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121
태평벌.
낙양이 지척인 이곳에 무림인들이 모이기 시작한 것은 나흘 전부터였다.
처음 수백을 헤아리던 것이 어느새 삼만이 넘었다.
군웅들의 목표는 같았다.
바로 지옥혈교에게 빼앗긴 무림맹 총단을 탈환하는 것이었다.
“생각보다 군웅들이 많이 모인 것 같아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진하림의 물음에 백소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 또한 뜻밖의 일이다. 하지만 걱정도 크다. 놈들이 무슨 의도로 공격을 중지하고 이곳 태평벌에 군웅들이 모이는 것을 방치하고 있는지 말이다.”
“그럼 오라버니 생각은 놈들이 일부러 우리가 한곳에 모이기를 바라고 있다는 뜻인가요?”
“그렇다. 힘이 집결되면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생기는 법이다. 그 단점이 무엇이겠느냐?”
“으음, 놈들 입장에서는 한곳에 모아두고 일망타진할 수 있겠네요. 일일이 찾아내어 소탕하는 것보다 훨씬 편하겠지요. 하지만 우리 역시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으니, 놈들로서도 모험을 건 것이라고 봐요.”
“그렇다. 조장이 되더니 전황을 보는 안목이 상당히 좋아졌구나.”
“호호. 그런가요?”
진하림이 미소를 지었다.
어려울 때일수록 늘 미소를 잃지 않으려 하는 그녀였다.
하지만 상황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았다.
특히 백소운 개인으로서는 처음 계획에서 많은 변동이 있었다.
원래는 나흘 전 지옥혈마대 일만 무사들을 전멸시킨 후 곧바로 총단을 탈환하려 했었다.
그 때문에 파죽지세로 여기까지 온 것도 사실이었다.
그것이 바로 이틀 전이었다.
예상과 달리 지옥혈교 무사들의 반격이 없었기에 가능했던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낙양성 안으로는 들어가지는 못하고 있었다.
바로 총군사 자명선생의 지시 때문이었다.
본진 무사들과 함께 어제저녁 태평벌에 도착한 그는 이틀 전 무사들의 태평벌 집결을 전서구를 통해 명했었다.
이유는 바로 무림맹주 백리천 때문이었다.
지옥혈교 지휘부에서 백리천을 생포했으며 성안으로 무사들이 진입시 곧바로 처형하겠다고 알려왔기 때문이었다.
백리천이 사로잡혔다는 소식은 여러 경로로 전해져 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게다가 지옥혈교 무사들도 모두 성 안으로 퇴각한 터라 일단 군웅들을 집결시킨 후 다시 계획을 세울 예정이었다.
“이제 곧 작전회의가 시작될 거예요. 어떻게 될 것 같아요? 다들 오라버니 견해를 매우 중시하고 있던 것 같던데······.”
“일단 의견을 들어봐야 하지 않겠느냐? 그래도 인근 무림인들과 총단에서 빠져나온 무사들이 이만 명이나 이곳에 모인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그건 그래요. 이차 지원단 무사 일만이 지옥맹주에게 몰살당하지 않았다면 더욱 좋았을 텐데, 그게 가장 아쉬워요. 하지만 지금도 성내에는 십만에 가까운 무사들이 놈들에게 쫓겨 숨어 지내고 있다고 들었어요. 하루빨리 성안으로 들어가 놈들과 결판을 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맹주님의 생사가 달린 일이다. 아마도 공격하기 전에 맹주님의 구출작전부터 감행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성안으로 진입하면 맹주님을 처형한다고 그랬잖아요?”
“그러니까 소수 정예로 움직여야지. 원래 성안에 있던 무사들이 구출하려 했던 것으로 보이는 게 중요하겠지.”
“하기야 백리 소저는 반드시 구출하려 할 거예요. 부친인 맹주님뿐만 아니라 어머님도 총단 뇌옥에 갇혀 있다고 하니······ 그에 비하면 저는 행운아예요. 어머님과 호아, 그리고 장씨 아저씨가 모두 무사했으니 말이에요.”
진하림이 미소를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최씨부인, 진호, 장씨 아저씨 세 사람이 지금 태평벌에 함께 있었다.
진하림이 이틀 전의 일을 잠시 떠올렸다.
