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136
화평회의 창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이루어졌다.
향후 무림맹 총단의 추궁이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찬동했다.
특히 싸움을 반대하던 정의노인이 순순히 찬성한 것을 의외였다.
하지만 그의 뜻은 잠시 후 드러났다.
화평회의 회주를 선출하려 하자, 그가 나선 것이었다.
당연히 화평장주 왕장을 추대하려 했던 동작이 흠칫한 것은 물론이었다.
“정의궁주께서 회주가 되고 싶어 하시는군요. 하지만 오늘 모임의 주최자이신 우리 장주님이 더 회주에 어울릴 거 같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옳소!”
“왕 대협이 적합하오!”
짝짝짝.
박수가 요란하게 쏟아졌다.
하지만 반발도 못지않았다.
평소 정의궁과 친분이 두터운 사람들이 일제히 정의노인을 추대한 것이다.
“정의궁주께서 더 적합하오.”
“정의궁주님을 추대하오.”
의견이 갈리자 결국 채택된 것은 무공 대결이었다.
“좋습니다. 관례에 따라 무공을 겨뤄 이긴 분이 회주를 맡기로 하지요. 두 분 말고 또 계십니까?”
동작이 혹시나 하는 생각에 회주 자리를 원하는 다른 사람이 있는지 물어봤다.
이번 한 번의 대결로 마무리 짓기 위해서였다.
한데 의외의 상황이 발생했다.
나서지 않을 것으로 짐작되었던 곽직이 도전한 것이다.
“본인이 나서는 것은 향후 맹 지휘부의 추궁을 막고 소통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요. 우리 화평회가 적들을 퇴치하기 위한 임시적이고 순수한 모임이라는 것을 설득할 수 있는 적임자는 오직 본인뿐이라고 생각하오.”
짝짝짝.
박수가 다시 쏟아졌다.
맹의 지시를 어기게 되어 은근히 걱정하던 사람들이 지지 의사를 보낸 것이었다.
그때 진하림이 소리쳤다.
“우리 문주님도 추대해요. 문주님의 무공은 천하제일이니 우리 모두의 대표가 되기에 충분할 거예요. 이는 많은 분의 목숨이 달린 일이니, 문주께서도 반대하지 않으실 거예요. 그렇지 않나요? 문주님.”
“으음······.”
당황한 백소운이 침음을 내었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바로 거부하지 않은 것은 얼마 전 맹의 지휘부 의견과 달라 계획이 어그러졌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어부지리 전략에 밀려 지옥혈교를 바로 소탕하려는 그의 계획이 관철되지 못했던 바로 그 일이었다.
사실 그 때문에 자리의 중요함을 느끼고 있던 요즘이었다.
백소운이 주저하자, 이번에는 유덕, 정기, 막총 세 사람이 일제히 말했다.
“문주님을 추천합니다.”
“천하제일 무공을 지니신 문주님이 회주가 되어야 놈들을 물리칠 수 있을 겁니다.”
“무공이 강한 사람이 회주가 되어야 하지 않겠소?”
유덕 등이 신이 난 듯 소리쳤다.
백소운은 침묵으로 그들의 추대를 승인했다.
동작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은 것은 물론이었다.
백소운의 의술이 뛰어난 것은 이미 입증이 되었다. 하지만 의술이 뛰어난 사람이 무공까지 높은 것은 극히 드물었다.
물론 신의 대부분이 독술에도 뛰어나긴 하지만, 한계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백소운의 참여를 막을 명분은 아무에게도 없었다.
원래대로라면 신원 불확실을 이유로 반대할 수도 있겠지만, 곽어언을 치료해준 일로 그마저 어려웠다.
곽직이 껄껄 웃었다.
“하하하. 무명서생님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환영하는 바입니다. 부디 문도들의 말씀대로 무공이 뛰어나 회주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물론 일부러 봐 드리는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으음, 좋습니다. 더 안 계시면 이들 네 분이 무공을 겨뤄 회주를 정하기로 하겠습니다. 더 이상 안 계십니까?”
동작의 물음에 나서는 사람이 없자, 회주 후보는 네 명으로 확정되었다.
당연히 두 명씩 대결을 벌여 결승에 오를 사람을 뽑아야 했다.
