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110
사흘 후. 신선하.
넘실거리는 강물은 마치 중원의 장강을 보는 것 같았다.
북쪽 지옥맹 지배권역과 남쪽 등선맹 영역을 구분 짓는 강이 바로 신선하였다.
그리고 그 신선하 남쪽 벌판에 등선맹 진영이 세워져 있었다.
사흘 전 출정식을 마친 등선맹 수도자 만여 명이 이곳 진영에 도착한 지도 하루가 지난 상황.
내일 아침 도하(渡河)를 결정하기에 앞서 지금은 최후 작전 회의가 지휘막사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한편 백소운은 백여 명의 참석자 중에 섞여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의 옆에는 옥려군이 앉아 있었다.
지난 사흘간 그녀는 백소운이 번거롭지 않게 많은 편의를 봐주었다.
특히 출정식에 이어 이곳 신선하까지 오는 과정에서 백소운을 보호하는 데 주력했다.
이는 아직 백소운이 공력을 회복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 이면에는 등선비록 상의 무공이라도 익히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백소운은 그녀와 함께 등선운을 타고 이곳까지 오는 와중에 대부분의 시간을 묵상에 보냈다.
진영에 도착한 후에도 작은 막사 하나를 배정받은 그는 온종일 깊은 묵상으로 모든 것을 정리하고 있었다.
물론 그 정리 대상은 천무성자가 남긴 내단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이 중심이었다.
신체적으로 그 힘을 완전히 용해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아직 정신적으로 조화를 이루지는 못했던 것이다.
무엇보다 그가 심혈을 기울인 것은 무명심공의 완성이었다.
등선심법과 금단비공의 정수를 가미해 새롭게 만든 무명심공은 그를 새롭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는 무명심공을 모두 십이단계로 재편했으며, 지금 그가 도달한 것은 십단계였다.
물론 진하림, 정기 등에게 전수한 것은 가장 기초라 할 수 있는 일단계였다.
일단계 명칭은 무명전일(無名專一).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것에서 모든 것이 출발한다는 의미로, 일단계라고 해서 무시할 것이 아니라 깊은 의미가 담겨있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마음이 지어낸다는 뜻으로, 모든 일에 마음가짐이 중요함을 이르는 말이다.
무명심공의 기본 원리 또한 이와 같았다.
무공에 있어서도 마음이 근본이 되며, 내공이나 공력의 근원이 되는 기(氣) 또한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원리를 토대로 했다.
하지만 그 이치가 너무 오묘해 일반 무림인들이 익히는 내공심법과는 큰 차이가 있는 게 사실이었다.
일반 무림인들은 마음을 거치지 않고 바로 기를 형성하기에 그 양에 치우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내공, 즉 공력 또한 유형공력(有形功力)에 그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유형공력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인간의 몸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단전에 모을 수 있는 힘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었다.
물론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무림인이 단전 부위, 즉 기해혈에 보관할 수 있는 내공의 양은 계속해서 늘어났다.
갖가지 내공심법이 발달해 초반에는 삼갑자 정도도 벅차던 것이 최근에는 십갑자 내공도 무난하게 담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게다가 혈맥 중 세맥에 내공을 담아두는 기법까지 발전이 되어, 이론상으로는 사오십 갑자까지 내공을 불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인간의 수명은 유한해 그런 정도까지 내공을 익힌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반면 마음에서 기를 생성하는 길을 택한 사람은 처음부터 완전히 다른 무공을 익히게 되는 셈이었다.
생성된 내공 또한 그 실질을 중요시해 무형공력이라 부르는데, 바로 무형검으로 나아갈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물론 유형공력을 익힌 자라 해서 무형검으로 나아갈 수 없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유형공력으로 이룬 유형검의 끝에 달한 사람이 깨달음을 얻게 되면 무형검의 경지에 오르는 것이 가능했다.
등선의 경지에 올라 신선이 된 사람 중에는 그런 사람도 제법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등선 직전에 잠시 이룬 상태로 지속적이지 못했고 어디까지나 예외에 속했다.
따라서 기초부터 깨달음의 무학을 익히는 것이 가장 올바른 길이라 할 수 있었다.
한데 마음에서 기를 끌어내는 방법이 너무 어려웠다.
