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168
“천마집사님. 저는 지옥맹의 부맹주 지옥대군이라고 합니다. 십팔 층까지 올라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그 규칙을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지옥대군의 물음에 천마집사가 껄껄 웃었다.
“하하하. 공손해서 좋군. 건방진 놈이 있으면 대갈통을 깨트려 주의를 주려 했는데, 처음부터 지옥대군 그대가 물어보니 기분이 좋구나.”
“저를 알고 계셨습니까?”
“물론이다. 내 비록 이곳 천마탑에 오래도록 있었으나 천하의 정세에 대해 웬만한 것은 다 알고 있다. 게다가 지옥맹이라면 주신으로 지옥악마신을 모시는 곳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지옥신전에 지옥악마신을 모시고 숭배를 하고 있지요.”
“역시 그랬었군. 신선계에 있다가 최근 강호로 거점을 옮긴 것인가?”
“네. 모르는 것이 없으시군요.”
“당연하지. 그대는 안목이 대단하군. 지옥맹주가 직접 왔다면 좋았으련만.”
“맹주께서도 애석하게 생각하고 계실 겁니다. 제가 대신해서 죄송스럽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죄송할 것은 없지. 그래 천마시 때문에 왔는가?”
“네. 어떻게 하면 천마시를 확보할 수 있겠습니까?”
“그야 십팔 층의 관문을 모두 통과해 천마탑주가 되면 가능하지. 그리고 규칙의 적용은 매우 공정할 것이다. 그러니 내 환심을 사서 특혜를 받을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야.”
“여부가 있겠습니까? 어서 설명을 해주십시오.”
지옥대군의 말에 천마집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겠지. 일단 절차부터 설명하겠다. 이미 짐작하고 있겠지만 각층마다 기관이 설치되어 있다. 그 기관은 지금 탑 전체에 설치된 환상진법과 동일한 것으로, 첫 가동은 나만이 할 수 있다. 내가 가동을 하지 않으면 이곳 일 층에서 끝없이 방황하게 되어 있지. 벌써 한 명이 하루 동안 헤매다가 원래 자리로 돌아왔을 것이다. 그게 바로 너였지?”
천마집사가 백소운을 쳐다봤다.
“그렇소.”
“네가 마교 교주냐?”
“그렇소.”
“이놈! 말하는 모양이 매우 방자하구나. 마교 교주라고 해서 좀 봐주려고 했는데, 이렇게 건방질 줄이야. 내 비위를 거스르면 관문 돌파를 하기 전에 죽여 버리는 수가 있다.”
“······.”
백소운이 담담히 미소 지었다.
별 말은 하지 않았지만 천마집사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임소혜가 말했다.
“저는 마교 성녀 임소혜라고 합니다. 천마탑의 주인이셨던 천마님은 본교의 초대교주님이십니다. 한데 우리를 대하는 것이 왜 이렇게 야박하십니까? 천마탑은 본교의 유산입니다. 따라서 그 유산을 승계할 자격이 있는 분 중 최고는 바로 우리 교주님이십니다. 바라건대 우리 교주님을 무시험 통과시켜 그 계승을 하게 해주십시오.”
“하하하. 무슨 개뼈다귀 같은 소리냐? 천마께서 마교 초대교주였던 것은 사실이나, 이곳 천마탑은 마교와 아무 관계가 없다. 설령 관계가 있더라도 누구라도 특혜를 줘서는 안 된다는 게 천마님의 뜻이었다. 나는 인간이었을 때 천마님의 비밀호법으로서 그분의 뜻을 거역할 수 없다. 그 정도만 알고 있어라.”
“네.”
임소혜가 얼굴을 붉혔다.
그녀 또한 별 소득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천마집사가 말했다.
“잠시 후 내가 첫 기관을 발동시킬 것이다. 그리고 누구라도 일층 관문을 돌파하면 즉시 다음 층 기관이 자동 발동하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각 층으로 상승하게 되는 것은 개인별로 적용되며 상승계단을 밟고 올라가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게 해서 최후 십팔 층 관문까지 모두 통과하면 천마님이 남긴 유물들을 볼 수 있는 석실이 나타날 것이다. 질문 있는 사람은 해도 좋다.”
“천마탑주가 탄생하게 되면 나머지 사람들은 어떻게 되나요? 탑에서 나갈 수 있나요?”
