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127
백소운과 진하림, 유덕, 정기, 막총 다섯 사람이 지휘막사 안으로 들어간 것은 식사를 마치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였다.
진하림, 유덕 등이 따라간 것은 그들이 강력하게 원해서였다.
원래 부맹주 정도 되면 작전회의에 호법을 데려갈 수 있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그들이 고집을 부린 것이었다.
백소운으로서는 그들이 그다지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되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것 같아 허락했다.
만에 하나 자신이 체포되는 경우가 발생하면 호법들 역시 무사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설마 그런 경우까지 가지는 않겠지. 일단 맹주님 뜻대로 따라보자. 맹주님의 무공 역시 이전보다 비교할 수 없이 높아진 게 분명하니까. 다만 천혈존자의 무공 수준을 모르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구나.’
백소운이 애써 마음을 다스리며 회의장 자리에 앉았다.
벌써 이백여 명의 지휘부 고수들은 당도해 있는 상태였다.
천혈존자와 자명선생, 그리고 백리영 세 사람만 보이지 않았다.
진하림과 유덕, 정기, 막총 네 사람은 백소운 뒤에 서서 호법의 임무를 맡고 있음을 드러냈다.
그런 그들에게 시비를 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만 유덕 등과 친분이 있는 장덕수, 추보승 등이 한 번씩 눈길을 줄 뿐이었다.
그때였다.
천혈존자와 자명선생, 그리고 백리영이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맹주님을 뵙습니다.”
“맹주님을 뵙습니다.”
지휘부 고수들이 일제히 일어나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다들 앉으시오.”
천혈존자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예상과 달리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였다.
자명선생과 백리영 역시 안색이 많이 풀려 있었다.
특히 백리영은 한숨 돌렸다는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야말로 자명서생 못지않게 마음고생이 심했던 것이다.
물론 그 이유는 부친이 백소운을 대하는 태도 때문이었다.
그녀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친의 행동이었다.
그래서 심하게 따졌다. 그리고 어느 정도 성과가 있는 모양이었다.
천혈존자가 백소운을 보며 아는 척했다.
“하하하. 부맹주. 오셨소?”
“네. 맹주님.”
“회의에 앞서 내 부맹주께 그동안의 일들에 대해 사과드리고자 하오. 내가 잠시 뭔가에 홀린 듯하오. 사과를 받아주겠소?”
“여부가 있겠습니까? 감사합니다.”
“고맙소.”
천혈존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았다.
자명선생이 말했다.
“그럼 지금부터 작전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안건은 이번 대표생사결에 나갈 대표 선정입니다. 일단 먼저 말씀드릴 것은 맹주님께서 이번 대결에 나서지 않기로 하셨다는 겁니다. 여러모로 고민한 결과 맹주님께서는 나중에 지옥맹주와 대결을 벌이는 것이 격에 맞는다고 판단하셨습니다. 맹주님께서 직접 발표하시지요.”
“총군사의 말씀이 맞소이다. 내 잠시 판단에 오류가 있었소. 아마도 내가 놈들에게 붙잡혀 있을 당시 미혼약 비슷한 것에 당해 그랬던 것 같소. 한데 운공요상을 제대로 다시 한번 하니 깨끗하게 미망이 사라졌소이다. 그 때문에 조금 전 부맹주께 사과를 한 것이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부맹주는 나와 내 처를 구해주었고, 내 처의 고질병까지 고쳐주었소. 나는 그것도 모르고 여기 오면서 혼미한 정신으로 인해 내 처를 공격하기까지 했소. 적으로 오인해 무형의 살기를 뿜어내 병세를 더욱 악화시켰던 것이오. 그 결과 부맹주는 내 처를 치료하는데 공력을 훨씬 더 소모했을 것이오. 그렇지 않소?”
“맞습니다. 맹주님. 저도 그 점이 의문이었는데 말씀을 듣고 해결이 되었습니다.”
백소운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싸늘한 느낌이 들었다.
‘심상치가 않다. 태도가 돌변하다니, 혹시 정말로 가짜가 아닐까.’
백소운이 의념을 내어 상태창에게 물음을 던졌다.
그러자 곧장 답변이 들렸다.
‘역시 진짜였군. 하지만 의미가 조금 불분명하구나. 몸만 백리천이란 뜻도 되는데, 역시 내가 과민한 걸까.’
백소운이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의심을 풀었다.
자신이 질문을 던질 때 역용 여부에 대해 집중해 의념을 내었기 때문에 그런 답변이 돌아온 것으로 해석했다.
그때 다시 천혈존자의 말이 들렸다.
“내일 대표생사결이 확정되면 우리 측 대표로 부맹주인 천무공자를 내보낼까 하는데 반대하는 분이 있으시오?”
“찬성합니다.”
“지지합니다.”
짝짝짝.
참석자 전원이 일제히 박수를 보내며지지 의사를 밝혔다.
