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167
‘정말 끝이 없구나. 하루 종일 걸었지만, 장애물도 없고 숲만 계속되고 있다. 고작 일 층에서 이렇게 헤매다니······.’
백소운이 한숨과 함께 평평한 바위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최대한 빨리 십팔 층까지 돌파하려 했던 처음의 의도와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하기야 돌파를 하려면 뭔가 장애물이 나타나야 하는데 그런 게 없었다.
보이는 것은 끝없는 숲뿐이었다.
허공으로 몸을 띄워 멀리 내다봤지만 마찬가지였다.
진법으로 이루어진 세계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막막하기 짝이 없었다.
‘벌써 하루가 지났으니 외부 무림인들이 들어올 때가 되었다. 아니 저것은?’
백소운이 깜짝 놀라며 전방에 있는 큰 바위 하나를 봤다.
한데 그것은 바로 처음 천마탑 안으로 들어왔을 때 봤던 그 바위가 아닌가.
바위에는 천마의 글이 그대로 적혀 있었다.
바로 천마탑주가 되면 모든 것을 차지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결국 처음 자리로 돌아왔다는 말이구나. 미로라고 생각은 했었지만 이렇게 시간만 허비할 줄이야.”
백소운이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그나마 수확이라면 원래 자신이 가지고 있던 공력을 모두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천마무 때문에 순수 무형공력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던 것에 제한이 풀린 것이다.
이는 천마탑으로 오면서 알게 모르게 천마무에 조금 중독이 되었던 것을 운기로 해독한 결과였다.
하지만 가장 먼저 천마탑에 들어온 이점이 모두 사라졌기 때문에 상심이 더 컸다.
그때였다.
양 사방에서 금빛이 발출 되면서 우려한 일이 벌어졌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무림인들이 공간을 뚫고 나타난 것이다.
그것은 백소운 자신이 이곳에 들어왔을 때와 똑같았다.
한데 사람들의 수가 너무 많았다.
칠십만 정도의 무사들이 한꺼번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바로 천하일심맹 무사 사십만과 마교 이십만, 그리고 무림맹 십만 무사들이었다.
물론 천하일심맹은 지옥혈교, 사도맹, 천룡궁, 지옥맹을 모두 합친 숫자였다.
그나마 마교 무사들이 이십만이나 된 것은 천마대회 때문에 천하 각지의 마도맹 무사들이 대거 모인 결과였다.
대회는 끝났지만 대부분 돌아가지 않고 총단에 있다가 이렇게 함께 들어온 것이다.
특히 무림맹 무사 수가 원래대로 십만이 된 것은 인근 정파 무림인들이 뒤늦게 대거 모여들었기 때문이었다.
“교주님!”
“교주님!”
마교 무사들이 가장 먼저 백소운을 발견하고 무릎을 꿇었다.
그들 역시 천마탑 안으로 들어와 낯선 환경에 놀랐다. 하지만 그보다는 백소운을 발견한 반가움이 더 컸다.
“어떻게 된 것이오?”
백소운의 물음에 진하림이 급히 설명을 해주었다.
“천마음 때문에 이곳 천마곡에 천마탑이 있는 것이 알려졌어요. 그래서 천마성 안팎에 있던 모든 세력이 집결하는 상황이 되었어요. 충돌 직전까지 갔으나, 일단 천마탑 안에 들어갈 때까지는 휴전하기로 해 이곳까지 오게 된 거예요. 독 안개가 걷히자마자 경쟁적으로 천마탑까지 왔는데, 천마탑의 대문이 열리는 순간 붉은 광채가 뻗어 나와 우리를 전부 이곳을 끌고 온 거예요. 대체 여기가 어디죠?”
“이곳은 천마탑 안으로 일종의 환상 진법이라 할 수 있다.”
백소운이 진하림을 비롯한 사대호법과 임소혜, 천마대부인과 인사를 나눴다.
물론 그러면서도 천하일심맹과 무림맹 무사들에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들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두 패로 나뉘어 있었다.
놀라운 것은 천마탑 일층의 환경이 그새 또 변했다는 점이었다.
인원이 많아지자 백만 명도 수용이 가능한 광장이 조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전방에 있는 광활한 숲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그대가 마교 교주 귀혈공자요?”
무림맹주 백리천의 물음이었다.
과도한 잠력 발동으로 인한 후유증 때문인지 안색이 창백해 보이는 그가 백소운을 발견한 것이다.
“그렇소이다. 귀하는 무림맹주 백리천이오?”
백소운이 담담히 물었다.
천하일심맹 무사들은 상대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일단 무림맹 무사들을 우군으로 포섭해야 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이곳에서 전면전을 벌이면 모두에게 큰 피해를 가져오기 때문이었다.
