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128
“하하하! 무슨 헛소리냐? 조금 전 네놈이 먹은 단약이 녹아내린 후 뱃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모두가 봤다. 그리고 나는 천혈독단이란 것을 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한다. 네놈이 나를 모함하려는 모양인데, 여기에는 본맹 고수들이 모두 모여 있다. 절대 네 마음대로 될 수 없을 것이다. 뭣들 하느냐? 어서 놈을 제압하라.”
“존명!”
채병이 고개를 숙인 후 백소운에게 다가갔다.
지존수호대 부대주 마균이 보조를 맞췄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백소운의 무공 수위가 엄청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선봉대 조장 십여 명이 부채꼴로 감싸며 도주로를 차단했다.
“천무공자! 확실한 증거를 보이지 않는 한 그대를 제압할 수밖에 없소. 조금 전 단약이 그대의 입에 들어가자마자 녹아내리는 것을 본인 역시 목도했소. 설사 천혈독단이라 해도 그것은 확증이 되지 못하오. 그대가 얼마든지 다른 경로로 구할 수 있기 때문이오.”
“채 대주님의 말씀도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한 말은 모두 사실입니다. 일단 이 독단이 천혈독단임을 생사신의께서 확인해주시겠습니까?”
백소운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천혈독단을 생사신의에게 던졌다.
“으음······.”
생사신의가 천혈독단을 살피기 시작했다.
천혈존자가 버럭 고함을 쳤다.
“지금 무슨 짓들을 하는 것인가? 채 대주! 어서 공격하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채병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우수를 뻗어 백소운의 혈도를 찍어갔다.
어찌됐든 백소운은 혈도와 특수 쇠사슬을 마음대로 푼 사람이었다.
아무리 죄가 없다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것이 용납될 리는 없는 것이다.
“순순히 포박을 받으시오. 죄가 없다면 맹주께서도 그대를 풀어줄 것이오.”
채병의 우수가 백소운의 어깨 견정혈에 닿기 직전, 백소운이 금빛 강기를 뿜어냈다.
부채꼴 모양으로 퍼져나간 금광은 채병과 마균, 그리고 선봉대 조장들을 그대로 덮쳤다.
“으윽!”
“크윽!”
비명이 연달아 터졌다.
채병, 마균, 선봉대 조장들이 일제히 쓰러졌다.
사람들이 놀라서 보니 다들 마혈이 찍혀 꿈쩍도 못 하고 있었다.
다만 백소운의 배려 덕분에 내상을 입은 사람은 전혀 없었다.
지휘부 고수들이 흠칫했다.
원래대로라면 모두 달려들어 공격해야 했다.
그때 생사신의가 소리쳤다.
“천혈독단이 틀림없습니다!”
“흥! 헛소리하지 마시오! 분명 저놈의 입안에서 녹아내리는 것을 여럿이 봤소이다.”
쳔혈존자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건 사실입니다. 저도 봤으니까요. 하지만 혈교주의 독문독약이라 할 수 있는 천혈독단은 시독(屍毒)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언제든 다시 원형으로 만들 수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녹아서 뱃속으로 들어갔다 하더라도 내공이 강하면 다시 원형을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이지요.”
“하하하. 역시 생사신의시군요. 말씀 그대로입니다. 저는 위험을 감수하고 단약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희대의 독단임을 깨닫고 급히 독물을 응고시켜 다시 배출시킨 겁니다.”
백소운이 미소를 지었다.
생사신의가 중요한 증언을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백리영이 말했다.
“천무공자! 그대의 입장을 잘 알고 어떻게든 도움을 주려는 마음은 변함이 없어요. 하지만 아버님께서 이미 돌아가셨고 그 유체를 천혈존자가 차지했다는 말씀은 도저히 이해가 안 가요. 저분이 정말 제 아버님이 아니란 말씀인가요?”
백리영이 최대한 감정을 자제하며 물었다.
백소운을 무조건 몰아붙이지 않은 것은 그녀 또한 일말의 의구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천혈존자는 빼앗은 백리천의 기억을 근거로 해 백리영과 백리천 두 사람만 알고 있는 이야기를 무척 많이 했었다.
그 결과 백리영은 천혈존자를 한 번도 의심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래서 내심 백소운이 좀 더 확실한 증거를 제시해줄 것을 바라며 질문은 던진 것이었다.
물론 그 이면에는 여전히 부친이 살아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매우 컸다.
“영아! 너도 이 아비를 의심하는 것이냐?”
천혈존자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백리영이 안색을 붉혔다.
“죄송해요. 아버님. 모든 것을 좀 더 확실히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계속 구설에 오를 거예요.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새로운 확실한 증거가 없다면 그때 처벌해도 늦지 않을 거예요.”
