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144
삼차 관문을 앞둔 점심 식사 시간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음식은 대회 주최 측에서 제공했다.
관전하러 온 군웅들에게도 술과 음식이 푸짐히 돌아갔다.
백소운은 유덕, 진하림 등 일행과 함께 식사하며 휴식을 취했다.
한편 그를 비롯해 이차 관문을 통과한 참가자들은 한곳에 모여 있었다. 그래도 일행 서너 명 정도는 함께 할 수 있었다.
이는 관리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벌써 서로 간의 견제가 시작된 것도 사실이었다.
이제 곧 삼차 관문을 통과하게 되면 그 통과자들끼리 내일 비무를 벌이게 되는 것이다.
진하림이 나직하게 말했다.
“오라버니. 그쪽에서도 이번 예선에 사람을 내보낼 가능성이 있다고 하셨잖아요? 왔을까요?”
“글쎄······.”
백소운이 옆에 있는 이차 합격자들을 둘러봤다.
그가 찾고 있는 사람은 바로 임소혜 일행이었다.
특히 적극적인 참가 의지를 드러낸 사자성이 있는지 천리안을 가동시킨 것이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사자성을 비롯하여 복마회 고수들은 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역용을 했겠지만, 천리안은 역용 전 본 모습을 볼 수 있어 착오가 있을 수 없었다.
“없는 것 같구나.”
백소운이 담담히 말했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어쩌면 진짜 마지막 순간에 소교주로 행세할 사람을 내보낼지도 모르겠구나.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이 바로 사자성이 될 수도 있겠군.’
백소운이 폐장원에서 봤던 사자성을 떠올렸다.
그는 자신의 장담대로 무공이 매우 높아져 있었다.
별다른 변수가 없다면 예선에서 수석을 차지할 수도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조금 전 이차 합격자들을 둘러본 결과 숨은 고수들이 상당히 많았다.
아무리 사자성이 무공이 급상승했다고 해도 수석은 어려울 것이라는 게 백소운의 판단이었다.
“그렇군요. 한데 삼차 관문의 내용은 무엇일까요? 아무래도 특별할 것 같은데······.”
“곧 알게 되겠지. 네 말대로 평범하지는 않을 것 같구나.”
백소운이 말을 한 바로 그때 북소리가 다시 울렸다.
둥둥둥.
“합격자들은 모두 모이시오.”
철탑객의 말에 백소운을 비롯한 스무 명의 합격자들이 관문 앞으로 갔다.
물론 이번에도 백소운이 맨 마지막이었다.
철탑객이 말했다.
“이번 삼차 관문은 환상진법(幻像陣法)을 통과하는 것이오. 이 관문을 통과하는 사람끼리 내일 비무를 벌여 일반 도전자를 뽑게 될 것이오. 자, 어서 순서대로 관문 안으로 들어가시오. 앞 사람이 들어가고 일각이 지난 후 바로 들어가면 될 것이오. 약간의 시차만 둬도 개별 진행이 되니, 그렇게 아시오. 다시 말해 참가자들끼리는 진 안에서 절대 만나지 않는다는 뜻이오. 질문이 있으면 하시오.”
“······.”
합격자들이 비장한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 관람석에서 한 사내가 물었다.
“이번 관문은 외부에서 볼 수 없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아쉽지만 여러분께서는 관문돌파에 성공해 나오는 사람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주십시오. 도착점은 저쪽입니다.”
철탑객이 북쪽 끝에 있는 문 하나를 가리켰다.
참가자들이 대기하고 있는 곳과는 백 장 정도의 거리였다.
그리고 그사이에는 다시 가림막이 있었다.
가림막 안에 환상진법이 펼쳐져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자, 이제 들어가시오! 일각의 시간이 지났다는 것은 우리가 말해줄 것이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이오.”
둥둥둥.
다시 북소리가 들리며 첫 번째 참가자가 관문 안으로 들어갔다.
관문 안쪽에는 붉은 안개가 가득 끼어 있었다.
스스슷.
안개가 첫 참가자를 집어삼켰다.
하지만 그 안에서 어떤 광경이 펼쳐질지는 아무도 몰랐다.
다만 일각의 시간이 지날 때마다 참가자 한 명씩 안으로 들어갈 뿐이었다.
“이제 마지막 참가자 귀혈공자 차례요. 어서 들어가시오.”
