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111
신선하의 물이 끓기 시작한 것은 무무선인이 척후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직후였다.
옥평, 백소운 등 작전회의에 참석 중이던 지휘부 고수들은 일제히 막사 밖으로 나갔다.
막사 앞에서 바로 신선하가 보이기 때문에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저럴 수가!”
탕평도인이 마치 용암처럼 끓고 있는 시뻘건 강물을 보며 탄성을 터뜨렸다.
“배들은 어떻게 되었소?”
등선서생이 급히 수도자들이 타고 갈 배를 챙겼다.
모두 세 척이었다. 한 배에 사오천 명씩도 태울 수 있는 거대 전함이었다.
“신선함(神仙艦)은 무사합니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뭍 위로 끌어올려 두었기 때문이지요.”
수도자 한 명이 포구 한 구석에 있는 배들을 가리켰다.
다행히 그들의 말대로 강물과 떨어져 있어 일단 무사한 것 같았다.
하지만 서서히 열기가 가까이 닿고 있어 언제 불이 붙을지 모르는 형편이었다.
“일단 배들을 더 뒤로 물리시오.”
“네. 총군사님.”
수도자, 즉 등선맹 총순찰 평범선인(平凡仙人)이 대답 후 급히 배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아닌 게 아니라 벌써 수도자 수천 명이 배와 연결된 밧줄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백소운이 보니 배 밑에는 통나무 같은 것이 무수히 깔려 있어 이동하기에 편리하게 되어 있었다.
“신선풍 때문에 배가 떠내려갈까 봐 뭍으로 올려두었는데, 안 그랬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등선서생이 안색을 굳히며 말했다.
옥려군이 물었다.
“신선하가 왜 갑자기 끓게 된 것이지요? 그럼 이제 배를 띄울 수 없게 된 건가요?”
“그렇다. 원래 신선하는 적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특수 진법으로 형성된 강이라, 몇 가지 강력한 방어 수단들이 있지. 그중 신선풍과 신선혈하(神仙血河)는 가장 대표적인 것들이란다. 한데 이렇게 동시에 가동되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인데, 아무래도 지옥신전이 개입한 것 같다.’
옥평 역시 안색을 굳혔다.
백소운이 눈을 빛냈다.
‘강물이 끓어 핏빛으로 변한 상태를 신선혈하로 부르는 것 같군. 배를 띄울 수 없으니 상황이 훨씬 어려워진 것 같구나.’
옥려군이 물었다.
“방법이 없는 건가요?”
“그렇다. 신선풍과 신선혈하 두 가지 중 하나만 있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처럼 중복이 된 경우에는 도저히 건널 수 없게 되지. 고대 북쪽 지방에는 온갖 마두와 요괴들이 살고 있었는데, 이를 막기 위해 천무신께서 직접 만든 것이 바로 신선하란 말이 있지.”
“천무신께서 직접 만드신 것이라면 방법이 없겠군요.”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예외가 있다면 바로 천족의 후예나 마신들이라 할 수 있지.”
“천족은 천신의 신분을 가지고 있었으니, 결국 천신과 마신들만 지금 상태의 신선하를 건널 수 있겠군요.”
“그렇다. 하지만 너무 초조해할 필요 없다. 건너지 못하는 것은 지옥맹 쪽도 마찬가지일 테니까.”
“하지만 지옥신조는 가능하지 않을까요? 지옥신전과 연결되어 있는 놈이니까.”
“가능할 것이다. 어쩌면 놈이 나타날 수도 있겠구나.”
옥평이 말을 한 그때였다.
신선하 위로 거대한 새 한 마리가 나타났다.
한데 그 새는 바로 지옥신조가 아닌가.
지옥조 백여 마리도 나타났다. 하지만 놈들은 지옥신조와 달리 신선하를 건너오지 못하고 강 건너편에 대기하고 있었다.
등선서생이 소리쳤다.