질문을 던진 사람은 바로 진하림이었다.
“좋은 질문이다. 탑주가 탄생하면 모든 기관은 정지한다. 물론 유물이 있는 석실의 문도 닫혀 다른 사람은 절대 안으로 들어갈 수 없지. 탑주가 유물을 얻고 석실에 나있는 출구로 나가면 천마탑은 사라진다. 그렇게 되면 탑 안에 있던 사람들도 모두 밖으로 나가게 될 것이다. 물론 그전에 얼마나 살아있을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천마검이 없는 한 탑 안에 들어온 모든 사람은 일 층부터 시작해야 한다.”
“천마검? 우리 교주님께서 지금 천마검을 갖고 계시잖아요? 못 보셨어요?”
“그게 정말이냐?”
천마집사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것 같은 그가 처음으로 당혹한 표정을 지은 것이다.
그가 백소운에 허리에 달려 있는 검을 가리켰다.
“그게 정말 천마검이냐?”
“그렇소.”
백소운이 천마검을 천천히 뽑았다.
순순히 천마검을 보여준 것은 불필요한 희생을 막기 위해서였다.
자신이 아무리 빨리 최후 석실로 들어가 유물을 취한다 해도 그동안 벌어질 살상은 막을 길이 없었다.
“아! 정말 천마검이구나. 정작 말씀하시지 그랬습니까?”
천마집사가 허리를 숙여 백소운에게 예를 표했다.
백소운이 당황한 것은 물론이었다.
첫 대면에서 자신을 좋지 못하게 봤던 그였기에 더욱 그랬다.
“천마검의 주인은 바로 십팔 층에 드실 수가 있습니다. 쉽게 말해 예선을 무시험으로 통과하는 셈이지요. 하지만 가장 힘든 관문이 바로 십팔 층이기에 방심해서는 안 될 겁니다. 조금 전의 무례를 용서해주시겠습니까?”
“용서는 무슨. 오해가 풀렸다면 다행이오. 마음에 두지 마시오.”
“감사합니다. 어서 저를 따라오십시오. 바로 십팔 층으로 모셔드리겠습니다.”
“그래도 되겠소?”
백소운이 주저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내심 처음부터 천마집사를 의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이 모든 것이 지옥맹주나 지옥악마신의 음모라고 생각했었다.
한데 지금 보니 그것은 아닌 것도 같았다.
그렇게 백소운이 잠시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지옥대군이 이의를 제기했다.
“집사님. 저희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저자를 십팔 층으로 바로 보내주는 것은 너무나 불공평합니다.”
“그것이 탑의 규칙이다. 지금부터 불만을 터뜨리는 자는 대갈통을 부숴주겠다.”
“흥! 허깨비 같은 놈이!”
누군가 천마집사를 비난하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이 놀라서 보니 그는 바로 사사천교의 총군사인 만악선생이었다.
“네놈이 돌았느냐?”
천마집사가 어이없어했다.
하지만 만악선생은 위축되지 않았다.
“모두들 저 허깨비 같은 놈에게 속으면 안 됩니다. 놈은 귀혈공자 저놈과 짜고 우리를 이곳에 묶여 두려는 겁니다. 분명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저 두 놈은 서로 상의를 했을 겁니다. 천마검을 한눈에 알아보지 못했다는 게 말이 됩니까? 그리고 천마탑의 주인이었던 천마는 초대 마교 교주였습니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천마집사 저자가 마교를 돕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차라리 저놈을 죽이고 정정당당히 기관을 돌파하는 것이 나을 겁니다.”
“미친놈이었군.”
천마집사가 입을 벌려 침을 뱉었다.
그러자 침이 그대로 날아가 만악선생의 이마에 적중했다.
“으윽!”
만악선생이 비명과 함께 그대로 절명했다.
비록 머리가 터지지는 않았지만 이마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채 죽은 것이다.
천마집사가 말했다.
“다시 말하지만 탑 안에서는 내가 천하무적이다. 탑이 사라지면 나 또한 소멸하여 자연으로 돌아갈 것이지만, 새로운 탑주가 탄생할 때까지 규칙을 깨트리는 자는 죽는다. 내 심기를 거스르지 마라. 나는 이제 인간도 아니니까 날 시험하지 말도록. 귀혈공자님. 천마검을 제게 주시겠습니까? 만전을 기하기 위해 정식으로 살펴본 후 진품임을 확인시켜드리겠습니다.”