어느새 백소운의 차례가 되자, 그는 말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짝짝짝.
군웅들의 박수 소리가 요란하게 터져 나왔다.
마지막 참가자라서 그런지 그 소리가 가장 컸다.
백소운은 동요하지 않고 계속 걸어갔다. 얼마 후 그 역시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 * *
백소운이 마지막으로 들어간 환상진법의 이름은 천마미혼진(天魔迷魂陣)이었다.
안개 속으로 들어가고 얼마 후 백소운은 자신이 동굴과 같은 폐쇄된 공간에 갇혀 있음을 깨달았다.
처음부터 진 깊숙이 들어오게 된 것이었다.
물론 애초에 진 안에 들어올 생각이 없었다면 파괴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일단 들어온 이상 출구가 있는 쪽으로 나아가 통과하는 것만이 유일한 정상 탈출 방법이었다.
‘재미있군.’
백소운이 미소를 지었다.
이전 같았으면 제법 긴장했을 수준이었다.
언제 어디서 공격이 가해올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두려워할 필요는 없었다.
환상진법의 특성상 공격에 당해 쓰러져도 목숨을 잃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방어 불능상태가 되면 자연스럽게 탈락자 신분으로 진 밖에 나갈 수 있게 되어 있을 것이었다.
물론 이는 지금처럼 관문 돌파용으로 진법을 사용했을 경우에 한해서였다.
진짜 적을 상대할 때는 진법을 살상용으로 전환할 수 있게 된다.
그때는 진 안의 공격이 모두 실제 공격이 되어 사망자가 속출할 가능성이 높았다.
“으음······ 조금 이상하군. 진 안의 기운이 너무 강하다. 예상보다 훨씬 통과하기 어렵게 만들어 놓았구나. 역시 도마왕 측에서 농간을 부린 것인가.”
백소운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처음에는 잘 몰랐으나 점점 기운이 강해졌다.
예선의 취지에 맞게 하려면 최소한 한 명이라도 합격자가 나와야 했다. 한데 이건 아예 모두 실패하도록 만들어 둔 느낌이 든 것이다.
‘치졸하군. 이런 식으로 위협 요소를 없애려 하다니. 어차피 이미 선정된 정식 도전자 일곱 명은 도마왕 세력으로 채워두었을 테니, 이번 관문에서 통과자가 아무도 나오지 않는다면 자연스레 도마왕이 교주가 되겠구나.’
백소운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그때였다.
슈우웅 하는 소리와 함께 긴 창 하나가 빠르게 백소운의 가슴을 향해 날아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백소운이 발을 딛고 있는 바닥이 갑자기 꺼져버렸다.
“으음······.”
백소운이 침음과 함께 신형을 날려 함정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그 바람에 날아오던 창은 코앞까지 도착했다.
백소운이 철판교의 수법으로 허리를 뒤로 크게 젖혀 창을 피했다.
무명검으로 쳐낼 수도 있었으나, 보통 창이 아님을 직감하고 피해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그 예감은 적중했다.
뒤쪽까지 날아간 창이 그대로 폭발하며 엄청난 폭음을 냈다.
콰콰쾅.
그게 끝이 아니었다.
폭발로 인해 생겨난 화염이 백소운이 있는 쪽으로 미친 듯이 쏟아져 왔다.
‘환상진이라서 그런지 그 위력이 무시무시하구나. 우습게 볼 게 아니다.’
백소운이 안색을 굳히며 금단비고에서 금단방패를 꺼내 뒤를 막았다.
꽝.
동굴이 뒤흔들리는 충격음이 다시 터져 나왔다.
백소운은 그 반탄력을 이용해 오히려 신형을 앞으로 날렸다.
그때였다.
앞 통로에서 거대한 바위 하나가 굴러오기 시작했다.
붉은 기운을 뿜어내는 그 바위는 역시 보통 바위가 아니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피할 공간도 없었다.
멈추게 하든지 파괴하든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백소운은 후자를 택했다.
쏴아아.
금단장법을 펼치자 거대한 장세가 뻗어 나가 붉은 바위를 강타했다.
콰콰콰쾅.
바위가 박살 나며 엄청난 파편이 생겨났다.
한데 그 파편들이 다시 가공할 속도로 백소운을 덮쳐오는 게 아닌가.
번쩍.
