 비슷한 내용의 글이 있었습니다. 부총관의 안색을 보고 실제 그렇게 되도록 유인을 했었지요. 운이 좋았습니다.”
“아, 그랬었군. 역시 사람은 글을 배워야 하는 게야.”
정기가 매우 기뻐했다.
물론 그를 비롯하며 모두가 백소운의 말을 완전히 믿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결과가 좋았다.
“으음, 내일 일찍 일어나 출발 준비를 해야 하니 이만 각자 방으로 돌아가자. 자세한 이야기는 내일 하면 되니까.”
“네.”
백소운을 비롯한 다섯 하인이 서로 인사를 나눈 후 각자 방으로 올라갔다.
방에 들어온 백소운은 곧바로 침상 위에서 가부좌를 틀고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격공지법으로 부총관을 넘어뜨리긴 했지만, 언제까지 내 능력을 숨겨야 할지 모르겠구나. 어떤 경우에도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최선을 다해 걸어간다면 후회는 없겠지. 그것이 나의 길이다.’
문득 백소운은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마음을 더욱 비우기 위해 대학의 한 구절을 읊조리기 시작했다.
“머무를 데를 안 뒤에야 일정한 방향이 서니, 일정한 방향이 선 뒤에야 동요되지 않을 수 있고, 동요되지 않은 뒤에야 편안히 머무를 수 있다. 편안히 머무른 뒤에야 생각할 수 있고, 생각한 뒤에야 깨달을 수 있다. 으음, 역시 중요한 것은 지선(至善)에 머무르는 것이겠군. 지선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