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124
“크악!”
“으윽!”
수백 수천 명의 비명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백소운이 날린 회전검풍에 갈기갈기 찢긴 지옥혈교 무사의 비명이었다.
터진 둑에서 거세게 쏟아져 내리는 물처럼 백소운을 공격했던 그들은 마치 불을 향해 달려드는 부나방 같았다.
공격 개시한 지 일각도 되지 않는데 벌써 수천 명이 사망한 것이다.
하지만 공격은 계속되었다.
명을 내리는 암혈괴인이 기다리는 것은 백소운의 탈진이었다.
제아무리 무공의 고수라 해도 진기 사용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교주께서 무림맹을 장악하실 동안, 반드시 저놈을 죽여야 한다. 그래야 이번 계획이 성공한다.’
암혈괴인이 눈을 빛냈다.
그랬다.
이 모든 것은 그와 맹주인 천혈존자 등 핵심 수뇌부가 계획한 것이었다.
‘교주께서는 백리천을 죽인 후 특수대법을 통해 놈의 육신을 장악했다. 역용술이 아니니 절대 발각되지 않고 무림맹주가 되어 무림맹을 장악하게 되실 것이다. 놈들은 그것도 모르고 자신들의 맹주를 구출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지. 문제는 천무공자 저놈이다. 저놈이 올 줄 알았고, 반드시 죽여야 한다. 하지만 놈의 기세를 보니 이번에도 최소한 일만 이상이 사망할 것 같구나.’
암혈괴인의 안색이 굳어졌다.
백리천은 이미 죽었다. 이번에 채병과 화백웅이 태평벌로 데려간 백리천은 실제는 천혈존자였다.
이를 눈치채지 못한 것은 바로 혈교의 특수대법인 전혼대법(轉魂大法) 때문이었다.
전혼대법은 상대를 죽인 후 그 시체에 자신의 혼을 넣어 육신을 지배하는 대법이었다.
놀랍게도 대법이 진행될 동안 자신의 진짜 육신은 소멸하게 된다.
하지만 대법을 해제하면 즉시 자신의 육신을 되찾을 수 있는데, 이 또한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전혼대법의 또 하나의 특징은 육신을 바꾸어도 원래의 힘은 그대로 유지한다는 점이었다.
오히려 더욱 강해지는 게 대부분이었다.
이는 탈취한 상대의 육신에 들어있던 내공까지 모두 자기 것으로 만들기 때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마교의 흡수대법과 비슷했다.
그리고 그런 흡수 능력으로 불어난 내공은 다시 원래의 몸으로 돌아왔을 때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다만 전혼대법은 혈교주만 익힐 수 있는 교주 무공이었다.
연마하기가 금강불괴를 완성하는 것과 비교될 정도로 어려웠다.
사실 천혈존자 역시 얼마 전까지 이를 완성하지 못했었다. 한데 이번에 지옥맹과 동맹을 맺으면서 지옥맹주의 도움으로 대성하게 된 것이었다.
특히 이 전혼대법이 무서운 점은 육신을 빼앗았지만 죽은 자의 기억까지 알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주위 사람들이 이를 알아차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었다.
정신없이 회전검풍으로 지옥혈교 무사들을 찢어발기고 있는 백소운은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상하다. 이렇게 많은 병력이 단시간에 모일 수 있는데 어찌하여 금마옥 경계 병력은 그토록 적었을까. 물론 이백 명의 무사가 지키고 있는 셈이었으니, 적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탈주를 예상했다면 적어도 천 명 이상은 지키고 있어야 했다. 아무래도 태평벌로 빨리 돌아가야겠다. 이놈들은 어차피 다시 대적해야 할 것 같으니, 좀 더 빨리 돌아가 사모님부터 치료해드리는 것이 낫겠다.’
백소운이 결단을 내리고 신형을 솟구쳤다.
허공으로 몸을 띄우는 것은 포위망에서 벗어나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저놈이 도망가려 한다! 막아라!”
암혈괴인이 급히 소리쳤다.
경공에 자신 있는 지옥혈교 무사 수천 명이 몸을 날리며 장력을 퍼부었다.
쏴아아아.
회전검풍이 그친 상태라 그들의 움직임은 자유로웠다.
그 때문인지 장력들의 강도는 매우 강했다.
수천 명의 장력이 뭉쳐 마치 해일처럼 백소운을 향해 쏟아졌다.
허공에 떠 있는 백소운으로서는 피하기가 힘든 상황이었다.
‘역시 그냥 빠져나기는 힘들겠군.’
