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163
혈루서생까지 백소운에 의해 죽임을 당하자 분위기는 완전히 무림맹 쪽으로 쏠렸다.
무림맹 무사들은 하나 같이 기뻐했다.
백리천이 매사행과 양패구상한 후 의기소침했던 그들에게는 백소운이 구세주나 다름없었다.
반면 수장을 잃은 지옥혈교 무사들은 당황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이미 교주인 천혈존자를 잃은 그들이었다.
이제 부교주까지 죽자, 지휘체계가 완전히 무너져 버린 것이다.
그때였다.
인영 하나가 허공에서 나타나 지옥혈교 진영 쪽에 내려섰다.
허름한 마의를 입은 그는 백발의 노인이었다.
허리에는 검이 한 자루 달려 있어 무림인 같았지만 너무나 평범한 모습이었다.
“광혈마!”
“태상교주님!”
지옥혈교 무사들이 술렁이더니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그랬다.
그는 바로 지옥혈교 태상교주 광혈마였다.
사실 그는 숨어서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한데 혈루서생이 죽고 지옥혈교가 흔들리자 부득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지금 이 시각부터 내가 지옥혈교를 다스리겠다. 교주로 복귀하겠다는 말이다. 반대하는 자가 있느냐?”
“명을 받들겠습니다.”
“교주님 만세!”
지옥혈교 십만 무사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광혈마가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모두 일어나라!”
“존명!”
지옥혈교 무사들이 일제히 일어나 광혈마의 명을 기다렸다.
이미 지옥혈교 무사들 사이에서 신망이 두터운 광혈마였기에 매우 순조로운 과정이었다.
광혈마가 옆에 있는 독각왕에게 말했다.
“독각왕이라고 하셨소? 본인은 광혈마라고 하오. 백소운 저자는 보통 고수가 아니니 독각왕 그대의 힘을 빌리고 싶소. 가능하겠소?”
“물론이오. 하지만 천혈존자와 혈루서생의 복수는 귀교에서 먼저 해야 하지 않겠소?”
“하하하. 이미 교주와 부교주가 유명을 달리했소이다. 독각왕 그대만이 백소운 자자를 죽일 수 있을 것이오. 다시 한번 부탁드리는 바이오.”
“광혈마라고 했소? 소문과 달리 매우 영악하구려. 이번 싸움의 총지휘는 본인이 맡고 있으니, 어서 명을 받드시오.”
“못하겠다면? 본교가 비록 천하일심맹에 가입했으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한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소.”
“광혈마! 교주가 되었다고 맹에서 탈퇴를 하겠다는 것이오?”
“그건 아니오. 하지만 백소운 저자는 이미 최고의 무공이라는 무형검을 익힌 자요. 내 무공으로는 감당하기 힘드오.”
광혈마의 말에 무사들이 술렁였다.
독각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독각수들로 하여금 먼저 시험해보도록 하겠소.”
독각왕이 눈짓을 하자, 독각수 백여 마리가 백소운을 포위했다.
백소운은 물러나지 않고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어차피 제거해야 할 괴수들이다. 한 수에 모조리 죽여야 한다.’
백소운이 공력을 끌어올렸다.
무형금광으로 독각수들을 쓸어버리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독각수들의 기세는 실로 대단했다.
지금까지 백소운이 상대한 괴수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더군다나 백소운은 지금 내상을 입은 상태였다.
‘자칫하면 낭패를 볼 수 있겠구나. 독각수들을 처치해도 독각왕이 남아 있고, 만만치 않은 광혈마 저자도 있다. 아무래도 미리 무사들을 철수시켜야겠구나.’
백소운이 고개를 급히 돌려 백리천에게 말했다.
“맹주님. 지금 바로 무사들을 천마성 안으로 들이십시오. 마교 교주 괴혈공자의 정마동맹 제의는 진심인 것 같으니, 성안으로 들어가면 무사들이 머물 곳을 내줄 겁니다.”
운공요상을 하던 백리천이 흠칫했다.
백소운이 직접 정마동맹을 추천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부맹주는 귀혈공자를 만나보았소?”
“네. 그는 믿을만한 인물이었습니다. 본맹과 마교가 힘을 합쳐 적들을 상대한 후 나중에 서로 평화협정을 맺는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백소운이 말을 하며 무형지기로 독각수들의 도발을 지연시켰다.
자칫 전면전이 벌어지면 무림맹 무사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기에 철수부터 진행하려 한 것이다.
하지만 백리천은 요지부동이었다.
비록 잠력을 너무 무리하게 발동해 당분간 무공을 사용할 수 없게 된 그였지만, 여전히 정마동맹에는 부정적이었다.
