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172
“크크크!”
“후후후!”
백여 명의 괴수왕들의 웃음소리에 정사마 무사들의 안색이 급변했다.
그 웃음은 괴기하기 짝이 없었다.
내공까지 실려 있어 듣는 이로 하여금 기혈을 흔들리게 했다.
하지만 정작 괴수왕들의 포위를 당한 백소운은 태연했다.
열세를 자인하고 있었기에 어느 정도 마음을 비웠기 때문이었다.
‘놈들이 합공을 가하면 내가 진다. 내상을 입지 않았더라도 지는 싸움이다. 괴수왕 하나하나가 지옥대군과 비슷한 무공을 지니고 있다.’
백소운이 눈을 빛냈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괴수왕들이 바로 공격해 들어오지 않고 기 싸움부터 걸어오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그들이 어느 정도 천마검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백소운은 천마검을 수직으로 높이 든 채 공력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자신은 없었지만 그대로 당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하려는 것이다.
그것은 의무와도 같았다.
사실 백소운이 지금 죽게 되면 정사마 동맹 무사들의 안전은 보장되기 힘들었다.
괴수부대가 여세를 몰아 총공격을 가해올 가능성이 높았다.
‘오직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이다.’
백소운이 정신을 하나로 모았다.
이번만큼은 순간적인 깨달음 등 우연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야말로 무대책이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무대책이야말로 기실은 가장 좋은 대책이 아닐까. 어쩌면 내가 나 자신을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는지 모른다.’
백소운이 마음을 다시 한번 편안히 했다.
그러는 동안 백 명의 괴수왕 무리는 포위망을 점점 더 좁혀왔다.
진하림, 임소혜 등이 초조해하며 도우려고 했지만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백소운이 먼저 부탁하지 않는 이상 섣불리 움직였다가 방해만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괴수왕 중 총대장 격인 총괴수왕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그는 코끼리 정도의 덩치를 가진 자로, 얼굴만 사람이었지 전형적인 괴수였다.
특히 온몸에 나 있는 가시들은 보기만 해도 끔찍했다.
“후후후! 귀혈공자! 죽기 전에 할 말이 있으면 해라. 수하들 앞에서 유언은 남겨야 할 것이 아니냐?”
“누가 죽을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네놈들은 인간도 아니면서 어찌 천하를 어지럽히는 것이냐?”
“무슨 소리! 우리도 한때는 인간이었다. 네놈이 지금 우리가 괴수라고 비웃는 것이냐?”
총괴수왕의 말에 나머지 괴수왕들이 분노의 표정을 지었다.
그들 뒤에 있던 만여 괴수들도 덩달아 분노하며 포효했다.
백소운이 담담히 말했다.
“쓸데없는 말이 너무 많구나. 어서 겨뤄보자. 좀 더 강한 쪽이 살아남을 것이다.”
“그렇게 하지.”
총괴수왕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이미 백여 명의 괴수왕들은 공격 준비를 마친 상황.
명령만 내리면 바로 공격이 개시될 것이었다.
일촉즉발의 상황이 되자 진하림이 소리쳤다.
“정말 저희 도움이 필요 없으신 건가요?”
“그렇다.”
백소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마교 무사들이 기대 어린 눈빛을 보였다.
항상 예상을 뛰어넘는 활약을 보여주었던 백소운이 아닌가.
이번에도 멋진 활약을 보여줄 것으로 믿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백소운의 상태를 대강 파악한 지옥검선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우둔한 놈! 혼자서 도주를 한다면 당장 죽음은 피할 수 있을 것을. 하기야 어차피 탑이 무너지면 다 죽을 놈들이니 큰 차이는 없겠군.’
그때였다.
드디어 총괴수왕의 명이 떨어졌다.
한데 예상과는 조금 다른 내용이었다.
괴수왕들의 합공에 앞서 수하 괴수들의 합공을 명한 것이다.
그에 따라 총괴수왕을 비롯한 백여 괴수왕들은 뒤로 물러났다.
쏴아아.
만여 괴수들이 일제히 붉은 기운을 뿜어냈다.
개개인의 무공은 괴수왕보다는 약하지만 무려 만 명이었다.
게다가 특수진법을 응용한 공격이라, 만 마리 괴수의 공격이 모두 하나로 합쳐졌다.
