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164
“네놈이! 어서 저놈들을 모조리 죽여라!”
매사행이 분노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하지만 사사천교 장로들은 광혈마와 독각왕 두 사람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주저하고 있었다.
괜히 먼저 공격했다가 백소운에게 당해 몰살될 우려가 컸기 때문이었다.
이를 아는지 매사행도 더는 재촉하지 않았다.
만악선생이 말했다.
“교주님. 서두를 필요 없습니다. 백소운 저놈은 지금 중상을 입었습니다. 지혈이 되지 않고 있으니 시간은 우리 편이지요.”
“그렇군.”
매사행이 백소운의 복부 상처를 보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아니나 다를까.
광혈검에 당한 상처에서는 계속해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이는 광혈검에 묻은 특수독 때문이었다.
비록 백소운의 신체 특성상 중독은 못 시켰으나 지혈은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백소운 또한 그 점을 알고 있었다.
‘최소한 일각은 지나야 지혈이 될 것 같구나. 하지만 출혈이 너무 심하다. 연계공력이 약해서이지만 금단갑주까지 뚫릴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어떻게 보면 광혈마 저자가 독각왕보다 고수다.’
백소운이 천천히 내기를 다스렸다.
하지만 임시방편이라 좀처럼 기혈을 안정시키지 못했다.
한편 광혈마와 독각왕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공격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들이 고민하고 있는 것은 좀 더 기다리는 것이 유리할까 하는 점이었다.
백소운이 완전히 기진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최후의 공격을 가하다면 깨끗하게 승부를 낼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두 사람 모두 서로 공격을 미루고 있었다.
비록 조금 전 격돌로 겉으로는 아무 충격도 받지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강한 충격을 받았다.
한번 더 공격을 가하다가 실패하면 자신들도 당할 우려가 있는 것이다.
독각왕이 광혈마에게 전음을 날렸다.
「광혈마. 그대가 먼저 공격하시오. 그러면 내가 놈의 빈틈을 노려 숨통을 끊어놓겠소. 그대의 광혈검이 놈에게 통하는 것 같으니 어서 서두르시오.」
「함께 공격하는 게 어떻겠소? 놈이 잠력을 발동한 것 같으니 나 혼자서는 무리요. 굳이 선공이 필요하다면 사사천교 장로들에게 시키는 것이 어떻겠소?」
「지휘권은 본인에게 있소. 사사천교 장로들에게도 지시를 내릴 테니 그들과 함께 공격을 가하도록 하시오. 그것만이 놈을 확실하게 죽일 수 있는 길이오.」
「알겠소. 사사천교 장로들이 출수하면 곧바로 나도 따르겠소.」
광혈마가 마지못해 승낙했다.
독각왕이 사사천교 장로들에게 전음으로 지시를 내리자, 합공이 시작되었다.
동료를 잃어 분노하고 있던 사사천교 장로 십여 명이 일제히 공격을 개시했다.
슈우욱.
쏴아아아.
백소운과 사대호법을 향해 검과 장세가 물밀 듯이 쏟아졌다.
유덕, 정기, 막총, 진하림 네 사람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공격이었다.
백소운이 막아주지 않으면 몰살당할 우려가 컸다.
그때였다.
약속대로 광혈마가 다시 광혈검을 날렸다.
백소운으로서는 두 공격 중 한 가지를 먼저 선택해 막아야 할 처지였다.
하지만 광혈검을 먼저 막게 되면 유덕, 정기 등의 목숨이 위태로웠다.
반대로 사사천교 장로들의 공격부터 막게 되면 자신이 위험했다.
물론 이전 같으면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상이 깊은 상태였다.
‘어렵구나.’
백소운이 안색을 굳혔다.
사실 그가 걱정하고 있는 것은 아직 개시되지 않은 독각왕의 공격이었다.
무리를 해서 사사천교 장로들과 광혈마의 공격을 함께 막아냈을 때 생기는 빈틈에 대한 대비가 부족한 것이다.
그리고 그 부족은 자신의 패배를 의미했다.
여기서 패배는 곧 죽음이라 할 수 있었다.
‘이대로 끝이란 말인가. 그동안 내가 익힌 무형검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았던가. 분명 더 강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백소운이 문득 자신의 무공에 대한 회의를 느꼈다.
