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157
“저럴 수가!”
“아니!”
군웅들의 다급성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삼뇌노인이 가져온 관 안에 검마왕의 시신이 들어있지 않다는 것을 아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시신이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텅텅 비어 있는 관이라 더욱 그랬다.
당황한 것은 도마왕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된 것이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삼뇌노인이 안색을 굳혔다.
시신을 숨겨 두는 일을 담당한 사람이 바로 그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관을 지키고 있던 무사들에게서 어떤 사고도 있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
“아버님 시신을 어디에다 모신 것이냐? 지금 우리를 속이려는 것이냐?”
임소혜가 발끈했다.
천마대부인 역시 상기된 표정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 역시 굳이 지금 상황에 빈 관을 가져올 이유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도마왕이 말했다.
“이것은 본인도 예상 못 한 일이오. 필시 누군가 시신을 훔쳐 간 것이 틀림없소. 귀혈공자. 너도 내가 속임수를 썼다고 생각하느냐?”
“그것은 아니오. 하지만 뜻밖의 일인 것은 분명하오.”
“그래서 약속을 지키지 않겠다는 것이냐?”
“무슨 약속 말이오?”
“천마검의 진위를 확인하겠다는 약속 말이다.”
“그 약속은 지키겠소.”
“좋다. 그럼 어서 이행하라. 다시 말하지만 나는 결과에 승복하겠다.”
도마왕이 철탑객에게 눈짓했다.
철탑객이 천마경을 들고 백소운에게 다가갔다.
군웅들의 이목에 다시 백소운에게 쏠렸다.
검마왕의 시신이 사라졌다고 하나,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
누가 오늘 교주가 될 것인가가 가장 중요했다.
“검을 천마경에 대시오.”
철탑객이 천마경을 백소운 바로 앞에 놓았다.
이후 어떤 변화가 생겨날지 몰라 얼른 뒤로 물러났다.
백소운이 천천히 천마검을 천마경에 댔다.
유덕, 막총, 진하림, 자운신녀 네 사람이 긴장하며 안색을 굳혔다.
하지만 정기는 비교적 담담한 표정이었다.
결과에 대한 염려는 그다지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그는 지금 다른 생각으로 머릿속이 혼돈에 빠져 있었다.
‘분명 운이를 처음 발견했을 때 등에 나타났던 그 문신이었다.’
정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아까 사자성의 등에서 본 문신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가 놀란 이유는 바로 백소운이 갓난아기 때 등에 나타났던 그 문신과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설마 운이가 마교 소교주였다는 말인가. 아니야. 말도 안 돼. 운이를 발견한 그 날이 바로 소교주가 태어난 날이라고 했다. 천마성과 낙양의 거리를 생각해볼 때 불가능한 이야기다. 괜히 일을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 앞으로 절대 그 일에 대해서 말하지 말아야겠다. 알게 되면 충격이 클 것이니까.’
정기가 마음을 굳히며 백소운을 보고 있었다.
그 마음 이면에는 또 다른 생각도 있었다.
그것은 바로 백소운이 소교주라는 그의 생각이 맞아서 위험을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소교주가 아닌 사람이 천마검의 주인이 되면 천마경에 의해 목숨이 위태롭다고 했었지. 어쩐지 큰 문제는 생기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드는구나.’
정기가 쓴웃음을 지었다.
백소운이 소교주일리는 없다고 생각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럴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는 그였다.
무엇보다 그는 백소운의 태생이 어떻든 그것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걱정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의 평가였다.
‘운이가 정말 소교주라 해도 나는 항항 운이 편이 될 것이니 큰 문제가 안 된다. 하지만 무림맹에서 가만있지 않을 것이 확실하다. 그게 가장 큰 문제가 되겠구나.’
정기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마침내 천마검이 천마경에 닿았다.
쩡.
군웅들이 긴장하며 결과를 쳐다봤다.
천마경에 천마검이 비칠 것인가 최우선 관심거리였다.
“앗! 검이 비친다!”
“진짜 천마검이다!”
군웅들이 잇달아 소리쳤다.
그랬다.
천마경에 천마검의 모습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었다.
진짜 천마검만 천마경에 나타나기 때문에 진짜라는 것이 증명된 셈이었다.
도마왕과 삼뇌노인 등이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백소운의 안색이 급격하게 창백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몸도 떨고 있었다.
마치 학질에 걸린 것처럼 눈에 띄게 떨고 있는 모습이 말해주고 있는 것은 명확했다.
교주 혈족이 아닌 자가 천마검의 주인이 되었기에 천마경의 공격을 받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백소운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자운신녀 또한 속수무책이었다.
‘잘 이겨내셔야 할 텐데······.’
자운신녀가 안색을 굳혔다.