맹주가 불참 의사를 밝히고 직접 추천을 한 마당에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부맹주! 의견이 모였으니 수락을 해주시겠소?”
“네. 맹주님.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하하하. 고맙소. 부맹주는 우리 무림맹의 젊은 영웅이오. 이런 말 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내 뒤를 이어 맹주가 되기에 충분하오.”
“과찬이십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총단을 탈환하게 되면 부맹주 자리에서 물러날 겁니다.”
“그럴 수는 없소. 우리의 목표는 총단 탈환에 그치는 것이 아니오. 총단 탈환은 일단 급한 불만 끄는 정도라 할 수 있을 것이오. 탈환 후 힘을 집결해 마도맹과 사도맹, 지옥혈교,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지옥맹까지 모두 제거해야 하오. 그래야만 무림에 영원한 평화가 올 것이오. 아참, 천룡궁의 동태는 최근 어떠하오?”
“천룡궁은 지옥맹과 동맹을 맺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다만 실제 움직임은 거의 없습니다.”
“천룡궁은 예나 지금이나 눈치를 보는 데는 도가 텄군. 아마 이번에도 본맹과 다른 세력들이 서로 먼저 싸우기를 기다리며 관망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오. 그 말은 당장은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지.”
“천룡공자와의 혼약은 완전히 파기하신 겁니까?”
자명선생의 물음에 천혈존자가 백리영의 얼굴을 한번 본 후 말했다.
“우리 영이가 싫다는데 어찌 강요할 수 있겠소? 다시는 혼사 이야기를 꺼내지 마시오. 천룡궁 역시 최종적으로는 우리가 제거해야 할 세력이 될 가능성이 높으니까.”
“영명하십니다. 이제 정말로 정신이 맑아지셨군요. 그것도 모르고 저는 최악의 경우까지 대비했었습니다.”
자명선생이 안색을 조금 굳히며 아까 식사할 때 백소운과 나눈 이야기를 해주었다.
어찌 보면 반역 음모에 해당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수하된 입장에서 깨끗하게 밝히는 쪽을 택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는 그만큼 맹주를 완전히 신뢰하게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에 백소운이 맹주의 혈도를 찍어 제압하기로 했다는 말이 문제였다.
천혈존자의 안색이 급격히 굳어지며 소리쳤다.
“자명선생! 네놈이 정말 반역을 도모했구나. 여봐라! 뭣들 하느냐? 총군사와 부맹주 둘 다 제압하라. 반역죄로 다스릴 것이다.”
“존명!”
지존수호대주 채병이 바로 대답했다.
물론 그 역시 지금 사태에 놀랐다. 하지만 일단 명이 내려진 이상 집행이 불가피했다.
일단 제압한 후 해명을 들어도 들어야 했다.
툭.
채병이 먼저 자명선생의 마혈을 찍었다.
그리고 백소운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머뭇거렸다.
백소운이 그의 마음을 알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혈도를 찍혀도 언제든 풀 수 있었기에, 일단 반항하지 않기로 한 것이었다.
“부맹주님. 저 역시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채병이 혈도를 찍자, 털썩하고 백소운이 주저앉았다.
“저놈들도 마찬가지다.”
천혈존자가 진하림, 유덕, 정기, 막총 네 명을 가리켰다.
“억울해요! 부맹주님은 아무 잘못도 없으세요.”
진하림이 소리쳤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백소운이 자진해서 체포된 이상 그녀 역시 반항할 생각을 못 했다.
결국 그녀를 포함한 호법 네 명 모두 혈도를 찍히고 말았다.
게다가 채병의 점혈 수법은 매우 고명해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한편 백소운은 혈도를 찍히기 전 무명검 등 소지품을 모두 금단비고에 넣어두었다.
너무나 감쪽같아 처음부터 검을 차고 오지 않은 것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천무공자에게 특수 쇠사슬을 채워라.”
“존명!”
지존수호대 부대주 마균이 급히 막사 밖으로 나가 특수 쇠사슬을 가지고 왔다.
특수 쇠사슬은 만년한철로 만들어진 것으로, 무명검 같은 보검이 없는 한 절대 끊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쇠사슬 표면에는 군자산 가루가 발라져 있어 죄수가 내공을 발현하는 것도 막을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무림맹의 특수 쇠사슬은 지옥혈교의 그것보다 더 우수하다고 할 수 있었다.
무릎을 꿇린 자명선생이 말했다.
“맹주님. 오해이십니다. 반역의 마음을 품고 있었다면 제가 왜 그 사실을 밝혔겠습니까? 통촉해주십시오.”
“시끄럽다. 나는 네놈이 벌써 천무공자 저놈과 작당해 나를 맹주 자리에서 몰아내려 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연기를 했던 것이지. 너는 그것도 모르고 방심을 해서 역모를 토설하게 된 것이다.”
“아!”
자명선생이 탄식했다.
그러는 동안 백소운의 손발에는 특수 쇠사슬이 채워지고 있었다.
백소운은 아무 반항도 하지 않았다.
