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129
천혈존자가 내공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그의 몸에 별 변화는 없었다.
이점이 백소운을 곤혹스럽게 했다.
천혈존자가 백리천의 몸에서 빠져나오지 않으면 부득이 시신을 훼손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할 수 없지. 최대한 맹주님 시신을 온전하게 보전하는 방법으로 공격할 수밖에······.’
백소운이 무형공력을 끌어올렸다.
백리영, 자명선생 등 지휘부 고수들이 뒤로 물러나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백리천이 죽은 이상 백소운과 천혈존자 두 사람의 대결에 섣불리 끼어들 고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사실 옆에서 거치적거리는 것보다 이렇게 싸울 공간을 마련해주는 것이 더 나았다.
하지만 내심 외부 지원을 바라고 있는 천혈존자에게는 유리하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무리 자신보다 수준이 낮다 해도 막사 안에서 이백 명이 합공을 가한다면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막사 밖 일반무사들이 상황을 몰라야 했기에 그대로 서 있었다.
“후후후! 나는 길게 싸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지금 이 자리에서 대표생사결을 벌이는 것으로 하지. 내가 지면 즉시 총단을 비워주겠다. 대신 천무공자 네놈이 지면 무림맹을 해체하라. 그럴 용기가 있느냐?”
“본인이 결정할 일이 아니오. 그보다 그대는 어서 맹주님 육신에서 나오시오. 그렇게 하는 것이 정정당당한 대결이 아니겠소?”
“후후후!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 너는 나를 공격할 수 없다. 내가 죽으면 백리천 역시 절대 부활할 수 없을 것이다.”
“아버님이 다시 살아나실 수 있는 것이냐?”
백리영이 급히 물었다.
“그렇다. 사실 백리천은 죽은 게 맞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죽은 것은 아니다. 마교의 불사신공과 마찬가지로 조건만 되면 다시 살아날 수 있지. 하지만 조금이라도 상처를 입게 되면 그 부활의 희망은 완전히 사라지고 만다.”
“그게 정말이냐?”
백리영이 기대감 어린 눈빛을 보였다.
황씨부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문제는 이 또한 속임수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천혈존자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당연하다. 하지만 불사신공을 완전히 연마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듯 백리천의 목숨을 되살리는 것 또한 그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지.”
“말장난하지 말고 확실한 근거를 대라.”
“근거? 그것은 바로 백리천이 죽기 전에 남긴 한 가닥 온기다. 그 온기는 전혼대법을 처음 펼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지. 육신과 혼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하니까. 다만 아까도 말했지만 내가 타격을 받게 되면 온기는 곧바로 사라지게 된다. 그러니까 백리천을 살리고 싶다면 천무공자 저놈을 제압해 내게 넘겨라. 그러면 내 책임지고 백리천의 육신을 온전히 돌려주겠다. 생사신의! 내 말을 어떻게 생각하시오?”
“일리가 있소. 하지만 오직 무형검의 고수만이 그 온기를 전신에 퍼지게 하여 목숨을 되살릴 수 있을 것이오. 지금은 맥도 끊겼기 때문에 사실 무형검의 고수가 와도 그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긴 하지만 한 번 시도해볼 만 하오.”
생사신의의 말에 지휘부 고수들이 술렁였다.
“이제 내 말을 믿겠느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말한다. 즉시 천무공자 저놈을 제압해라. 그러지 않으면 한 가닥 남아 있는 온기마저 제거하겠다. 난 이제 그 온기가 없어도 상관없으니까 알아서 판단해라.”
“네 말을 믿을 수 없다. 부맹주님. 알아서 처리하세요.”
“알겠습니다. 백리 소저.”
백소운이 한 걸음 더 앞으로 나갔다.
그러면서 내심 생각했다.
‘천혈존자가 나의 기세에 밀려 전혼대법의 비밀 한 가지를 발설했구나. 하지만 맹주님을 살리기 위해서는 놈의 말대로 육신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 맹주님 시신은 신체 활동이 정지된 상태라 충격을 가하면 그것으로 끝장이다. 그렇다면 내가 고육지계를 펼칠 수밖에 없겠군.’