깨달음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라 스승의 도움이 크게 작용하지 않았다.
결국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데, 부득이 구결을 통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구결이란 것도 쉽게 터득할 수 없었다.
깨달음은 개인차가 크기 때문에 남의 것을 자기 것으로 바로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그래도 최선이라고 만들어진 방법이 바로 전일이었다.
마음을 하나로 모으면 어느 순간 일종의 기가 형성되고, 그 기가 바로 무형공력이 되는 셈이었다.
이러한 무형공력을 보관하는 장소 또한 기해혈이었다. 하지만 외부에서 쉽게 간파할 수 없는 것이 특징이었다.
이는 그 기가 마음과 연결된 탓으로, 공력을 발출하는 것 또한 단전과 마음이 거의 동시에 작용했다.
‘유형검과 무형검의 차이는 매우 크다.’
백소운은 지금 머릿속으로 지난 사흘간의 묵상을 통해 정리한 결과를 다시 한번 음미하고 있었다.
지휘 막사 안에서는 지금 등선서생이 전황을 한참 설명하고 있었다. 그는 그 말을 들으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의 무공 정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형검이 뛰어난 점은 바로 그 공력의 양이 아니라 질이다. 그래서 같은 공력이라도 무형검이 훨씬 뛰어난 위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무형검의 단계에서도 그 위력은 천차만별이다. 무형검을 총 27단계나 나눈 것도 바로 그 때문이지. 하기야 깨달음의 깊이 또한 차이가 크기 때문에 단계를 나눌 수밖에 없지. 정작 중요한 사실은 최종 경지인 지성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그 경지 측정 또한 불명확하다는 점이다. 이는 깨달음의 대부분이 일시적인 성질을 지니고 있어서다. 일시 깨달았다가 사라지는 것이 진정한 깨달음이 될 수 없기 때문이지. 따라서 지성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항상 겸허해야 하는 것이다. 마음을 비우지 못한다면 절대 채울 수 없다.’
백소운이 눈을 빛내며 천천히 무명심공을 운기했다.
바로 십단계 무명무심(無名無心)이었다.
일주천에 성공한 그가 조용한 미소를 지었다.
‘있는 것이지만 없는 듯이 하고, 실속이 있는 것을 속 빈 듯이 하고, 오로지 깨달음의 무궁함을 알려 할 뿐, 사물과 자신과의 차이점은 생각지 않는다고 했던가. 이는 검과 나가 하나가 되는 신검합일(身劍合一)의 경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백소운이 머릿속에서 비검술을 펼쳐보았다.
검과 내가 하나이기 때문에 그 위력은 말할 필요도 없이 뛰어났다.
‘완전히 차원이 다른 비검술이 되겠군. 이곳 신선계에서는 비검술을 주로 펼치니까 나 또한 그것에 익숙해지는 것이 좋겠지.’
백소운이 눈을 빛내며 생각을 정리했다.
그때 등선서생이 마무리 발언을 했다.
“결과적으로 내일 신선하를 건너 총공격을 가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판단됩니다. 다른 의견 있으신 분은 지금 말씀해주십시오.”
“탕평도인입니다. 최근까지 이곳을 지켜온 대표자로서 한 말씀 드리자면, 놈들의 동태가 너무 조용합니다. 내일 총공격을 가하는 데는 전혀 반대가 없지만, 그 점이 마음에 걸립니다.”
“지금 총관께서 직접 최종적으로 척후들과 함께 놈들의 진영 쪽으로 갔습니다. 곧 돌아올 시각이 되었으니, 그 문제는 그때 다시 의논하기로 하지요. 다른 문제 있으신 분은 없습니까?”
등선서생의 물음에도 아무 말이 없었다.
하기야 이미 지휘부에서 따로 정리한 결론이었기에 확실한 근거가 없는 한 반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때였다.
마친 척후병으로 나갔던 무무선인이 돌아왔다.
“마침 잘 오셨습니다. 놈들의 동태는 어떠합니까?”
옥평이 직접 물었다.
무무선인의 안색이 상기되었다.
“별다른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직 우리가 이곳까지 온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옥려군이 바로 말을 받았다.