“천마검 말이오?”
백소운이 의아해했다.
문득 다시 의심이 든 것이다.
하지만 천마집사가 자신을 대우해주고 있는 마당에 내색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천마집사의 성격이 괴팍하기 그지없지 않은가.
‘나 혼자 무시험으로 십팔 층에 가서 관문 하나만 통과한다면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다. 무림맹과 마교 무사들이 탑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면 모르겠지만, 괜히 의심을 해 심기를 거스른다면 잘못될 수 있다.’
백소운이 결단을 내리고 천마검을 천마집사에게 주려는 순간.
탑 안에 들어온 순간부터 불통이 되었던 상태창의 목소리가 들렸다.
‘왜지?’
백소운이 급히 의념으로 그 이유를 물었다.
하지만 다시 문제가 생겼는지 상태창의 답변은 없었다.
‘곤란하게 되었군. 하지만 경고를 무시할 수는 없지.’
백소운이 표정을 담담히 하며 말했다.
“천마검은 십팔 층에 도착하면 그때 드리겠소. 어서 갑시다.”
“절 못 믿는 겁니까?”
천마집사가 인상을 찌푸렸다.
원래 허깨비 같은 모습이었지만 인상을 찌푸리니 제법 험악했다.
“아무리 천마검의 주인이라 하셔도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제가 검을 빼앗아갈 것으로 생각하시는 겁니까? 아까도 말했지만 저는 탑 안에서는 천하무적이라 강제로 빼앗을 수도 있습니다.”
“그건 아니오. 하지만 검의 진위는 모두가 인정하고 있는 게 사실이 아니오?”
“과연 그럴까요? 물론 겉으로 봐서는 완벽합니다. 사실 이런 말씀까지는 드리지 않으려고 했는데, 천마검은 원래 천마님의 유물이 있는 최후 석실, 즉 천마석실에 있던 겁니다. 어디서 입수하셨는지 모르겠지만 가짜일 가능성도 있다는 말입니다. 젠장, 처음부터 살펴보자고 했으면 순순히 주셨을 것 아닙니까?”
“······.”
백소운이 대답 대신 천리안을 가동했다.
오히려 천마집사의 진위 여부를 판별하기 위해서였다.
얼마 후 미세하지만 천마집사의 얼굴이 역용 상태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큰일 날 뻔했구나.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나타난 자가 가짜라는 것은 생각도 못했다. 진짜 천마집사가 아니라면 설마 지옥악마신일까? 아니면 지옥맹주? 지옥악마신이라면 굳이 이런 속임수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니, 후자 쪽이 더 가능성이 높겠군.’
백소운이 공력을 높여 본 얼굴을 보려 했다. 하지만 보호막이 있어서인지 그것까지는 파악할 수 없었다.
그나마 역용 상태라는 것도 최근의 깨달음이 없었다면 발견 못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놈이 가짜라면 나를 십팔 층까지 데려가 준다는 것도 거짓이다. 어떻게 들어왔는지 모르겠지만 천마검을 빼앗기면 큰일이다. 어떻게 한다?’
백소운이 잠시 생각에 잠긴 후 무형공력을 이용해 금단비고에서 가짜 천마검을 만들었다.
그런 후 진짜 천마검을 다시 금단비고에 넣어둔 후 가짜를 꺼냈다.
하지만 그 속도가 너무 빠르고 금단비고 자체가 다른 사람들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백소운이 가짜 천마검을 내밀었다.
“여기 있소. 본인이 과민했던 것 같소. 빨리 살펴보고 바로 돌려주시오.”
“물론입니다. 저를 믿으십시오.”
천마집사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몸을 비틀자 몸통에서 두 손이 나와 천마검을 받았다.
놀라운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럼 바로 검사해보겠습니다. 특수 내공을 사용하기 때문에 잠깐이면 됩니다.”
천마집사가 천마검을 잡고 잠시 집중하더니 갑자기 안색을 굳혔다.
“아니! 이럴 수가!”
“무슨 일이오?”
“검이 가짜다! 네놈이 날 속인 것이냐?”
천마집사가 천마검을 들고 소리쳤다.