반면 도마왕과 삼뇌노인의 안색은 다시 밝아졌다.
내심 기대한 대로 백소운이 부작용을 겪고 있기 때문이었다.
특히 도마왕은 은밀히 탈명도법의 최후 초식을 준비했다.
만약 백소운이 죽지 않고 탈진 정도로 끝난다면 곧바로 목을 베기 위해서였다.
‘놈을 제거할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반드시 죽여야 한다.’
도마왕이 공격하기 좋게 앞으로 몇 걸음 나왔다.
한편 백소운은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혼자만의 분투를 하고 있었다.
처음 천마검이 천마경에 비칠 때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문제는 이후부터였다.
천마검을 통해 흘러들어온 천마경의 기이한 기운이 그의 혈맥을 진탕시켰기 때문이었다.
그 확실한 증거는 등의 문신이 사라지는 것에서 드러났다.
기혈이 흔들릴 때마다 문신이 사라졌다.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마치 날카로운 칼에 살점이 잘리듯이 엄청난 통증을 가져왔다.
하지만 백소운은 이를 참아냈다.
신음을 내지 않았다.
대신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이대로는 죽음뿐이다. 내가 눈짐작으로 새긴 문신이 아니라 절대 지워지지 않는 진짜 문신이 필요하다. 소교주의 몸에 있는 문신에 모방할 수 없는 어떤 특징이 있다는 것을 몰랐구나.’
백소운이 후회했다.
사자성의 등에 새겨졌던 문신만 보고 역용술처럼 베껴 낸 것이 화근이었다.
뒤늦게 이전에 본 적이 있던 임소혜의 등에 있던 문신을 떠올렸지만 그 역시 뭔가 부족했다.
‘설마 혈족의 문신이 태생적이란 말인가. 한데 왜 임 소저의 등에 새겨졌던 문신은 그러지 않았지? 분명 그녀의 등에 있던 문신은 그려져 있던 것이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백소운이 근원적인 이유를 알아내려 애를 썼다.
그 이유를 알아야 지금 상황을 타개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는 동안 막히는 혈맥이 점점 늘어났다.
아무리 무형검을 연마한 백소운이지만 몸에 피가 돌지 않으면 살아날 수가 없다.
‘일각이다. 일각이 지나면 되돌릴 수 없다. 내가 괜한 오기를 부린 것인가.’
후회가 다시 밀려왔다.
하지만 그에게는 신념이 있었다.
‘어떤 경우에도 절망은 없다. 마음을 편히 하자. 죽음이 곧 삶인 것을 안다면 무얼 그렇게 초조해할 것인가.’
이미 문신은 모두 지워진 상황.
옷을 입고 있어 군웅들은 이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감각을 통해 백소운 자신은 알 수 있었다.
관건은 바로 진짜 문신을 몸에 나타내는 것이었다.
최대한 기억을 떠올려 다시 시도해야 했다.
하지만 이 또한 난관에 부딪혔다.
문신을 스스로 만들기 위해서는 역용술처럼 내공이 필요했다. 하지만 운기가 제대로 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보다 못한 자운신녀가 전음을 날렸다.
「문주님 스스로 진짜 소교주라고 생각하세요. 그러면 혹시 길이 생길 수도 있을 거예요. 지금 보니 천마경을 통해 문주님 몸속으로 들어온 기운은 매우 강력한 내공처럼 보여요. 진짜 소교주의 기운을 천마경으로 하여금 느끼게 해줄 수만 있다면 새로운 힘을 갖게 될 거예요.」
‘진짜 소교주라······.’
백소운의 눈이 빛났다.
그 생각은 여러 번 하지 않았던가.
자신이 정기에게 발견되었을 때의 광경을 유추해보았다.
순간, 놀라운 일이 생겨났다.
어렴풋하지만 그때의 일이 떠올랐던 것이다.
벼락이 치고, 정기가 달려와서 자신을 발견하고, 놀라던 광경이.
당시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어서일까.
마치 환상처럼 그때 상황이 그려졌다.
‘금빛이 내 몸에서 났다고 하셨지.’
백소운이 환영처럼 보고 있는 갓난아기의 몸에서 금빛이 보였다.
그 갓난아기는 바로 자신이었다.
마치 그가 갓 태어났을 때로 돌아온 것과 같았다.
바로 그때 환상 속 정기의 놀란 얼굴이 보였다.
자신의 몸 어느 부분을 보고 놀란 것 같았다.
백소운이 끊어지려는 의식을 붙잡고 집중해서 보니 환영 속 갓난아기의 등에 어떤 문신이 보였다.
한데 그 문신은 임소혜나 사자성의 등에서 본 것과 같은 것이 아닌가.
한데 그려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타고난 문신이었다.
