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162
“네놈이 감히 내 상대가 되겠느냐?”
백리천이 들고 있던 검을 수평으로 휘둘렀다.
순간 반원형 모양의 검강이 뻗어 나오며 장간지를 덮쳤다.
장간지가 장력으로 이를 막아냈으나 결과는 참혹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몸이 그대로 산산 조각난 것이었다.
“크윽!”
장간지가 걸레 조각이 되어 절명하자, 무림맹 무사들이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와아아!
비록 오만 명에 불과하지만, 그들은 이번에 출정한 무림맹 무사 중 최정예였다.
백리천이 가공할 신위를 보여주자 한번 해볼 만하다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다.
반면 사도맹 쪽 무사들은 분노한 표정이었다.
매사행이 말했다.
“내가 직접 나서겠다. 오래전부터 백리천 저자와 한번 싸워보고 싶었다.”
“그래도······.”
만악선생과 매소청이 다시 만류했다. 하지만 매사행의 결심은 굳건해 보였다.
“내가 이긴다.”
매사행이 천천히 신형을 앞으로 이동했다.
스스슷.
한데 두 발이 한 자 정도 허공에 떤 채로 무릎조차 굽히지 않은 상태였다.
그의 내공이 가공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백리천이 말했다.
“매사행. 늦었지만 사내답구나. 나를 이길 자신이 있느냐?”
“물론이다. 어찌 자신이 없으면서 네놈을 대적하겠느냐?”
“자신이 있다면 대결에 앞서 약속하자.”
“무슨 약속 말이냐?”
“지는 쪽이 이기는 쪽에 투항하기로. 다시 말해 내가 패배하면 본맹 무사 전원이 사도맹에 투신할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내가 이기면 사도맹 무사 전원이 우리 무림맹 휘하로 들어와야 한다. 어때 용기가 있느냐?”
“······.”
매사행이 안색을 굳혔다.
상대편 무사들을 받아들여 세력을 불리는 것은 그 역시 생각하던 일이었다.
하지만 역으로 제의를 받고 보니 선뜻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물론 무림맹 무사들의 반응 역시 제각각이었다.
백리천의 승리를 믿고 있는 무사들은 별 동요가 없었다. 나머지는 불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무림맹주의 권한으로 결정한 일이었다.
투항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개인적으로 떠나면 될 일이었다.
대신 백리천의 패배가 확정되면 무림맹은 해체되는 것이라 할 수 있었다.
만악선생이 말했다.
“교주님. 놈들은 우리 병력의 절반에 불과합니다. 약속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어차피 항복할 놈들은 항복하게 되어 있습니다. 놈의 꼬임에 말려들면 안 됩니다.”
“저도 반대예요.”
매소청까지 반대했다.
하지만 매사행은 여전히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일생일대의 기회다. 내가 만일 승리하면 우리 사도맹의 세력이 커질 것이다. 어차피 무림맹과 마도맹을 제거한 후 지옥맹과 최후 결전을 벌여야 한다.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세력을 불리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다. 어차피 내가 승리할 것인데 주저할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매사행이 결심을 굳히고 말했다.
“좋다. 수락하겠다. 시작하자!”
매사행이 말을 마침과 동시에 일장을 날렸다.
쏴아아.
평범한 장력 같았지만, 필생의 공력이 담긴 공격이었다.
백리천이 무시하지 못하고 장력으로 맞받아쳤다.
바로 무적대라장이었다.
꽈앙.
거대한 폭음과 함께 먼지가 일었다.
고수들끼리의 대결은 종종 한 번의 격돌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기에, 그 결과가 주목된 것은 물론이었다.
특히 그 결과에 따라서는 무림맹이나 사도맹이 해체될 수도 있어 그 의미가 남달랐다.
이윽고 먼지가 사라진 후 나타난 광경은 놀라웠다.
매사행과 백리천 두 사람 모두 한 걸음씩 물러나 비틀거리고 있는 것이 아니가.
“역시 대단하군. 하지만 백리천 네놈은 이미 잠력을 모두 사용해 더는 공격할 능력이 없다. 다시 겨루게 되면 승리는 무조건 내 것이지.”
“으음······.”
백리천이 안색을 굳힌 채 말을 잇지 못했다.
매사행의 말이 맞기 때문이었다.
매사행은 지금 선 채로 운공요상을 하며 내력을 빠르게 회복하고 있었다. 백리천은 그러지 못했다.
예상과 달리 한 번의 격돌로 잠력을 모두 사용해버린 것이다.
이를 눈치챈 자명선생이 소리쳤다.