“좋다. 저놈의 무공이 대단하여 우리 모두 달려들어도 잡지 못할 수도 있으니, 어디 기다려보자. 천무공자! 들었느냐? 내가 가짜라는 확실한 증거를 빨리 대라. 일각이 지난 후에도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가 너를 공격할 것이다. 모두 본인의 말에 따르겠소?”
“명에 따를 겁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지휘부 고수 이백여 명이 일제히 대답하며 허리를 숙였다.
백소운이 안색을 굳혔다.
일각이란 시간 안에 다른 증거를 제시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가 천혈독단을 다시 원형대로 배출해낼 수 있었던 것은 상태창 덕분이었다.
위기의 순간 상태창이 경고를 했고, 즉시 백소운이 진기를 일으켜 독이 퍼지는 것을 차단했던 것이다.
그만큼 천혈독단의 위력이 강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천혈존자가 가지고 있던 천혈독단은 오직 한 알뿐이었다.
그 한 알을 백소운에게 사용했던 것이다. 백소운의 무공 수준을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좋은 방법이 없겠나? 상태창.’
백소운이 급한 마음에 직접 상태창을 의념으로 불렀다.
이 상태창이란 명칭은 금단비서를 익히게 되면서부터 홀연히 그의 머릿속으로 떠오른 것이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상태창은 수호신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백소운은 어렴풋이 상태창이야 말로 그에게 주어진 안배 중 핵심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상태창의 대답이 들렸다.
“황씨부인을 불러 주시겠습니까? 그분이 증명해주실 겁니다.”
백소운의 말에 지휘부 고수들이 술렁였다.
황씨부인은 백리천의 처로 백리영의 어머니이기도 했다.
“제 어머님 말씀인가요?”
백리영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그렇습니다. 상대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부부가 가장 잘 알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걱정입니다. 진실이 드러날까 봐 저의 제의를 거절할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아니에요. 아버님은 그러시지 않을 거예요. 그렇지 않나요?”
백리영이 천혈존자를 쳐다봤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천혈존자가 안색을 조금 굳혔다.
‘그년이 내 진짜 신분을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왠지 찝찝하구나. 하지만 지금 거절하면 두고두고 구설에 휘말릴 것이다.’
천혈존자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부인을 모셔 오너라. 영이 네가 모셔오겠느냐?”
“네. 아버님.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백리영이 급히 막사 밖으로 나갔다.
그동안 백소운은 자신이 혈도를 찍었던 채병과 마균, 그리고 선봉대 조장들의 혈도를 풀어주었다.
“으음, 면목이 없습니다. 맹주님.”
채병이 고개를 숙였다.
“흥!”
천혈존자가 코웃음을 쳤다.
한편 백소운은 연이어 자명선생과 진하림, 유덕, 정기, 막총의 혈도도 풀어주었다.
다시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제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무엇보다 천혈존자가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그의 관심사는 오직 백소운이었다.
‘어차피 저놈과 나의 승부는 불가피하다. 하지만 지옥맹 측에서도 생각이 있다면 내가 승패를 알 수 없는 대결을 벌이는 것을 그냥 두고만 보지 않을 것이다. 108 괴수왕 중 대여섯 명만 와도 충분히 저놈을 죽일 수 있을 텐데······.’
천혈존자가 기감을 펼쳐 지옥맹에서 온 고수가 있는지 살폈다.
하지만 아무런 기파도 감지 못했다.
그때 인기척이 나며 막사 안으로 두 사람이 들어왔다.
바로 백리영와 황씨부인이었다.
뇌옥에 갇히기 전에도 거동을 못 해 늘 병색이 완연했던 황씨부인은 몰라보게 변해 있었다.
일반 사람과 다름없이 생기가 넘쳐 있는 것이다.
쾌차했다는 이야기만 들었던 사람들이 다들 놀랐다.
그러면서 백소운의 의술에 감탄했다.
그런 감정은 자연스럽게 지금 상황을 중립적으로 보게 했다.
만약 황씨부인이 천혈존자의 정체를 폭로한다면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마음의 준비가 된 것이다.
반면 천혈존자는 조금 긴장된 표정이었다.
황씨부인이 쾌차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일부러 찾아가지 않았던 그였다.
아무리 죽은 백리천의 기억을 확보하고 있다 해도 황씨부인이 꺼려진 게 사실이었다.
부부 사이라는 것은 기억 말고도 감정 같은 것이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것을 그 역시 알고 있는 것이다.
“부인. 오셨소? 몸은 이제 괜찮으시오?”
천혈존자가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
황씨부인은 별 말 없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을 대신했다.
