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180
“귀혈공자! 이것은 악마주로 인간이라면 절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네놈이 내 아들을 죽였으니 그 복수를 하겠다. 죽기 전에 남길 말이 있느냐?”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아는 것이오. 혹시 그 악마주로 우리 무사들을 제압한 것이오?”
“그렇다. 지옥악마신께서 내게 두 개의 악마주를 주셨고, 그중 하나를 이미 사용했지. 그 결과는 바로 지금 네가 보는 것과 같다. 악마주에 제압된 저들은 여기서 꼼짝도 할 수 없다. 만에 하나 네놈이 나를 이기더라도 탑을 무너뜨릴 수 없는 이유가 되겠지. 후후후!”
지옥검선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이미 백소운의 의도를 알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백소운이 흠칫했다.
아닌 게 아니라 그의 계획 역시 정마동맹 무사들을 밖으로 보낸 후 탑을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지옥검선을 죽인 후 그에게서 천무시를 빼앗기만 하면 가능한 일이었다.
한데 무시 못 할 변수가 생긴 것이다.
한눈에 봐도 정마동맹 무사들을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이 어려워 보였다.
‘일단 지옥검선 저자를 제거하는 것이 우선이다. 나머지는 그때 가서 생각해도 된다. 과연 내가 저 악마주를 견딜 수 있을까.’
백소운이 눈을 빛내며 공력을 끌어올렸다.
천마담애 있던 천마수를 모두 마신 그였다.
물론 천마대장경의 무공을 아직 익히지 못해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지는 못했다.
하지만 기본적인 내공 증강이 있었다.
게다가 불사신공과 흡수대법 역시 극성까지 익힌 상태였다.
검마왕이 말했다.
“나도 돕겠다.”
“아닙니다. 태상교주께서는 정마동맹 무사들을 보호해주십시오. 결과가 어찌 될지 모르니 태상교주님은 건재하셔야 합니다.”
“으음, 알겠다. 역시 내 사위가 될 만한 자격이 있군.”
검마왕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사위라는 말에 임소혜가 얼굴을 붉혔다.
반면 진하림은 안색을 굳혔다.
하지만 지금 그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지옥검선이 가지고 있는 악마주의 위력은 모두가 겪은 대로 가공했다.
수십만 무사를 한 번에 제압한 희대의 무기였다.
그것은 마치 악마의 쇠사슬과도 같았다.
모두를 꼼짝 못 하게 만든 그 힘은 이미 인간의 한계를 벗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바로 시작하지. 하지만 그 전에 조건이 하나 있다.”
지옥검선의 말에 백소운이 물었다.
“무엇이오?”
“악마주의 위력은 가공하다. 나는 네가 가지고 있는 천마시가 파괴될 것을 우려한다.”
“그래서 어쩌자는 것이오?”
“대결에 앞서 우리가 각각 가지고 있는 열쇠들을 내놓는 것이다. 나는 천무시를, 너는 천마시를 말이다. 아니 아예 바로 합체를 시키는 것도 좋겠지. 우리 두 사람 사이에 있는 허공에 두 열쇠를 합체시킨 후 승자가 차지하는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좋은 생각이오. 열쇠의 진위는 합체가 되는지를 보면 알게 되겠구려.”
백소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두 열쇠를 합칠 생각이었으니 손해 볼 것은 없을 것이다. 다만 지옥악마신의 힘이 좀 더 강해질 가능성은 있겠군. 하지만 합체된 열쇠로 비밀상자를 열어 그 봉인해제법보를 반드시 파괴해야 한다. 그래야 마신들의 부활을 막을 수 있다.’
백소운이 결단을 내린 후 품속에서 천마시를 꺼냈다.
지옥검선이 반색한 것은 물론이었다.
“하하하! 정말로 천마시를 얻었구나. 천마의 유품은 어디 있느냐?”
“약속대로 천무시나 꺼내시오.”
“으음, 좋다. 어차피 천마의 무공이라 해봤자, 천마신께서 이미 다 알고 계시는 것이지.”
“그게 무슨 소리요? 그대들이 봉인을 해제해 부활시키려는 마신 중에 천마신이 있다는 뜻이오?”
“당연한 것이 아니겠냐? 왜 지금이라도 그 천마시를 없애버리고 싶은 것이냐?”
“그건 아니오. 천마시를 없앤다고 마신들의 부활을 완벽하게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닐 테니까.”