백소운이 생각을 정리한 후 말했다.
“좋다. 천혈존자 네놈이 맹주님 육신을 훼손 없이 내놓는다면 나 또한 제압되어 주겠다.”
“어리석은 놈! 좋다. 네 말을 믿겠다. 일단 오른팔을 잘라라. 그러면 즉시 백리천의 육신에서 빠져나와주겠다.”
“알았다.”
백소운이 무명검을 뽑아 자신의 오른팔을 잘라냈다.
댕강.
팔이 떨어져 피분수가 솟구쳤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천혈존자 역시 당황한 것은 물론이었다.
“어서 약속을 지키시오. 나는 이미 오른팔을 잘랐소. 어서 맹주님 육신을 돌려주시오.”
“으으······ 팔 하나로는 안 된다. 다리도 하나 잘라라.”
“그럽시다. 하지만 이게 마지막이오.”
백소운이 무명검을 내리치니 그의 왼발이 허벅지 부근부터 잘려나갔다.
“아악!”
진하림이 비명을 질렀다.
처음 백소운의 팔이 잘렸을 때는 너무 충격이 커서 아무 말도 못 했던 그녀였다.
하지만 이번에 발까지 잘리자 놀라서 소리를 지른 것이었다.
그때 그녀의 귓전에 백소운의 전음이 들렸다.
「하림아. 걱정하지 마라. 무형환술(無形幻術)이라고 눈속임이니까. 내 팔과 다리는 무사하다는 말이지.」
“아······.”
진하림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곧 다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모두의 이목에 그녀에게 쏠렸기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천혈존자가 껄껄 웃었다.
“하하하. 어리석은 놈! 병신이 된 네놈은 이제 원래 공력의 삼 할도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다.”
“어서 약속이나 지키시오.”
“좋다. 하지만 잠시뿐이다. 일각 정도만 보여주지. 그 후에는 내가 다시 차지한다. 나 또한 내 본래의 몸으로 정리할 게 있었으니까 잘된 일이다. 아,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내상을 입은 것은 아니다.”
천혈존자가 말을 한 후 온몸 전체로 붉은 광채를 뿜어냈다.
막사 안에 있던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할 만큼 강렬한 광채였다.
이윽고 광채가 사라지고 드러난 광경은 충격적이었다.
백리천의 시신이 바닥에 놓여 있었다.
그 옆에 흑의를 입은 노인 한 명이 담담히 서 있었다.
붉은 안광을 뿜어내고 있는 그는 바로 천혈존자였다.
하지만 그 보다 충격적인 사실은 백소운이 목 없는 시체가 되어 쓰러져 있는 것이었다.
붉은 광채가 막사 안에 가득했을 때 그는 짤막한 신음과 함께 쓰러졌었다.
어느새 천혈존자의 천혈사(天血絲)에 의해 목이 잘린 것이었다.
“부맹주님!”
“천무공자!”
다급한 목소리가 연이어 터져 나왔다.
진하림이 불신의 표정으로 목이 없어진 백소운의 시신을 붙들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혼동 그 자체였다.
이번에도 무형환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하지만 아까처럼 그녀를 안심시키는 전음은 들리지 않았다.
천혈존자는 내심 운기행공을 통해 기운을 정리하고 있었다.
사실 백리천의 몸에 전혼대법을 펼칠 때 조금 서두르는 바람에 약간의 실수가 있었다.
백리천의 몸 상태에 맞게 먼저 자신의 기운을 정리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던 것이다.
그 결과 지금처럼 자신을 다시 꺼내올 때 백리천이 가지고 있던 내공을 가져오지 못하는 단점이 생겼다.
하지만 그 기운의 정리는 매우 간단했다.
일각 정도만 운기조식하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였다.
그리고 그 일각은 무사히 지나가 완벽한 몸 상태가 되었다.