그때였다.
상태창의 목소리가 들렸다.
상태창의 조언은 매우 단순했다.
깊은 무리가 담긴 것이 아니라 일종의 격려 성격이 짙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무형검에서 가장 중요한 점인 마음의 평정이 담겨 있었다.
‘초월심이라. 그렇다. 지금까지 나는 무형검의 외면에 너무 치중했다. 최대한 빨리 무형검의 최고 단계인 지성에 도달하기 위해 서둘렀던 것이다. 그 점이 오늘 허점을 보였고, 지금 이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다.’
백소운이 눈을 감았다.
합공이 시작되어 일촉즉발의 위험이 닥쳤지만, 오히려 그것을 무시한 것이다.
백소운이 다시 천천히 무형검의 논리에 대해 생각했다.
‘형식을 벗어난 것을 무형이라 한다. 무형검은 이처럼 형식에 매이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형식은 내공까지 포함한다. 하지만 나는 아직 내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여전히 내공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내공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비로소 진정한 무형검의 길에 들어서는 것이다. 그 길은 평탄한 것이 큰길과 같다. 일단 그 길에 들어서면 멀어서 도달하지 못할 것이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아직 진정한 무형검의 문에 들어서지 못한 것이 아닐까. 이는 구슬 상자에서 상자만 사고 구슬을 돌려보내는 것과 같다. 무형검이란 상자에 구슬을 담아야 진정한 무형검의 경지에 오른 것이 아닐까. 초심으로 돌아가자. 그 무엇에도 의지하지 않는 그 마음으로. 그것이 바로 나 자신을 이기는 길이다.’
백소운이 깨달음을 향해 전진했다.
그것은 매우 자연스러웠다.
어느 순간 마음이 지극히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렇다. 나 자신에게서 스승을 구할 수 있다. 지금까지 익힌 무형검의 법문 또한 모두 그 진정한 스승을 만나기 위해서 필요한 방책이었다.’
백소운이 천천히 눈을 떴다.
바른 깨달음, 즉 정각(正覺)에 한 걸음 다가선 그였다.
그것은 바로 진정으로 무형검의 문에 들어섰음을 의미했다.
‘이제 겨우 무형검의 초입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겠구나.’
백소운이 신비한 미소를 지었다.
복부 출혈은 멈췄으며 놀랍게도 상처까지 완전히 아물어 있었다.
다만 그동안 많이 올랐다고 생각한 무형검의 단계는 초보 상태로 내려왔다.
하지만 그 위력은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백소운은 그제야 최후의 상대로 생각하고 있던 지옥악마신과도 겨룰 수 있다는 자신감이 느껴졌다.
백소운이 다시 정면을 보니 사사천교 장로들과 광혈마가 펼친 공격이 거세게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아까보다 그렇게 진척된 것 같지가 않았다.
‘모든 것이 찰나였구나.’
백소운이 안도하며 왼손으로 원호를 그렸다.
순간 금빛 동심원이 생겨남과 동시에 빠르게 확장되며 모든 공격을 막아냈다.
꽈아아앙.
폭음과 함께 비명이 터져 나왔다.
“크윽!”
“아악!”
사사천교 장로들의 처절한 비명이었다.
그들은 반탄력으로 인해 온몸이 가루가 되어 흩어지고 있었다.
광혈마 역시 마찬가지였다.
백소운을 향해 날렸던 광혈검은 먼지가 되었다. 그 자신 역시 반탄력으로 인해 온몸이 찢겨나가고 있었다.
“믿을 수······ 없다.”
광혈마가 마지막 한 마디를 남기고 절명했다.
그때였다.
독각왕이 소리쳤다.
“모두 철수하라!”
하지만 그 역시 무사하지 못했다.
백소운이 지풍을 날려 그의 이마에 구멍을 냈기 때문이었다.
“크윽!”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하고 독각왕이 절명했다.
졸지에 우두머리를 잃은 천하일심맹 무사들이 혼란에 빠졌다.
만악선생이 급히 말했다.
“교주님. 놈의 기세가 너무 강합니다. 일단 철수하는 게 좋겠습니다. 지옥맹주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놈을 죽일 자는 그뿐입니다.”
“그러는 게 좋겠소. 나 역시 내상이 깊으니······ 모두 철수하라!”