하기야 마혈을 찍혀 있는 상태라 반항을 하려고 해야 할 수 없는 것으로 보였다.
‘몸만 백리천이라면 정신은 다른 사람이란 뜻 같구나. 그렇다면 맹주님은 이미 돌아가셨구나. 그런 것인가?’
백소운의 물음에 상태창이 다시 답했다.
상태창이 비교적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다.
백리천이 놀란 것은 물론이었다.
‘천혈존자가 맹주님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이구나. 하지만 이대로 놈을 죽인다면 맹주님을 시해한 것으로 오인될 수 있다. 일단 지켜보는 게 좋겠구나.’
백소운이 자제했다.
하지만 어느 한 사람이라도 목숨이 위태로우면 즉시 공격을 가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때 천혈존자가 품속에서 단약 하나를 꺼냈다.
“천무공자 저놈에게 먹여라.”
“네.”
채병이 붉은색을 띠고 있는 단약을 받아 백소운에게 다가왔다.
백소운이 순간적으로 갈등했다.
하지만 이미 만독불침의 몸을 이룬 그였다.
설사 독약이라 해도 치명적이지는 않을 거라는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머뭇거리는 동안 채병이 백소운의 입에 단약을 집어넣었다.
입에 들어간 단약은 그대로 녹아 한 줌 물로 변해 뱃속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본 지휘부 고수들이 남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백소운이 저항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잔뜩 긴장했었는데, 그 기대가 무너진 것이었다.
천혈존자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후후후! 네놈의 자만심이 너를 죽게 할 것이다. 그게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냥 먹다니. 어리석은 놈. 내가 네놈의 무공 실력을 아는 데 그까짓 점혈과 특수 쇠사슬만 믿고 있었겠느냐. 천혈독단(天血毒丹)은 천여 구의 시체에서 나온 시독의 결정체로 해독이 불가능하다. 설사 네놈이 무형검의 고수라고 해도 말이다.’
천혈존자가 혈교 비전의 독단인 천혈독단을 백소운에게 먹인 것을 기뻐했다.
천혈독단을 먹은 자는 일각 후에 내장이 녹아내려 죽게 된다.
하지만 백소운은 천혈독단을 먹고도 아무 변화가 없었다.
천혈존자 역시 태연한 표정이었다.
독이 일각 후에 발동되긴 하지만 그전에는 아무 변화가 없는 게 특징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천혈존자가 자명선생에게 물었다.
“네놈과 결탁을 한 놈들이 누군지 불어라. 어느 놈과 함께 천무공자 저놈을 맹주 자리에 올리려 했느냐?”
“맹주님은 지금 제정신이 아닙니다. 맹주님을 제압할 계획은 최악의 경우를 가정한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치료의 목적이었습니다. 억울합니다.”
“이놈이 그대로 헛소리냐? 일단 네놈의 혓바닥을 뽑아주겠다. 채 대주! 놈의 혀를 뽑아라!”
“아버님! 너무 하세요! 이 무슨 짓인가요? 어서 다들 풀어주세요. 이들은 모두 아버님을 위해서 그런 의견을 나눴을 뿐이에요.”
참다못한 백리영이 소리쳤다.
돌변한 사태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그녀가 상황이 엄중함을 깨닫고 천혈존자를 저지한 것이다.
“영아. 네가 간섭할 일이 아니다.”
천혈존자가 보는 눈을 의식해서 언성을 조금 낮췄다.
지금 모인 지휘부 고수들은 한동안 그가 수하로 부려야 할 사람들이었다.
그러면서 천천히 조금씩 숙청을 해나갈 생각이었다.
물론 그 과정에 지옥혈교 수하들을 하나둘 맹에 들여올 계획이었다.
그때였다.
정기가 소리쳤다.
“맹주님! 부맹주님은 억울합니다. 통촉해주십시오.”
“네놈이! 죽으려고 환장을 했구나!”
안 그래도 화가 난 천혈존자가 분풀이를 하려는 듯 지풍을 날렸다.
콩알 모양의 지풍에는 내력이 응축되어 있었다. 이대로라면 이마를 관통당해 즉사할 것이 분명했다.
백소운이 같은 지풍으로 천혈존자의 지풍을 막아낸 것은 그 직후였다.
팡!
“그대는 백리천 맹주님이 아니라 천혈존자요. 맹주님을 죽인 후 전혼대법으로 육신만 취한 것이지.”
백소운이 천천히 일어섰다.
혈도와 쇠사슬은 풀려있었다.
그의 손에도 어느새 무명검이 들려있었다.
백소운은 말을 한 후 뭔가를 뱉어냈는데, 바로 천혈독단이었다.
분명 녹아서 뱃속으로 들어갔건만 원래대로의 모습이었다.
“이것은 천혈독단이란 것으로 네놈이 천혈존자임을 증명하지. 어서 맹주님의 몸에서 나와라. 맹주님을 시해한 것도 모자라 시신까지 이용하려 들다니,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