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158
깊은 밤.
백소운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지금 그가 있는 곳은 교주의 처소인 천마각(天魔閣)이었다.
교주 취임식을 무사히 마치고 홀로 있게 된 그는 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정기였다.
자신의 출신내력을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천마각은 총 구층으로 교주 집무실은 구층에 있었다.
침실 또한 집무실과 연결되어 있었다.
백소운이 정기를 기다리고 있는 곳은 침실이었다.
이미 주위의 음파를 차단해둔 상황이라 보안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왜 이렇게 늦는 것일까.”
백소운이 안색을 굳혔다.
이미 마음의 정리는 어느 정도 해둔 상태였다.
자신의 출신이 설사 마교로 밝혀진다고 해도 놀랄 것은 없었다.
오히려 걱정되는 것은 자신의 출신 때문에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는 정기, 유덕, 막총, 진하림의 안위였다.
‘이 정도로 마음의 평정을 깨트리다니. 하지만 내가 정말 소교주라면 임 소저가 내 친동생이고, 천마대부인께서 나의 친모가 되신다. 두 분 모두 충격이 클 것이며 섣불리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검마왕이 정말 내 친부라면 나는 씻기 어려운 대죄를 지은 셈이니, 그 일 또한 보통 일이 아니구나.’
마음이 점점 더 무거워졌다.
하지만 현실은 점점 자신이 예상하던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래서 임 소저를 볼 때마다 그런 친밀감을 느낀 것일까. 혈육이기에 느끼는 그럼 감정······ 아, 아직은 잘 모르겠다. 내가 왜 태어나자마자 버려졌는지, 나를 낙양에 갖다 버린 사람은 누군지, 왜 그렇게 했는지······.’
의문이 물밀 듯이 밀려들었다.
상태창처럼 이해하기 힘든 기이한 것의 존재부터 금단비고의 신비함까지.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이 마치 환영과도 같게 느껴졌다.
사실 그동안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 이룰 수 없는 것들이 그에게는 쉽게 발생했다.
더욱더 놀라운 것은 그가 지금까지 겪었고 얻은 능력은 빙산의 일각이란 사실이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나를 통한 안배의 궁극적 목표는 무엇일까? 단순히 강호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목적은 좋지만 그렇다고 내가 무조건 따라야만 하는 것인가? 이 모두가 내가 나의 근원을 모르기 때문이다. 근원을 알고 내가 스스로 옳다고 느껴질 때 그러한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맞다. 누군가 안배를 해두었다고 무조건 따르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마음속에 소용돌이가 쳤다.
별 저항 없이 받아들이던 모든 것들이 다시금 검토되고 있는 것이다.
그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검마왕과 자신의 싸움이었다.
무림의 평화와 정의 수호라는 대의명분은 그에게 있어 절대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그 때문에 결국 친부를 공격했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이제는 태어날 때부터 자신에게 주어진 안배에 무조건 따를 수 없는 이유였다.
‘아무리 대의가 중요하지만 검마왕이 내 친부였다면 결코 공격을 가하지 않았을 것이다. 공격 대신 설득을 하려 했겠지. 그게 다 내 신세내력을 몰라서 벌어진 일이니, 오늘 반드시 내 근본을 알아야 한다.’
백소운이 다시 한번 마음을 굳힌 순간.
방 안으로 한 사람이 들어왔다.
바로 정기였다.
정기를 비롯한 백소운의 일행은 모두 천마각 일층에 방 배정을 받고 처소를 마련했었다.
한데 조금 늦게 도착한 것이었다.
“오셨습니까?”
“그래, 운아. 날 따로 부른 이유가 무엇이냐?”
정기가 안색을 상기시켰다.
그 역시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는 눈빛이었다.
“다른 게 아니라 문신 때문에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
“문신이라니?”
정기가 짐짓 모르는 척 했다.
이미 문신에 대해 말하지 않기로 한 그였다.
하지만 안색이 붉어지고 호흡이 가빠지는 등 거짓말을 하려는 조짐이 분명하게 보였다.
백소운이 단번에 그것을 파악한 것은 물론이었다.
철렁하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다시 미궁에 빠지는 것보다는 확실하게 아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이 섰다.
“저를 처음 발견했을 때 제 등에 마교 교주 혈족을 상징하는 문신이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으십니까?”