“지옥신조! 네놈이 신선하를 막은 것이냐?”
“후후후! 그렇다. 지옥맹주의 부탁을 받아 장벽을 세운 셈이지.”
“역시 네놈이 저지른 일이군. 어서 좋은 말 할 때 원래대로 회복시켜라. 지옥맹과 우리 등선맹과의 싸움은 이제 불가피해졌으니, 네놈이 간섭할 일이 아니다.”
“후후후! 등선서생! 네놈이 간이 부었구나. 감히 나보고 이래라저래라 하다니.”
지옥신조가 날갯짓을 한번 하자, 등선서생을 향해 강력한 바람이 날아갔다.
쏴아아.
옥평과 탕평도인, 그리고 무무선인 세 사람이 급히 방어막을 형성해 그를 보호했다.
등선서생의 무공이 그다지 강한 편이 아니라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꽈아앙 하는 소리와 함께 옥평 등의 신음이 터져 나왔다.
수도자들이 급히 보니 놀랍게도 옥평, 탕평도인, 무무선인, 등선서생 네 사람 모두 쓰러져 있었다.
입가에 피를 흘리고 있었다. 비틀거리며 서서히 일어나긴 했지만 가볍지 않은 내상을 입은 것 같았다.
옥려군, 평범선인, 만우노인 등이 급히 그들에게 다가갔다.
“아버님. 괜찮으세요?”
옥려군이 옥평을 부축하며 물었다.
“나는······ 괜찮다.”
옥평이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결국 그 자리에 털썩 앉아 운공요상에 들어갔다.
탕평도인, 무무선인, 등선서생 세 사람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옥신조가 말했다.
“나는 지옥악마신의 화신이라 할 수 있다. 감히 나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냐? 생각 같으면 단번에 네놈들을 모조리 죽이고 싶지만, 지옥악마신께서 넓은 마음으로 네놈들 모두를 포용하고 싶어 하시기에 목숨만은 살려준 것이다. 하지만 지옥악마신께 불경한 놈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원하는 게 무엇인가요?”
옥려군이 안색을 굳히며 물었다.
지옥신조가 등선맹 수도자들을 공격하러 온 것은 아니라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후후후. 옥려군 네년이 그래도 가장 낫구나. 내가 원하는 것은 네놈들의 철수다. 조만간 지옥악마신께서 세상에 다시 나타나시면 지옥맹은 물론이고 등선맹 수도자 역시 모두 경배를 해야 할 테니, 그렇게 알고 조용히 물러가 기다리도록 하라. 안 그러면 이 자리에서 네놈들을 몰살시키겠다.”
“지옥맹주는 뭐라고 하던가요?”
“지옥맹주는 이미 수락했다. 그리고 지금 그는 신선계에 없다. 조금 전 모든 수하를 데리고 중원으로 갔다.”
“신강호 말인가요?”
“그렇다. 그 모두가 지옥악마신의 명에 따른 것이다. 곧 신강호 사람들 역시 지옥악마신을 경배하게 될 것이니, 그 피가 제단을 물들일 때 지옥악마신께서 부활을 하게 될 것이다.”
“부활이 아니라 봉인이 풀리는 것이겠지.”
누군가의 목소리에 지옥신조가 인상을 찌푸렸다.
“백소운 네놈이구나. 언제 이곳까지 온 것이냐? 내 잠시 널 천족의 후예로 착각해 살려줬지만, 당장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르느냐?”
“천족의 후예 여부는 중요한 것이 아니오. 중요한 것은 지금 그대들이 마음대로 세상의 질서를 재편하려 한다는 것이오.”
“그게 뭐 어때서? 지옥악마신은 무적의 마신이시고, 나는 그분의 대리자다. 그분은 항상 옳기에 반대하는 자는 결국 죽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너 역시 한 번의 기회를 주겠다. 지금이라도 용서를 구하면 살려주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본보기로 죽이겠다.”
“능력이 된다면 그렇게 해보시오.”