실타래 같은 붉은 기운이 백소운 바로 앞에서 하나로 합쳐져 무서운 기세로 다가왔다.
백소운은 천마검을 아래로 내려 수평으로 그 기운을 막아냈다.
꽈앙.
천지가 떠나갈 듯한 폭음과 함께 천마검과 원형의 붉은 기운이 그대로 붙어버렸다.
그리고 마치 줄다리기를 하듯 서로를 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양측의 힘이 너무 팽팽했다.
마치 자석처럼 붙어 꿈쩍하지 않았다.
“저런! 괴물 같은 놈이!”
지옥검선, 총괴수왕 등 지옥맹 고수들이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무려 괴수 만 명의 힘이 모인 공격이었다.
그걸 백소운 혼자서 막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내공의 힘으로 말이다.
“교주님을 보호하라!”
임소혜가 급히 소리쳤다.
내공 대결 도중 공격을 받게 되면 백소운이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에 호위를 서게 한 것이었다.
차차차착.
순식간에 천여 명의 마교 무사들이 백소운 뒤에 병풍처럼 둘러쌌다.
하지만 앞부분은 대결 도중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기운 때문에 접근할 수 없어 별 효과는 없었다.
총괴수왕이 급히 지옥검선을 쳐다봤다.
“맹주님, 어떻게 할까요? 지금 공격을 가하면 놈을 쉽게 죽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괴수들 역시 모두 죽습니다.”
“좀 더 지켜보세. 괴수들 쪽이 훨씬 우세하니까.”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총괴수왕이 고개를 숙였다.
지옥검선의 피도 눈물도 없는 성격을 잘 아는 그는 선수를 쳐 수하 괴수들을 구한 셈이었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라 백여 괴수왕과 함께 공격 준비를 다시 했다.
한편 백소운은 자신의 공력이 조금씩 밀리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반면 제각각 달라 처음에 서로 융화되지 못한 괴수들의 공력은 점점 합쳐지고 있었다.
그 말은 괴수들의 힘이 계속 강해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백소운의 힘은 반대로 약해지고 있었다.
처음 괴수들의 합공을 막아낼 수 있었던 것은 잠력을 일으킨 덕분이었다.
하지만 잠력은 일시적인 힘의 결집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약해지기 마련이었다.
게다가 잘 버텨주던 천마검 마저 흔들리고 있었다.
압력이 너무 거세게 가해진 결과였다.
이대로라면 일각도 안 되어 검이 부러질 것 같았다.
백소운이 들고 있던 천마검의 검신을 바라보았다.
미세하지만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검신에 전에 보이지 않던 구결이 보였다.
‘아니! 저것은?’
백소운이 마지막 힘을 다해 그 구결을 봤다.
맨 먼저 구결 처음에 적힌 제목이 보였다.
‘아, 불사신공과 더불어 마교 최대의 무공이라는 그 흡수대법인가.’
백소운이 눈을 빛내며 구결을 읽어 내려갔다.
흡수대법의 특징은 단연코 상대의 내공을 흡수해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한데 천마검은 그 흡수대법의 위력을 강화하는 효력이 있었다.
따라서 백소운이 흡수대법을 익힌다면 곧바로 응용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게다가 천마검이 있으면 상대보다 내공이 낮아도 상관없는 또 하나의 특징이 있었다.
‘길 없는 곳에 다시 길이 생긴 셈이군.’
백소운이 기뻐하며 흡수대법의 구결을 계속해서 익혔다.
한편 구결은 지금 백소운 혼자서만 볼 수 있었다.
내공대결로 인해 금빛과 붉은빛이 어우러져 천마검은 외부에 보이지도 않았다.
얼마 후 괴수들의 힘이 완전히 합쳐져 최강의 위력을 보였을 때.
그나마 비교적 자세히 대결을 보고 있었던 지옥검선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끝이다. 이제 귀혈공자 네놈은 끝났다.’
한편 그때는 천마검의 검신에 드러났던 흡수대법의 구결이 막 사라졌을 때였다.
그리고 동시에 백소운이 흡수대법을 완전히 익혔을 때였다.
‘흡수대법!’
백소운이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겨우 버티고 흡수대법을 펼쳤다.
순간, 만여 괴수들의 합체 공력이 천마검을 통해 그의 몸속으로 들어왔다.
백소운은 단전 부위 기해혈을 개방하여 그 기운을 받아들였다.