무림맹 지휘부 고수들이 백소운의 죽음 때문에 우왕좌왕하느라 자신을 공격해오지 않은 덕분이기도 했다.
천혈존자가 말했다.
“백리천의 몸을 약속대로 보여줬으니, 이제 다시 취해야겠다. 모두 비켜라.”
“안 된다!”
백리영이 앞을 가로막고 소리쳤다.
백리천의 시신은 생사신의가 살펴보고 있었다. 천혈존자의 말대로 단전 부위에 한 가닥 온기가 있는 것을 확인했다.
“비켜라! 이제 천무공자 저 어리석은 놈도 죽어 네놈들은 나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나는 일장으로 너희 전부를 죽일 힘이 있다. 마지막으로 말한다. 비켜라.”
그때였다.
천혈존자의 뒤에서 담담한 목소리가 들렸다.
“바보는 그대로군.”
휙.
천혈존자 급히 고개를 돌리며 일장을 날렸다.
쏴아아아.
핏빛 혈장이 그대로 날아갔다.
공격 상대는 바로 갑자기 뒤에서 목소리를 냈던 사람이었다.
한데 그는 바로 백소운이 아닌가.
그것도 팔과 다리, 목이 온전한 상태의 그였다.
“맹주님의 내공까지 합쳤다면 모르겠지만, 그대의 공력만으로는 내 상대가 되지 못하오.”
백소운이 우수를 뻗으며 원호를 그렸다.
동시에 왼손으로 무명검을 내밀었다.
꽝 하는 소리와 함께 천혈존자의 신형이 앞뒤로 격렬하게 흔들렸다.
그 순간 무명검이 그의 목을 잘랐다.
공력의 충돌로 기혈이 진탕된 천혈존자가 그만 무명검을 피하지 못한 것이었다.
“크윽! 이런 터무니없는······ 하지만 태상교주님이 복수를······ 해주실 것이다. 컥!”
천혈존자가 완전히 절명했다.
“오라버니!”
진하림이 가장 먼저 달려와 백소운의 품에 안겼다.
백소운이 살며시 그녀를 떼어놓았다.
“하림아. 보는 눈이 많다.”
“오라버니. 제 이름을······.”
“그래. 더 이상 우리 신분을 숨길 상황이 아닌 것 같구나.”
백소운이 우수를 한번 휘젓자, 금빛 광채가 그와 진하림의 얼굴을 감쌌다.
얼마 후 광채가 사라지자 그들의 본얼굴이 드러났다.
“운아!”
“하림아!”
유덕, 정기, 막총 세 사람이 놀란 표정으로 소리쳤다.
백리영과 자명선생 등 이전에 백소운과 진하림을 알던 사람들의 놀라움도 컸다.
“천무공자가 바로 백소운 공자였소?”
“네. 총군사님. 그동안 속여서 죄송합니다. 사정이 있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일단 맹주님을 제 막사로 옮겨 주십시오. 최선을 다해 살려보겠습니다.”
백소운의 말에 백리영, 황씨부인이 기대 어린 눈빛을 보였다.
기적 같은 일이 생기기를 바라는 마음에 두 사람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가득했다.
* * *
백리천의 치료는 백소운이 전담했다.
부맹주 막사 안에서 그 혼자 금단환과 무형공력으로 치료를 한 것이다.
막사 밖에는 진하림, 백리영 등이 숨죽이며 호법을 섰다.
하지만 막사 안에서는 아무 소식도 없었다.
시간이 훌쩍 지나 밤을 새워 새벽이 되기에 이르렀다.
백리영과 진하림, 자명선생 등 삼십여 명이 초조해하며 기다릴 때.
드디어 백소운이 막사 밖으로 나왔다.
한 나절 이상을 치료에 몰두했기 때문인가.
안색이 매우 창백했다.
“어떻게 되었나요?”
백리영이 용기 내어 물었다.
