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112
천무곡.
인적이 끊긴 심처라 할 수 있는 이곳에 한 소녀가 무공을 연마하고 있었다.
스스슷.
날렵하게 육합보를 밟으며 숙녀검으로 육합검법을 연마하는 그녀는 바로 진하림이었다.
휙휙휙.
숙녀검이 빠르게 움직이며 근처에 있던 바위 하나가 둘로 쪼개졌다.
쩍.
“휴우······.”
심호흡을 한번 한 그녀는 오늘 수련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안색을 굳혔다.
그녀가 초조한 표정으로 용바위를 쳐다봤다.
그곳은 바로 보름 전 백소운이 갑자기 사라진 자리였다.
당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무공을 연마하고 있던 그녀는 백소운이 사라진 사실을 뒤늦게 알고 매우 당황했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릴 수 있었고, 그 결과 백소운이 아무 이유 없이 사라질 까닭이 없다는 결론에 달했다.
즉, 용바위 근처에서 어떤 기관을 건드렸고 그 안에 들어갔다는 추측을 하기에 이른 것이었다.
추측이 사실이라면 해야 할 일은 그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다행히 천봉환 덕분에 내공이 일갑자 늘어난 그녀는 무공 연마에 목말라 하고 있었다.
‘늦어도 사흘 안에는 꼭 돌아오실 거야.’
그런 기대를 하고 무공 연마에 몰두했었다.
하지만 벌써 보름째였다.
그동안 근처에 있던 과일 등을 따 먹을 수 있어 먹는 것에는 불편하지 않았다. 하지만 계속 이렇게 무작정 기다리는 것이 능사인지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번 그런 생각이 들자, 집중이 잘 안 되었다.
지금 그녀가 무공 연마를 중지하고 안색을 굳히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오라버니는 벌써 계곡을 빠져나갔을지도 모른다. 무작정 기다리는 것보다 산에서 내려가 소식을 알아보는 게 낫지 않을까.’
진하림이 그런 생각을 하며 용바위 주변을 다시 한번 살피기 시작했다.
벌써 여러 번 살펴봤지만 아무런 특이점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특수 진법으로 이루어진 곳이라 외적으로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아! 도저히 안 되겠다. 서신을 남겨두고 이곳을 떠나야겠다.”
진하림이 결단을 내리고 천무곡을 빠져나가려 할 바로 그때였다.
용바위 사이에 뭔가 흐릿한 것이 나타나더니 한 사람의 모습이 드러났다.
한데 그는 바로 백소운이 아닌가.
“오라버니!”
진하림이 매우 기뻐하며 백소운에게 달려갔다.
“하하하! 하림아. 아직 이곳에 있었느냐?”
“어떻게 된 거예요? 벌써 보름이나 지났단 말이에요.”
“보름이라고? 나는 한 사나흘 정도 지난 줄 알았는데······.”
백소운이 안색을 굳혔다.
‘아, 내단을 먹고 정신을 잃었을 때 시간이 무척 지났었구나.’
“어떻게 된 건지 말씀해주세요. 제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세요?”
“말을 하자면 길다.”
백소운이 천무성자가 남긴 내단을 먹고 쓰러진 일, 그리고 신선계에 들어가 겪었던 일들을 간단히 설명해줬다.
진하림이 몇 번이나 놀란 표정을 지으며 경청했다.
“그래, 지금은 몸이 완전히 회복된 건가요?”
“그렇다. 이전보다 훨씬 더 강해졌다고 할 수 있지.”
“잘 되었군요. 한데 동굴이 무너졌는데 어떻게 다시 같은 장소로 돌아올 수 있었지요?”
“그것은 무너진 그 자리에 신비지문이 새로 하나 생겼기 때문이었다. 안 그랬으면 옥 소저가 신선계를 떠날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을 것이다.”
“옥 소저는 함께 오지 않았나요? 저주의 서약 때문에 옥 소저 한 사람만 우리 강호로 올 예정이라고 하셨잖아요?”
“원래는 함께 오려고 했었지. 하지만 수도자들이 그녀에게 힘을 몰아주기 위해 특수 대법을 펼치느라 같이 오지 못했다. 특수 대법으로 전 수도자들의 공력을 일부나마 한 몸에 흡수하는 과정이니, 시간이 걸리는 게 당연한 것이 아니겠느냐?”
“그건 그렇군요. 아무튼, 전 오라버니 걱정뿐이에요. 이제 어떻게 하실 건가요?”
“천마탑 때문에 먼저 마교 총단이 있는 신강으로 가봐야 할 것 같다. 천마대회에 참가하겠다고 임 소저에게 약속도 했으니, 그녀도 도와줄 겸 말이다.”
“잘 생각하셨어요. 지금 출발하면 늦지는 않을 거예요.”
“그래. 어서 가자. 한데 그동안 무공이 무척 늘었구나. 날 기다리면서 열심히 연마한 것이냐?”
“네. 이제야 제 한 몸 정도는 지킬 자신이 생겼어요.”