“그게······.”
정기가 당황하며 말을 채 잇지 못했다.
딱 잡아떼려고 마음먹었었다. 하지만 백소운의 눈빛이 마음에 걸렸다.
백소운이 다시 말했다.
“아저씨. 아저씨는 저에게 있어 친부와도 같은 분입니다. 저를 진정 위하신다면 사실을 말씀해주십시오. 설사 제가 소교주였다고 해도 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오히려 꿈에도 그리던 가족을 만나게 되어 행복할 겁니다. 선과 악은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니, 제가 소교주로 밝혀지면 이왕 교주가 된 이상 마교를 탈태환골시켜 바른길로 인도하려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아저씨에게 달려 있습니다. 부디 진실을 말씀해주십시오.”
“으음······.”
정기가 안색을 더욱 굳혔다.
고민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하지만 고민은 그다지 길지 않았다.
“휴우. 내가 어찌 널 속일 수 있겠느냐? 사실 무림맹 때문에 너에게 말하지 않으려고 했었다. 이전에 내가 너에게 할 말이 있다고 했던 것을 기억하느냐?”
“네. 그 말이 바로 문신과 관련된 것이었군요.”
“그렇다. 너를 처음 발견했을 때 온몸에 금빛이 발하고 있었지. 그리고 문득 너의 등에 문신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성화 모양의 그 문신은 한눈에 봐도 정파의 것은 아니었다. 당연히 나는 놀랐고 잠시 너의 출생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흑도 출신으로 생각하셨군요.”
“그렇다. 하지만 하늘의 뜻인지 문신은 금세 사라지더구나. 나는 기뻐했다. 내가 헛것을 본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기도 했지. 그리고 결심했지. 그 문신은 운이 너의 출세에 방해가 될 가능성이 있어 네가 클 때까지 비밀로 해야겠다고.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너의 친부모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단서를 네게 알려줘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었다. 그 때문에 내가 위험에 빠졌을 때 너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려 했던 것이다. 한데 오늘 나는 그 문신을 다시 보게 되었다.”
“사자성의 등에 있었던 문신 말이군요.”
백소운의 목소리는 예상과 달리 매우 담담했다.
정기가 안도하며 말을 이어갔다.
“그렇다. 똑같았다. 다만 약간 다른 점은 비록 사라졌었지만 너의 등에 나타났던 문신이 훨씬 더 자연스러웠다는 점이다. 마치 타고난 것 같더구나. 한데 사자성 그자의 등에 있던 문신이 정말 소교주의 것과 똑같은 것이냐?”
“네. 아저씨.”
백소운이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을 알게 되어 뭔가 후련해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아직 뭔가 미흡한 것도 사실이었다.
‘확실한 것은 검마왕을 만나봐야 알 것 같구나. 실성마인이 되었든지 여전히 시신으로 있든지 직접 보면 알 것 같다. 그리고 어쩌면 그만이 알고 있는 내 신체상의 특징이 더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백소운이 마음을 편히 하며 상황을 정리해 나갔다.
그 결론은 일시유보였다.
‘검마왕을 찾아 확인할 때까지 이 사실을 비밀에 부치는 것이 나을 듯하다. 이제 곧 천하일심맹과 격전을 치러야 하니, 이 일로 일을 복잡하게 만들 필요는 없겠지.’
백소운이 마음을 다스린 후 정기에게 말했다.
“잘 알겠습니다. 한데 말씀하신 문신이 제게 다시 나타났습니다. 예상하셨나요?”
“어느 정도. 시험을 통과했으니까. 내게 보여줄 수 있겠느냐?”
“네.”
백소운이 옷을 벗어 등을 보여줬다.
문신이 드러났다.
오늘 천마대회가 끝나고 몇 번이고 지워보려고 노력했으나 결국 실패했던 그였다.
태어날 때부터 있던 문신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 증명된 셈이었다.
“아!”
정기가 탄성과 함께 놀란 표정을 지었다.
“똑같습니까?”
“그렇다. 완벽하게 같다. 정말 네가 소교주였구나.”
“아직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구할 정도는 맞는 것 같습니다.”
“이곳 천마성과 낙양까지의 거리를 생각할 때, 하루 만에 낙양까지 와서 갓난아이를 버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게 아니냐?”