백소운이 무명검을 뽑았다.
비검술을 펼치기 위해서였다.
지옥신조가 인상을 찡그렸다.
신탁을 받아 전달받은 지옥악마신의 명은 등선맹 모두를 수하로 거둘 것이니 겁만 줘서 돌려보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반독립적으로 행동하고 있는 지옥신조는 그렇게 자제력이 강한 편이 못되었다.
“백소운 네놈을 죽이겠다!”
지옥신조가 날갯짓을 한번 했다.
쏴아아아.
이번에는 놈이 전력을 기울인 공격이었다.
백소운이 무명검을 날린 것은 그와 거의 동시였다.
지옥신조가 일으킨 바람이 너무 강력했기에 검풍으로 맞받아친 셈이었다.
꽈아아앙.
엄청난 폭음과 함께 지옥신조가 괴성을 질렀다.
놈의 몸통을 무명검이 관통한 것이었다.
“두고 보자. 백소운. 그사이 또 강해졌구나. 하지만 신강호에서 만나면 최후 대법을 펼쳐서라도 네놈을 죽이겠다.”
지옥신조가 북쪽으로 날아가며 소리쳤다.
지옥조 백여 마리 역시 놈을 따라갔다.
그때였다.
신선하의 물결이 푸르게 변하기 시작했다.
강물이 끓는 것도 멈췄다.
그뿐이 아니었다.
신선하 위에서 거세게 불던 신선풍도 멈췄다.
“어떻게 된 겁니까?”
옥평이 묻자, 백소운이 담담히 말했다.
“이번에 형성된 신선풍과 신선혈하는 지옥신조가 신력으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놈이 상처를 입고 도주함으로써 사라지게 된 것이지요. 다만, 지옥맹주를 비롯해 지옥맹 고수 전체가 신강호로 떠났다는 말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지금 기감에 잡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놈들이 신강호로 떠났다니, 그것 또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군요. 우리는 서약에 의해 한 사람 이상은 이곳을 떠날 수 없습니다. 그 때문에 이전에도 제 딸아이만 보냈던 것이지요.”
“그렇군요.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돌아가서 놈들의 동태를 살펴보겠습니다. 옥 소저도 가시겠습니까?”
“물론이에요. 하지만 그 전에 놈들이 정말 신선계를 떠났는지 확인이 필요할 것 같아요. 쉽게 본거지를 놔두고 갈 놈들이 아니거든요.”
“아마 본거지에 진을 펼쳐 두었을 겁니다. 우리가 공격해 들어오길 기다리며 함정을 쳐둔 것이지요. 하지만 옥 소저 말씀대로 확인이 필요할 것 같군요. 척후를 보내 확인하는 것이 가장 좋을 듯합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옥려군이 만우노인, 평범선인 등 백여 명의 수도자들을 뽑아 직접 신선하를 건너기로 했다.
그들이 타고 갈 배는 본선에 딸린 보조선으로, 이미 무무선인이 타고 가서 정찰한 적이 있었다.
“조심하십시오. 저는 남아서 이분들을 치료해드리겠습니다.”
백소운이 여전히 운공요상 중인 옥평, 무무선인 등을 가리켰다.
“네. 부탁드려요.”
옥려군이 고개를 숙인 후 계속해서 정찰선을 타고 신선하를 건넜다.
백소운은 옥평 등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시기를 놓치면 완치하는 데 많은 시일이 소요되기 때문에 서두르는 것 같았다.
“모두 마음을 편히 하십시오. 한꺼번에 치료해드리겠습니다.”
백소운이 어느새 회수한 무명검을 수직으로 세웠다.
순간, 무명검에서 금빛 기운이 동심원 모양으로 흘러나오며 운공요상 중인 옥평 등의 몸으로 흘러 들어갔다.
옥평 등은 운공요상을 멈추지 않으면서 그 기운을 받아들였다.