“하하하. 그 정도가 아닌데? 지금 보니 일류에 근접하고 있는 것 같다. 똑같은 일갑자 내공이라도 무명심공에 기반에 두었기 때문에 더욱 위력적이지. 좋다. 떠나기 전에 얼마나 늘었는지 확인을 해보도록 하자. 날 공격해보아라.”
“그럴 순 없어요. 다치시면 어쩌려고?”
“하하하. 내가 나를 조금이라도 건드릴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마음껏 공격해도 좋다. 이게 다 너의 실전경험을 위해 그러는 것이니, 내 말대로 해라.”
“네. 오라버니. 제가 깜박 오라버니 무공 수준을 잊었어요. 그럼 시작할게요. 조심하세요.”
진하림이 숙녀검을 고쳐 잡았다.
백소운은 대련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금단비고에서 숙녀검과 한 쌍인 군자검을 꺼냈다.
이 군자검은 숙녀검과 함께 서열 2위의 보검이었다.
물론 금단비고 내의 병기 중 서열이지만 절대 무시 못 할 병장기들인 것이다.
특히 이 두 보검에는 각기 고유의 검법이 숨겨져 있었다.
백소운은 병기 설명을 통해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특히 군자검으로 익히는 군자검법(君子劍法)을 백소운은 이미 모두 익히고 있었다.
‘하림이의 내공이 일갑자에 달했으니, 지금부터 천천히 숙녀검법(淑女劍法)을 익히게 해도 좋겠구나. 그렇게 되면 군자검으로 펼치는 군자검법과 어울려져 큰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백소운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진하림이 신중한 표정으로 검을 찔러 들어왔다.
슈우욱.
단순한 찌르기였으나 내공이 담겨 묵직하게 느껴는 중검식(重劍式)이었다.
육합검법 중 일초이긴 했으나 그 힘이 무척 강해 보였다.
“좋구나.”
백소운이 그대로 선 자세에서 군자검을 휘둘러 숙녀검을 쳐냈다.
채앵.
숙녀검이 튕겨 나가며 진하림이 비틀거렸다.
하지만 백소운의 배려로 조금의 내상도 입지 않았다.
백소운의 막강함을 직접 느낀 진하림이 주저하지 않고 검초를 다시 뿌리기 시작했다.
차차차창.
백소운은 가볍게 퉁겨내며 보조를 맞춰주었다.
진하림은 내공을 최대한 끌어올리며 육합검법을 펼쳤다. 그러면서 좌수로는 육합권과 육합장을 함께 펼치기 시작했다.
파파파팡.
백소운 역시 좌장으로 이를 막아내자, 파공성이 계곡 안에 가득했다.
“하하하. 정말 기대 이상이다. 마음껏 공격해보아라. 날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어떤 소원이라도 들어주겠다.”
백소운이 진하림의 투지를 돋우자, 그녀가 이제 마음 놓고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백소운의 기대대로 그녀에게 있어 좋은 실전경험이 되었다.
특히 백소운이 장단을 맞춰주며 가끔 위협적인 공격도 구사했기에 방어 능력도 키울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좀 더 흐르자, 그녀는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내공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바로 육합계열 무공 자체의 문제였다.
물론 그녀가 백소운처럼 무형검의 경지에 올라있다면 육합검법 등의 기초무공만으로 최고의 위력을 발휘하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그녀에게 그런 능력은 없었다. 이는 백소운이 그녀에게 숙녀검법을 익히게 할 좋은 이유가 되었다.
휘익.
백소운이 처음으로 군자검을 앞으로 뻗어 진하림을 공격했다.
그 속도가 너무 빨라 진하림은 눈 뜨고 그냥 당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목 바로 앞에 멈춘 군자검을 보며 진하림이 패배를 시인했다.
“제가 졌어요. 오라버니.”
“수고했다. 그리고 거기 앉아라. 네게 해줄 말이 있다.”
“네.”
진하림이 생긋 웃으며 바닥에 앉았다.
대련으로 통해 실력이 다시 일취월장한 것을 알았기에 기쁜 표정이었다.
“하림아. 네가 가지고 있는 숙녀검에는 숙녀검법이라는 검법이 숨겨져 있다. 검병을 잡고 오른쪽으로 돌리면서 내공을 불어넣어 보거라.”
진하림이 의아해하며 시키는 대로 한 바로 그 순간, 손잡이 부분인 검병과 검신 사이에 틈이 벌어지며 양피지 하나가 튀어나왔다.
매미 날개보다 훨씬 얇은 것이었다. 진하림이 펼쳐보자 검초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숙녀검법이다. 오직 숙녀검으로만 펼칠 수 있는 상승검법이지. 오늘부터 숙녀검법을 익히도록 해라.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내게 물어보도록 하고.”
“아!”
진하림이 무척 기뻐했다.
무명심공에 이어 상승무공을 다시 배우게 된 것이었다.
백소운이 담담히 말했다.