백소운이 쓴웃음을 지으며 전신으로 무형금광을 펼쳤다.
동시에 무명검을 아래로 뻗어 바람의 검을 펼쳤다.
둘 다 무형검 무공.
공력의 소모는 크지만 그만큼 큰 위력을 보이는 것들이었다.
번쩍.
백소운의 전신에 생겨난 장엄한 금광이 동심원 모양으로 퍼져나가 지옥혈교 무사들을 덮쳤다.
거기에 바람의 검으로 인해 생겨난 엄청난 경력이 가세하자, 거대한 지옥의 회오리바람이 일어났다.
그 힘은 경천동지할 정도였다.
그야말로 지금까지 백소운이 펼친 무공 중 최강의 위력이라 할 수 있었다.
콰콰콰콰쾅.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지옥혈교 무사들의 비명이 천둥처럼 울려 퍼졌다.
그뿐이 아니었다.
공격 기파의 영향을 받은 칠층짜리 충정각이 무너져 그 밑에 있던 지옥혈교 무사 만여 명이 깔려 죽었다.
백소운의 직접 공격으로 죽은 사람 역시 만여 명에 육박했다.
지옥혈교 무사 오만 명 중 이만 명이 몰살당한 셈이었다.
“이럴 수가!”
암혈괴인이 보호강기로 자신의 몸을 방어하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의 눈에 백소운이 경공을 펼쳐 유유히 총단을 빠져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충격이 너무 커서 추격을 명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태상장로님. 놈을 쫓을까요?”
수하의 말에 암혈괴인이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백소운은 이미 사라진 후였다.
“아니다. 어차피 교주님 손에 죽게 될 놈이다. 그것도 반역죄로······ 후후후!”
암혈괴인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 * *
성 밖에 나온 백소운은 태평벌 무림맹 진영이 보이자 안도의 숨을 쉬었다.
겉으로 보기에 별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새벽 무렵이라 희미했지만 싸움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물론 태평벌로 돌아오면서 많은 지옥혈교 무사들을 제거한 그였다.
화백웅과 채병 등을 쫓아가던 그들이었다.
그런 그들을 백소운이 상당수 제거한 것이었다.
그 때문일까.
지옥혈교 무사들은 보이지 않았다.
‘맹주님과 사모님을 데리고 무사히 진 안으로 들어간 것 같군.’
백소운이 미소를 짓다가 문득 인상을 찡그렸다.
‘너무 무리했다. 가볍지 않은 내상을 입고 말았다. 역시 마혈이나 혼혈만 찍는 것보다 살상하는 것이 몇 배가 공력 소모가 심하구나. 하기야 내가 생각해도 너무했지.’
백소운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대량 살상을 했던 것이다.
‘무림 역사책에 보더라도 혼자서 천 명 이상을 죽인 것은 극히 드문데, 그 열배인 만 명을 죽였으니······ 앞으로는 호생지덕에 좀 더 유의해야겠다.’
상황이 좀 더 여유가 있었다면 지옥혈교 무사들이라도 교화할 생각이 있었던 그였다.
하지만 그럴 경우 무림맹 무사들의 피해가 불가피했다.
무공을 폐쇄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이 또한 죽이는 것보다 절대 쉽지 않았다.
게다가 배후에 있는 지옥맹의 능력을 고려할 때 다시 무공을 회복시킬 가능성도 배제 못 했다.
‘쓸데없는 생각이다. 일단 현재에 충실하자. 어서 들어가서 사모님부터 치료해드리자. 지금쯤 금단환의 효능이 온몸에 퍼졌을 테니 치료의 적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백소운이 탈진한 몸을 이끌고 금단무형진 안에 있는 무림맹 무사 진영으로 들어섰다.
예상대로 수백 명 이상의 지휘부 고수들이 그를 반겼다.
삼만에 달하는 일반 무사들 역시 환호성과 함께 그를 환영했다.
제일 먼저 달려온 사람은 바로 진하림이었다.
“오라버니! 무사하셨군요.”
“그래. 맹주님과 사모님은?”
“걱정하지 마세요. 두 분 다 막사 안에 계세요. 다만 사모님이 위독하세요.”
“알고 있다. 총군사님. 제가 없는 동안 어떻게 되었습니까?”
백소운이 급히 달려오고 있는 자명선생을 보고 물었다.