“부맹주. 마교 놈들은 믿어서는 안 되오. 차라리 다른 곳으로 철수시키겠소. 천마성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오.”
백리천이 말한 후 옆에 있는 자명선생을 쳐다봤다.
자명선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라도 하시지요. 정마동맹 문제는 나중에 다시 생각해도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부맹주 혼자 저들을 상대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괜찮습니다. 꼭 천마성이 아니라도 무사들을 물려주십시오.”
백소운이 비록 최선은 아니지만 일단 철수를 재촉했다.
하지만 이는 천하일심맹 입장에서는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자신들을 허수아비로 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특히 실질적인 총지휘자인 독각왕은 어이가 없는 표정이었다.
“네놈들이 도망가도록 그냥 내버려 둘 줄 알았느냐? 뭣들 하느냐? 어서 백소운 저놈을 죽여라.”
독각왕의 명이 떨어지자, 독각수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여 머리 위에 난 뿔을 백소운에게 겨눴다.
백소운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소리쳤다.
“어서 무사들을 철수시키십시오.”
“알겠습니다. 모두 철수하라!”
자명선생의 명에 따라 무림맹 무사들이 일제히 철수하기 시작했다.
독각왕이 소리쳤다.
“광혈마! 지옥혈교 무사들로 하여금 명을 내려 놈들을 쫓아 죽이도록 하시오.”
“일단 백소운 저자부터 죽이는 게 우선인 것 같소. 저자만 죽으면 나머지 놈들은 별것 아니니까. 한데 독각수들은 왜 공격을 하지 않는 것이오?”
광혈마가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부터 내심 지옥혈교가 천하일심맹에 가입하는 것을 탐탁지 않아 했던 그였다.
무림맹과 마교도 적대시했지만, 그렇다고 정체도 잘 모르는 지옥맹도 좋아하지 않았던 것이다.
한데 자꾸 지옥혈교 무사들의 희생을 강요하니 절로 반항심이 일어난 것이다.
“광혈마! 죽고 싶은 것이냐? 지금 독각수들은 백소운 저놈과 무형의 대결을 벌이고 있다. 어서 무림맹 놈들을 쫓아라. 안 그러면 네놈을 반역죄로 간주해 처단하겠다.”
“흥! 왜 우리만 쫓으라고 하는 것이오? 사도맹 무사들은 왜 시키지 않는 것이오?”
“사도맹? 좋다. 매 교주도 함께 놈들을 쫓아가시오.”
독각왕의 말에 역시 운공요상을 하고 있던 매사행이 쓴웃음을 지었다.
“나 역시 광혈마와 같은 생각이오. 일단 힘을 합쳐 백소운 저놈부터 죽입시다. 무림맹 놈들이 천마성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 이상 독 안에 든 쥐요. 백소운 저놈을 죽인 후 쫓아가서 처리해도 늦지 않을 것이오.”
“으음······.”
독각왕이 인상을 찌푸렸다.
생각 같아서는 광혈마와 매사행 둘 다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사실 그에게는 그럴만한 권한이 없었다.
자칫 자신 때문에 동맹이 깨어진다면 지옥맹주의 질책을 피할 길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 백소운 저놈부터 제거하는 것이 좋겠다.’
독각왕이 눈을 빛내며 머리에 달린 뿔에 내공을 주입했다.
순간 뿔에서 붉은 광채 같은 것이 뻗어 나오며 백소운을 덮쳐갔다.
쏴아아.
무형공력으로 독각수들의 공격을 저지시키고 있던 백소운으로서는 홍광을 막아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백여 마리의 독각수들의 공격이 바로 개시될 것이었다.
‘영악하구나. 역시 보통 놈이 아니다.’
백소운이 어쩔 수 없이 무형금광을 펼쳤다.
순간, 독각수들도 일제히 뿔을 통해 홍광을 뿜어냈다.
그들이 뿜어낸 홍광은 비록 독각왕의 그것보다 약했으나, 그 총합은 그렇지 않았다.
백 가지 방향으로 뻗어 나간 그 홍광들은 교묘한 진세를 이루었다. 그리고 곧장 백소운의 사혈을 노렸다.
그 와중에 광혈마가 들고 있던 광혈검(狂血劍)을 날린 것은 백소운으로서는 뜻밖의 일이었다.
휘이익.
가볍게 날린 검에는 광혈마의 필생의 공력이 담겨 있었다.
오랜 시간 단련한 무공의 총화가 비로소 펼쳐진 것이었다.
이는 지금이야말로 백소운을 공격할 적기로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일대일로 붙어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광혈마의 결단이었다.
내상을 입은 백소운으로는 설상가상이 아닐 수 없었다.
‘금단방패!’