태평벌에 도착한 그녀는 어머니와 동생을 구하기 위해 성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었다.
백소운 또한 따라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 직전에 총단에서 탈출해 태평벌로 온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혹시나 해서 가본 결과 뜻밖에도 그들 세 사람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지옥혈교의 공격 때 살아남은 총단 하인 수백 명 중에 섞여 있었다.
백소운과 진하림은 즉시 그들을 아무도 없는 곳으로 데려가 자신들의 진짜 얼굴을 보여줬다.
그들이 무척 기뻐한 것은 물론이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지옥혈교의 공격이 있던 전날 세 사람은 이전에 살던 집에 갔었다고 했다.
완전히 거처를 총단으로 옮기기 위해 미처 가져오지 못했던 물건들을 수레에 담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밤을 새우고 아침이 되어 총단으로 돌아가려던 때 함락 사실을 알게 된 그들은 매우 놀라고 불안해했다.
총단을 장악한 지옥혈교 무사들이 성안에 있는 무림맹 관련 사람들을 찾아내 체포하고 있다는 말까지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차 태평벌에 군웅들이 집결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우여곡절 끝에 이곳에 오게 된 것이었다.
“시간이 됐어요. 어서 가요.”
진하림이 막사 안에서 일어났다.
백소운 역시 그녀를 따라 막사 밖으로 나갔다.
두 사람은 다시 하나로 통합된 선봉대 무사들과 함께 있었다.
다만 백소운의 엄청난 무위를 전해 들은 지휘부에서 두 사람을 특별 배려하여 따로 막사를 하나씩 주었다.
진하림은 아침 식사를 마치자마자 옆 막사에 있는 백소운에게 왔었고, 이제 작전회의에 참가하려 하는 것이었다.
“마침 나오고 계셨군요. 사부님께서 직접 모셔오라고 하셨습니다.”
백소운과 진하림이 막사 밖에서 마주친 사람은 바로 화산파 대제자 정기탁이었다.
어젯밤 본진 무사들을 환영하면서 다시 얼굴을 봤던 그였다.
물론 정기탁 역시 백소운이 혼자서 지옥혈마대 무사 만 명을 제압한 사실을 전해 듣고 매우 놀랐었다.
애초 본진에 그 소식이 전해졌을 때 그걸 그대로 믿은 사람은 몇 명 없었다.
하지만 진하림이 상세 전황을 적은 보고서를 보내자, 비로소 백소운이 엄청난 무위를 펼친 것을 알았다.
당시는 이차지원단 무사들이 몰살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침통해하던 터라, 무사들의 사기는 단번에 올라갔다.
이후 본진과 지원단 무사들은 별 장애 없이 이곳 태평벌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이틀 전 지옥혈교 사자로부터 백리천의 체포 사실을 듣지 않았다면 지금쯤 총단까지 진격했을 가능성이 컸다.
얼마 후 도착한 지휘막사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그 수는 대략 이백여 명 정도였다.
화산에서 복귀한 무림맹 지휘부 고수들과 총단에서 탈출한 고수, 그리고 낙양성 안팎에서 모인 각파 수뇌부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어서 오시오.”
자명선생이 백소운과 진하림을 환대했다.
백리영, 화백웅, 화백범, 방고륭, 한삭, 항윤현. 채병 등 주요 인사들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물론 그들이 경의를 표한 사람은 바로 백소운이었다.
사실 그들 중에는 어제 처음으로 백소운과 통성명한 사람도 많았다.
일개 조원에 불과했던 그에게 관심을 기울였던 사람은 얼마 없었던 것이다.
“하하하! 다들 천무공자를 기다렸소이다.”
“죄송합니다. 조금 늦었습니다.”
백소운이 사과했다.
“아니외다. 우리끼리 나눌 이야기가 있어 두 분께는 알리지 않고 조금 일찍 모였소이다.”
자명선생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진하림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 그랬었나요? 어쩐지 이상하다고 했어요. 무슨 말씀을 나누셨기에?”
“바로 천무공자 일로 상의할 일이 있어서······ 일단 앉으시지요.”
“네.”
백소운과 진하림이 착석했다.
