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135
곽어언이 깨어난 것은 자정 무렵이었다.
백소운은 그녀 옆을 지키고 있었다.
부친인 곽직으로부터 설명을 들은 곽어언은 감사를 표했다.
“무명서생님이라 하셨나요? 제 목숨을 구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아닙니다.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백소운이 담담히 미소를 지었다.
방 안에 있는 사람은 자신과 곽어언, 그리고 곽직 세 사람뿐이었다.
왕장과 진하림, 유덕 등 다른 사람들은 모두 대청에 모여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다들 말벌왕의 재공격을 예상하고 이에 관한 대책을 강구하고 있었다.
백소운 역시 기감을 장원 전체에 퍼뜨려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었다.
백소운이 곽어언의 진맥을 했다.
“이제 완쾌된 것 같습니다. 독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감사합니다. 무명문이란 문파의 문주라고 하셨지요?”
곽직의 물음에 백소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한데 어떻게 말벌 떼의 공격을 받으신 겁니까?”
“말도 마십시오. 모두 저의 불찰입니다. 지옥혈교 놈들이 신강 쪽으로 진군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지부 무사들을 동원해 놈들을 공격할 예정이었지요. 아무래도 그 사실이 새어나가 지옥혈교의 배후인 지옥맹 괴수들의 공격을 받은 것 같습니다. 아마도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지옥혈교는 이미 많은 무림맹 무사를 죽인 곳입니다. 저 또한 낙양에서 여기까지 와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을 단죄하려는 것이 잘못은 아니지요.”
“그건 그렇지만 놈들을 쫓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휘부에서 했는데, 제가 그 약속을 어기려 했던 셈이지요. 물론 사전에 발각되어 괴수들의 공격을 받았지만 말입니다.”
“지옥혈교 놈들은 믿을 수 없는 자들입니다. 아마도 약속은 놈들이 먼저 파기하려 했을 겁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혹시 놈들이 다시 총단을 노릴 거라는 뜻입니까?”
“네. 하지만 지옥혈교가 아니라 지옥맹 놈들이 움직일 겁니다. 이번에 괴수 말벌들이 나타난 것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
백소운이 안색을 굳혔다.
‘어쩌면 모든 게 나 때문인지도 모른다. 놈들이 나와 정면으로 맞서는 것을 피하고자 양동작전을 벌이기로 했다면, 나 역시 운신의 폭이 좁아지겠구나.’
곽직이 말했다.
“지옥혈교는 마교를 치고, 지옥맹은 본맹 총단을 공략하고, 그런 겁니까?”
“네. 지금으로서는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단 대청으로 가서 다른 분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지요. 지금 시급한 것은 말벌왕을 비롯한 괴수 말벌들을 박멸시키는 것이니까요.”
“네. 언아. 너는 한숨 자두어라.”
“네. 아버님.”
곽어언이 얼굴을 상기시키며 다시 자리에 누웠다.
그러면서 백소운을 뚫어지라 봤다.
‘인연이 있다면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곽어언이 아쉬워하며 부친과 함께 방을 나가는 백소운의 등을 바라봤다.
* * *
백소운과 곽직 두 사람이 대청에 도착하자, 왕장을 비롯한 삼백여 무사들이 반겼다.
“어서 오십시오. 곽 소저는 깨어났습니까?”
왕장의 물음에 곽직이 기쁜 표정을 지었다.
“네. 여기 계신 무명서생님 덕분에······.”
“정말 놀라운 의술입니다. 한데 무명서생님은 본래 무림인이시라고 들었습니다. 무명문이라는 문파의 문주라고 들었는데 사실입니까?”
“네. 이번에 강호에 처음 나와 다들 우리 무명문에 대해 잘 모르실 겁니다. 다행히 제가 의술을 조금 익혀 곽 소저를 치료할 수 있었습니다.”
“겸손의 말씀입니다. 무명서생님이 오시지 않았다면 제 딸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겁니다.”
곽직의 말에 군웅들 대부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는 백소운에 대한 호감의 뜻이기도 했다.
다만 백소운이 생소한 문파의 문주라는 사실을 알게 된 그들은 한편으로는 실망스러운 표정도 지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신의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고수가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괴수 말벌을 제거할 수 있는 절대고수가 절실했다.
백소운은 그런 분위기에 개의치 않고 진하림, 유덕 등을 소개해줬다.
“이들 네 분은 우리 무명문의 사대호법들입니다. 부족한 저를 위해 고생이 많지요.”
“네. 다들 비범하신 분들 같습니다.”
왕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무림맹 장로 출신으로 그 명성은 총지부장 곽직보다 높았다.
게다가 지금 곽직은 패장이었다.