백소운이 급히 금단방패를 갑주로 바꿔 몸을 보호했다.
그 순간 무형금광과 독각수와 독각왕이 뿜어낸 홍광이 충돌했다.
콰콰콰쾅.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황사벌 전체가 흔들렸다.
처참한 비명이 잇달아 터져 나온 것은 그 직후였다.
바로 독각수들의 비명이었다.
그들의 뿔은 머리와 함께 수박처럼 터져나갔다.
백여 마리 독각수 모두 죽임을 당한 것이다.
무사들이 놀라서 보니 백소운의 복부에는 검이 한 자루 박혀 있었다.
바로 광혈마가 날린 광혈검이었다.
놀랍게도 금단갑주를 뚫고 복부를 상하게 한 것이었다.
“으음······.”
백소운이 비틀거렸다.
순간, 광혈검이 뽑히며 광혈마에게 돌아갔다.
독각왕이 한 걸음 앞으로 걸어갔다.
그는 의외로 별다른 상처를 입지 않은 것 같았다.
검을 날린 광혈마 역시 멀쩡한 모습이었다.
이는 그만큼 독각수 백 마리의 합공이 강한 탓으로, 백소운은 놈들을 죽이는 데 전력을 집중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 내상이 깊어진 것이 문제였다.
‘혈루서생에게 당한 내상이 문제였다. 그자가 익힌 무공은 악마의 무공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백소운이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그가 조금 전 독각왕과 광혈마까지 함께 제거하지 못한 것은 단전 주위에 박힌 혈루 한 방울 때문이었다.
바로 혈루환이었다.
처음에는 어디에 박혔는지 잘 몰랐다가 이번에 공력을 최고조로 발동하면서 드러난 것이었다.
다행히 조금 전 그 혈루환을 몸 밖으로 배출시키는 데 성공했지만, 문제는 지금 그의 몸 상태였다.
급격히 기혈이 흔들리고 있었다.
이대로는 독각왕과 광혈마의 합공을 막아내기가 어려웠다.
“후후후! 백소운 네놈도 이제 끝장이다. 독각수들의 합공은 우리 맹주님도 어려워하시는 것인데 용케 막아낸 점은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네놈의 공격 능력은 이미 소진되었다. 운공요상을 하기 전에 네놈을 죽여주겠다. 광혈마 그대도 합세하시오.”
“알겠소.”
광혈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매사행이 소리쳤다.
“우리도 돕겠소. 장로들은 모두 합세하라.”
“존명!”
사사천교 장로 십여 명이 일제히 백소운을 포위했다.
이렇게 되자 한 곁에서 물러나 상황을 지켜보던 유덕, 정기, 막총, 진하림 네 명도 가만있지 않았다.
“오라버니. 저희도 돕겠어요.”
스스슷.
사대호법이 신법을 펼쳐 백소운 옆으로 왔다.
포위망 속에 스스로 몸을 던진 격이라 사사천교 장로들도 그들을 막지 않았다.
“이러실 필요 없습니다. 어서 몸을 피하십시오.”
백소운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신의 처지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대호법마저 사지로 몰수는 없었다.
“운아. 그게 무슨 소리냐? 우리는 생사를 함께 한 사이가 아니냐? 절대 너를 혼자 두고 우리만 떠날 수 없다.”
“감사합니다.”
백소운이 잠력을 발동시켰다.
후유증이 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그게 최선이었다.
한편 막총은 그 와중에 사사천교 장로 중 한 명을 보고 분노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신을 모함하고 사랑하는 여인을 죽음으로 몬 사사천교 부총관이 바로 그였기 때문이었다.
부총관 자리에서 물러나 지금은 장로가 된 것 같았다.
그 역시 막총을 알아보고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후후후! 네놈이 여기 있었구나. 잘 되었다. 함께 죽여주마.”
“죽어야 할 놈은 바로 네놈이다!”
막총이 검을 겨누었다.
하지만 원수를 죽일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 그에게 있을 리 없었다.
백소운이 막총에게 물었다.
“막 아저씨. 이전에 말씀하신 그 원수가 바로 저자입니까?”
“그렇다. 오늘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구나.”
“그렇군요.”
백소운이 말을 한 후 지풍을 날렸다.
내공이 조금 모인 것을 가지고 금단지를 펼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지풍은 바로 그 이전 부총관의 이마에 적중했다.
“크윽!”
이마에 구멍이 뚫린 그가 비명과 함께 비틀거렸다.
하지만 곧바로 죽지 않고 다가와 검으로 막총의 목을 베려 하는 게 아닌가.
막총이 기합과 함께 그의 목을 벤 것은 그 직후였다.
비록 백소운의 도움을 받았지만, 원수를 갚은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