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115
매화전은 화산의 오대 봉우리 중 하나인 연화봉(蓮花峰) 위에 있었다.
화산파 장문인 매화신검 화백웅의 거처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의식불명 상태에 있었다.
사흘 전 화산을 급습한 혈교 무사들의 우두머리부터 당한 독 때문이었다.
그나마 그가 지금까지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것은 화산장문인의 독문 내공심법인 자하신공(紫霞神功) 덕분이었다.
비록 아직 대성하지 못해 원래의 가공할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으나, 자하신공의 항독작용으로 인해 독이 심장까지 침투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언제 깨어날지 모른다는 것이 문제였다.
“어떻습니까?”
무림맹 총군사 자명선생이 누워있는 화백웅의 맥을 짚어보고 있는 한 노인을 향해 물었다.
백발이 무성한 그는 바로 신의로 이름난 생사신의(生死神醫)였다.
무림맹 장로 신분을 지니고 있는 그는 총단에 있다가 맹주 백리천의 명을 받아 이곳 화산에 오게 된 것이었다.
“으음, 어렵군요. 목숨에는 지장이 없으나 언제 깨어날지 모르겠습니다. 장문인께서 자하신공을 대성한다면 즉시 깨어나실 수 있겠지만, 의식을 잃은 분에게 그걸 바라는 것은 무리겠지요.”
“그럼 이대로 그냥 지켜만 봐야 한다는 말입니까?”
“네. 저로서도 어쩔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신의께서 제게 죄송할 것은 없지요.”
자명선생이 안색을 굳혔다.
그때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장문인 처소로 들어왔다.
바로 무림맹 지휘부 인물들이었다.
백리영, 태상호법 방고륭, 청룡당주 한삭, 백호당주 항윤현, 부군사 담대선생, 호법 철구, 추보승, 장덕수 등 십여 명이었다.
“총군사님. 확대 작전회의 시각이 되었습니다. 장문인께서는 좀 어떠십니까?”
“그대로입니다. 목숨에는 지장이 없다고 하니 너무 걱정들은 마십시오. 그보다 군웅들을 습격한 혈교 놈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자명선생의 물음에 담대선생이 답했다.
“놈들이 다시 종적을 감췄다고 합니다. 하지만 각처에서 습격을 당한 군웅들의 피해는 이미 천 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한 군데를 제외하고는 공격받은 군웅들이 거의 전멸을 했지요.”
“한군데라 하면?”
“군웅 백여 명이 서른 명 정도의 혈교 무리에게 공격을 받았는데, 다행히 매화무관 총사범 등의 활약으로 놈들을 소탕한 모양입니다.”
담대선생이 보고를 받은 대로 간단히 설명해주었다.
그 가운데 화부용과 진하림의 활약까지 언급한 것은 물론이었다.
무림맹 보고 경로는 여러 개가 있었다. 그는 여러 보고를 취합할 수 있어 비교적 정확하게 상황을 알고 있었다.
“으음, 숙녀객이라. 강호에 그런 여협이 있었을 줄이야. 하지만 혈교 놈들의 무공이 너무 강합니다. 아무리 수백 년간 힘을 길러왔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강한 것은 필시······.”
자명선생이 말을 잠시 멈췄다.
작전회의에 가기 전에 핵심 지휘부끼리 잠정 결론을 내려야 하는 자리였다.
그런 의미에서 혈교의 배후를 밝히는 것은 매우 중요했다.
백리영이 눈을 빛냈다.
“총군사님께선 지옥맹을 의심하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혈교가 나타난 이후로 그동안 지옥맹의 사주를 받고 무림을 어지럽히던 놈들이 잠잠해졌습니다.”
“그건 고무적인 일이 아닌가요? 혈교와 지옥맹 추종세력 둘 다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니까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보고에 의하면 지옥맹 추종세력이 혈교 쪽과 긴밀히 접촉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혈교를 중심으로 힘을 뭉치고 있다는 이야기지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화산파 공격은 혈교 세력이 힘을 확장하는데 기폭제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으음, 그러니까 혈교가 지옥맹 추종세력을 흡수해 무림을 장악하려 한다는 뜻이군요. 그리고 그 혈교의 배후에는 지옥맹이 있고요.”
“그렇습니다. 지옥맹으로서는 여러 문파를 관리하는 것 보다 혈교 한 곳만 통제하는 게 더 편리하지요. 물론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나 대충 그런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총군사. 지금은 그보다 오늘 밤 공격에 대비하는 것이 우선인 것 같습니다. 이미 밤이 되어 놈들이 경고한 사흘이 지났습니다. 언제라도 총공격을 가해올 수 있다는 이야기지요. 우리가 어떤 대비를 해야겠습니까?”
태상호법 방고륭의 물음이었다.
자명선생이 얼굴을 조금 붉혔다.