동시에 무명심공을 운용하여 그 기운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저럴 수가!’
지옥검선이 이상한 낌새를 알아채고 놀라는 순간, 괴수들의 합체 공력이 모두 백소운의 몸속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바로 천마검의 위력 때문이었다.
백소운의 공력이 확실히 괴수들의 합체공력보다 우위에 서자, 그 흡수속도가 수백 배 이상 빨라진 것이었다.
“크윽!”
“켁!”
괴수들이 뒤로 자빠진 것은 바로 그 직후였다.
어느새 기를 모두 빼앗겨 가죽만 남은 놈들은 퍽퍽! 하는 소리와 함께 가루로 변해 버리고 말았다.
와아아아!
뒤늦게 백소운의 승리를 확인한 정사마 동맹 무사들이 일제히 함성을 터뜨렸다.
이번에는 무림맹과 사도맹 무사들도 가세해 그 소리가 매우 컸다.
“빌어먹을! 쳐라!”
총괴수왕의 명이 있자, 백여 괴수왕들이 일제히 장력을 날렸다.
쏴아아아.
이번에는 아까와 같이 합체 공력이 아니라 개별 공력이었다.
그리고 흡수대법에 당하지 않기 위해 각자 자신의 몸과 장력의 연결 기운도 끊어버렸다.
그야말로 온전한 벽공장력을 날린 셈이었다.
그때였다.
백소운의 몸이 급격히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이는 자신이 받아들인 괴수들의 공력 때문이었다.
무명심공을 통해 자신의 몸에 맞는 기운으로 만드는 데 실패한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바로 그 양이었다.
백 마리도 많은 양인데, 그 백배였다.
일단 흡수를 하긴 했으나 자리를 잡는 과정에 엄청난 부하가 걸린 것이다.
백소운이 좌수를 뻗어 장력을 날렸다.
너무 강해서 그런 것인지, 아무 느낌도 없었다.
단지 잠시 시간이 멈춘 느낌이 있었을 뿐이었다.
잠시 후 꽈아앙 하는 폭음과 함께 괴수왕들의 비명들이 터져 나왔다.
“크윽!”
“켁!”
십장 밖으로 튕겨 나간 괴수왕들은 하나같이 배가 터져있었다.
즉사한 것은 물론이었다.
유일하게 살아 있는 자는 바로 총괴수왕이었다.
괴수왕들이 일방적으로 당하는 것을 본 그는 최후의 반격을 가하기 위해 방어에 집중했던 것이다.
“귀혈공자! 네놈이 우리 괴수부대를 전멸시켰으니 그 원수를 갚지 않을 수 없다.”
총괴수왕이 등에 멘 도를 꺼냈다.
거대한 길이의 그 도의 이름은 바로 괴수도(怪獸刀)라 했다.
전설에 의하면 이 괴수도에는 괴수 수십만 마리가 죽기 전에 남긴 괴력이 담겨 있다고 했다.
총괴수왕은 이 괴수도를 발견해 괴수들의 총우두머리가 될 수 있었다.
괴수도를 본 지옥검선의 표정이 밝아졌다.
‘괴수도는 평생 단 한번만 사용할 수 있지만, 아무도 막지 못한다. 귀혈공자 네놈이 무덤을 제대로 팠구나. 더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지옥검선이 기뻐할 때.
총괴수왕이 괴수도를 휘둘렀다.
그냥 가볍게 수평으로 갈랐다.
백소운과의 거리도 제법 떨어져 있어 별 위력이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어떻게 된 것인지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백소운의 몸이 앞뒤로 크게 출렁였다.
괴수 만 마리의 내공을 얻은 것을 생각하면 예기치 않은 결과였다.
“죽어라!”
총괴수왕이 유령 같은 신법으로 다가가 좌수로 백소운의 목을 움켜쥐었다.
괴수도강에 격중되어 죽음 직전까지 간 백소운의 목뼈를 부러뜨려 죽일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백소운이 침을 뱉었다.
퇫!
“크윽!”
이마에 침을 맞고 구멍이 뚫린 총괴수왕이 그대로 쓰러져 절명했다.
주인이 죽었기 때문인지 괴수도 역시 두 동강 나버렸다.
본래 크기의 몸으로 돌아온 백소운이 쓰러진 것은 그 직후였다.
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