그러자 그들의 안색이 빠르게 회복되기 시작했다.
시간이 점점 흘러갔다.
* * *
정탐을 하러 신선하를 건넜던 옥려군 일행이 돌아온 것은 해 질 무렵이었다.
그동안 옥평, 무무선인, 탕평도인, 등선서생 네 사람은 백소운의 도움으로 내상의 상당부분을 회복할 수 있었다.
“어떻게 되었느냐? 정말 놈들이 보이지 않더냐?”
옥평이 묻자, 옥려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백 공자 말씀대로였어요. 놈들이 특수 대법을 펼쳐서 신강호로 갔는지 모두 사라져 있었어요. 놈들 진영을 넘어 안쪽으로 더 가보았지만 마찬가지였어요. 더 들어갈 수도 있었지만 진법과 기관의 움직임이 포착되어 그만 돌아왔어요.”
“으음, 놈들이 정말 신강호로 완전히 본거지를 옮긴 모양이구나. 정밀 탐색을 좀 더 해보겠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그것도 큰일이구나. 서약 때문에 우리 중 한 사람만 신강호로 갈 수 있으니, 이를 어떻게 한단 말이냐?”
“백 공자가 있잖아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어떻게든 지옥맹주로부터 천무시(天武匙)를 회수해 서약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볼게요.”
옥려군의 말에 백소운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서약은 무엇이고, 천무시는 또 어떤 것입니까? 서약 때문에 여러분 중 한 분만 제가 살던 무림으로 갈 수 있다고 하셨는데,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줄 수 있겠습니까?”
“아, 아직 말씀드리지 않았군요. 서약이라고 하지만 사실 일종의 저주라 할 수 있지요. 상고 시대 있었던 천신과 마신의 전쟁 결과 천신이 가까스로 승리를 거두었는데, 당시 천신의 대표였었던 천무신께서 그만 그 전에 천계로 갈 수 있는 열쇠인 천무시를 빼앗긴 결과 맺게 된 서약을 말합니다. 천무시를 되찾기 전까지 등선맹 수도자들이 이곳 신선계를 떠나지 않겠다는 것이었지요. 그 내용은 당시 마신들의 우두머리였던 천마신(天魔神)의 요구에 따른 것이었지요.”
“천마신?”
“네. 천마신은 당시 백여 마신들의 우두머리였지요. 참고로 지금 놈들이 지옥신전에 모시고 있는 마신인 지옥악마신은 천마신의 수하였다고 합니다. 당시 천무신에게 패한 천마신은 역시 한 개의 열쇠를 남겼는데, 천마시(天魔匙)라고 합니다. 천마시는 아마도 신강호 어딘가에 있을 천마탑에 보관되어 있는 것으로 최근 추측되고 있습니다.”
“으음, 여러분으로 하여금 신강호로 가지 못하게 한 것이 천마시와도 관련 있을 수도 있겠군요. 천마시는 혹시 마계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입니까?”
“그렇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두 개의 열쇠를 모두 얻게 되었을 때 얻게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건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뭔가 대단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지요. 아무튼, 놈들이 묵계를 깨트리고 신강호로 본거지를 완전히 옮긴 것은 무척 우려할 일입니다. 이는 놈들이 신강호부터 완전히 장악하기로 계획을 바꾼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우리 힘이 미치지 못하는 점을 노린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예상하지 못하신 겁니까?”
“네. 설마 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부득이 백 공자께 부탁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부탁이라 하심은? 혹시 천무시를 회수해 달라는 겁니까?”
“네. 하지만 지옥맹주를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그 때문에 천마탑에 있는 것으로 추측되는 천마시를 찾아 저주를 없애주시는 것도 하나의 좋은 방안이 될 겁니다. 자세한 것은 제 딸이 설명해줄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백소운이 눈을 빛냈다.
‘중원으로 돌아가면 천마탑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봐야겠구나. 천마대회에 참석해 임 소저에게 물어보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