그러면서 구름에 다시 올라탔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천마검이 가짜인 것이 판명되었으니, 처음 계획대로 모두에게 공평하게 기회를 주겠다. 기관이 발동되는 것은 내가 사라진 후 일각이 지나서부터다. 모두에게 행운을 빈다! 그럼. 열심히 해라.”
“······.”
백소운이 침묵을 지킨 가운데 천마집사가 왔던 방향 쪽으로 사라졌다.
백소운이 그가 사라진 방향을 유심히 봤다. 하지만 허공 속으로 사라졌을 뿐 구체적인 장소는 알 수 없었다.
‘천마검을 가지고 가서 천마석실을 열려는 것인가. 가짜를 가져갔으니 곧 돌아오겠지만 정체가 궁금하군.’
백소운이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
‘서두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분명 변화가 있을 것이다. 좀 더 기다리면서 생각해보자. 아무래도 단서는 천마검 같은데······.’
백소운이 금단비고에 있는 천마검을 다시 살피기 시작했다.
한편 군웅들이 동요한 것은 당연했다.
“뭐가 어떻게 된 것이지?”
“천마검이 가짜라니!”
무사들이 떠들어 대느라 야단법석인 가운데, 지옥대군이 말했다.
“귀혈공자! 천마검이 가짜라면 그대도 혹시 가짜가 아니오?”
“천마검은 진짜요. 하지만 천마집사에게 준 것은 가짜요. 이게 바로 진짜 천마검이오.”
백소운이 금단비고에서 천마검을 꺼내 높이 들었다.
사람들이 어리둥절해했다.
특히 마교 무사들이 더 했다.
임소혜가 물었다.
“교주님. 어떻게 된 건가요?”
“아까 그 천마집사라는 자는 가짜였소. 진짜는 이미 오래전에 죽었거나 그자에게 죽임을 당한 것 같소. 그래서 가짜 천마검을 줬는데, 진짜라고 믿고 돌아간 것이오.”
“아까 그는 가짜라고 하지 않았나요?”
“그것은 그가 한 거짓말이오. 하지만 실제 가짜 검이었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소. 얼마 후면 그가 돌아올 것이니, 그때가 되면 놈의 정체를 알 수 있을 것이오.”
“놈이 누구라고 생각하세요?”
“지금으로서는 지옥맹주일 가능성이 가장 크오. 그자는 천무시를 가지고 있소. 천마시만 있으면 가공할 무언가를 얻게 되는데 어찌 이곳 천마탑에 오지 않겠소? 나보다 천마탑에 대해 연구를 더 많이 했을 테고, 이미 들어와 있었던 것 같소. 하지만 천마석실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천마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속임수를 쓴 것이오. 물론 아직은 나의 추측이오.”
“그럴 리가 없다. 아까 그자는 맹주님이 아니다.”
지옥대군이 고개를 저으며 부인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신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백소운이 천마검을 유심히 살펴보며 말했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오. 넉넉잡고 한시진만 기다려봅시다.”
[제56장] 천마탑주(天魔塔主) 4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천마집사를 기다린 것도 벌써 한 시진이 다 되어가자, 군웅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불만을 표출한 쪽은 무림맹이었다.
무림맹 총군사 자명선생이 말했다.
“여기서 마냥 기다릴 수는 없을 것 같소. 귀혈공자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본인 역시 무작정 기다리자는 이야기는 아니었소이다. 그래서 한시진 정도만 기다려보자고 이야기했지요.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도 결국 제자리로 돌아올 뿐이오.”
“그럼 계속 더 기다리자는 것이오?”
“그건 아니오. 의견을 모아야 할 것 같소.”
백소운이 담담히 말했다.
이미 탑 일층 안에는 아무 기관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그였다.
그 때문인지 서두르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달랐다.
지옥대공자가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각자 행동하는 것이 좋겠소. 숙부님, 우리끼리 먼저 움직이지요.”
“우리라면 천하일심맹 무사 전원을 말하는 것이냐?”
“네. 그렇게 해야 저놈들의 흉계에 빠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으음, 독자 행동이라······.”
지옥대군이 안색을 굳혔다.
쉽게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천마탑으로 무사들을 이끌고 오기 전에 지옥맹주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맹주께서는 탑 안에 들어가면 천마집사 말대로만 따르면 된다고 하셨다. 설마 저놈 말대로 천마집사가 맹주님이었단 말인가.’
지옥대군이 헷갈려할 때 그의 귓전에 전음이 들렸다.