“그렇소. 귀하에 대해선 많은 이야기를 들었소. 한데 이곳이 정말 천마탑 안이오?”
“그렇소이다. 일종의 환상진법 같은데 저기 있는 바위에 적힌 글을 보면 대강 알 수 있을 것이오.”
백소운이 천마의 글이 적힌 바위를 가리키자 군웅들 모두가 쳐다봤다.
천하일심맹 무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천마의 글이다!”
“십팔 층을 모두 통과해야 천마탑주가 될 수 있구나.”
“기관을 돌파해야 한단 말인가.”
칠십만 무사들이 웅성거리자, 그 소리는 천둥과도 같았다.
“모두 조용히 하시오!”
가공할 내공이 담긴 목소리에 사람들이 입을 닫고 목소리의 주인공을 쳐다봤다.
그는 풍채가 좋은 한 노인이었다.
“저자가 지옥맹 부맹주예요.”
진하림이 급히 백소운에게 알려주었다.
백소운이 지옥맹 부맹주에게 집중한 것은 물론이었다.
그와 함께 십만에 달하는 지옥맹 무사들도 봤다. 고수들을 제외한 일반 무사들의 눈빛이 흐릿했다.
‘일반 무사들은 원래 지옥맹 무사들이 아니다. 이전 실혼인처럼 이곳 강호에서 수하로 만든 자들 같구나. 하지만 괴수들은 진짜인 것 같다. 한데 지옥맹주는 오지 않고 부맹주가 왔구나.’
백소운이 지옥맹 부맹주 주위에 있는 각양각색의 괴수들을 보며 눈을 빛냈다.
괴수들의 수는 일만 정도였다. 괴수왕으로 보이는 놈들도 수십 명 가량 되었다.
놈들의 힘을 고려할 때 가공할 숫자였다.
지옥맹 부맹주 옆에 있던 지옥대공자가 말했다.
“숙부님. 어떻게 하실 겁니까? 천마탑 안으로 들어왔으니 일단 무림맹과 마교 놈들을 죽이시지요.”
“아직 때가 아니다. 곧 장애물이 나타날 것이니, 일단은 각자 활로를 모색한 후 싸움은 나중에 해야 한다. 우리가 이곳에 들어온 진짜 목적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네. 천마시를 반드시 찾아낼 겁니다.”
지옥대공자가 결의에 찬 눈빛을 보였다.
공개적으로 천마시를 언급한 것은 자신감의 발로였다.
그리고 천마시를 확보하는데 방해되는 자는 모조리 죽이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지옥맹 부맹주 지옥대군(地獄大君)이 말했다.
“귀혈공자! 조금 전 이야기를 들어서 알겠지만, 천마곡에 들어오면서 우리는 귀교와 무림맹 두 곳과 일시 휴전을 맺었소. 한데 정작 휴전이 필요한 것은 지금부터인 것 같소. 내 생각에 최후 십팔 층에 도착할 때까지 휴전을 이어갔으면 하오. 어떻게 생각하시오?”
“휴전이라······.”
백소운이 주저하자, 휴전의 당사자 중 한 명인 백리천이 먼저 말했다.
“우리 무림맹은 찬성이오. 아까도 말했지만 본맹이 천마탑에 들어온 것은 이곳에 본맹의 선대 고수분들이 남긴 비급이 있다는 소문 때문이오. 천마가 모은 우리 정파 비급들인데, 그것들은 본맹의 유산이니 반드시 찾아갈 것이오. 물론 천마가 남긴 비급 또한 먼저 찾는 사람이 임자이니 확보할 생각이오.”
“흥! 천마 대종사님이 남긴 비급은 본교의 유산이에요. 그 외 이곳 천마탑에 있는 모든 것은 본교의 것이니, 욕심낼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임소혜의 반박이었다.
그녀는 성녀로서 할 말을 한 셈이었다.
“좋소. 모든 비급은 먼저 찾는 사람이 임자인 것으로 합시다.”
백리천이 한발 물러났다.
백소운이 말했다.
“휴전에 동의하오. 한데 지옥맹주는 어디 계시오?”
“맹주께서는 급한 일이 생겨 중요한 곳으로 가셨소.”
“어디 말이오? 신선계로 간 것이오?”
“으음, 귀혈공자 그대도 신선계를 알고 있소?”
“물론이오. 한데 지금 보니 사도맹과 지옥혈교의 지휘부 고수들이 보이지 않는 구려. 어떻게 된 것이오?”
“하하하. 눈썰미가 대단하군. 잘 보셨소. 지옥혈교는 교주와 부교주, 그리고 태상교주까지 모두 죽어 우리 지옥맹 휘하로 들기로 했소. 그 과정에 몇몇 고수들을 숙청했소. 천밀노야! 내 말이 맞소?”