“지금으로서는 이곳을 견고히 지키는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다행히 놈들이 사흘이라는 시간을 벌어주어 지금 현재 화산에는 화산파 무사들을 포함해 모두 만 명 정도가 운집해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 군웅들이 모이고 있고요. 놈들도 이러한 사실들을 알고 있을 것이니, 함부로 공격을 가하지는 못할 겁니다.”
“하지만 이미 놈들은 외곽 지역에 나타나 군웅들을 습격했습니다. 종적을 감춘 것은 이곳을 총공격하기 위한 준비라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번에는 백호당주 항윤현의 반박이었다.
어느 정도 내상을 회복한 것으로 보이는 그의 주장에 자명선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씀도 일리가 있습니다. 좀 더 자세한 토론은 회의장에 가서 하지요. 여기서 완전히 결론짓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모두 가시지요.”
“네.”
* * *
매화전 대청 안에 모인 무림인의 수는 대략 천여 명.
나머지 구천여 명의 군웅들은 대청 밖 연무장에 모여 있었다.
따라서 지금 대청 안에 있는 사람은 각 문파의 지휘부라 할 수 있었다.
물론 꼭 지휘부 고수가 아니라 해도 무림에서 명성을 조금이라도 갖고 있는 사람은 참석이 허용되었다.
백소운 일행이 대청 안에 들어오게 된 것은 당연히 정기탁, 화미앙 두 사람의 도움이 컸다.
특히 백소운은 아무런 공이 없었기에 원래는 참석이 허용되지 않아야 했다. 하지만 진하림과 동행이라는 이유만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곧 총군사께서 오실 거예요. 태상호법님을 비롯해 맹의 지휘부 고수 분들과 함께 말이지요.”
화미앙이 주인된 입장에서 상세히 설명을 해주었다.
하지만 그녀와 정기탁은 전체적으로 표정이 밝지 못했다.
바로 화산장문인 화백웅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총군사 자명선생을 비롯해 조금 전 화백웅의 방에 있었던 고수들이 나타났다.
둥둥둥.
북소리와 함께 중년인 한 명이 단상 앞으로 나왔다.
“무림맹 지휘부 고수 분들입니다.”
와아아.
짝짝짝.
군웅들이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화산파 총관 매화선생(梅花先生)이라 합니다. 오늘 작전회의의 사회를 맡게 되었습니다. 먼저 지휘부 소개부터 있겠습니다.”
매화선생이 단상에 앉은 지휘부 고수들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자명선생, 백리영, 방고륭, 한삭, 항윤현, 추보승, 장덕수 등이 차례대로 호명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영웅대회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작전회의였다. 형식적인 절차는 최대한 간략히 진행되었다.
소개가 끝나자 매화선생이 다시 말했다.
“다들 아시다시피 사흘 전 혈교 놈들이 우리 화산파를 공격했습니다. 그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죽은 제자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피눈물이 흐릅니다. 네. 복수해야 하며 반드시 할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파를 돕기 위해 이렇게 달려와 준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매화선생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짝짝짝.
군웅들의 진심 어린 박수가 터져 나왔다.
화산파 무사들은 큰 타격을 받았음에도 복수를 서두르지 않고 주인 된 입장에서 군웅들을 성심성의껏 맞이했다.
장로들 상당수가 죽고 장문인까지 의식불명인 상태였다. 하지만 총관과 대제자 정기탁, 매화옥녀 화미앙 세 사람을 중심으로 대동단결하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우리 화산파는 이 정도로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이며, 그 복수 또한 반드시 할 겁니다. 그럼 비상 지휘부 대표이신 맹의 총군사 자명선생님의 말씀을 들어보겠습니다.”
짝짝짝.
박수와 함께 등장한 자명선생이 입을 열었다.
“영웅 여러분. 오늘 밤 혈교 놈들이 이곳을 습격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방어 체계부터 구축하고 작전회의를 열도록 하겠습니다.”
자명선생이 잠시 말을 쉬었다가 다시 말했다.
“먼저 대청 밖 연무장에 있는 분들은 작전회의를 마치는 즉시 화산 전체 경계에 투입하겠습니다. 나머지 여기 모인 여러분은 자리를 지키고 매화전을 사수하겠습니다. 그러니 만약 놈들의 침입이 있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지휘부의 지시에 따라주시면 되겠습니다. 알겠습니까?”
“네. 명을 받들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군웅들이 비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특히 화산에 오면서 혈교의 공격을 받았던 이들은 실감이 나는 것 같았다.
자명선생이 말했다.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지금 계획은 여길 사수하면서 혹시 모를 공격에 함께 대비하는 겁니다. 더 좋은 의견 있으신 분은 지금 말씀해주십시오.”
“종남파 태상장로 칠성도인(七星道人)이라고 합니다. 우리 종남파는 화산과 가까워 이번에 많은 제자들이 지원을 왔습니다. 하지만 여기 오는 도중에 혈교 놈들의 습격을 받아 백여 명의 사망자가 나왔습니다. 상황이 이렇다면 여기서 놈들을 기다릴 게 아니라 군웅들을 습격한 그놈들부터 추적해 섬멸하는 게 순서라고 생각합니다.”