「동생. 나 지옥검선(地獄劍仙)일세. 듣기만 하게.」
지옥대군이 깜짝 놀랐다.
지옥검선은 바로 지옥맹주의 별호이기 때문이었다.
오래전 의형제를 맺어 자신이 의동생이긴 하나 지옥검선의 명은 하늘과 같았다.
자연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옥검선의 전음이 이어졌다.
「아까 나타났던 천마집사는 바로 나였네. 완벽을 기하기 위해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지. 사실 나는 맨 먼저 이곳 천마탑 안에 들어왔었네. 천무시 덕분에 위치를 알 수 있었지. 게다가 천마무의 독 역시 장애물이 될 수 없었지. 물론 천마음도 울리지 않았지. 이 모두가 천무시 덕분이었지. 왜냐하면 천무시와 천마시는 원래 하나의 열쇠로 비밀의 상자를 열 수가 있기 때문이네. 아무튼, 나는 천무시를 이용해 천마탑 일층부터 십팔 층까지 모든 관문을 쉽게 통과했네. 무시험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지. 하지만 문제는 마지막 천마석실이었네. 천마석실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천마검이 필요했었던 것이지. 아, 그리고 내가 역용을 해 행세를 했던 진짜 천마집사는 이미 죽어 있었네. 내가 그의 시신을 만진 순간 한 줌 가루로 변해 흩어져버리더군.」
‘아, 그러셨군요.’
지옥대군이 눈을 빛냈다.
하지만 어디서 전음이 들려오는지를 알 수 없었다. 답변을 하려고 해도 가능하지 않았다.
그때 다시 전음이 들렸다.
「그렇게 내가 천마석실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때, 귀혈공자 저놈이 탑 안으로 들어왔지. 그래서 나는 천마검을 빼앗기 위해 천마탑 안에 있는 기관을 모두 중지시켜 두었네. 맨 꼭대기 십팔 층에 기관을 조종하는 곳이 있는데, 그 기관 역시 천무시로 조종이 가능하지. 내 계획은 놈에게서 천마검을 빼앗은 후 탑을 무너뜨려 무림맹과 마교 놈들을 몰살시키는 것이었네. 한데 놈이 내게 가짜 천마검을 주는 바람에 일이 엉망이 되었네. 답답할 테니 내가 가르쳐준 방향으로 전음을 날리게. 이곳 상황 보고도 하고.」
지옥대군이 즉시 음파가 들리는 방향으로 전음을 날려 답했다.
「맹주님. 잘 들리십니까? 귀혈공자 저놈 말대로 맹주께서 천마집사셨군요. 아, 물론 가짜 집사였지만 말입니다.」
「놈이 내 정체를 알아냈다는 말인가?」
「네. 그렇게 추측을 하면서 진짜 천마검을 보여주더군요. 이후 지금까지 맹주님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한데 천마검이 필요하면 지금이라도 강제로 빼앗으면 되지 않습니까?」
「천마탑의 기운이 천마검을 보호하기 때문에 강제로 빼앗을 수는 없네. 성공해도 검 본래의 위력이 발휘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네.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탑 밖에 있을 때 검을 빼앗는 건데. 어떻게 하면 좋겠나?」
「그렇다면 놈으로 하여금 직접 천마석실을 열게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일단 석실 문이 열리면 바로 놈을 죽이는 겁니다.」
「역시 그 길 밖에 없겠군. 좋네. 일단 모두 십팔 층으로 가지. 내가 천마시를 포함해 천마의 유물을 얻은 후 무림맹과 마교 놈들을 진법으로 가두고 탑을 무너뜨리겠네. 그렇게 되면 놈들은 한 놈도 살아남지 못할 걸세.」
「우리 천하일심맹 무사들은 어떻게 됩니까?」
「유물을 얻은 후 천하일심맹 무사들은 먼저 탑 밖으로 보내야지. 그 정도는 천무시만으로 가능하네. 문제는 탑 전체를 무너뜨리는 것인데, 그것은 천마시로 가능하지.」