“천운이 따랐습니다. 조금만 늦었어도 돌이킬 수 없었을 겁니다. 다만 완전히 무공을 회복하는 데는 시일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들어가 보시지요. 이제부터는 생사신의께서 맹주님을 돌봐드리면 될 것 같습니다.”
“아!”
백리영과 황씨부인이 매우 기뻐했다.
백소운의 말대로라면 목숨을 건졌기 때문이었다.
백소운이 막사 안으로 함께 들어가며 말했다.
“지금은 주무시고 계시니 얼굴만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한숨 자고 깨어나면 거동 또한 곧바로 가능하실 겁니다.”
“그런 것 같군요.”
생사신의가 침상에 눈을 감고 누워있는 백리천의 맥을 짚었다.
“아! 뛰고 있습니다. 정말 살아나셨군요. 제 평생 이런 경우는 처음입니다.”
생사신의가 감격했다.
“감사드립니다.”
“감사드려요.”
황씨부인과 백리영이 다시 눈물을 흘리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백소운은 미소와 함께 몇 가지 주의사항을 알려주었다.
그런 후 막사 밖으로 나왔다. 자명선생이 급히 따라 나왔다.
“잠시만.”
“총군사님. 무슨 일입니까? 하실 말씀이라도?”
“당연히 드릴 말씀이 많지요. 부맹주님.”
“저는 부맹주 자격이 없습니다. 총단 하인이었던 제가 어떻게 그런 중책을 맡겠습니까? 다만 약속을 했으니 총단 탈환 때까지만 맡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총단 탈환 후 거취는 그때 가서 의논하기로 하지요. 그보다 지옥혈교가 어떻게 나올 것 같습니까?”
“글쎄요. 교주가 죽었으니 복수를 하려 하겠지요. 새롭게 합류된 우리측 무사들이 있습니까?”
“개방 무사 삼천 명이 조금 전 도착했습니다. 어제 도착한 소림승보다 세배나 많은 인원이지요.”
“잘되었군요. 소림과 개방 고수들은 일당백의 실력을 갖추고 있으니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네. 하지만 지금 전황은 부맹주님이 핵심입니다. 맹주님이 회복될 때까지 무사들을 지휘해 주십시오.”
“맹주님은 오늘 중 깨어나실 겁니다. 그때가 되면 직접 지휘를 하실 수 있을 겁니다. 무공 회복은 최소한 석 달가량이 걸리겠지만 말입니다.”
“석 달씩이나요?”
자명선생이 안색을 굳혔다.
무림맹주의 권위는 그 절대적인 무력에서 나오기 때문에 일반무사들의 사기가 걱정된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지옥혈교의 반격이 문제였다.
“놈들의 동태는 어떠합니까?”
“이미 천혈존자가 죽은 사실이 알려진 것 같습니다. 척후의 보고에 의하면 벌써 놈들이 지옥혈교 태상교주에게 보고를 올렸다고 합니다.”
“태상교주는 어떠한 자입니까? 아까 천혈존자가 죽기 직전에도 언급하더군요.”
“지옥혈교 태상교주는 전대 교주인 광혈마(狂血魔)를 말합니다. 놈은 십 년 전 신공 완성을 위해 당시 부교주였던 천혈존자에게 교주 자리를 물려줬는데, 천혈존자가 죽기 전까지는 자신을 절대 불러서는 안 된다는 명령도 함께 하달했다고 하지요. 이후 놈은 폐관동에 들어갔다고 전해집니다. 놈의 무공은 천혈존자보다 열 배 이상 강하다고 알려져 있으니, 아마도 지옥맹주와 비슷한 무위가 아닌가 합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심각하군요. 저 또한 그자를 이길 수 있을지 장담 못 하겠습니다.”
“그래도 저희가 믿는 분은 오직 부맹주님뿐입니다. 자세한 것은 오전 작전회의 때 다시 논의하기로 하지요. 밤을 새우셨으니 지휘 막사로 가셔서 좀 쉬도록 하십시오.”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