“놈들이 십여 곳이 넘는 장소에서 기습 타격을 가하고 사라져 지금도 추적 중입니다. 군웅들 피해가 심각한 것 또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종적을 감춰 찾기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자명선생이 안색을 굳혔다.
추적에 실패했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었다.
칠성도인이 노기 띤 음성으로 말했다.
“어찌 그렇게 무책임한 말씀을 하십니까? 무림맹 무사라면 당연히 놈들을 잡아서 섬멸해야 할 것 아닙니까? 맹을 믿다가 화산파에 이어 우리 종남파까지 당할까 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차라리 지휘부를 교체하는 것이 낫다고 봅니다만, 다른 분들의 의견이 궁금하군요.”
“칠성도인! 그 무슨 말씀이오? 종남파 역시 맹 소속 문파이거늘······.”
매화선생이 언성을 높였다.
“지휘부 대책이란 게 여기서 가만히 기다리자는 것 외에 또 무엇이 있단 말이오? 차라리 재야 고수분의 지휘를 받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오. 총단 지휘부의 무능력은 지옥맹 사태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나지 않았소?”
칠성도인의 말에 군웅들이 술렁였다.
특히 대부분 각파의 지휘부 고수들이라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특히 그들 중 반수 이상은 섬서성 일대의 중소문파 무사들이었다.
그들로서는 화산파가 공격을 당한 것이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힘을 합쳐야만 자신들의 문파도 안전할 수 있다는 생각에 다들 달려온 것이었다.
“군웅들을 이끌 재야 고수분이 누가 있겠소? 군웅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아야 단합이 될 텐데 적임자가 있냐는 말이오.”
“왜 없소이까? 얼마 전 엄청난 무공으로 지옥맹 놈들을 물리치는 데 성공한 백소운 대협이라면 누구나 승복하지 않겠소?”
“백 대협 역시 무림맹 소속이 아니오?”
“모르는 소리. 백 대협은 이미 무림맹을 떠났소이다. 가만히 생각해보시오. 백 대협께서 맹을 왜 떠났겠소? 분명 맹의 지휘부 고수들이 백 대협의 출신을 거론하며 쫓아내려 했을 것이오. 왜냐하면 백 대협은 명실상부 천하제일인이기에 가만히 놔두면 맹주 자리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오. 백 대협은 그런 꼴을 보기 싫어 맹을 떠난 게 틀림없소. 물론 이 모든 게 내 개인적인 추측이기는 하지만, 다른 이유가 있겠소?”
칠성도인의 말에 군웅들이 더욱 술렁였다.
참다못한 백리영이 말했다.
“백 공자는 그런 이유로 맹을 떠난 게 아니에요. 오히려 자신 때문에 맹이 곤란해질까 봐 떠난 것이지요. 개인적으로 해결할 일도 있다고 했고요. 오해가 없었으면 하군요. 무엇보다 이곳에는 백 공자가 없어요.”
“흥! 백 대협이 직접 말씀해주시기 전에는 믿지 못하겠소. 아무튼, 꼭 백 대협이 아니더라도 지금 이 자리에서 책임자를 다시 뽑아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소이다. 더군다나 이곳은 화산파가 아니오? 화산장문인께서 깨어나서 다시 지휘봉을 잡는다면 또 모를까. 아무리 맹의 총군사라 해도 이런 식으로 무성의하게 지휘를 하신다면 필시 패배를 하게 될 것이오.”
칠성도인이 흥분을 하며 소리쳤다.
진하림이 옆에 있는 백소운에게 전음을 날렸다.
「오라버니. 어떻게 하죠? 오라버니가 직접 모습을 드러내 해명을 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맹을 떠난 이유를 저렇게 곡해할 줄은 몰랐어요.」
「흥분할 것 없다. 좀 더 지켜보자. 자연스럽게 정리가 될 것이다. 그보다 혈교의 의도가 의심스럽구나.」
「무슨 의도 말인가요? 오늘 밤 이곳을 공격하러 오는 건 확실할까요?」
「으음, 어쩌면 성동격서(聲東擊西)의 계책으로 화산이 아닌 다른 곳을 노릴지도 모르겠구나. 화산으로 오는 길목을 노리던 혈교 놈들이 종적을 감춘 것도 수상하고 말이다.」
「어디를 걱정하시는 건가요?」
「무림맹 총단이다. 무림맹 총단에서 이차로 대거 무사들을 파견했을 것이니, 지금쯤 총단 방어력이 매우 약화되어 있을 것이다. 이때 총단을 공략한다면 쉽게 무너질 수도 있지.」
「설마······.」
「그냥 내 생각일 뿐이다. 하지만 설사 공격을 당해도 맹주님이 계시니 최악의 결과는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나저나 아저씨들은 어디 계실까요? 대청 밖 연무장에 계실까요?」
「아마 그럴 것이다. 회의가 끝나면 함께 찾아보자.」
「네. 오라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