따라서 모임의 주도권은 자연스레 왕장이 맡게 되었다.
“그래 어떻게 하기로 했소? 놈들이 정말 이곳에도 올 것 같소?”
곽직의 물음에 왕장이 고개를 흔들었다.
“잘 모르겠소이다. 하지만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오늘 밤은 모두 여기서 함께 있기로 했소.”
“잘한 결정이외다. 하지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오. 괴수 말벌들은 도저히 막아내기 힘든 괴물이기 때문이오.”
곽직의 말에 군웅 중 누군가 질문을 던졌다.
“총지부장께서는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까? 그 괴수 말벌을 몇 마리 정도나 퇴치했습니까?”
“그 말씀을 드리자니 부끄럽기 짝이 없소이다. 수하를 모두 잃고 나 혼자만 살아나온 셈이 되었으니 말이오. 하지만 제 딸을 살리기 위해 염치 불고하고 도주했소이다. 물론 말벌왕 그놈이 일부러 나를 쫓지 않는 느낌도 있었소이다. 아, 그리고 괴수 말벌들은 하나같이 도검불침이라 한 마리도 제거하지 못했소이다.”
“말벌왕 그놈이 무슨 말을 했습니까?”
“지옥혈교 무사들의 진군을 방해하려는 놈들은 모조리 죽인다고 하더이다.”
이미 왕장에게 한번 이야기했던 내용이었다. 하지만 새로 온 고수들도 있어 곽직이 어젯밤에 있었던 일을 상세히 설명해줬다.
그 내용의 골자는 괴수 말벌 떼의 공격을 받아 천여 명의 지부 무사들이 제대로 반항도 못 하고 몰살당했다는 내용이었다.
“말벌을 한 마리라도 제거한 무사들이 없었다는 말입니까?”
“부끄럽지만 그렇소이다. 천무공자가 오시지 않는다면 놈들을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리라 생각하오.”
“으음, 그럼 지옥혈교 놈들이 우리 섬서성을 지나가는 것을 그대로 두고 봐야 한단 말씀입니까?”
“아무래도 상황이 그런 쪽으로 흘러가는 것 같소. 하지만 사실 우리 총지부가 놈들을 공격할 계획을 세웠던 것은 양민들이 학살당했기 때문이었소.”
곽직의 말에 백소운이 눈을 빛냈다.
그로서는 처음 듣는 말이었다.
곽직이 말했다.
“놈들이 낙양을 떠나 섬서성으로 넘어오면서 지나는 마을마다 그 횡포가 너무 심했소이다. 마치 마적 떼처럼 마을을 공격해 식량을 탈취하고 부녀자를 욕보였소이다. 반항하는 남자들을 모두 죽였음은 물론이오. 십만이나 되는 병력을 지니고 있어 그 진군 속도가 느린 것이 더욱 화근이 되었소. 우리는 그 피해 사실을 듣고 곧장 공격 계획을 세웠던 것이오. 중과부적이긴 하나 놈들의 시선을 돌려 양민들의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계산이었소.”
“총단에는 그 사실을 보고했습니까?”
“물론이오. 원래는 총단 지휘부와 지옥혈교 놈들과의 합의에 따라 조용히 있으려고 했소이다. 놈들이 공언대로 마교와 충돌하면 우리로서는 어부지리를 얻게 되니까. 하지만 양민들이 학살당하는 것을 어찌 두고만 볼 수 있겠소? 한데 답변이 오기 전에 어젯밤 공격을 받았던 것이오. 오늘 아침 다시 추가 보고를 보냈으니, 아마 얼마 후 종합적인 지휘서신이 날아올 것이오.”
곽직이 울분을 터뜨리듯 말했다.
그러자 처음에는 그가 독단으로 사건을 키운 것으로 여겼던 사람들의 생각이 달라졌다.
왕장이 말했다.
“양민들의 피해는 본인도 들은 바 있소. 우리 서안 무림은 섬서성의 중심으로 양민들이 학살당하는 것을 묵과할 수 없소이다. 설사 총단에서 허락하지 않는다고 해도 놈들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오.”
와아아아.
짝짝짝.
왕장의 말에 군웅들이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삼백여 명에 불과하지만 이들은 서안 일대 무림인 중 대표 고수들이었다.
총지부가 무너졌다는 소식을 들은 그들은 자연스럽게 결집하였다.
이미 어느 정도 자치를 보장받고 있는 그들로서는 불가피할 경우에는 총단의 지시를 받지 않을 수도 있었다.
