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131
다시 온 지옥혈교 특사는 이번에도 태상장로 암혈괴인이었다.
삼백여 명의 무사들을 이끌고 온 그는 매우 비장한 표정이었다.
백리천, 백소운 등 무림맹 무사들은 그 이유가 천혈존자의 죽음이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백리 맹주! 죽다 살아났구려. 우리 교주님을 죽게 만든 그대들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소.”
암혈괴인이 분을 삭이며 말했다.
하지만 당장 공격해올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자명선생이 물었다.
“어떻게 온 것이오? 복수를 통보하러 온 것이오?”
“그건 아니오. 어찌 됐든 우리 교주님이 돌아가신 것은 대표생사결의 결과라 할 수 있으니, 그 약속을 지키겠다는 이야기를 하러 온 것이오. 물론 그대들 역시 약속을 지켜 우리를 쫓지 말아야 할 것이오.”
“그 말은 총단을 비우고 낙양을 떠나겠다는 말이오?”
“그렇소. 이는 교주 대행을 맡고 있는 우리 부교주님의 결단이시오. 본교는 본시 신용을 중시하오. 그리하여 그 약속의 이행으로 총단을 비우고 마교를 공격하러 가려는 것이오.”
“마교 총단을 공격하겠다는 것이오?”
“그렇소. 저번에도 이야기했듯이 마교를 우리 세력으로 흡수하는 것은 본교의 숙원이오. 귀맹을 먼저 공격한 것도 모두 그 작전의 일환이었소. 그래서 그대들에 대한 복수는 뒤로 미루려 하는 것이오. 우리를 공격하지 않겠다고 다시 한번 확답을 해주시오.”
“으음······.”
자명선생이 침음을 삼키며 백리천와 백소운 두 사람을 쳐다봤다.
혼자서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문제였다.
“맹주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들이 총단을 비우고 낙양을 떠나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공격을 가하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구려. 제의를 받아들일지 고민해봐야 할 듯하오. 부맹주의 생각은 어떻소?”
“저는 이 또한 놈들의 술수라고 생각합니다. 맹주님께서는 대표생사결을 받아들인 적이 없으니 거절하고 놈들과의 전면전을 벌여 발본색원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흥! 네놈이 바로 천무공자였지? 백소운이라고 했던가. 교주님을 시해한 놈이 네놈이렷다?”
“그렇소. 복수하고 싶으면 하시오. 그리고 천무공자라는 별호는 없애지 않고 계속 사용하기로 했으니, 앞으로 천무공자 백소운으로 불러도 좋을 것이오.”
백소운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얼굴은 본래 대로 돌아왔지만 천무공자의 명성이 너무 높아져 있었다.
다들 백소운을 계속 천무공자라 부르고 있었다.
“백소운 네놈을 반드시 죽일 것이다. 우리가 비록 신의를 위해 무사들을 이동시키지만, 네놈만은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언제든 너를 죽이겠다는 말이다.”
“나 또한 언제든지 그대들을 제거할 것이오.”
백소운이 무심히 말했다.
이제 협약을 맺어 양측이 휴전상태가 되더라도 그와는 상관없게 된 것이다.
한편 최종결정권을 가진 백리천은 자명선생의 전음을 듣고 있었다.
그 내용은 바로 지옥혈교의 제의를 받아들이란 것이었다.
그리고 그 외에 여러 지휘부 고수들이 자신의 견해를 백리천에게 전달했다.
대부분 자명선생과 같은 견해였다.
백소운의 뜻대로 하려던 백리천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이제 결단을 내려야 할 시간이었다.
“으음, 좋소. 일단 그대들의 제의를 받아들이겠소. 다만 우리가 그대들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은 추격하지 않는다는 것일 뿐이오. 따라서 그대들이 마교 총단에 도착한 이후로는 휴전 약속은 사라지게 될 것이오. 상황에 따라 우리도 행동해야 할 수도 있으니까. 무슨 뜻인지 알겠소?”
“알고 있소이다. 다만 우리 역시 조금 전에도 말했듯이 백소운 저자는 시기에 구애받지 않고 반드시 죽일 것이오. 교주님을 직접 죽인 자이니 이해하시리라 믿소.”
“그건······.”
백리천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백소운이 서운해 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백소운이 담담히 자신의 의사를 밝혔다.