그러면서 천혈존자의 얼굴을 뚫어지라 보는 게 아닌가.
이미 여기 오면서 대강의 사정을 들은 그녀였다.
백리영이 직접적으로 물었다.
“어머님. 아버님이 혹시 가짜인가요?”
“저 사람은······ 날 죽이려 했었다.”
“그게 무슨 헛소리요?”
천혈존자가 소리쳤다.
황씨부인이 말했다.
“뇌옥에서 나와 이곳으로 오는 중이었을 것이다. 정신을 잃고 있었던 나는 천무공자가 준 단약을 복용하고 조금씩 정신이 들고 있었다. 그때 채 대주의 등에 업혀 있던 저 사람이 나에게 살기를 쏟아냈다. 저자는 네 부친이 아니다. 눈빛이 달라. 맹주님은 저런 사기가 가득한 눈빛을 한 번도 보이신 적이 없었다.”
황씨부인의 말에 지휘부 고수들이 술렁였다.
천혈존자가 소리쳤다.
“부인! 아직 정신이 온전하지 못 한 것 같소. 누구나 몸이 약해 정신이 혼미하면 헛것을 보거나 들리는 것이지. 여러분이 잊었는지 모르겠는데 아까 내가 분명히 말했었소. 나 또한 정신이 혼미해 부인을 적으로 알고 살기를 쏘아댔다고. 따라서 부인의 말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내가 가짜인 것은 아니오.”
“당신의 눈빛은 지금도 그대로예요. 당신은 맹주님이 아니에요. 어서 말하세요. 당신이 맹주님을 죽였나요?”
“미쳤군. 아무리 부인이라 해도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소. 여봐라. 뭣들 하느냐? 어서 부인을 모셔가라.”
“존명!”
채병이 다시 명을 받들어 황씨부인을 데려가려 했다.
그때였다.
황씨부인이 소리쳤다.
“잠깐! 맹주님의 등에는 초승달 모양의 점이 하나 있어요. 그걸 확인하면 될 거예요.”
“그렇습니까?”
채병이 동작을 멈추고 천혈존자를 쳐다봤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천혈존자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죽은 백리천의 몸을 통째로 차지한 그였다.
등에 나 있다는 점에 대한 기억이 언뜻 떠오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리라 믿었다.
“으음, 좋소. 이게 마지막이오. 확인된다면 더 이상 이런 쓸데없는 일로 시간을 낭비하지 맙시다.”
천혈존자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신형을 돌려 윗옷을 벗었다.
그리고 얼마 후 등이 드러났다.
한데 아무리 봐도 그런 점은 보이지 않는 게 아닌가.
“점이 없다! 역시 가짜였구나.”
황씨부인이 소리쳤다.
‘대법에 무슨 문제가 생겼단 말인가. 아니면 대법 과정에 사라졌을 수도 있겠구나. 이를 어떻게 한단 말인가.’
천혈존자가 당황하며 급히 말했다.
“하하하. 내가 깜박했소이다. 사실 얼마 전까지 등에 점이 있었던 것은 틀림없소. 내 몸에 평생 있었던 것을 어찌 모르겠소? 하지만 이번에 깨달음을 얻어 무공이 급상승하면서 몸에 허물이 벗겨지면서 점까지 사라졌던 것 같소. 해명이 되었소?”
“거짓말! 당신은 제 아버님이 아니에요!”
잠자코 있던 백리영의 말이었다.
모두가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제 아버님 등에는 원래부터 그런 점이 없었어요. 천무공자님이 저와 제 어머님께 전음을 보내 연극을 하게 하신 거예요. 한데 평생 그 점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니, 어이가 없군요. 당신은 누구죠? 정말 지옥혈교주 천혈존자란 말이냐?”
백리영이 천혈존자를 노려봤다.
황씨부인도 마찬가지였다.
가짜라는 것이 판명된 이상 눈앞에 있는 천혈존자는 원수가 되는 것이다.
“하하하! 이거 참 우습게 되었군. 그렇다. 나는 백리천이 아니라 천혈존자다. 백리천은 죽었다. 놈은 우리 지옥혈교 고수들의 합공을 받아 도주 중이었는데, 지옥맹주가 직접 잡아왔었지. 당시 백리천은 죽기 직전이었다. 그래서 나는 확실하게 숨통을 끊어주고 전혼대법을 펼친 것이다. 한데 이런 얄팍한 술수에 휘말려 탄로가 나다니. 하지만 괜찮다. 여기 있는 네놈들을 모두 죽여 입막음한다면 일반 무사들은 전혀 모를 것이니까. 그들은 천무공자 네놈이 모두를 죽인 것으로 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