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140
천마사.
오후 무렵의 천마사는 지금 천하 각지에서 몰려든 무림인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이고 있었다.
천마대회 예선이 내일 정오 이곳에서 열린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너도나도 미리 답사를 온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관문 돌파는 그 관문의 성격과 외양 등을 미리 알고 가는 게 매우 중요했다.
이러한 관문돌파 시험은 참가자들이 많을 때는 필수적이었다.
물론 대다수의 참가자는 일차 관문에서 탈락하게 마련이었다.
관문이 총 몇 개나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소문에 의하면 세 개의 관문이 유력했다.
삼차 관문까지 통과하는 사람끼리 비무를 벌여 우승자, 즉 일반 도전자 한 명을 뽑게 되는 것이다.
물론 삼차 관문을 통과한 사람이 너무 많을 때는 다시 관문을 하나 더 만들 수도 있었다.
그 때문에 공표문에 관문의 수를 정해두지 않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백소운이 천마사에 도착했을 때는 늦은 오후 무렵이었다.
천마객잔과 천마사의 거리가 제법 되어 반나절은 걸렸다.
다행히 천마사는 천마산의 어귀에 있어 많이 올라가지 않아도 되었다.
‘천마사 위쪽이 모두 금역이구나. 계곡 쪽은 독무 때문에 접근이 아예 불가능하고······.’
천마산 일대를 한번 둘러본 백소운이 천마사 안으로 들어갔다.
사전 답사를 위해 온 무림인들이 많아 그 틈에 끼어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
하기야 오늘 온 무림인들은 아예 천마사 일대에서 밤을 새울 가능성도 높았다.
아니면 천마산 아래에 있는 객잔들에 투숙하며 예선에 참여할 준비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백소운이 오늘 이곳에 온 목적은 임 소저와의 연락을 위해서였다.
당연히 예선이 펼쳐질 광장과는 길이 달랐다.
하지만 관문이 설치된 광장이 천마사 입구 바로 안에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곳을 보게 되었다.
천마사 경내로 들어가는 길의 왼편에 있는 거대한 광장은 절의 일부이긴 했으나 독립된 곳이었다.
수만 평에 달하는 그곳은 천마광장(天魔廣場)이라 불리는 곳으로, 평소에는 천마사 스님들이 관리를 해왔다.
하지만 이번에 마교에서 예선전을 이곳 천마광장에서 치르기로 하면서 관리 권한 역시 마교 쪽으로 넘어간 상태였다.
그 때문인지 광장 쪽으로 가는 길에는 천마사 스님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여기까지 왔으니 시험장을 한번 둘러보고 가는 게 좋을 것 같구나. 어차피 내일 나도 이곳으로 올 가능성이 높으니까.’
백소운이 발길을 돌려 천마광장 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의 계획은 실행되지 못했다.
얼마 가지 못해 마교 무사들에 의해 제지를 당했기 때문이었다.
이미 광장으로 들어가는 길목의 중간에는 많은 무림인이 더 이상 진입하지 못하고 모여 있었다.
특히 광장의 입구에는 검은 천으로 만든 대형 가림막이 있었다.
“보안과 공평을 위해 더 이상의 진입은 불가하오. 그러니 어서들 돌아가시오. 시험장 개방은 내일 정오에 있을 것이오. 참고로 내일은 종일 일차 관문만 가동될 것이오. 일차 관문은 딱 하루만 가동되니 그렇게 알고 기회를 놓치는 일이 없기를 바라오.”
철탑 같은 사내의 말에 참가자들이 발길을 돌렸다.
하지만 아직 거처를 마련하지 못한 사람은 당황한 표정들이었다.
“대기 막사도 없소?”
“천마사 안으로 들어가면 참가자들을 위한 임시 막사가 쳐져 있을 것이오. 천 명 정도 수용이 가능하다고 하니 거처를 마련하지 못한 분들은 그쪽으로 가보시오.”
“하하하. 잘되었군.”
참가자들이 기뻐하며 대웅전이 있는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백소운도 그들과 합류한 것은 물론이었다.
“서두르는 것이 좋을 것이오. 내일 예선에 모일 사람들이 최소한 만 명은 넘을 것이니까.”
예의 철탑 사내의 말에 참가자들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백소운도 속도를 높여 절 안쪽 깊숙이 들어갔다.
스님들이 보이자, 그중 한 사람에게 급히 물었다.
“실례하겠습니다. 스님. 한 가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아미타불. 임시 숙소라면 대웅전 뒤에 막사들이 있습니다. 원래 계획보다 두 배 이상 쳐두었으니, 그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될 겁니다.”
중년승의 말은 이천 명까지 수용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백소운이 미소를 지었다.
“그렇군요.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저는 스님 한 분을 찾아뵈러 왔습니다. 보덕(寶德) 스님이란 분이 혹시 이 절에 계십니까?”