“맹주님. 이왕 그렇게 결정하셨으니 저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오히려 제가 바라던 일입니다. 저 역시 시기에 얽매이지 않고 놈들을 공격할 수 있게 될 테니까요.”
“알겠소. 부맹주 뜻대로 하겠소이다. 암혈괴인. 돌아가서 혈루서생에게 전하시오. 제의를 받아들이겠다고. 다만 사도맹 공격은 시간이 조금 걸릴 것이오. 아무튼, 이번 협약은 일시적이란 것을 절대 잊어선 안 될 것이오. 그대들은 천혈존자의 복수를 운운하나, 우리 측의 피해 역시 막심하오. 그 원한을 잊을 우리가 아니오. 언제까지 철수할 수 있겠소?”
“내일 아침까지는 총단을 비워드리겠소이다. 그럼 약속이 된 것으로 알고 이만 가보겠소.”
암혈괴인이 백소운을 한번 노려본 후 무사들을 이끌고 돌아갔다.
얼마 후 그들이 사라지자 백리영이 말했다.
“저놈들 말을 믿을 수가 있을까요? 뭔가 음모가 있는 것 같은데, 통 알 수가 없네요. 총군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습니다. 아까 회의 때 말씀드렸듯이 이것은 혈루서생의 야심이 큰 때문입니다. 그로서는 광혈마가 오기 전에 마교를 장악해 교주가 되는 게 급선무일 테니까요.”
“공을 세워 맹주가 되려면 차라리 가까이 있는 우리를 공격하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요?”
“그러기에는 부맹주님의 무공이 부담되었을 겁니다. 반면 상대적으로 마교에는 절대고수가 없지요.”
“도마왕이 있잖아요?”
“도마왕도 강하기는 하지만 죽은 검마왕과 비슷한 수준일 겁니다. 부맹주님과 비교할 바가 못 되지요.”
자명선생의 칭찬에 백소운이 얼굵을 조금 붉혔다.
“과찬이십니다.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아침까지 기다려볼 수밖에요. 그렇지 않습니까? 맹주님.”
“총군사의 말 그대로요. 기다려 봅시다.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서 경계를 게을리하지 말라. 놈들이 우리의 방심을 이용해 기습 공격해 올 수도 있으니까.”
“존명!”
“명을 받들겠습니다.”
무림맹 무사들이 흩어져 진영 주위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백소운은 백리천, 자명서생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눈 후 막사로 돌아갔다.
진하림과 유덕, 정기, 막총 네 사람이 그를 따라간 것은 물론이었다.
* * *
“오라버니. 정말 지옥혈교 놈들이 철수하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
진하림의 물음에 백소운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유덕, 정기, 막총 세 사람 역시 궁금한 표정이었다.
“운아. 혹시 맹을 떠날 생각이냐?”
정기의 물음이었다.
천무공자가 백소운이라는 것이 밝혀졌을 때 가장 기뻐한 사람이 바로 그였다.
하지만 다시 맹을 떠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걱정이 앞서는 것이었다.
“아까 보니 맹주님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던데 혹시 벌써 결정된 것이냐?”
“네. 지옥혈교 놈들이 총단을 비우고 낙양을 떠난 것이 확인되면, 저 역시 마교 총단으로 바로 출발하기로 결정되었습니다. 놈들보다 먼저 도착하여 형세를 살피고 맹과 긴밀히 연락하기로 하였습니다.”
“아, 그럼 부맹주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기로 했나요?”
“그렇게 되었다. 부맹주 자리에 계속 있는 것을 전제로 허락을 받은 것이니까. 사실 총단을 내 힘으로 탈환시켰다면 그냥 말없이 떠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놈들이 스스로 떠난다면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지 않겠느냐? 향후 모든 결정은 내가 독자적으로 하기로 했으니,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중요한 사항은 맹의 비상 연락망을 통해 전달하기로 했다. 맹에서도 상황의 엄중함을 알고 정예 고수를 마교 총단에 파견하기로 했으니까. 물론 누가 올지 아직 모르고 있지만 말이다.”
“잘 되었군요. 물론 저도 함께 가는 것이지요?”
진하림이 당연하다는 듯 물었다.
“하림이 너는 아저씨들과 여기 함께 있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물론 내가 원하는 사람들은 마음대로 데려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지만, 아무래도 마교 총단 관할 지역은 위험하지 않겠느냐? 여기서 신강까지 거리도 멀고 말이야.”
“오라버니 혼자서는 절대 갈 수 없어요. 원래 저와 함께 가기로 했잖아요?”