「유물을 얻은 자가 출구로 나가면 탑이 그냥 사라져 모두 탑 밖으로 나가게 된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그건 내가 기관을 작동하지 않았을 때지. 놈들을 몰살시킬 절호의 기회가 왔는데 어찌 놓칠 수 있겠나? 어서 무림부터 평정하고 다시 신선계로 돌아가 등선맹 놈들 역시 몰살시켜야 하네. 지금 지옥악마신의 도움을 얻어 놈들을 신선계에 묶어두는 데 성공했지만, 무한정 묶어둘 수는 없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한데 천무시와 천마시를 합치게 되면 정말 비밀상자를 열 수 있는 겁니까?」
「당연하지. 하지만 비밀상자는 신선계에 있고, 그 위치도 천마시를 확보해야 알 수 있을 걸세.」
「비밀상자 안에 정말 마신들의 봉인을 풀 수 있는 법보가 있을까요?」
「물론이네. 어디 봉인해제 법보뿐이겠나? 상자 안에는 절대비급도 있네. 절대비급에 수록된 무공만 익히면 천계 또한 장악할 수 있네. 시간이 없으니 설명은 이 정도로 하고 잠시 후 내가 나타나면 사람들을 잘 유도하게.」
「네. 십팔 층까지 무시험으로 통과하게 해준다는데 누가 반대하겠습니까? 어차피 위층으로 가는 통로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있는데요.」
「상승계단은 내가 기관으로 숨겨두었네. 다시 개방해 놓고 갈 것이니 그렇게 알게. 나는 계속 천마집사로 행세할 것이니 그렇게 알고 상황을 잘 유도하게. 천하일심맹 무사들을 모두 탑 안으로 들어오게 한 것은 나를 돕게 하기 위해서였으니, 임무 수행을 잘하게. 그럼 조금 있다가 보세.」
「네. 맹주님.」
지옥대군은 전음을 보낸 후 지옥대공자와 지옥염라 등 몇몇 핵심 고수들에게 조금 전의 대화 내용을 알려주었다.
그들이 놀란 것은 물론이었다.
특히 지옥대공자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는 반응이었다.
「아버님이셨다니. 어쩐지 친밀감이 든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찌 됐든 잘 되었습니다. 이 기회에 천마시도 얻고 무림맹과 마교 놈들도 모조리 죽이면 천하는 우리 것이 될 겁니다.」
지옥대공자의 전음에 지옥대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되겠지. 우리가 이곳에서 주의할 자는 귀혈공자이니, 언제든 명이 떨어지면 죽일 수 있도록 하게.」
「네. 안 그래도 지옥삼로가 아까부터 철저히 감시하고 있습니다.」
지옥대공자가 옆에 있는 지옥삼로에게 다시 개별 지시를 내렸다.
그런 후 다시 지옥대군에게 물었다.
「나머지 놈들은 어떻게 처리할 생각이라고 하시던가요?」
「지옥혈교와 사도맹, 그리고 천룡궁 말인가?」
「네. 원래 무림 말살 계획에는 놈들도 모조리 죽여 화근을 없앤 후 새로운 강호를 만들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제 생각에는 이 기회에 완전히 없애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아직 쓸모가 많으니 좀 더 살려둬야 하네. 이곳에서 무림맹과 마교 놈들이 몰살하면 천하 각지에서 그 잔당들이 일어날 걸세. 그때를 대비해 우리 수하로 두어야 하지 않겠나? 지금 보면 사도맹과 지옥혈교는 거의 우리 수중으로 넘어왔네. 문제는 천룡궁이네. 하지만 천룡궁주는 기회주의자라 우리가 대세인 것을 알면 아무 반항도 하지 못할 걸세. 오히려 충성을 다하려 하겠지. 그러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맹주님과도 이야기가 다 되어있으니까.」
「네. 숙부님. 역시 아버님은 저보다 숙부님을 더 신뢰하시는군요. 제가 분발해야겠습니다.」
지옥대공자가 전음을 날린 바로 그때.
천마집사로 역용한 지옥검선이 다시 붉은 구름을 타고 나타났다.
“천마집사다!”
“돌아왔다!”
군웅들이 술렁였다.
천마집사, 아니 지옥검선이 말했다.
“생각을 바꿨소. 모두 본인을 따라오시오. 여러분 모두를 십팔 층 까지 데려다 주겠소. 다만 그전에 귀혈공자에게 한 가지 다짐받을 게 있소.”
“무엇이오?”
“다시 한번 본인을 농락한다면 가만있지 않겠소. 본인을 믿지 못하는 것 같으니 직접 가서 천마석실 문을 열어주시오. 그렇게 해주겠소?”