“총지부장님께서는 확실히 입장을 밝혀주십시오. 이번에 목숨을 잃은 일천 무사들의 복수를 위해서라도 지옥혈교 놈들을 공격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어젯밤 공격은 지옥맹 괴수 말벌떼의 짓이지만, 필시 지옥혈교 쪽의 지원 요청을 받았을 겁니다.”
“일단 총단에서 올 지휘서신을 본 후 결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마음은 여러분과 같지만, 수하를 모두 잃은 죄인이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곽직이 안색을 굳혔다.
왕장이 말했다.
“총지부장님께서는 우리를 막지만 않으면 되오. 모든 책임은 본인이 질 것이오.”
“알겠소이다. 하지만 지옥혈교 놈들을 치기 전에 괴수 말벌의 공격부터 막아낼 준비를 해야 할 것이오.”
“알고 있소이다.”
왕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화평장원 총관 동작(東綽)에게 물었다.
“현재 지옥혈교 대군이 어디까지 와 있나?”
“내일 아침이면 서안 동쪽에 있는 여산(驪山)에 도착할 것 같습니다. 이미 선발대가 여산에 도착했다고 하니까요.”
“아, 그랬지? 마을 양민들의 피해는 어느 정도인가?”
“네. 놈들에게 죽은 사람과 욕을 보인 부녀자만 벌써 천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놈들의 본진이 여산에 도착하면 일대 마을이 쑥대밭이 될 겁니다.”
“죽일 놈들!”
“어서 여산으로 갑시다! 서안에 있는 정파 무림인들을 모두 모으면 족히 만 명이 넘을 것이오.”
군웅들이 다소 흥분하며 소리쳤다.
하지만 신중을 기하자는 목소리도 있었다.
서안의 대표적 정파인 정의궁(正義宮)의 궁주 정의노인(正義老人)이 말했다.
“놈들은 무려 십만이오. 일 할도 안 되는 병력으로 어떻게 놈들을 대적하겠소? 게다가 지금이라도 괴수 말벌 떼가 다시 나타나면 우리는 몰살당할 것이오. 현실을 직시하고 총단의 방침대로 놈들에게 길을 내어 줍시다. 양민들의 피해는 안타깝지만, 혈기만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오. 천무공자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면 또 모르지만, 우리 힘으로는 불가능한 계획이외다.”
“정의 궁주! 그 무슨 나약한 소리요? 놈들이 우리 서안을 그냥 지나칠 것 같소? 이대로 있다가는 큰 화를 당할 것이오.”
왕장이 소리쳤다.
그 바람에 정의노인도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군웅들 사이에 이미 생겨난 불안감은 어쩔 수 없었다.
바로 그때였다.
무사 한 명이 급히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무림맹 지부 무사로 어젯밤 외곽 경계를 나가 있어 화를 면한 자였다.
지금은 총단과의 연락 임무를 맡고 있었다.
“총군사님으로부터 회신이 왔습니다.”
무사가 전서구에 달려 있었던 서찰을 곽직에게 건넸다.
곽직이 급히 그 내용을 읽어보고 안색을 굳혔다.
“무슨 내용이오? 놈들과 싸워도 된다는 허락이 떨어졌소?”
“그게······ 양민들의 피해는 어쩔 수 없다며, 지옥혈교 놈들을 막지 말라는 명령이외다.”
“총지부 무사들이 몰살당한 사실은 알렸소?”
“그렇소이다. 지옥맹 괴수들은 아예 우리와 상대가 안 되는 놈들이니 무조건 피하라는 명이 떨어졌소이다. 총단에서는 우리가 지옥혈교 놈들을 막지 않으면 괴수들이 더는 공격을 가하지 않을 거로 판단한 것 같소이다.”
“빌어먹을!”
왕장이 흥분하며 소리쳤다.
“맹주께서 아직 무공을 회복하지 못해 총군사가 독자적으로 내린 결정 같소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관을 대신해 양민들을 보호하는 임무를 수행해 왔소이다. 우리가 침묵하면 여산 일대 양민들의 피해가 더욱 커질 것이오. 그리고 급기야 우리 서안에 사는 양민들도 당할 게 분명하오. 지금부터 총단의 명을 무시하고 독자적으로 행동을 하기로 합시다. 장수는 전장의 사정에 따라 주군의 명을 듣지 않을 수도 있는 법이니, 맹주님도 용서하실 것이오.”
“좋소이다!”
“찬성이오!”
군웅들이 일제히 함성과 함께 지지 의사를 밝혔다.
동작이 말했다.
“장주님. 우리와 뜻을 함께하는 영웅들을 모으기 위해 새로운 단체를 만드는 게 어떻겠습니까? 옥석을 가릴 수 있을 겁니다.”
“좋네. 뭐라 하면 좋겠나?”
“장원 이름을 딴 화평회(和平會)가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