진하림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데 문제는 유덕, 정기, 막총 세 사람이었다.
“조금 전 무사들을 마음대로 데려가도 좋다고 허락을 받았다고 했느냐?”
유덕의 물음이었다.
“네. 한데 왜 그 사실을?”
“우리도 가야겠다. 너희 둘만 보낼 수는 없다. 자네들도 찬성하겠지?”
“네. 형님.”
“당연합니다.”
정기와 막총이 약속이나 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백소운이 당황한 것은 물론이었다.
진하림의 경우에는 그녀가 적극적으로 가려는 의사를 비치면 데려가려고 했었다.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위험한 임무라 억지로 데려가고 싶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예상대로 진하림은 적극적인 동참 의사를 밝혔고, 이제 그들 두 사람만 가면 되었다.
한데 복병을 만난 것이다.
“마교 총단이 있는 천마성(天魔城)은 매우 위험한 곳입니다. 마도 계열 무사로 행세해야 하고 행동 하나하나에 제약이 많이 따를 겁니다. 일단 싸움이 벌어지면 제가 보호해드리기도 힘들고요.”
“운아. 우리 세 사람의 내공이 이번에 일갑자 이상이 된 사실을 잊었느냐? 절대 네게 짐은 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여기서 신강까지는 아무리 빨라도 보름 이상이 걸릴 테니, 그동안 네가 우리에게 무공 지도도 해줄 수 있을 것이 아니냐?”
유덕이 고집을 꺾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 무림맹에서도 안정이 되면 무맹비고를 무림인들에게 개방해 인재를 모을 계획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식무사가 되신 아저씨들은 무맹비고 출입이 확실해진다는 이야기이지요. 저를 따라가는 것보다 여기서 안전하게 상승무공을 배우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무맹비고 개방은 한 달이 지나서야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천마성에 다녀온 후 들어가도 늦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 세 명은 너의 호법이 아니냐? 더 반대하면 화를 낼지도 모른다.”
유덕이 엄포를 놓았다.
정기와 막총 두 사람도 엄한 표정을 지었다.
백소운이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알겠습니다. 다만 싸움에 나서는 것은 제 허락이 있어야만 합니다. 약속해주시겠습니까?”
“하하하! 알겠다.”
“하하하.”
유덕, 정기, 막총 세 사람이 웃음을 터뜨렸다.
진하림이 말했다.
“이래도 저를 빠트릴 생각인가요?”
“아니다. 이제 하림이 네가 없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었다.”
“호호호. 당연하죠. 이래 봬도 제가 조장이라고요. 호법으로 치면 수석호법인 셈이지요.”
“그래. 하림이 네가 우리보다 무공이 강하니 수석호법이 좋겠다. 인정한다.”
유덕의 말에 진하림이 얼굴을 붉혔다.
“아니에요. 사실 제 무공은 아직 많이 부족해요. 하지만 오라버니가 주신 보검 때문에 덕을 크게 보고 있죠.”
진하림이 자신에 허리에 찬 숙녀검을 쳐다봤다.
“으음, 그 검은 운이가 준 것이냐? 두 사람 사이가 보통이 아닌걸.”
유덕이 웃으며 말했다.
진하림이 얼굴을 붉혔다.
“놀리지 마세요. 오라버니와 저는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 오라버니에게는 백리 소저가 있잖아요? 맹주님도 사위로 삼으려 하시고······.”
“무슨 소리냐? 두 사람 모두 혼사에 관심이 없다고 하지 않았느냐? 운아. 그렇지 않느냐?”
정기가 물었다.
부친의 역할을 해왔던 그였기에 백소운의 혼사에 대해 누구보다 관심이 깊은 그였다.
“네. 맞습니다. 저와 백리 소저는 아무 관계도 아닙니다.”
“그럼 하림이는?”
“하림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래, 지금 그런 일에 신경 쓸 때가 아니지. 하림이 너도 괜한 말을 해서 운이 마음을 어지럽게 하지 말거라.”
“네. 죄송해요. 조심한다고 했는데 저도 모르게······.”
진하림이 얼굴을 더욱 붉혔다.
하지만 유덕, 정기, 막총 세 사람이 은연중 자신의 편을 들어주는 느낌을 받아 속으로 매우 기뻤다.
그때였다.
무사 한 명이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부맹주님. 놈들이 총단을 떠나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