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130
백리천이 깨어난 것은 저녁 무렵이었다.
그는 곧바로 자명선생으로부터 모든 경과를 보고 받았다.
백소운을 직접 불러 감사를 표시했음은 물론이었다.
백리영과 황씨부인 두 사람과 감격의 재회를 한 것은 물론이었다.
작전회의에 참석한 백리천이 지휘부 고수들을 향해 말했다.
“총단을 빼앗긴 것은 모두가 본인의 불찰이었소. 하지만 백소운 공자가 부맹주를 맡은 이후 천혈존자를 죽였다고 하니 기쁘기 그지없소이다. 부맹주는 우리 부부를 구해준 은인일 뿐만 아니라 무림의 일대 영웅이오. 다시 한번 감사드리는 바이오.”
“아닙니다. 맹주님. 저 혼자 구출 작전을 편 것도 아니고, 모든 무사가 한 마음으로 맹주님의 안전을 바랐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백소운이 겸양의 말을 했다.
백리천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부맹주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맹이 해체되었을 것이오. 앞으로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다들 알다시피 본인은 아직 무공을 회복하지 못했소. 무공을 회복하려면 최소한 석 달이 걸린다고 하니, 중요한 시기에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소. 차라리 이번 기회에 부맹주에게 맹주 자리를 물려주고 싶은데 여러분의 의견은 어떠하오?”
“그건 절대 안 됩니다. 부맹주의 무공이 비록 강하나 아직 경륜이 부족합니다. 맹주님은 명만 내리시면 됩니다. 부맹주가 대신 싸워줄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자명선생이 백소운을 쳐다봤다.
백소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다만 여러 번 말씀드렸듯이 저는 총단을 탈환한 후 맹을 떠날 생각입니다. 중요한 일이 있어 서둘러야 하나 마무리를 짓고 가려 합니다. 그러하니 저에게 맹주 자리를 물려준다는 말씀은 하지 마십시오. 한 번 더 권유하시면 몰래 떠나겠습니다.”
백소운의 단호한 말에 지휘부 고수들이 웅성댔다.
그냥 겸양으로 해보는 말이 아님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백리천이 미소를 지었다.
“부맹주 정도의 명성이라면 맹주 자리를 노릴 만도 한데 욕심이 없는 것 같소. 그래 아직 혼인을 하지 않았다고 했소?”
“네.”
“하하하. 잘되었었군. 마침 참한 아가씨 한 명이 있는데······.”
백리천이 옆에 있는 백리영을 쳐다봤다.
백리영이 얼굴을 조금 붉혔다.
부친의 뜻을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백소운을 사위로 삼아 맹을 위해 계속 활약하게 만들려는 그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만 너무 노골적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아직은 혼인할 생각이 없습니다.”
백소운이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
미소를 지은 것은 백리영의 입장을 고려한 것이었다.
자명선생이 웃으며 말했다.
“맹주님. 부맹주께선 혼인보다 무림의 평화가 우선인 것 같습니다. 무림대란이 평정되고 진정한 평화가 온 후 부맹주의 혼사를 주선해주셔도 될 것 같습니다.”
“하하하. 알겠소. 무릇 혼사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지. 그런 의미에서 내가 우리 영이를 천룡궁에 시집보내려 했던 것이 잘못이었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것 같소. 부맹주! 내가 주선하려는 참한 아가씨가 바로 내 딸임을 모르지는 않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오?”
백리천이 약속이라도 받을 마음으로 다시 한번 물었다.
백리영이 급히 말했다.
“아버님. 저와 부맹주님과는 아무런 사이도 아닙니다. 저 또한 무림대란이 끝날 때까지 혼인할 생각이 전혀 없으니 그만 해주세요.”
“하하하. 알았다. 그래도 싫다는 말은 하지 않는구나. 부맹주 역시 거절은 하지 않았으니, 두 사람이 앞으로 좋은 인연을 가꾸어 갔으면 한다.”
백리천의 말에 백리영과 백소운 두 사람 모두 침묵을 지켰다.