“가능합니다. 신선계 수도자라면 익힐 수 있는 운운술이라면 가능하지요.”
“아! 거리 문제가 해결된다면 정말 네가 실종된 소교주일 수도 있겠구나.”
“네. 하지만 제가 따로 말씀드릴 때까지 이 일을 비밀에 부쳐주시겠습니까?”
“물론이다. 잘 생각했다. 지금 여러 상황이 복잡하니, 그 일은 나중으로 미루는 것이 좋을 것이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최소한 검마왕을 다시 찾게 될 때까지는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잘 생각했다. 그리고 이것은 여러 번 말한 것이지만 우리는 언제나 네 편이다. 아까 자운신녀를 제외하고 우리끼리 이야기를 나눴지만, 우리 역시 마교에 몸담아 너를 돕기로 했다.”
“감사드립니다. 저에게는 큰 힘이 될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성공한 무림맹 무사가 되려는 아저씨들과 하림의 꿈은 사라지게 되는 게 아닙니까?”
“우리는 운이 네가 꿈이고 희망이다. 다만 어떤 경우에도 바른길을 걸어간다고 약속해다오.”
“네. 약속하지요. 아, 그리고 무림맹과의 문제도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곧 무림맹과 마교가 연합을 하게 될 상황이 올 것이니까요. 그렇게 되면 무림맹 무사 신분을 함께 갖출 수 있을 겁니다.”
“맹과 마교가?”
“네. 아까 자운신녀의 이야기를 들으니 사도맹이 무림맹을 공격한 것 같습니다. 이곳 천마성까지 진격해온 무림맹 무사 십만 명이 위기에 몰린 셈이지요.”
“무림맹을 도울 생각이냐?”
“네. 벌써 신녀로 하여금 좀 더 자세한 상황을 알아 오라고 하였습니다.”
“아, 그래서 신녀가 보이지 않았구나. 잘했다.”
“네. 상황이 이러하니 걱정은 하지 마시고 내려가서 푹 쉬십시오. 다른 분들에게는 내일 아침 식사 때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알겠다. 너도 푹 쉬어라. 피곤할 텐데······.”
“네.”
백소운이 고개를 숙인 후 정기를 내보냈다.
홀로 남은 백소운이 가부좌를 틀고 묵상에 잠겼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정작 정기의 말을 듣고 나니 마음이 심란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빠른 속도로 마음이 편안해졌다.
‘내려놓자. 모든 것을. 인연이 오면 오는 대로, 가면 가는 대로. 순리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다. 후회 없이······.’
밤이 점점 깊어갔다.
* * *
다음 날 아침이 되자 마교 총단 취의청에서는 지휘부 전체 회의가 열렸다.
참석 인원은 모두 오백여 명으로 그야말로 마교의 핵심 고수들이었다.
특히 이번 회의에는 마교의 실세라 할 수 있는 장로원과 원로원 고수들이 대거 참석해 그 무게를 더했다.
그들 중에는 신병을 핑계로 전날 천마대회에 불참한 고수들도 많았다.
그들은 사실 도마왕에 대해 반감을 품고 있는 자들이었다.
어제 당연히 도마왕이 교주가 될 줄 알고 이 기회에 은퇴하려 했던 것이다.
한데 뜻밖에도 백소운이 교주가 되자 그들 또한 환영 의사를 밝혔다.
한편 정탐을 나갔던 자운신녀도 새벽에 돌아와 백소운 옆에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또한 임소혜, 천마대부인 등 복마회 고수들도 취의청에 자리했다.
간밤에는 총단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복마회 일반 무사 만여 명도 모두 들어왔다.
어제 전격적으로 백소운에게 충성을 맹세한 철탑객이 말했다.
“교주님. 회의 준비가 끝났습니다. 한 말씀 해주십시오.”
“알겠소.”
백소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교의 고수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의 눈길을 끌고 있는 사람은 바로 천마대부인과 임소혜였다.
‘내 운명도 기구하구나. 어머님과 친동생일 가능성이 큰 두 사람을 보고도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으니. 하기야 지금 어찌 그 일을 말할 수 있겠는가. 일단 이야기가 나오면 내가 무명객이란 사실도 알려질 테고, 그러면 충격도 매우 클 것이다. 침착하자. 일단 천하일심맹 문제부터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