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148
“오늘 마지막 대결의 당사자인 귀혈공자와 잠마노인 두 분은 나오시오.”
와아아.
군웅들의 함성을 받으며 백소운과 잠마노인 두 사람이 비무 공간에 들어왔다.
서로를 담담히 바라보는 두 사람은 모두 침착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백소운은 지금 다른 일로 신경을 쓰고 있는 중이었다.
그것은 바로 주는 대로 받아먹은 천마불사주 때문이었다.
처음 그가 이상을 느낀 것은 천마불사주 한 잔을 마셨을 때였다.
겉으로는 아무 변화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천마불사주가 몸에 들어가자 상태창이 경고를 해왔었다.
그 결과 그 한잔은 몸속으로 퍼지지 않고 다시 단전에 응고되어 축적되었다.
그의 신체는 만독불침이라 해독이 될 수 없는 것은 아예 몸속으로 퍼지지 않게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단전에 보관만 해둔 상태가 되었기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있었다.
나중에 해독주를 주면 마셔 해독할 수 있었다. 아니면 스스로 다시 배출할 수도 있는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한데 문제는 도마왕에게 받아 마신 천마불사주였다.
무엇보다 그 양이 너무 많았다.
물론 이번에도 자동 경고 작용으로 단전에 응고시켜 둘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천마불사주의 기운이 꿈틀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너무 자만했다. 이미 용해가 시작되어 배출할 수 없게 되었다. 어떻게든 독성을 없애야 하는데 큰일이구나. 당장 내공을 사용하게 되면 급격하게 독이 퍼질 것이다. 어떤 독이기에 이렇게 강하단 말인가. 잘만하면 내게 이로운 기운으로 바꿀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백소운이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당시 천마불사주를 마시지 않았다면 도마왕과 싸웠을 것이었다.
그를 제거했다고 해도 마교를 장악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비록 천마검이 있지만 정식 대회를 통해 마교도들의 신임을 얻는 것보다는 훨씬 못할 것이 틀림없었다.
한편 잠마노인은 백소운의 안색이 고르지 못한 것을 보고 내심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불안했는데 잘되었다. 이제 내가 숨긴 실력을 발휘한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 후후후.’
잠마노인이 여유 있는 미소를 지었다.
그는 마도의 전대고수로 강호에 잘 알려지지 않은 거마였다.
그는 평생 역용을 해가며 온갖 나쁜 짓을 다 질렀다.
그러다가 말년에 우연히 마공서를 얻게 되었다.
한눈에 봐도 엄청난 무공임을 알아본 그는 이십 년 간 폐관 수련을 한 후 이제야 강호에 다시 나온 것이었다.
‘후후후. 도마왕은 내 적수가 아니다. 교주가 된다면 향후 천하는 나의 것이 될 것이다.’
잠마노인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내공을 끌어 올렸다.
그가 오늘 선보였던 무공은 자신의 실력 중 일할도 채 되지 못하였다.
다만 백소운의 기도 역시 범상치 않아 은근히 경계하고 있었다. 한데 지금 보니 주화입마의 조짐이 있지 않은가.
‘그래도 꺼림칙하니 전력을 쏟아야겠군.’
잠마노인이 잠마검법(潛魔劍法)을 펼칠 준비를 했다.
잠마검법은 쾌검식으로 총 구초가 있으나 이를 합해 일초로 펴낼 수 있는 희대의 마공이었다.
백소운은 속이 울렁거리는 느낌을 계속 받고 있었다.
당장에라도 피를 토할 것 같았다.
천마불사주가 급격히 녹아내려 전신에 퍼지기 직전이었다.
백소운이 잠마노인을 쳐다봤다.
‘저자의 기운 때문에 천마불사주를 제어하기 어렵구나. 이렇게 되면 내공을 사용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고, 자칫 패할 수 있겠다.’
백소운이 무명심공을 이용해 천마불사주의 독을 다스렸다.
하지만 아무 효과가 없었다.
그때였다.
우우웅, 하는 검명 소리가 어디선가 들렸다.
백소운이 이전의 경험을 살려 집중해서 들으니 바로 금단비고 안이었다.
급히 그 안을 보니 검 한 자루가 울고 있었다.
한데 그 검은 바로 천마검이 아닌가.
‘천마검이 천마불사주에 반응한 것인가.’