“숙녀검법은 여인들만이 익힐 수 있는 검법이다. 나 역시 가르침을 주기 위해 이론적으로 한번 익혔을 뿐이다. 그러니 너만의 검법으로 생각해도 좋다. 열심히 연마한다면 조만간 반드시 무림여협으로 명성을 떨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숙녀검과 군자검은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내공을 검 주인에게 불어넣어 주는 효력이 있다. 많은 양은 아니지만 특히 하림이 너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백소운이 말을 마친 후 숙녀검법의 검초 해석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진하림이 감격한 표정으로 신중하게 들었다.
‘오라버니.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제가 오라버니께 힘이 되는 날이 어서 빨리 오도록 열심히 연마할게요.’
진하림이 눈을 빛내며 결심을 굳혔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아무래도 오늘 하루는 이곳 천무곡에서 지내고 내일 계곡을 떠나 신강으로 가야 할 것 같았다.
“전수를 모두 마친 후에 출발할 것이니, 마음을 편히 해라.”
“네. 오라버니.”
* * *
백소운과 진하림이 천무산에서 내려온 것은 다음 날 아침이었다.
어제 하루 동안 진하림은 백소운의 특별 지도를 받아 숙녀검법의 전 초식을 익힐 수 있었다.
물론 익숙하도록 펼치려면 앞으로 부단히 연마해야 했다. 하지만 곧바로 실전에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은 큰 수확이었다.
“신강까지 며칠이나 걸릴까요?”
“마차를 타고 가면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을 것이다. 대회까지는 충분히 도착할 수 있으니 걱정 안 해도 좋을 것이다.”
백소운이 미소를 지으며 산 아래 한 객잔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백소운과 진하림이 돈을 주고 마차를 맡겨둔 곳이었다.
점소이가 두 사람을 알아보고 고개를 숙였다.
“생각보다 늦게 내려오셨네요. 식사부터 하시겠습니까?”
“그렇게 하지. 우리 마차는 잘 있는가?”
“네. 물론입니다. 매일 청소를 해두었으니 깨끗할 겁니다.”
“수고했네. 한데 왜 이렇게 손님들이 많지? 대부분 무림인 같은데?”
“모두 화산으로 가는 분들이지요.”
“화산에는 왜?”
“아직 모르고 계셨습니까? 사흘 전 화산파가 괴한들의 습격을 받아 큰 피해를 봤습니다. 그래서 인근에 있던 무림인들이 급히 지원을 가는 중이지요.”
“습격? 피해는 어느 정도인가?”
“화산파 장문인께서 중상을 입으셨고, 제자들 또한 반수 가까이가 죽거나 다쳤다고 들었습니다. 화산파로서는 정마대전 이후 가장 큰 피해를 본 셈이지요.”
“괴한들의 정체는 밝혀졌는가?”
“아직은 모릅니다. 다만 혈교라는 소문이 있습니다.”
“혈교라면 오래전에 멸망한 곳이 아닌가?”
“네. 맞습니다. 삼백년 전 혈교가 중원침공을 가했으나, 전 무림인들의 공격을 받아 멸망했었지요. 한데 부활을 했다고 합니다. 그것도 이전 보다 배나 강한 세력으로 말입니다.”
“혹시 지옥맹의 짓인가?”
“그것까지는 아직 모릅니다.”
“무림맹 동향은 어떠한가?”
“무림맹 말입니까? 조만간 영웅대회를 연다는 소식은 있었습니다. 아직 날짜를 확정하지 못했지만, 신입 무림맹 무사 선발시험도 치르고 합격자에게는 무맹비고까지 널리 개방한다는 말까지 돌았지요. 물론 이번 영웅대회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지옥맹에 대항하는 기본 계획 수립이라고 듣긴 했습니다. 한데 갑자기 화산파가 공격을 당하는 바람에 발표가 미뤄지는 것 같습니다.”
“으음, 알겠네.”
백소운이 점소이에게 그동안 일어났던 무림의 일들을 물어본 후 은자 한 냥을 주었다.
“감사합니다.”
점소이가 고개를 숙인 후 주방에 가서 먹을 것을 내왔다.
마침 배가 고팠던 두 사람은 맛있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오라버니.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요?”
“화산파 말이냐?”
“네. 심상치 않아 보이는 데 오라버니 역시 바쁘시잖아요.”
“화산파에 잠시 들르는 게 좋을 것 같구나. 몰랐다면 모르겠지만 알고도 어찌 모른 체 할 수 있겠느냐? 마침 여유 시간도 조금 있으니 하루 이틀 정도는 머물 수 있을 것이다.”
“네. 오라버니. 잘 생각하셨어요. 제가 보기에도 심각한 것 같아요. 혈교는 그 잔악함에 있어 마교를 능가한다고 들었는데, 정말 부활을 했다면 또 다른 무림대란이 벌어질 거예요.”
“그렇겠구나. 한데 왠지 이번에도 그 배후에 지옥맹이 있을 듯하구나. 자세한 것은 화산파에 가보면 알 수 있겠지. 어서 식기 전에 먹어라.”
“네. 오라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