“이번 대결은 무승부다. 운공요상이 필요하니, 본맹에서는 다른 고수를 내겠다.”
“패하면 전체가 투항하겠다는 약속은 어떻게 되는 것이냐?”
“그 약속은 수장끼리의 대결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다른 고수들의 대결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자명선생이 말하는 동안, 백리영이 백리천을 부축해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왔다.
백리천은 가부좌를 틀고 운공요상에 들어갔다. 회복을 위해서라기보다 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측면이 컸다.
이런 무림맹 측의 태도에 매사행이 발끈한 것은 물론이었다.
하지만 첫 대결에서 무승부가 되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때였다.
상황을 지켜보던 혈루서생이 앞으로 나왔다.
“좋다. 이번에는 내가 나서겠다. 네놈들이 자랑하는 부맹주 백소운은 어디에 있느냐? 당장 나와라. 놈이 우리 교주님을 시해한 것을 잘 알고 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내가 직접 복수를 하겠다.”
“부맹주께서는······.”
자명선생이 안색을 굳혔다.
백소운의 행방이 오리무중이기 때문이었다.
혈루서생이 지옥혈교의 부교주인 것을 고려하면 그의 상대는 백소운이 되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그가 갑자기 나타날 리는 만무했다.
무림맹 무사들이 하나같이 안타까워했다.
그 모습에 혈루서생이 득의한 미소를 지었다.
이미 백소운이 무림맹 진영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였다.
물론 백소운이 나타날 것을 대비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지옥맹에서 독각왕을 비롯한 독각수들을 보낸 것이 그 대비의 일환인 것이다.
기선을 제압한 혈루서생이 껄껄 웃었다.
“하하하. 백소운 그놈은 정작 필요할 때 모습을 감추는 쥐새끼 같은 놈이구나. 그런 놈이 부맹주라니, 네놈들이 오늘 궁지에 몰린 이유를 알겠다. 맹주란 놈은 자신의 능력을 과신해 공격능력을 잃었고, 전력 역시 이미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더는 우리가 네놈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 아무라도 나오너라. 한 명 정도는 내 손으로 꼭 죽여야 성이 풀리겠다.”
혈루서생의 말에 무림맹 무사들이 하나같이 분노했다.
하지만 당장 혈루서생을 상대할 고수가 없는 게 사실이었다.
‘이럴 때 은자림 고수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자명선생이 안타까워했다.
동정어옹, 남북쌍괴 등 은자림 고수들은 이번 출정에 반대해 참가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이유는 무림맹이 천하일심맹에 가입하는 것에 은자림이 찬성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구파일방의 장문인들도 대거 불참했다.
각파의 본산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것이 그 명분이었다.
하지만 구파일방 역시 무림맹의 일원이었기에 자파의 일반 무사들을 대거 파견했었다.
‘사기를 확실하게 올려줄 고수가 필요하다. 부맹주가 가장 적임자인데······.’
자명선생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혹시나 해서였다.
바로 그때였다.
천마성 쪽에서 일단의 무사들이 나타났다.
모두 다섯 명이었다.
한데 그들은 바로 백소운과 유덕, 정기, 막총, 진하림이 아닌가.
모두 역용을 풀고 본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백 대협이시다!”
“부맹주님이다!”
그들을 발견한 무림맹 무사들이 일제히 환호했다.
백소운이 황사벌에 즐비한 무림맹 무사들의 시신을 보며 안색을 굳혔다.
‘너무 늦게 왔구나. 내 실수다.’
백소운이 안색을 가다듬으며 백리천, 자명선생, 백리영 등 무림맹 지휘부를 항해 포권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마침 잘 오셨습니다. 혈루서생 저자를 상대해주십시오.”
자명선생의 말에 백소운이 고개를 끄덕인 후 신형을 돌렸다.
“귀하가 혈루서생이오? 본인은 백소운이오.”
“네놈이 우리 교주님을 죽였느냐?”
“그렇소. 천혈존자는 내 손에 죽었소.”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오늘 네놈은 내 손에 죽는다.”
혈루서생이 공격을 가하기 위해 자세를 바로 했다.
그때였다.
옆에 있던 지옥혈교 태상장로 암혈괴인이 앞으로 나섰다.
“부교주님. 놈은 제가 상대하겠습니다.”
“으음, 그렇게 하시오.”
“네.”
암혈괴인이 고개를 숙인 후 백소운 앞으로 더 다가갔다.
그의 손에는 단검 한 자루가 들려있었다.
백소운이 단검을 보며 눈을 빛냈다.