백소운이 눈을 빛내며 천마검의 울음소리를 음파 유도를 통해 자신의 단전과 연결했다.
단전 부위 기해혈이 바로 반응을 보였다.
발작을 일으키려는 천마불사주를 조용히 가라앉히며 그 독성을 제거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 이건······.’
백소운이 대치 상황도 잊고 속으로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독성이 제거된 천마불사주가 신비로운 기운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 신비로운 기운은 생명력이었다.
태어나고, 죽고, 다시 태어나는 그 끝없는 순환에서 발생하는 힘.
바로 불사(不死)의 기운이었다.
곧이어 그의 머릿속에 구결 하나가 떠올랐다.
기실은 천마불사주와 반응한 천마검의 검신에 구결 하나가 잠시 나타난 것이지만, 연계 작용으로 머릿속으로도 나타난 것이었다.
백소운이 그 구결을 음미하며 바로 암기했다.
한데 그 제목이 낯익은 것이었다.
‘불사신공이라. 설마 검마왕이 익혔다는 그 무공인가. 한데 어찌 내게······.’
백소운이 깜짝 놀라며 천마검을 보니 검신에 불사신공 구결이 나타나 있었다.
빠르게 다시 한번 읽어봤다.
머릿속에 떠오른 것과 똑같았다.
이제 몸속에서 날뛰던 천마불사주의 독 기운은 모두 제거된 상태.
대신에 천마불사주의 진정한 효능인 불사지기(不死之氣)가 가득했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것은 이 불사지기의 성질이었다. 절대 마기가 아니었다.
그 덕분에 단숨에 자신의 내공에 융화시킬 수 있었다.
‘기연을 만났구나. 불사단과 같은 역할을 천마검이 한다는 것을 몰랐다. 하지만 불사신공은 검마왕의 혈족만 익힐 수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그건 좀 이상하군.’
백소운이 생각에 잠겨 있을 바로 그때.
쉬익 하는 소리와 함께 한 자루 검이 그의 목에 닿고 있었다.
불사신공 때문에 정신이 팔렸던 백소운에게 잠마노인이 잠마검법을 펼쳤던 것이다.
하지만 이는 정당한 공격이었다.
백소운이 한눈을 판 것이기에 그 결과에 승복해야 할 상황이었다.
“으음.”
백소운이 침음을 삼키며 급히 옆으로 비켜났다.
스스슷.
잠마노인의 검이 한 치 옆으로 빗겨나갔다.
“흥! 나를 유인했던 것이냐?”
잠마노인이 다시 검초를 뿌렸다.
잠마검법은 초식을 되풀이할수록 그 위력이 배가 되는 특징이 있었다.
속도 또한 마찬가지였다.
쐐애액.
검이 수평 궤적을 그리며 백소운의 목을 베어왔다.
하지만 백소운은 이제 피하지 않았다.
조금 전 불사지기를 흡수한 이후로 몸이 깃털처럼 가벼운 느낌이었다.
백소운의 신형이 앞으로 나왔다.
잠마노인의 검이 다시 빗나갔다.
백소운의 주먹이 잠마노인의 단전을 친 것은 그 직후였다.
퍽.
“으윽!”
잠마노인이 배를 움켜쥔 채 몸을 부를 떨더니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의 칠공에서 피가 흘러 나왔다.
백소운이 담담히 말했다.
“귀하의 기운이 너무 좋지 않아 무공을 폐쇄했소. 어떤 무공을 익혔는지 모르나 그대로 두었으면 실성마인(失性魔人)이 되었을 것이오. 무공 폐쇄만이 그대가 살길이었소. 이해해주리라 믿소.”
백소운이 담담히 말했다.
하지만 잠마노인은 이미 정신을 잃은 상태라 그의 말을 들을 수 없었다.
마교 무사들이 들 것을 가져와 그를 막사 앞으로 데려갔다.
철탑객이 도마왕의 얼굴을 한번 본 후 소리쳤다.
“귀혈공자의 승리요! 귀혈공자는 내일 본교 총단에 들어와 정식 도전자들과 겨루도록 하시오. 아울러 여러 영웅께 알리겠습니다. 내일은 천마대회 전날이긴 하나 최종 도전자를 뽑는 날이니 총단이 개방될 겁니다. 모두 총단으로 모여 주시면 될 겁니다. 참고로 내일 비무는 대연무장에서 열리게 됩니다. 천마비무대가 설치되어 있으니, 그 앞에서 관전하시면 될 겁니다. 이상으로 오늘 예선을 모두 마치겠습니다.”