백소운이 무형금광을 펼쳐 그 파편들을 막아냈다.
파파파파.
콩 볶는 소리가 요란하게 나며 파편들이 먼지로 변했다.
동시에 뒤쪽에서 끈질기게 쫓아오던 화염도 한 줌 재로 변해버렸다.
“휴우. 보통 진이 아니다. 참가자들이 일차 공격에 모두 무너졌을 것 같구나. 더 이상의 공격이 필요 없었을 듯하다. 하지만 나 같은 경우는 끝까지 갈 수밖에 없지 않은가.”
백소운이 중얼거리며 앞으로 걸어갔다.
뭔가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깊이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그가 간과한 게 하나 있었다.
이 천마미혼진은 단순한 진법이 아니라 마교의 비전과도 같은 것이었다.
전설에 따르면 이 천마미혼진을 완벽하게 통과해 진을 파괴하는 정도까지 도달하면 그 보상이 주어진다고 했다.
백소운은 아직 그런 사실까지는 모르고 있었다.
‘계속 나아갈 수밖에······.’
백소운이 묵묵히 걸어갔다.
의외로 길은 끝이 없었다.
백 장 길이의 관문으로 생각했는데, 이미 그 몇 배의 길을 걸어왔던 것이다.
얼마나 나아갔을까.
이미 관문 돌파라는 생각조차 엷어져 갈 즈음 철문 하나가 나타났다.
은은한 붉은 빛을 뿜어내고 있는 그 철문은 한눈에 봐도 특수 문이었다.
백소운이 담담한 표정으로 그 문을 쳐다봤다.
‘이미 삼차 관문은 돌파한 셈이다. 내가 이곳까지 올지는 주최 측도 모르고 진법의 수위를 최고조로 해둔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진법에서 빠져나갈 방법도 역시 끝까지 가는 길밖에 없겠군.’
백소운이 무맹비고에서의 기억을 떠올리며 철문에 손을 댔다.
내공을 흘려보내자 곧바로 엄청난 반탄력이 느껴졌다.
‘쉽지 않겠군. 힘으로 열 수 있는 문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시도는 해봐야겠군.’
백소운이 뒤로 십여 장 물러났다.
쏴아아.
장력을 날리자 금빛 기운 한 가닥이 철문을 향해 날아갔다.
바로 금단장법이었다.
꽈앙.
폭음과 함께 철문이 흔들렸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백소운이 다시 다가가 문을 열려고 했으나, 여전히 엄청난 반탄력이 느껴졌다.
“할 수 없군.”
백소운이 무명검을 뽑았다.
반탄력의 근원이 마기임을 직감하고 이에 대항할 수 있는 보검을 꺼낸 것이다.
사실 무명검에 아직 파악하지 못한 거대한 기운이 담겨 있다는 것을 백소운은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운에는 항마력(降魔力)도 포함되어 있었다.
슈우욱.
무명검이 일직선으로 뻗어 나가며 철문을 찔렀다.
깡.
“으윽!”
백소운이 손목이 얼얼함을 느끼며 뒤로 물러났다.
‘아무래도 기관이 설치된 것 같구나. 열쇠가 따로 없다면 힘들 것 같다.’
백소운이 눈을 빛내며 철문을 자세히 살폈다.
하지만 어떤 구멍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몰라 철문 옆을 살펴봤다. 하지만 무맹비고와 달리 어떤 특이점도 없었다.
백소운이 다시 장풍을 여러 번 날렸으나 요지부동이었다.
군자검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되자 아무리 백소운이라도 초조해지는 게 사실이었다.
그때였다.
그의 귓전에 은은한 북소리가 들렸다.
둥둥둥.
마치 깊은 연못의 파장처럼 마음을 울리는 소리였다.
순간 철문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북소리에 반응을 보인 것이었다.
‘이 소리를 직접 낼 수 있다면 문을 열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백소운이 집중하며 북소리의 출처를 알아내려 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의 눈이 빛났다.
‘설마 했는데, 금단비고 안이란 말인가.’
백소운이 급히 금단비고 안을 살폈다. 그 결과 비고 안에 넣어두었던 태극신고가 미미하게 울리는 것을 발견했다.
백소운이 재빨리 태극신고와 태극봉을 꺼냈다.
이미 한번 시범을 해봤던 터라, 곧바로 태극봉으로 태극신고를 치기 시작했다.