“혹시 놈들이 함정을 파놓고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닐까요? 우리가 온 것을 몰랐다는 이야기는 말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소저 말씀은?”
“놈들은 당연히 우리가 이곳까지 온 것을 알고 있어요. 하지만 유인을 하기 위해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지요. 좀 더 재고가 필요하다고 봐요.”
“려군아. 네 말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여기서 시간을 지체하는 것은 좋지 못하다. 놈들이 허허실실의 병법으로 평상시처럼 가장해 오히려 우리의 경계심을 불러일으키려는 목적일 수도 있지 않겠느냐?”
“정말 그럴까요?”
“놈들은 영악하기 짝이 없다. 분명 우리의 경계심을 역이용해 시간을 벌어 원군을 기다리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맹주님 말씀이 옳습니다. 놈들의 진영은 지옥맹 지배구역의 대문 역할을 하므로, 이번 기회에 완전히 파괴해야 합니다. 체류 병력도 삼천이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만이 넘는 우리가 두려워할 필요는 전혀 없는 것이지요. 정말 걱정이 되면 선봉대 병력으로 삼천을 보내 치도록 하면 될 겁니다.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공격해 놈들의 허실을 살펴보는 것이지요. 함정을 펴도 한 번뿐일 것이니, 우리가 곧바로 지원 공격을 가한다면 무난히 승리할 수 있을 겁니다.”
등선서생의 말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탕평도인이 말했다.
“선봉은 제가 맡겠습니다. 이곳 지리는 제가 가장 잘 알고 있으니까요.”
“좋습니다. 이제 맹주께서 최종적으로 결정을 내리시지요. 아, 그 전에 백 공자 의견부터 들어볼까요?”
등선서생이 백소운을 쳐다봤다.
지난 사흘간 자신의 의견을 거의 내지 않았던 그였다.
하지만 최종 결정에 있어 형식적으로나마 의견을 들어볼 필요가 있었다.
백소운이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열었다.
“맹주님 의견에 따르겠습니다.”
“하하하. 좋습니다. 맹주께서 이제 결정해주시지요.”
“으음, 공격을 내일 새벽 개시하겠습니다. 탕평도인에게 명하겠습니다. 삼천 수도자를 이끌고 내일 새벽 신선하를 건너십시오.”
“명을 받들겠습니다.”
탕평도인이 진중하게 대답했다.
옥평이 말했다.
“나머지 병력 배치는 총군사께서 정해주시겠습니까?”
“네. 맹주님.”
등선서생이 눈을 빛내며 일단 대답을 했다.
이미 옥평과 이야기가 끝난 상황이지만, 실전에서 지시를 계속 내려야 할 사람은 바로 자신이었다.
“무무선인께서는 삼천 수도자를 이끌고 선봉대 뒤를 바짝 따르십시오. 선봉대 병력에 위기가 닥치면 즉시 지원을 해주시는 것이 임무입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좋습니다. 나머지 사천의 수도자는 저와 맹주님이 이끌고 후방을 맡겠습니다.”
“등선운은 정말 사용할 수 없는 겁니까? 배를 타고 가자니 강 위에서 기습을 당할까 봐 걱정이 됩니다.”
탕평도인의 말에 등선서생이 말했다.
“아시다시피 신선하 위에 부는 바람은 등선운을 모두 흩어지게 합니다. 이는 지옥운도 마찬가지이지요.”
“그럼 며칠 전 지옥맹 놈들이 타고 온 지옥운은 어떻게 신선하를 넘은 겁니까?”
누군가의 질문에 등선서생이 미소를 지었다.
“당시에는 신선풍(神仙風)이 불지 않았었지요. 하지만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 혈괴어들이 모두 백 공자 손에 죽었다는 겁니다. 우리가 타고 갈 배는 특수 제조된 것이라 쉽게 부서지지 않을 겁니다. 다들 걱정이 과하신 것 같습니다. 이 또한 선봉대들이 먼저 출발할 것이기 때문에 위험 여부를 미리 알 수 있을 겁니다. 이제 더 이상 다른 의견이 없으면 회의를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등선서생이 말을 한 바로 그때였다.
수도자 한 명이 급히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이오?”
“큰일 났습니다. 신선하가 갑자기 펄펄 끓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