와아아.
짝짝짝.
함성과 박수 소리가 요란하게 쏟아졌다.
이어 약속대로 해독주가 백소운을 비롯한 참가자들에게 주어졌다.
백소운은 이번에도 거리낌 없이 마셨다.
사실 이제는 해독주가 필요 없었지만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서였다.
얼마 후 군웅들이 해산하자, 백소운 또한 진하림, 정기 등 일행과 함께 객잔으로 돌아갔다.
어제와 달리 오늘은 그를 잡는 사람이 없었다.
백소운 일행이 사라지자, 끝까지 남아 있던 도마왕이 삼뇌노인에게 물었다.
“놈이 오늘 밤 반드시 죽겠소?”
“물론입니다. 아까 먹은 해독주로는 절대 해독을 시키지 못할 겁니다.”
“제발 그래야 할 텐데 걱정이오. 아까 보니 그사이 또 무공이 배 이상 늘어난 것 같았소. 천마불사주 한 병을 모두 먹인 게 참 잘한 일이었던 것 같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놈은 오늘 밤 죽어가며 깊은 후회를 할 겁니다. 천마불사주의 독은 보통 독이 아닌데, 놈이 자만심으로 실수한 것이지요. 저는 내일 출전할 정식 도전자들과 상의해 합의 추대서를 작성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오.”
“네.”
* * *
“정말 내일 마교 총단으로 들어가는 건가요?”
“그렇다. 아까 들었지 않느냐? 최종 도전자를 뽑는 시합은 총단 대연무장에서 벌어진다고.”
“하지만 마교의 심장부로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조금 무서워요.”
“하림아. 운이를 믿자. 우리 역시 무공이 이전보다 훨씬 높아졌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유덕의 말에 백소운이 미소 지었다.
하지만 상황이 그리 녹록한 것만은 아니었다.
예상과 달리 자신이 나타났을 때 도마왕 측이 보일 반응이 쉽게 예상되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래도 임기응변할 수밖에 없구나. 이럴 때 복마회 측과 상의를 해둔다면 큰 힘이 될 텐데, 지금 그럴 상황도 아닌 것 같고······.’
백소운이 임소혜와 괴추노인 등 복마회 사람들을 떠올렸다.
분명 그들 역시 가만있지 않을 것은 분명했다.
‘지금으로서는 천마대회 당일 소교주로 분장한 자를 내세울 가능성이 가장 높다. 하지만 도마왕 측이 쉽게 인정할 리는 만무할 것이다. 무엇보다 복마회 측에는 절대고수가 없으니······.’
백소운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점소이가 객방에 찾아왔다.
“손님 한 분이 꼭 대협을 뵙고자 합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떤 분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면사를 쓰고 있는 여자분이셨습니다.”
“면사? 좋소. 모셔 오시오.”
“그분은 대협과 단둘이 이야기하기를 원하십니다.”
“알겠소. 빈방이 있소?”
“네. 그분이 잡아놓은 방이 있습니다. 지금 그곳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가시겠습니까?”
“물론이오. 앞장서시오.”
“네.”
백소운이 진하림, 유덕 등에게 고개를 한번 끄덕여준 후 점소이를 따라갔다.
‘혹시 임 소저가 아닐까. 그녀가 맞는다면 정말 대담하군.’
백소운이 임소혜를 떠올리며 따라간 곳은 가장 구석진 곳에 있는 방이었다.
“모셔 왔습니다.”
“들어오세요.”
“들어가십시오.”
점소이가 방문을 열어준 후 돌아갔다.
백소운이 문을 열고 들어가니 면사 여인이 한 명 앉아 있었다.
“어서 오세요. 귀혈공자라고 하셨지요? 오늘 일등을 하신 것을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실례지만 누구신지?”
백소운이 담담히 물었다.
목소리는 분명 임소혜가 아니었다.
천리안으로 본 얼굴을 볼 수도 있었으나, 처음부터 그러는 것은 예의가 아닐 것 같아 그러지 않았다.
여인이 면사를 벗은 것은 바로 그때였다.
한데 곱디고운 목소리와 달리 얼굴이 매우 못생긴 추녀가 아닌가.
“저는 자운신녀(紫雲神女)라고 해요. 만나서 반가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