한편 진하림은 갑작스러운 혼사 이야기에 안색이 굳어져 있었다.
‘나와 백리 소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오라버니의 마음이 아니겠는가. 괜히 질투해서 오라버니 마음을 어지럽히지 말자. 오히려 마음을 편히 하고 내 할 일만 열심히 하면 되는 것이다.’
진하림의 안색이 다시 풀어졌다.
백소운이 그녀의 눈치를 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아직 혼인에 대한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그였다.
그 때문인지 자신이 누구를 마음에 두고 있는지도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바로 떠오르는 사람은 진하림과 임소혜, 그리고 백리영 정도였다.
다른 소저들도 있지만 아직 교류가 적어 서로를 알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자명선생이 말했다.
“맹주님. 이제 다시 총단 탈환 작전에 대해 이야기를 하시지요. 내일 아침 날이 밝는 대로 낙양성으로 진입해 총공격하는 방안에 대해 최종 결정을 내려주십시오.”
“으음,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좀 더 숙고가 필요한 것 같소. 지금 놈들의 동태는 어떠하오? 아직 지옥혈교 태상교주 광혈마의 소식은 없소? 놈이 오기 전에 공격을 가해야 승산이 높을 것 같은데······.”
“그 때문에 서둘러 공격을 가하려는 겁니다. 놈들이 수적 우세에도 곧바로 반격을 못 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니라 교주 자리가 비어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광혈마가 태상교주를 맡고 있기는 하나 지난 십 년 간 일선에서 물러나 있던 자입니다. 은퇴했다는 뜻이지요.”
“하지만 천혈존자에게 교주 자리를 물려주면서 지금과 같은 때 자신에게 연락하라고 했다 하지 않았소?”
“그렇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쉽게 그를 찾기는 어려울 겁니다. 그가 수련을 하고 있다는 폐관동에 아직 있다는 보장도 없지요. 그리고 중요한 한 가지 변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오?”
“바로 지옥혈교의 부교주 혈루서생(血淚書生)의 야심입니다.”
“그가 교주 자리를 노리고 있다는 것이오?”
“네. 그의 무공은 죽은 천혈존자를 앞선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뛰어납니다. 하지만 실제 무공을 펼친 적은 거의 없어 정확한 수준은 알려지지 않았지요. 물론 지옥혈교 고수들에 대한 정보는 대부분 최근에 입수한 것이라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정보를 고려할 때 놈이 교주 등극을 위해 일부러 광혈마에게 천혈존자의 죽음을 알리지 않을 가능성도 높습니다.”
“일리가 있구려. 부맹주는 어떻게 생각하오?”
“저 또한 총군사님의 생각과 비슷합니다. 어쩌면 내일 총공격을 가하기 전에 놈들이 먼저 총단을 버리고 낙양을 떠날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왜인가? 실질적인 대표생사결에서 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그건 명분이겠지요. 하지만 혈루서생이 마교를 공격해 장악한다면 그의 입지는 매우 단단해질 겁니다. 그럼 교내의 반발을 누르고 자신이 직접 교주가 될 수 있겠지요. 그러지 않고 광혈마가 소식을 듣고 오게 된다면, 혈루서생이 교주가 되는 것은 요원할 겁니다. 광혈마가 비록 은퇴했다고는 하나 교주까지 한 사람입니다. 복귀를 하면 새 교주를 세우지 않고 직접 전권을 행사하려 할 겁니다.”
“나 또한 같은 생각이오. 광혈마가 온다면 교주 자리를 계속 비워두고 자신이 태상교주로서 전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가장 높지. 그러다가 진짜 다시 교주가 될 수도 있는 것이고. 만약 놈들이 총단을 비우고 떠나려 한다면 어떻게 하면 좋겠소? 가정이기는 하지만 그런 상황에 대해서도 계획을 세워두는 것이 좋겠소이다.”
백리천의 말에 다시 한번 술렁였다.
자명선생이 눈을 빛냈다.