둥둥둥.
그때였다.
부들부들 떨리던 철문이 끼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열리기 시작했다.
“아니, 저것은?”
백소운이 놀란 표정으로 철문 안에 있는 석실을 바라봤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석실 중앙 평평한 바위에 꽂혀 있는 한 자루 검을 보고 놀란 것이었다.
백소운이 천천히 다가가 그 검을 살폈다.
그리고 검신에 천마(天魔)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설마 천마검이란 말인가.”
백소운이 반신반의하다가 바위 뒤쪽에 놓여 있는 검집과 양피지 한 장을 발견했다.
백소운이 양피지를 집어 바로 읽어 내려갔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연자에게 전하노라. 나는 동방에서 온 무명노인(無名老人)이라고 한다. 우연히 이곳 천마산을 지나가다가 이 천마검을 발견하고 천마미혼진 안에 숨겨두었다. 지금 이글을 보고 있다면 그것은 태극봉과 태극신고를 가지고 있다는 증거일 터. 그대야말로 천마검을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는 주인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천기를 헤아려 볼 때 그대가 이 서신을 볼 때쯤 강호가 멸망의 위기에 처해있을 터이니, 그대는 천마검으로 마교를 장악하여 그 힘을 무림을 위해 쓰도록 해라. 참고로 내가 이 천마미혼진 안에 검을 숨겨둔 것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천마미혼진에 갇혀 빠져나가기 전에 내가 숨겨둔 것이라 그렇다. 나의 안배는 태극신고와 태극봉이 진 안으로 들어왔을 때 시작될 것이다. 변화된 그 관문의 내용 또한 그대에게만 적용되었을 것이다. 연자여. 설명은 이만하겠다. 모든 것을 운명으로 생각하고 무림을 지켜주기 바란다. 바위를 부수면 이 늙은이가 남긴 무명비급(無名秘笈)과 우리 동방의 최고 법보인 태극여의주(太極如意珠)가 있을 것이다. 비급에 담긴 무공들은 태극봉과 함께 연마하면 더욱 큰 위력을 발휘할 것이나, 궁극의 경지에 다다르면 병기도 없어지고 무공도 없어진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끝으로 천마검은 천마탑으로 들어가기 위한 열쇠이기도 하니, 인연이 있다면 천마탑에 있는 천마의 무공까지 습득하기 바란다. 극과 극은 통하는 법이니 천마의 무공도 익혀두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만 글을 마친다. 무운을 비노라.〉
“으음······.”
백소운이 안색을 상기시켰다.
양피지 내용이 완전히 다 이해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요지는 무명노인이란 사람 역시 천기를 보고 후대를 위해 안배를 한 셈이었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다. 어차피 마교를 장악하려면 천마검이 꼭 필요했다. 하지만 이렇게 거듭된 기연이 내게 생기는 것이 꼭 기쁘지만은 않구나. 그만큼 앞으로 닥칠 무림의 상황이 절망적이라는 이야기이니까. 제일 좋은 것은 무형검의 최고 경지인 지성(至聖)에 도달하는 것인데, 일단은 안배들을 소중히 받아들이고 내 것으로 만들도록 노력하는 게 중요하겠지.’
백소운이 마음을 정리한 후 천마검을 뽑았다.
스르릉 소리와 함께 천마검이 뽑히며 붉은 광채를 뿜어냈다.
하지만 그 마기가 백소운을 동요시키지는 않았다.
오히려 천마검이 검명을 내며 새로운 주인을 받아들였다.
우우웅.
“이 녀석도 귀여운 구석이 있군. 아마도 천마검 역시 원래는 마검이 아니었을 것이다. 무명검 같은 보검이었겠지만 마기를 흡수해 이런 위력을 지니게 된 것이지. 아무튼, 잘된 일이다.”
백소운이 중얼거린 후 천마검으로 바위를 내리쳤다.
쩡, 하는 소리와 함께 바위가 두 쪽으로 갈라졌다.
그 갈라진 사이에 철상자 하나를 발견한 그는 바로 뚜껑을 열었다.
“이것이 무명비급인가?”
백소운이 두툼한 비급을 들어 그 내용을 살펴보니 예상대로 동방의 상승무공들이 적혀 있었다.
한데 그 수준이 상상을 초월했다.
무형검에 달한 자만이 익힐 수 있는 무공들이었던 것이다.