‘아, 정말 내가 소교주였단 말인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바로 검마왕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직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지금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의식적으로라도 자신이 소교주라는 생각이 필요했다.
‘내가 소교주다. 검마왕이 내 친부다.’
백소운이 마음속으로 받아들였다.
바로 그때였다.
그의 등에서 새로운 문신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한데 몸속에 잠복해 있던 문신이 다시 드러난 느낌이었다.
확인해봐야겠지만 아까처럼 일부러 문신을 만든 것은 아니었다.
‘마치 태어났을 때부터 있었던 것처럼 문신이 생겨났다. 그리고 이것은 지울 수 있는 게 아니다.’
다시 한번 혼동이 생겼다.
‘정 아저씨에게 나중에 여쭤볼 수밖에 없겠구나. 아저씨가 문신을 알고 있었다면 내가 바로 진짜 소교주다. 그렇지 않다면 실제 소교주는 아니지만 나도 모르게 완벽하게 소교주 행세를 하고 있는 셈이 된다. 몸도 그러한 마음 때문에 진짜처럼 변한 것일 테고······. 지금으로서는 확률이 반반이구나.’
백소운이 좀 더 생각하려 했으나 그럴 여유가 없었다.
일각이란 시간이 다 되어 목숨이 끊어지기 직전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반전이 일어났다.
새로 드러난 문신이 그의 등에 완전히 나타났을 때 의식이 또렷해졌다.
내공이 되살아났다.
아니 천마경에서 흘러들어온 기운 덕분에 더 강해졌다.
몸이 회복되자, 다시 천마경을 통해 기운이 흘러들어왔다.
놀랍게도 조금 전까지 그의 목숨을 위협했던 천마경의 기운은 극히 일부였던 것이다.
‘내가 진짜 소교주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고비를 넘겼구나. 이제 큰 문제는 없다. 시험은 끝났다. 천마경 역시 나를 주인으로 받아들였다.’
백소운이 천마경이 주는 천마지기(天魔之氣)를 모두 받아들인 후 천마검을 뗐다.
천마경에는 천마검이 여전히 비치고 있었다.
그의 몸도 더는 떨리지 않았다.
마치 깊은 물처럼 기도가 안정되어 있었다.
군웅들의 함성이 터진 것은 그때였다.
와아아!
“성공이다!”
“새로운 교주님이시다!”
털썩.
털썩.
군웅들이 백소운에게 충성을 바치는 의미로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무릎을 꿇지 않은 사람은 도마왕과 삼뇌노인 두 사람뿐이었다.
임소혜, 천마대부인 등 복마회 고수들 또한 무릎을 꿇었으니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때였다.
이심전심일까.
도마왕과 삼뇌노인이 약속이나 한 듯이 공격을 가해왔다.
출수를 먼저 한 것은 삼뇌노인이었다.
그는 놀랍게도 몸을 날려 박치기를 시도했다.
그의 정수리에는 어느새 뿔이 하나 달려 있었다. 그가 스스로 만들어낸 비장의 한 수였다.
마치 화살처럼 쏘아진 박치기 공격.
하지만 백소운은 지친 상태가 아니었다.
천마검을 가볍게 사선으로 휘둘러 삼뇌노인의 무거운 머리를 잘라냈다.
“켁!”
뿔 공격을 제대로 하지 못한 아쉬움일까.
삼뇌노인이 승복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숨을 거두었다.
도마왕이 탈명도법의 최후 초식을 전개한 것은 바로 그 직후였다.
탈명홍광.
특수한 도강으로 이 한 번의 공격에 그의 필생 공력이 담겨 있었다.
거대한 붉은 기둥이 백소운의 몸을 박살 내려던 찰나.
백소운이 온몸으로 무형금광을 펼쳤다.
꽈아앙.
“크윽!”
비명과 함께 도마왕의 신형이 십장 밖으로 날려갔다.
쿵.
지면에 떨어진 그의 가슴에는 사람 머리통 크기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하극상을 범한 죄의 결과요.”
백소운이 담담히 말했다.
도마왕이 검마왕을 암습한 일을 다시 한번 언급한 것이다.
믿기 어렵게도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도마왕이 말했다.
“으으······ 교주 자리가······ 탐이 났을 뿐이다. 그런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으니까. 으윽!”
도마왕이 자신의 죄를 인정한 후 숨을 거뒀다.
시체가 된 그의 몸이 쩍쩍 갈라졌다. 급기야 가루가 되어 바람에 흩어져 버렸다.
허망한 최후가 아닐 수 없었다.
백소운이 천마검을 다시 높이 들었다.
군웅들 모두가 목이 터지라 소리쳤다.
“교주님 만세!”
“교주님 만세!”
마교의 새로운 교주가 탄생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