“네. 부맹주님. 우리 지옥혈교는 이제 지옥맹 휘하 문파로 충성을 다할 것입니다.”
“고맙소. 아, 그리고 사도맹 역시 본맹 휘하로 들어왔소. 사도맹주이자 사사천교주인 매사행이 반대했으나 내 손에 죽었지. 만악선생! 내 말이 맞소?”
“네. 부맹주님. 우리 사도맹은 이제 지옥맹 휘하 세력으로 충성을 다할 겁니다.”
사사천교 총군사 만악선생의 말이었다.
물어보지 않아도 그가 매사행을 배신하고 지옥맹에 붙은 것이 틀림없었다.
백소운이 인상을 찌푸렸다.
사도맹이 비록 적이기는 했으나 이렇게 갑자기 주군을 배신하는 행태가 좋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매소청 소저는 어떻게 되었소?”
“교주께서 매소청 그 계집도 아시오? 그 계집은 아비를 잃고 미쳐서 어디론가 사라졌소. 그래도 목숨만은 부지했으니 다행한 일이라 할 것이오.”
“만악선생! 그대는 매사행을 따르던 사람으로 부끄럽지도 않소?”
백소운이 나무라자, 만악선생이 껄껄 웃었다.
“하하하. 그게 무슨 소리요? 나는 우리 사도맹 무사들을 살리기 위해 지옥맹에 협조한 것이오. 매사행은 너무 독선적이라 대세를 거부했소. 그의 죽음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소. 그 이야기는 그만합시다. 어차피 마교 역시 본교와 비슷한 처지가 될 테니까.”
“알겠소. 하지만 모든 것은 심는 대로 얻게 되는 법이오.”
백소운이 담담히 말한 후 이번에는 천룡궁주 종리붕을 쳐다봤다.
“천룡궁은 그래도 궁주가 살아있구려.”
“귀혈공자. 지금 본궁을 비꼬는 것이오? 우리 천룡궁은 지옥혈교와 사도맹과는 다르오. 당연히 독립적으로 활동할 것이오. 다만 당분간은 약속대로 천하일심맹의 일원으로 행동할 것이오. 더 이상 분란을 조장한다면 가만있지 않겠소.”
“알겠소. 자, 그럼 이제 모든 세력의 의사를 확인했으니 각자도생하도록 합시다. 그렇게 하면 되겠소?”
“물론이오. 하지만 다시 말하지만 십팔 층에 도달하면 휴전은 자동적으로 깨지는 것이오. 명심하시오.”
지옥대군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여유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 천마탑의 기관들에 대해 제법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들 말은 안하지만 휴전이라는 것도 상황이 나빠지면 언제든 깨질 수 있는 것이었다.
백소운이 눈을 빛냈다.
‘뭔가 불길하다. 지옥맹주가 오지 않은 것도 그렇고. 하지만 임시 휴전은 나 역시 내심 바라는 바였으니 거절할 이유가 없지. 아무래도 임기응변할 수밖에 없겠구나. 문제는 아무 변화가 없는 미로와 같은 이곳인데, 뭔가 변화가 있을 것도 같구나.’
백소운이 잠시 생각에 잠겨 있을 바로 그때였다.
군웅들을 향해 붉은색 구름이 한 가닥 다가왔다.
사람들의 이목이 모두 구름에 쏠린 것은 물론이었다.
지옥대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천마탑을 관리하는 천마집사(天魔執事)가 오는 것 같군. 인원이 차야 나타난다고 하더니 그 말이 사실인 것 같군. 귀혈공자 그대가 지금까지 헛수고한 것으로 아는데, 우리가 안 왔으면 어떻게 할 뻔했소? 하하하!”
“그렇소?”
백소운이 안색을 조금 굳혔다.
지옥대군의 비꼬는 말에 기분이 상한 게 아니라 그보다 정보력이 약하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천마탑 안으로 들어오면서부터 상태창과의 연결이 끊어졌다.
숲속을 헤맬 때 몇 번이나 상태창을 불렀지만 아무 대답이 없었다.
한데 드디어 안내자랄 할 수 있는 천마집사가 나타난 것이다.
구름 위에 타고 있는 천마집사의 모습은 마치 유령과도 같았다.
반원형의 몸을 갖고 있는 그는 팔다리도 없었다. 다만 눈, 코, 입 등 얼굴 형태만 대충 갖추고 있었다.
천마집사가 군웅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후후후! 천마탑으로 온 것을 환영한다. 나는 탑 관리를 맡고 있는 천마집사라고 한다. 이미 한번 죽은 몸이나 탑 관리를 위해 이렇게 혼이 붙어 있는 셈이지. 자, 이제 뭐든지 물어봐라. 죽고 나서 억울하다고 하지 말고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