‘나중에 천천히 연구해야겠구나. 아무래도 지금까지 본 무공 중에서 가장 강한 것 같다.’
백소운이 무명비급을 금단비고 안에 갈무리한 후 마지막으로 금빛을 발하고 있는 구슬을 집었다.
아마도 이 구슬이 태극여의주란 것 같았다.
하지만 법보란 말만 적혀 있었고 그 어떤 설명도 없어 어떤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백소운은 태극여의주 역시 금단비고 안에 넣어두었다.
그때였다.
석실이 서서히 무너지며 맞은편 벽에 통로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진이 파괴되고 있다. 어서 나가야겠군. 밖의 상황이 궁금하구나. 무명노인의 말씀대로 다른 참가자들에게는 정상적인 관문이었다면 합격자들이 제법 있을 것이다.’
백소운이 눈을 빛내며 통로 쪽으로 몸을 날렸다.
휙휙.
* * *
“왜 이렇게 안 나올까요?”
진하림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관문의 통과 지점에는 지금 수많은 사람이 몰려있었다.
지금까지 삼차 관문 합격자는 모두 일곱 명.
한데 아직 마지막 참가자인 백소운의 결과는 밝혀지지 않았다.
앞선 참가자 중 탈락자는 모두 진법의 작용으로 인해 진 밖으로 나온 상황이었다.
물론 그들 모두 큰 부상은 없었다.
이는 환상진법의 특징이라 군웅들이 안심하며 관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열아홉 번째 참가자가 극적으로 성공한 이후로 마지막 참가자인 백소운이 아직 나오지 않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벌써 해 질 무렵이었다.
정기가 말했다.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좀 더 기다려보자.”
“네. 저도 믿고 있지만,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 같아요.”
진하림이 말한 바로 그때였다.
우르릉 소리와 함께 관문 돌파장을 덮고 있던 가림막이 모두 갈기갈기 찢겨 나가고 말았다.
군웅들이 깜짝 놀랄 때.
콰콰쾅 하는 폭발 소리와 함께 돌파장 전체가 먼지로 뒤덮였다.
다행히 관람석까지는 오지 않았으나 천마미혼진이 완전히 파괴된 것 같았다.
“무슨 일이오?”
마교 장로 하정의 물음에 철탑객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진이 파괴된 것 같습니다. 환상진법이라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어찌 이런 일이······ 진을 가동한 사람은 누구요?”
“접니다.”
마의노인 한 명이 급히 다가왔다.
“어떻게 된 것이오? 저 먼지구름이 진짜 진의 파괴를 뜻하는 것이오?”
“네. 장로님. 천마미혼진을 펼치는 것은 포진도에 따라 하면 쉽지만, 일단 펼친 후에는 하루 동안 손을 댈 수가 없습니다. 한데 지금 상태로 봐서 완전히 파괴된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본교의 최대 비전 중 하나인데, 아무래도 수명이 다한 것 같습니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것이오?”
하정이 버럭 성을 냈다.
천마미혼진은 도마왕이 특히 아끼는 진법이었다.
한데 이렇게 파괴되었다는 것은 포진할 때 쓰였던 여러 가지 설비들까지 못쓰게 되었음을 의미했다.
다시 말해 이제 다시는 천마미혼진을 펼칠 수 없게 된 것이다.
바로 그때였다.
먼지 속에서 한 사람이 천천히 걸어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한데 그는 바로 백소운이 아닌가.
“앗! 귀혈공자!”
철탑객이 놀라며 소리쳤다.
원래는 합격을 선언해주어야 하나 진 전체가 파괴되어 정신이 없는 표정이었다.
“어떻게 된 것이오?”
“저는 그저 진을 통과했을 뿐입니다. 합격입니까?”
“아, 물론 합격이오!”
와아아.
짝짝짝.
엄청난 함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백소운이 진을 완전히 파괴하고 나온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백소운은 진하림, 유덕 등 기뻐하는 일행들과 담소를 나누었다.
“다친 데는 없으세요?”
“난 괜찮다.”
백소운이 미소를 지으며 한쪽에 서 있는 일곱 명의 합격자를 쳐다봤다.
처음 예상과 달리 역시 합격자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전혀 생각지 않은 곳에서 엄청난 기연을 만났기 때문이었다.