매사행의 명이 떨어지자, 사도맹 무사들이 일제히 물러나기 시작했다.
지옥혈교 무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옥혈교 고수 중 가장 나이가 많은 태상봉공 천밀노야(天密老爺)란 자가 지휘권을 승계해 철수 명령을 내린 것이다.
백소운은 도주하는 그들을 공격하지 않았다.
순간적인 깨달음으로 위기를 모면했지만, 아직 반석 같은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그에게는 오늘의 깨달음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 시간이 필요했다.
‘무리해서 쫓아갈 필요는 없겠지.’
백소운이 그 자리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운공요상에 들어갔다.
유덕, 정기, 막총, 진하림 역시 그의 뜻을 알고 주위에서 호법을 섰다.
시간이 점점 흘러갔다.
* *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백소운의 운공요상은 해 질 무렵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외상은 새로운 깨달음으로 인해 바로 완치되었지만, 내상 회복에는 제법 시간이 걸린 것이다.
“오라버니. 이제 괜찮으세요?”
진하림이 싱긋 웃으며 물었다.
위험한 고비를 넘겼기 때문일까.
그녀뿐만 아니라 유덕, 정기, 막총 세 사람도 한시름 놓은 표정이었다.
“괜찮다. 저 때문에 다들 쉬지도 못하신 것 아닙니까?”
“아니다. 우리는 다치지도 않았는데, 뭐 그리 요양할 게 있겠느냐? 그래도 돌아가면서 운기조식을 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한데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냐?”
유덕의 물음에 백소운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선택지는 마교 총단으로 돌아가는 것과 무림맹 진영을 찾아 정마동맹을 다시 설득하는 것 정도였다.
“글쎄요. 일단 총단으로 돌아가서 총군사를 만나봐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총단을 비운 동안 무슨 일이 생겼는지 모르니까요.”
“별일이야 있겠느냐? 다만 놈들이 이대로 물러가지 않을 것 같아 그게 걱정이다. 지휘부 고수 몇 명을 제거했다고 해서 놈들의 전력이 약해진 것도 아니니 말이다.”
“맞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지옥맹주를 직접 제거한다면 말이 달라지지요. 어쩌면 오늘을 기점으로 지옥맹주가 나머지 세력들을 흡수하려 할지도 모르겠군요.”
“지옥맹이 사도맹이나 지옥혈교, 천룡궁을 흡수하려 한다는 말이냐?”
“네. 천룡궁은 모르겠지만 사도맹과 지옥혈교는 그럴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사실 그 때문에 놈들이 도주하는 것을 그대로 둔 점도 있습니다.”
“놈들이 자중지란을 일으키는 것을 염두에 뒀다는 말이냐?”
“네. 그렇게 되면 옥석이 가려질 것이고, 불필요한 살상도 줄일 수 있게 될 겁니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습니다.”
“다른 곳이라니? 혹시 지옥맹을 말하는 것이냐?”
“물론 지옥맹도 문제이긴 합니다. 하지만 더욱 큰 문제는 지옥맹의 배후에 있는 지옥악마신입니다. 놈은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 신급이라 할 수 있기에 대비해놓지 않으면 큰일날 것 같습니다.”
“신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군. 하지만 신이라 해도 고작 한 명뿐이 아니야?”
“한 명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전해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지옥악마신 같은 신급 고수가 백 명 정도나 된다고 했으니까요.”
“으음,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만약 지옥맹 같은 가공할 단체마저 백 개가 넘는다면 정말 감당이 되지 않을 듯하구나. 그래 대비책은 있느냐?”
유덕이 질문을 던지며 안색을 굳혔다.
그가 지금 해줄 수 있는 일은 이렇게 질문을 던져 백소운의 생각을 정리시켜 주는 것이었다.
“네. 지금으로서는 천마탑의 비밀을 파헤치는 것이 필요할 듯합니다. 놈들이 천마시에 대해 집착을 보이는 것을 보아 그것이 약점이 아닌가 합니다. 물론 천무시도 찾아서 두 열쇠를 함께 모아 비밀을 풀어야겠지요.”
“그렇군. 그럼 어서 총단으로 돌아가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도록 하자. 우리도 힘닿는 데까지 돕겠다.”
“네. 바로 출발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