“성내 곳곳에 우리 정탐 무사들이 있으니 대병력이 움직이면 보고가 들어올 겁니다. 문제는 놈들을 추격해서 공격을 가할 것인가입니다.”
“총군사의 생각을 말해보시오.”
“만약 놈들이 부맹주님 생각대로 스스로 총단을 비우고 마교를 공격하러 간다면 굳이 쫓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마교 총단에서는 조만간 교주 자리를 놓고 천마대회가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지옥혈교는 오래전 마교에서 떨어져 나온 문파로, 그들의 오랜 숙원은 다시 마교를 장악하는 겁니다. 분명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마교와 지옥혈교는 반드시 큰 싸움을 벌이게 될 겁니다.”
“어부지리(漁父之利)를 노리자는 말씀이오?”
“네. 게다가 우리 무림맹은 이번에 큰 피해를 봐서 정비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마교와 지옥혈교가 서로 싸우다 어느 쪽이 이기든 힘이 약해지면 그때 총공격을 가하는 게 상책입니다.”
“그럼 사도맹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사도맹 공격도 미뤄야 합니다. 맹주님이 무공을 회복할 때까지는 재정비하면서 힘을 모아야 합니다. 무맹비고를 과감하게 개방하면 천하의 무림인들이 대거 몰려들 겁니다.”
“무맹비고라······ 놈들이 그동안 비고를 발견했을 가능성은 없겠소?”
“총단을 장악한 시일이 너무 짧아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겁니다. 설사 찾았다 해도 기관을 여는 방법을 모를 테니 큰 걱정은 안 하셔도 될 겁니다.”
“하기야 그곳에 마음대로 들어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지. 아무튼 힘을 기른 후 먼저 사도맹을 공격한 후 지옥혈교와 마교 중 승자를 공격하면 되겠구려. 물론 그 후 지옥맹을 상대해야겠지만 말이오.”
“네. 다만 지옥혈교가 큰 싸움 없이 마교를 장악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은밀히 정탐 무사들을 보내 동태를 살펴보는 게 좋을 겁니다.”
“그건 당연한 일이라 할 것이오. 부맹주 생각은 어떻소?”
“지옥혈교 놈들은 이번 기회에 소탕하는 것이 후환을 남기지 않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맹주님 말씀대로 어부지리를 노리려다가 놈들의 세력만 더 공고해질 수가 있으니까요. 천혈존자가 죽은 이때가 놈들을 소탕할 절호의 기회라 할 수 있겠지요. 다만 마교를 공격하는 문제는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현재 마교를 장악한 도마왕 세력을 축출하고 죽은 검마왕을 지지하는 세력이 다시 권력을 장악한다면, 그들과 평화협정을 맺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평화협정?”
“네. 마교의 세력은 방대해 그들 모두를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차라리 평화협정을 맺고 적절한 견제를 한다면 무림의 평화가 앞당겨질 겁니다. 물론 마교를 재장악한 세력이 다시는 도발을 하지 않을 거라는 확실한 믿음을 주어야 하겠지요.”
“으음, 그들이 발호하지 않는다면 구태여 싸움을 벌일 이유는 없을 것이오. 그 문제는 차차 생각해봅시다.”
백리천이 안색을 굳히며 확답을 미뤘다.
“네. 알겠습니다. 지옥혈교 놈들을 공격하는 문제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으음, 그러니까 부맹주의 의견은 놈들이 도주하더라도 쫓아가서 소탕해야 한다는 뜻이구려. 총군사는 총단을 비우고 도주하면 그대로 내버려 두어 어부지리를 노리자는 것이고.”
백리천이 숙고에 들어갔다.
‘내 무공은 석 달이 지나야 회복할 수 있다. 만약 나 없이도 대승을 거둔다면 내 체면이 말이 아니겠구나. 하지만 대국을 생각해서 부맹주 말대로 하는 것 또한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사기는 우리가 더 높으니까 승산이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백리천이 생각에 잠겨 있는 그때.
무사 한 명이 급히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인가?”
“지옥혈교 특사가 다시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