“아미타불. 그분은 얼마 전 입적하였습니다.”
“아!”
백소운이 탄식했다.
임소혜와의 연결 고리가 끊어졌기 때문이었다.
중년승이 안색을 조금 굳히며 물었다.
“보덕 스님은 어떤 이유로 찾으시는 겁니까?”
“일전에 은혜를 입은 적이 있어 한번 뵈러 온 것입니다. 어떻게 돌아가신 겁니까?”
“아미타불. 이런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보덕 스님께서는 암습을 당하셨습니다. 범인은 알려지지 않았고, 모두 쉬쉬하는 상황이지요. 벌써 보름 전의 일이긴 합니다. 시주께서도 더 이상 그분을 언급하는 것을 삼가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스님께서 반역 도당과 연결되어 있었다는 소문이 있으니까요.”
“아······ 어찌 그런 일이······.”
백소운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도마왕 측에서 낌새를 알아차리고 미리 손을 썼구나. 나 때문은 아닌 것 같고, 그 보덕 스님이란 분이 임 소저 측과 교류가 깊어 의심을 산 게 틀림없다. 그렇다면 따로 다른 표시를 남기는 것도 어려웠을 것 같구나. 일단 내 계획대로 밀고 가면서 임 소저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군. 잡히지만 않는다면 어떤 식으로든 모습을 드러낼 테니까.’
백소운이 안색을 풀고 품속에서 전표를 꺼냈다.
“얼마 안 되지만 절의 살림에 보태 쓰도록 하십시오. 사실 제가 온 목적은 시주를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렇게나 많이······.”
중년승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백소운이 건넨 것은 은자 백 냥짜리 전표였다.
“가능하다면 보덕 스님의 넋을 기리는 데 사용되었으면 합니다.”
“그러겠습니다. 아미타불. 살펴 가십시오.”
“네. 그럼.”
백소운은 고개를 숙인 후 천마사에서 내려왔다.
그런 후 곧바로 인근 객잔을 찾았다.
아무래도 예선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천마객잔 보다는 산 아래 객잔이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림이와 아저씨들에게는 사람을 보내 내가 이곳에 머문다는 소식을 전하는 게 낫겠군. 아마 예선을 통과하고 일등을 하게 되면 마교 총단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니, 그때 합류하면 될 것이다.’
* * *
백소운이 방을 잡은 객잔은 천지객잔(天地客棧)이란 곳으로, 천마사에서 반시진도 안 되는 거리에 있었다.
물론 방을 구할 때 빈방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이번에도 은자의 위력이 컸다.
은자 스무 냥을 내고 대회가 끝날 때까지 큰 방 하나를 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방은 객잔 주인의 가족이 쓰던 곳이었다. 혹시 진하림, 유덕 등이 직접 이곳으로 올 수도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을 보내긴 했으나 어쩐지 직접 이곳으로 올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뭐 상관은 없겠지. 사실 그곳에 있다고 해서 중요한 정보를 얻기는 힘들 것이다.’
이 층 객방에서 운기조식을 통해 기를 정리한 백소운이 술을 한잔하기 위해 일 층으로 내려왔다.
예상대로 객잔 안은 만원이었다.
빈방이 없자 아예 자리에 앉아 술이나 음식을 먹으며 밤을 새우려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게다가 내일이 바로 예선 첫날이라 그와 관련한 이야기로 저잣거리를 방불케 했다.
백소운이 자리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자 점소이가 다가왔다.
“저기 빈자리가 하나 있습니다. 합석하시지요.”
“그렇게 해야겠군.”
백소운이 미소를 지으며 점소이에게 은자 한 냥을 줬다.
점소이의 입이 찢어진 것은 물론이었다.
“감사드립니다. 아까도 주셨는데······.”
“내가 말했던 사람들이 오면 꼭 내게 데려와야 하네. 알겠나?”
“여부가 있겠습니까? 귀혈문(鬼血門) 사대호법이라고 하셨지요? 귀혈문주를 찾는 분이 있으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하하하. 알겠네. 믿고 있겠네. 내가 누구라고?”
“귀혈문주이신 귀혈공자(鬼血公子)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기억력이 좋군.”
백소운이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구석진 탁자로 다가갔다.
그 탁자에는 세 사람이 앉아 있었는데, 모두 흑의를 입고 있었다.
기도 역시 매우 강해 아무래도 내일 예선에 참여하는 무림인 같았다.
한데 가까이서 보니 그들 중 한 사람은 여인이었다.
십칠 팔 세 정도 되었을까.
냉기가 흐르고 있었지만 대단한 미색이 아닐 수 없었다.
나머지 두 사람은 중년 남자와 젊은 남자로 각각 사십 대와 이십 대로 보였다.
그들은 점소이가 합석을 부탁하자 고개만 끄덕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실례하겠소이다.”
백소운이 담담하게 말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가 이번에 역용한 얼굴은 삼십 대 초반 사내의 것으로 험상궂었다.