“첫 번째 대결은 우리 장주님과 정의궁주님 두 분이 벌이도록 하겠습니다.”
동작의 말에 왕장과 정의노인이 앞으로 나왔다.
대청 중안에는 공터가 이미 마련되어 있었다.
내심 합의추대를 바랐던 왕장이 담담히 말했다.
“대적을 앞두고 있으니 대결을 벌이되 다치는 일은 피해야 할 듯하오. 궁주께서는 좋은 의견이 있으시오?”
“으음, 왕 장주께서 좋다면 장력 대결을 벌여 뒤로 더 밀려나는 사람이 패배한 것으로 하는 게 어떻겠소?”
정의폭풍장(正義暴風掌)이란 장법으로 유명한 정의노인의 제의에 왕장이 곧바로 찬동했다.
“좋은 의견이오. 받아들이겠소.”
왕장이 두 발을 조금 벌리며 양손을 수평으로 세웠다.
그가 익힌 무공 중에 화평신장(和平神掌)이라는 장법이 있었다. 한데 얼마 전 그 무공을 대성한 바 있었다.
이는 아직 아무도 모르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 때문에 정의노인이 장력 대결을 제의하자 지체 없이 응했던 것이다.
하지만 정의노인은 서안 무림을 대표하는 고수 중 한 명이었다.
아직 서로 무공을 겨뤄보지 못했기에 어느 쪽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시작하십시오!”
동작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정의노인과 왕장이 일제히 장풍을 날렸다.
쏴아아아.
거센 바람이 일어나며 파공성이 대청 안에 가득했다.
선의의 대결.
하지만 개인적인 명예가 달려 두 사람 모두 최선을 다한 것은 물론이었다.
꽝.
대청 전체가 뒤흔들릴 정도의 폭음이 일며 두 사람의 가벼운 신음이 터져 나왔다.
깜짝 놀란 사람들이 쳐다보니, 정의노인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비틀거리고 있었다.
반면 왕장은 그 자리에서 미동도 없었다.
안색도 평온한 것이 별다른 충격을 받은 것 같지도 않았다.
동작이 내심 무척 기뻐하며 소리쳤다.
“장주님의 승리입니다.”
두 번째 대결은 물론 백소운과 곽직이었다.
곽직이 말했다.
“우리 역시 장력으로 승부를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동의하십니까?”
“네.”
백소운이 수락하자, 동작이 다시 소리쳤다.
“시작하십시오!”
쏴아아.
곽직과 백소운이 장풍을 날렸다.
이전 대결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큰 폭음도 없이 곽직이 한 걸음 물러났던 것이다.
정확히 말해서 곽직이 날린 장세가 어느 순간 깨끗이 사라졌다. 동시에 어떤 반탄력에 의해 물러선 것이었다.
백소운이 날린 장력 때문이었다.
그 장력은 마치 봄바람처럼 부드러웠다.
그 때문인지 곽직은 내상을 전혀 입지 않았다.
다만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한 걸음 밀려났을 뿐이었다.
곽직이 안색을 굳혔다.
그로서는 양보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백소운이 비록 자신의 딸을 살려주었기는 하나, 이번 일과는 무관했다.
자신이 회주가 되어야만 향후 맹과 긴밀한 협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비록 이번은 명을 어긴 셈이 되지만 목표는 같기 때문에 앞날을 내다본 결단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그의 패배였다.
‘무형지기에 의해 당한 것 같구나. 보통 실력이 아니다. 나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고수다. 그렇다면······.’
곽양이 재빨리 패배를 시인했다.
“제가 졌습니다.”
“아닙니다.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백소운이 겸양했다.
어리둥절해 하며 판정을 내리지 않았던 동작이 입을 열었다.
“무명서생의 승리입니다. 일각 후 최종 대결을 벌이도록 하겠습니다. 무명서생님. 휴식 시간이 더 필요합니까?”
“아닙니다.”
백소운이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
진하림, 유덕 등 사대호법이 그에게 다가왔다.
“오라버니. 괜찮으세요?”
“물론이다.”
“네. 믿어요.”
진하림이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는 그녀뿐만 아니라 유덕, 정기, 막총 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백소운의 무공 실력으로 왕장을 꺾는 것은 너무 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백소운의 생각은 달랐다.