“물론이오. 하지만 석문을 연 후에는 실력 있는 자가 먼저 안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오. 아무나 들어갈 수는 없지 않겠소?”
“좋소. 그렇게 합시다.”
지옥검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진하림이 소리쳤다.
“그대는 천마집사가 아니라 지옥맹주가 아닌가요? 왜 가짜 행세를 하는 건가요?”
“죽고 싶으냐? 아까 만악선생이 죽는 것을 보지 못했나?”
지옥검선이 인상을 찌푸렸다.
침을 뱉어 진하림을 죽이고 싶었으나 백소운 때문에 참는 것 같았다.
백소운이 눈짓을 해 진하림을 진정시켰다.
그런 후 담담히 말했다.
“상승계단을 복구시킨 것이오?”
“그렇소.”
“어떤 식으로 우리를 십팔 층까지 데려다줄 것이오? 내 생각엔 우리가 직접 가지 않고 기관을 작동시켜 곧바로 우리 위치를 그곳으로 옮길 수 있을 것 같은데, 가능하겠소?”
“가능하오. 안 그래도 그 방법을 사용하려 했소. 바로 시작하겠소.”
지옥검선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이 타고 온 붉은 구름을 손으로 가리켰다.
순간, 구름에서 붉은빛이 뻗어 나와 사방을 가득 메웠다.
군웅들은 눈이 부셔 아무것도 보지 못해 당황했다.
하지만 자신들의 몸이 허공으로 떠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은 마치 허공답보를 펼쳐 계단을 올라가는 것과도 비슷했다.
이윽고 사람들이 눈을 떴을 때 주위 환경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광장과 숲은 그대로였으나 그 색깔이 완전히 붉은색이었다.
가장 큰 차이점은 눈앞에 있는 거대한 바위에 적혀 있는 글자였다.
“이곳 십팔 층의 기관도 모두 중단시켰으니, 천마석실만 남아있을 뿐이오. 자, 모두 앞으로 걸어갑시다. 조금만 가면 석실 문이 보일 것이오.”
지옥검선이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어느새 그의 몸에는 두 다리마저 생겨나 있었다.
백소운을 비롯한 군웅들 모두가 그 뒤를 따라갔다.
아직 이렇다 할 장애물을 만나지 않았지만 오히려 더 신중해진 그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 지옥검선이 하자는 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진하림이 걱정이 되었는지 백소운에게 전음을 보냈다.
「이렇게 그냥 따라가도 되는 건가요? 자칫 놈에게 이용만 당하고 우리 모두 위험해지는 게 아닌가 싶어요.」
「알고 있다. 놈이 내가 가지고 있는 천마검을 이용해 천마석실을 열려고 한다는 것을. 하지만 놈 역시 천마석실에 들어가 본 적이 없는 것 같으니, 크게 불리할 것도 없다. 모든 것은 실력이 좌우하게 될 것이다. 지옥맹주와 나 두 사람 중 강한 자가 천마의 유물을 차지하게 되겠지.」
「정말 저자가 지옥맹주일까요?」
「그래. 아까 지옥맹 고수들끼리 전음을 나누는 것을 들었다. 지옥맹주 지옥검선이 확실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곳에 지옥악마신이 없다는 점이다. 지옥악마신은 신선계에서 등선맹을 상대하고 있는 것 같으니, 이때 반드시 지옥맹주를 죽여야 한다.」
「지옥맹주를 이길 수 있겠어요? 오라버니 무공으로 조금 무리가 아닐까 싶어요.」
「당연히 무리겠지. 하지만 승패는 알 수 없다. 만약 내가 싸움 후 의식불명에 빠지게 되면 하림이 네가 나를 아무도 없는 곳으로 데려가 보살펴주기를 바란다. 나는 이미 불사신공을 익혔으니 몸이 가루가 되지 않는 한 다시 부활할 것이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걱정 마세요. 천년만년이 되어도 저는 기다릴 겁니다.」
진하림이 전음을 보낸 그 순간.
백여 장 앞에 거대한 돌산 하나가 보였다.
돌산 앞에는 다시 거대한 석문 하나가 보였다.
바로 천마석실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한데 돌산 전체가 붉은 광채를 뿜어내고 있었다.
백소운이 안색을 굳혔다.
‘뭔가 잘못되고 있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기운이 석실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