한눈에 봐도 보통 단검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소문이 자자한 지옥혈검(地獄血劍)인가. 지옥혈검은 지옥혈교의 법보로 무공이 높은 상대일수록 더 위력이 강해진다고 했던 것 같은데······.’
백소운이 무명검을 비스듬히 들었다.
지옥혈검 표면에 묻혀 있는 특수독 때문이었다.
“후후후! 네놈은 내 손에 죽는다. 단 한 번밖에 사용할 수 없어 아깝기 그지없지만, 네놈을 제거한다면 후회는 없을 듯하구나.”
암혈괴인이 지옥혈검을 천천히 던졌다.
백소운은 여전히 무명검을 비스듬히 든 채 기다렸다.
지옥혈검의 변화를 보기 위해서였다.
그때였다.
지옥혈검이 강렬한 붉은 빛을 내뿜으며 순식간에 열 자루로 늘어났다.
이는 단검을 던진 자의 공력과 관계없는 단검 자체의 효력이었다.
쉬이익. 쉭.
열 자루의 단검이 빠른 속도로 백소운의 전신 요혈을 파고들었다.
백소운이 피하지 않고 무명검으로 단검을 쳐냈다.
깡깡깡.
단검들이 튕겨 나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하지만 마지막 한 자루가 마치 살아 있는 듯 방향을 바꿔 백소운의 심장에 파고들었다.
바로 지옥혈검의 원단검이었다.
푹!
백소운의 가슴에 단검이 박히자, 암혈괴인이 매우 기뻐했다.
“하하하. 성공했다!”
하지만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는 숨을 거두고 말았다.
무명검에서 나온 검기에 목이 잘렸기 때문이었다.
“크윽!”
암혈괴인이 즉사하자, 백소운이 천천히 손을 들어 가슴에 박힌 단검을 뽑았다.
한데 단검은 끝이 완전히 가루가 되어 있는 게 아닌가.
그랬다.
단검이 가슴에 박힌 것이 아니라 살에 파고드는 즉시 앞부분이 녹아내렸던 것이다.
이는 지옥혈검을 피하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한 백소운이 보호강기로 대적한 결과였다.
“혈루서생! 이제 그만 나오시오.”
백소운이 담담히 말했다.
그때 혈루서생의 눈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그의 최대 절기인 혈루공(血淚功)이 펼쳐지기 직전이었다.
“혈루공이다!”
“아무도 피할 수 없다는 그 혈루공인가.”
지옥혈교 무사들이 술렁였다.
그도 그럴 것이 혈루서생의 혈루공은 신비 그 자체였다.
죽은 천혈존자 또한 혈루공을 두려워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혈루서생은 아직 한 번도 이 혈루공을 펼친 적이 없었다.
그것은 바로 불과 몇 달 전에 혈루공을 대성했기 때문이었다.
‘광혈마를 상대할 때 사용하려 했는데, 결국 지금 사용하게 되는구나. 하기야 광혈마 보다 백소운 저놈이 더 강적이라 할 수 있지.’
혈루서생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백소운은 그저 담담할 뿐이었다.
‘특수한 무공 같군. 하지만 내 상대는 아니다.’
그때였다.
혈루서생의 눈에서 붉은 안광이 번쩍였다.
혈광이었다.
한데 혈광 속에서 무수히 많은 철환 같은 것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 아닌가.
바로 혈루가 암기로 변한 것이었다.
쐐액. 쐐액.
가공할 속도로 다가오는 혈루환(血淚丸)들.
그 수 역시 계속 불어나 수천 개가 넘었다.
백소운은 일반 장력으로 혈루환을 파괴할 수 없는 것을 직감했다.
하지만 결국 그가 선택한 것은 무형금광이었다.
그의 무형금광의 위력은 최근 무척 강해져 있었다.
백소운의 몸에서 금빛이 발출되며 혈루환들을 막아냈다.
꽈앙.
“크윽!”
황사벌이 떠나갈 듯한 폭음과 함께 혈루서생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무사들이 놀라서 보니 혈루서생이 두 눈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채 즉사해 있었다.
눈이 파괴되면서 그 여파로 두개골까지 파괴된 것 같았다.
반면 백소운은 미미하게 흔들리고 있었으나 이내 자세를 바로 했다.
안색이 조금 굳어 있는 것으로 보아 예상보다 혈루공의 위력이 강했던 것 같았다.
‘가볍지 않은 내상을 입었다. 아무래도 오늘 끝까지 싸우기는 힘들 것 같구나. 기회를 봐서 무림맹 무사들을 천마성 안으로 들여보내는 것이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