흑의소녀는 백소운을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다만 세 사람 모두 입술을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으로 봐서 전음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 같았다.
백소운 역시 자리에 앉은 후 그들에게 눈길을 주지 않고 혼자서 자작을 했다.
죽엽청 한 병을 천천히 마시며 앞으로의 일에 대해 생각했다.
그때였다.
객잔 문이 열리며 마교 무사 서른 명 정도가 들어왔다.
천마객잔과 달리 이곳 천지객잔은 마교의 세력권 안이었다.
불시검문이 언제든 있을 수 있는 장소였다.
그 때문에 일부러 반나절 거리인 천마객잔에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특히 단순히 구경만 온 사람들은 더욱 그랬다.
하지만 천마대회 당일은 달랐다.
오히려 그날은 새 교주를 선출하는 날이라 축제 분위기 조성을 위해 통제가 덜할 가능성이 높았다.
“저놈들입니다.”
마교 무사들 사이에 있던 대한 한 명이 한 곳을 가리켰다.
한데 그곳은 바로 백소운이 앉아 있던 탁자가 아닌가.
물론 그가 가리킨 사람들은 기존의 자리 주인이었던 이남일녀였다.
하지만 운이 없어서인지 백소운도 함께 지목되고 말았다.
차차차착.
검을 뽑아 든 마교 무사들이 빠르게 다가왔다. 백소운을 비롯해 같은 탁자에 앉아 있던 사람들을 포위했다.
“왜 그러는 것이오?”
흑의소녀와 함께 있던 중년인이 담담히 물었다.
“네놈들이 반역도당과 연락을 취하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반역도당이라니 어딜 말하는 것이오? 혹시 돌아가신 교주님을 추모하는 세력을 뜻하는 것이오?”
“그렇다. 복마회(復魔會) 놈들이 아니냐?”
“복마회가 어찌 반역도당이 된단 말이오? 교주님이 돌아가신 후 차기 교주는 원래 소교주님께서 되셔야 하나, 안타깝게도 소교주께서는 이십이 년 전 태어나자마자 실종되셨소. 그래서 부득이 교주 대행을 교주님의 부인이신 천마대부인께서 맡아야 하거늘, 부교주인 도마왕은 그 자리를 빼앗고 전권을 휘두르고 있소.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성녀님과 천마대부인, 그리고 교주님의 제자 분들을 모조리 찾아내어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소. 도마왕 세력을 몰아내고 본교의 적통을 되찾기 위해 복마회란 단체를 만든 것이 과연 반역이란 말이오?”
중년인이 말을 하며 천천히 검을 뽑았다.
함께 있던 청년과 흑의소녀 역시 어느새 검을 뽑은 상태였다.
이는 자신들이 복마회 소속임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복마회 놈들이 틀림없구나. 아직 잔당들이 있다고 하더니 그게 사실이었구나. 뭐들 하느냐? 모조리 죽여라! 생포할 필요도 없다. 즉시 참살하라!”
마교 무사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흑의노인이 소리쳤다.
“존명!”
“장로님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마교 무사들의 목소리에 복마회 사람들이 흠칫했다.
마교 무사들의 말로는 흑의노인이 바로 마교 장로인 것 같지 않은가.
흑의노인이 눈을 빛냈다.
“성녀와 천마대부인은 어디에 있느냐? 어서 말해라. 사실대로 말하면 목숨은 살려주겠다. 보아하니 본교 지부 중 한 곳 무사들인 모양인데, 이미 대세가 기운지 오래다. 이제 며칠 후면 부교주께서 정식 교주가 되실 것이니, 이제라도 부교주께 충성을 맹세하면 출셋길이 보장될 것이다.”
“흥! 반역자는 바로 도마왕 그놈이다. 놈이 운공요상 중인 교주님을 암살한 것을 목격한 사람이 있다. 이번 대회에서 그 죄상이 낱낱이 밝혀질 것이니, 네놈들이야말로 조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헛소리하고 있군. 풍전등화와 같은 본교의 현 상황에서 복마회 네놈들이야말로 내부 분란을 조장하는 간자임을 모를 줄 아느냐? 어서 공격하라!”
흑의노인, 즉 마교 장로 하정(夏丁)의 명에 마교 무사들이 일제히 검을 찔러 들어갔다.
슈우욱. 슈욱.
무사들이 노리는 사람은 복마회 사람들만이 아니었다.
백소운에게도 검들이 날아들었다.
그때였다.
흑의소녀가 앞으로 나오며 백소운의 어깨를 잡아 던졌다. 순간 그의 신형이 옆으로 빠르게 날아가며 공격 범위에서 벗어났다.
“으음······.”
비틀거리며 일어난 백소운이 싸움의 경과를 살폈다.
차차차창.
요란한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마교 무사들의 비명이 잇달아 터져 나오고 있었다.
“으윽!”
“크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