‘이곳 서안 무림과 아무런 연고도 없는 내가 회주가 되는 게 바람직한지 모르겠구나. 승리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지.’
백소운이 주저했지만, 그렇다고 지금 양보를 할 상황 역시 아니었다.
대표가 되어 많은 이의 목숨을 살리겠다는 명분이 다시 생각난 것이다.
‘그래, 일단 나선 것이니 계속 밀고 나가자.’
백소운이 결단을 내리고 앞으로 나왔다.
벌써 일각이 지나 있었다.
왕장 역시 비무 공간으로 나왔다.
“귀하의 무공이 탁월한 것 같소이다. 내가 진 것으로 하겠소.”
왕장의 말에 군웅들이 웅성댔다.
싸우지도 않고 회주 자리를 내주려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왕장은 경험이 많은 고수였다.
백소운과 곽직의 대결을 보고 자신이 적수가 되지 못함을 단번에 깨달은 것이다.
그 때문에 싸워서 패배를 당하느니 미리 양보하는 것이 명예를 위해서라도 좋겠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아닙니다. 부족한 쪽은 저입니다. 장주께서 회주를 맡아주십시오.”
“아니외다. 결심이 섰소. 기권하겠소.”
왕장이 단호하게 말했다.
백소운도 어쩔 수 없는 듯 말을 하지 않았다.
동작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장주께서 양보를 하셨습니다. 무명서생님께서 회주가 되셨음을 선포합니다.”
와아아아.
짝짝짝.
군웅들이 함성과 함께 박수를 보냈다.
백소운이 곽직을 쉽게 이긴 것만으로 그 실력을 입증한 셈이라 수긍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다만 나름 서안성의 최고수라 할 수 있는 왕장과의 대결이 무산된 것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는 사람도 많았다.
왕장이 말했다.
“이제 우리는 모두 회주님의 명에 따를 겁니다.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네. 저에게 과분한 자리이나 위급한 상황이니만큼 사태가 해결될 때까지 임시로 회주의 직책을 수행하겠습니다. 먼저 왕 장주님을 본회의 부회주로 임명하도록 하겠습니다. 맡아주시겠습니까?”
“명을 받들겠습니다.”
왕장이 내심 기대하던 바라 흔쾌히 수락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중요한 결정 외에 다른 것들은 부회주님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정의궁주님과 곽직 대협 두 분을 본회의 장로로 모실까 하는데 수락해주시겠습니까?”
“감사합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정의노인과 곽직이 흔쾌히 수락했다.
백소운이 다시 말했다.
“먼저 분명히 밝혀둘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화평회라는 단체를 만든 것은 오직 지옥혈교와 지옥맹 등 무림의 평화를 어지럽히는 세력들을 척결하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맹의 총단의 지시를 고의로 따르지 않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총단에서 전투를 막은 것 또한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전장에서의 최종 결정 권한은 장수에게 있을 경우도 있는 법입니다. 따라서 곧바로 총단에 우리가 싸움에 임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적은 서찰을 보내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할 것입니다. 그 부분에 있어 불안해하지 않아도 될 것이니, 모두 목전의 싸움에만 집중해주셨으면 합니다. 아시겠습니까?”
와아아.
짝짝짝.
군웅들이 함성을 질렀다.
백소운이 무명검을 뽑아 대청 한 구석에 놓여 있는 거대한 청동향로를 향해 내리쳤다.
번쩍하는 검광과 함께 십장 거리에 있던 향로가 그대로 가루로 변해버렸다.
검기로 청동향로를 둘로 쪼개는 것도 힘든데, 아예 가루로 만든 것이었다.
군웅들의 사기를 돋우기 위해 의도적으로 무력을 과시한 것으로, 그 효과는 대단했다.
조금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함성이 쏟아졌다.
와아아아.
이를 본 왕장 역시 가슴을 쓸어내렸다.
‘역시 내 판단이 맞았다. 가히 천무공자에 필적하는 무공을 지닌 분이다.’
바로 그때였다.
백소운이 뭔가를 느낀 듯 소리쳤다.
“괴수 말벌 떼가 온 것 같습니다. 모두 전투태세를 갖춰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