“부맹주님. 오셨습니까? 마침 잘 오셨습니다. 화 장문인과 채 대주가 맹주님과 사모님을 무사히 데려왔습니다. 추적하는 놈들도 모두 돌아갔고요. 부맹주님 혼자 총단에 남아 놈들을 상대했다고 들었는데 무사하셨군요. 싸움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많은 적을 제거했습니다. 나중에 상세히 설명해드리지요. 사모님 치료가 급해서······ 두 분 모두 아직 깨어나지 못하셨지요?”
“맹주님은 의식을 차리셨습니다. 생사신의 말로는 죽음 직전 깨달음을 얻어 무공이 이전보다 훨씬 높아지셨다고 합니다. 지금은 운공요상을 하고 계십니다. 문제는 사모님인데 생사신의도 어렵다고 하네요.”
“제가 가보겠습니다.”
“네. 절 따라오십시오.”
* * *
황씨부인의 명문혈에 무형공력을 주입하고 있는 백소운의 이마에 땀이 비처럼 흐르고 있었다.
아무리 내상을 입었다고는 하지만 무형검의 경지에 오른 그에게 상상하기 힘든 광경이었다.
‘내 예상보다 훨씬 위독한 상태다. 설마 내가 없는 동안 누군가에게 공격이라도 받았단 말인가.’
백소운의 안색이 굳어졌다.
그만큼 황씨부인을 살리는 데 소모되는 공력이 엄청났다.
금단환을 더 복용시키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감당할 체력이 없었다.
‘지금쯤이면 금단무형진도 해제되었을 텐데, 다시 펼칠 기운이 있을지 모르겠구나.’
백소운이 진영 둘레에 쳐둔 금단무형진 걱정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금단무형진을 펼치는데는 상당한 공력이 소모되었다.
그 소모량은 범위가 넓을수록 많아진다. 삼만 무사들을 감싸는 진이라 다시 펼치려면 그전에 상당한 회복이 불가피했다.
하지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황씨부인의 치료였다.
그것도 그냥 치료가 아니라 정상적으로 거동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초조한 표정으로 지켜보던 백리영이 눈을 빛냈다.
드디어 백소운이 황씨부인의 등에서 손을 뗐다.
탈진 상태에서 치료까지 하느라 그의 얼굴은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떻게 되었나요? 어머님은 사실 수 있나요?”
“네. 천운이 따라 회복하셨습니다. 이제 한숨 푹 주무시고 깨어나면 거동이 가능해질 겁니다.”
“아!”
백리영이 탄성과 함께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녀가 백소운에게 고개를 숙였다.
“정말 감사드려요.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 한데 맹주님은 어떻게 되셨습니까?”
“아버님은 회복운공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지금 작전 회의 중이세요.”
“아, 그렇습니까? 그럼 저도 가봐야 하겠군요. 무슨 말이 없었습니까?”
“있었어요. 총군사께서 말씀하시길 천무공자께서는 회의장에 오지 마시고 휴식을 취하라고 하셨어요.”
“저는 괜찮습니다. 회의는 지휘 막사에서 진행 중입니까?”
“네. 한데 회의에 참석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신 분은 사실 제 아버님이세요. 아마 공자님 없이 다른 분들과 하실 말씀이 있는 것 같아요.”
“아! 그렇습니까? 그러면 제 막사로 돌아가서 쉬도록 하겠습니다.”
“네. 부맹주 전용 막사가 가까운 곳에 있으니 그곳에 가 있으세요. 진 소저도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그럼.”
백소운이 밖으로 나와 부맹주 전용 막사로 향했다.
얼마 후 도착한 막사에는 백리영 말대로 진하림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라버니!”
“하림아.”
“괜찮으세요? 안색이 너무 안 좋으세요. 사모님은 괜찮아지셨나요?”
“그래. 치료가 잘 되었다. 회복운공을 해야 할 듯하니 네가 호법을 좀 서다오.”
“네. 한데 조금 이상한 일이 생겼어요.”
“무슨 일이냐?”
“이번에 구출된 맹주님께서 오라버니를 경계하시는 것 같아요. 제가 옆에서 들었는데, 오라버니가 부맹주가 된 사실을 듣고 역정을 내시더라고요. 한데 너무한 것 아니에요? 맹주님을 구하기 위해 목숨 걸고 총단에 가신 분이 누군데, 은혜도 모르고······.”
“그런 말 하지 말거라. 적에게 붙잡혀 있었던 것이 치욕스러워 신경이 날카로워서 그런 것이지.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여기를 떠날 생각이 아니었느냐? 총단을 탈환하면 곧바로 마교 총단으로 떠나자.”
“네. 그러는 게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