얼마 후 먼지가 가라앉고 드러난 광경은 군웅들과 주최 측을 또다시 당황하게 했다.
모두 가루로 변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다만 갈기갈기 찢긴 가림막 조각들만이 이곳저곳 놓여있을 뿐이었다.
철탑객이 하정 등 지휘부 고수들과 상의한 후 소리쳤다.
“오늘 삼차 관문 시험은 이것으로 마칩니다. 내일은 합격자들의 무공 대결이 있겠습니다. 모두 와서 응원해주십시오.”
짝짝짝.
박수 소리와 함께 군웅들이 해산했다.
하지만 백소운은 내일 대결 대진표 문제로 남아야 했다.
“모두 잘 들으시오. 여러분은 오늘 삼차 관문을 통과한 고수분들이오. 그래서 내일 두 명씩 조를 이뤄 일등을 뽑아야 하오. 조 편성은 복잡할 것 없이 오늘 참가 순서대로 하겠소이다. 이의가 있는 분이 있소?”
철탑객의 말에 백소운을 비롯한 삼차 합격자 여덟 명이 서로를 쳐다봤다.
그것도 자신과 붙게 될 사람들을.
백소운은 대결 상대로 결정된 아홉 번째 합격자를 쳐다봤다.
그는 중년검객이었는데, 냉막한 인상이었다.
하지만 백소운이 지금 역용한 얼굴도 그에 못지않게 험악했다.
“미리 통성명이나 해두시오. 여러분은 대회가 끝난 후에도 자주 보게 될 사람들이니. 미리 알아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오.”
철탑객의 권유에 백소운이 먼저 중년검객에게 자신을 소개했다.
“귀혈공자라고 합니다.”
“만마검객(萬魔劍客)이라고 하오. 한데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소.”
“말씀하십시오.”
“귀하가 마지막으로 통과했을 때 진이 파괴되었는데 어떻게 된 것인지 설명해줄 수 있겠소?”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정상적으로 통과했습니다. 아무래도 진의 수명이 다한 게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맨 마지막이라 충격이 누적되었던 것도 한 이유가 되겠지요.”
“으음, 그렇다면 귀하의 실력과는 무관한 것이로군.”
만마검객이 거만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그는 이번 천마미혼진 통과에 자신의 실력을 반도 사용하지 않았다.
다만 백소운이 신경 쓰였다.
자신과 싸울 상대이기도 했지만, 진이 파괴되어 다시 사용하기 힘들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와 백소운이 겪은 관문 돌파 내용이 완전히 달랐다는 점은 전혀 생각 못하고 있었다.
이는 다른 합격자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백소운 보다 훨씬 많은 암기 공격을 받았지만, 그 강도는 상대적으로 약했다.
철탑객은 내친김에 전체 통성명까지 시켰다.
합격자들은 순순히 응했고, 소개가 모두 끝나자 철탑객이 말했다.
“수고했소. 내일은 아침 일찍 나오시오. 부교주께서도 참석하시니 절대 늦어서는 안 될 것이오.”
철탑객의 말에 모두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합격자들이 거처로 돌아가기 시작하자, 백소운도 일행과 함께 객잔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때였다.
철탑객이 그를 막았다.
“귀혈공자는 잠시 남아주시오. 진의 파괴와 관련하여 몇 가지 조사할 것이 있으니까.”
“······.”
백소운이 흠칫했다.
예기치 못한 일이었다.
‘혹시 내가 진 안에서 천마검을 얻은 것을 눈치챈 것인가. 아니다. 그럴 리는 없다. 천마검을 금단비고에 넣어두기를 잘했구나.’
백소운이 머뭇거리자, 진하림이 불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무엇을 물어볼 게 있단 말인가요? 어서 가서 쉬어야 내일 싸울 수 있지 않겠어요?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됐다.”
백소운이 진하림을 무마시켰다.
“알겠습니다. 자리를 옮겨야 합니까?”
“그렇소. 다른 분들은 먼저 거처로 가 있으시오. 귀혈공자 한 사람만 데려가겠소.”
“알겠습니다. 다들 객잔으로 돌아가 계십시오.”
백소운의 말에 유덕, 진하림, 정기, 막총 네 사람이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돌아갔다.
“따라오시오.”
“네.”
백소운이 철탑객과 하정 등을 따라 한쪽 구석에 있는 지휘 막사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