미리 두 사람을 빼고 모종의 이야기를 나눴다는 말에 분위기가 조금 묘해졌다. 하지만 둘 다 개의치 않는 표정이었다.
무슨 내용인지 몰라도 해가 되는 것은 아닐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자명선생이 말했다.
“그럼 지금부터 공식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맹주님에 대한 소식부터 전해드리겠습니다.”
백리천 이야기가 나오자 참석자들의 안색이 모두 굳어졌다.
특히 백리영의 안색은 눈에 띌 정도로 창백했다.
“여러 경로로 알아본 결과 맹주님과 사모님 두 분께서는 맹의 뇌옥에 갇혀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따라서 놈들의 협박이 엄포는 아닌 것으로 판단됩니다.”
자명선생의 말에 지존수호대주 채병이 얼굴을 붉혔다.
“지금이라도 맹주님을 구출해야 합니다. 늦어도 오늘 밤까지가 기회입니다. 지체하면 놈들이 무슨 술수를 부릴지 모릅니다. 지금까지 놈들이 공격을 가해오지 않는 것도 의도된 계획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싸움이 벌어지기 전에 맹주님을 구출해야 마음 놓고 전투를 벌일 수 있을 겁니다.”
“채 대주의 말씀이 옳습니다. 그 때문에 지금 그 일을 논의하기 위해 이렇게 모인 게 아닙니까? 다만 그 전에 지휘체계를 정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미 중지를 모았으니 당사자인 천무공자께 바로 여쭤보겠습니다.”
자명선생이 매우 정중한 태도로 백소운을 쳐다봤다.
“우리는 천무공자님을 맹의 부맹주로 추대하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수락해주시겠습니까?”
“아, 제가 어찌 감히······.”
백소운이 겸양했다.
사실 그는 무림맹에서 어떤 직책도 맡을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간절한 눈빛들 때문에 바로 거절하지는 못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공자께서는 놀랍게도 혼자서 일만 무사를 대적해 제압했습니다. 화 관장을 비롯해 많은 사람이 증언을 해주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이곳까지 별다른 저지를 받지 않고 온 것도 공자 덕분이지요. 물론 놈들이 흉계를 꾸미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 때문이라도 군웅들의 구심점이 있어야 할 때입니다. 지금 놈들에게 잡혀 있는 맹주께서도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당신이 맹을 이끌지 못할 때가 오면 공석인 부맹주 자리를 믿을 수 있는 분께 맡겨 위기를 타개하라고요.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공자께서 부맹주가 되시면 천하에 산재해 있는 수많은 영웅이 모일 겁니다. 지옥혈교 놈들의 수는 우리보다 훨씬 많고 게다가 배후에는 지옥맹이 있습니다. 무림을 위해 수락해주십시오.”
자명선생이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다른 참석자들도 모두 일어나 같은 예를 표했다.
백소운이 당황하며 반례했다.
“알겠습니다. 다만 총단을 탈환할 때까지 임시로 맡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자명선생이 기뻐했다.
거절할 가능성을 높게 봤는데 생각보다 쉽게 수락했기 때문이었다.
“부맹주님을 뵙습니다!”
“부맹주님을 뵙습니다!”
지휘부 고수들이 일제히 백소운에게 포권하며 충성을 맹세했다.
특히 지금은 맹주가 포로로 잡혀 있는 상황이라, 부맹주는 맹주 대행 임무까지 맡아야 했다.
그야말로 막강한 권한을 갖게 된 백소운이었다.
“자리를 옮기시지요.”
자명선생이 중앙에 놓인 태사의에 앉을 것을 권유했다.
미리 준비한 의자였다.
백소운은 쓴웃음을 지으며 자리를 옮겼다.
‘어쩔 수가 없구나. 잠시 맡도록 하자. 그래도 다행인 것은 지금 역용한 상태라는 것이지. 언제든 떠날 수 있다.’
백소운이 마음을 편히 하며 예의 태연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자명선생이 말했다.
“그럼 현 상황을 부맹주님께 다시 한번 자세히 보고 드리겠습니다. 다른 분들도 경청해주십시오. 맹주님 구출 작전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리기 전에 참고하시면 될 겁니다.”
자명선생이 지금까지의 정보를 토대로 이번 지옥혈교의 공격과 현 상황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점점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