“후후후! 역시 총명하구나. 네 말이 맞다. 어차피 봉인은 약속된 시간이 지나면 풀리게 되어 있다. 그때가 언제인지 모를 뿐이지만 말이다. 나는 그 시기를 앞당기려는 것이다.”
“역시 그랬었군. 하지만 비밀 상자에 있다는 봉인해제법보를 파괴하면 영원히 부활할 수 없을 것이오.”
“봉인대종(封印大鐘) 자체를 파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지성에 도달해 무공의 신이 되어야만 가능하지.”
“무공의 신이라. 비밀 상자 안에 있다는 절대비급을 연마하면 가능하지 않겠소?”
백소운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라 조심스러울 수도 있었다. 하지만 혹시 자신이 죽더라도 후일을 기약하려는 마음이 컸다.
물론 지옥검선의 입을 빌어 마신들의 봉인과 관련한 비밀을 알아내려는 마음도 있었다.
“후후후! 절대비급은 내가 익히게 될 것이다. 마신들의 봉인을 해제해주는 대가로 내가 얻게 되는 선물이라 할 수 있지.”
지옥검선이 득의한 미소를 지었다.
이미 아들인 지옥대공자의 죽음은 잊은 모양이었다.
사실 지옥대공자는 그의 친아들이 아니었다.
무공을 연마하기 위해 고자가 된 그는 후계를 위해 지옥대공자를 입양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사실은 아무도 몰랐다.
지옥대공자 역시 지옥검선을 친부로 알고 지냈을 정도였다.
그 때문일까.
지옥대공자의 죽음을 알고 나서 분노한 그였지만, 한편으로는 속 시원한 마음도 컸다.
절대비급을 연마해 지성에 도달하면 무공의 신이 되어 마음대로 천하를 주름잡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제 후계자 따위는 필요 없다. 무공의 신이 되면 마신들도 결국은 내 발밑에 무릎을 꿇어야 할 것이다. 그야말로 천상천하 유아독존하게 되는 것이지. 물론 천마신은 조심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지옥검선이 자신의 찬란한 미래를 꿈꾸며 다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눈앞에 있는 백소운을 제거해야 했다.
지옥검선이 안색을 가다듬으며 눈을 빛냈다.
‘방심은 금물이다. 악마주 하나만 믿어서는 안 된다. 일단 두 열쇠를 합쳐야겠군.’
지옥검선이 말했다.
“약속대로 열쇠를 합치자. 내가 먼저 띄우지.”
지옥검선이 말한 후 천무시를 허공에 던졌다.
백소운과 자신 사이 중간지점이었다.
다만 십장 정도 높이에 두어 두 사람 간의 싸움의 여파에서 벗어나게끔 했다.
천무시가 둥둥 떠올라 약속된 지점에 머물자, 백소운 역시 천마시를 날렸다.
휘휙.
천마시는 일직선으로 날아가 천무시와 그대로 부딪혔다.
팍.
둔탁한 소리와 함께 두 열쇠가 서로 붙었다.
순간, 금빛과 붉은빛 광채가 뻗어 나오며 보는 사람의 시야를 가렸다.
악마광장에 있던 무사들이 모두 집중한 것은 물론이었다.
얼마 후 허공에 드러난 것은 금빛과 붉은빛이 어우러진 하나의 새로운 열쇠였다.
모양도 조금 달려져 있었다.
가장 큰 변화는 기운의 비범함이었다.
이전에는 보통 열쇠라는 느낌이 강했지만 지금은 법보로 보였다.
지옥검선이 껄껄 웃었다.
“하하하. 귀혈공자! 네놈은 이제 죽었다. 천무시와 천마시가 합쳐져 천무마시(天武魔匙)가 완성되었으니, 지옥악마신께서 부분 현시하실 수 있을 것이다.”
“부분 현시?”
“그렇다. 여태까지 지옥악마신께서는 봉인을 완전히 풀지 못해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셨다. 다만 악마력으로 그 힘을 가끔 드러내고 계셨지. 하지만 이제 그 제약이 일부 풀렸다는 말이다.”
“지옥악마신이 이곳에 올 수 있다는 말이오?”
“그렇다. 지금은 신선계에서 등선맹 놈들을 악마진법으로 가두고 계시지. 하지만 그곳에서도 현신은 없었지. 이제 천무마시가 완성된 이상 그 힘으로 일부 현신을 하실 수 있게 된 것이다. 참고로 지옥악마신께서는 백대마신 중 유일하게 봉인의 힘이 일부밖에 미치지 않은 마신이시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중요한 것은 실력이 아닐까 하오. 지옥악마신이 강하다면 나를 제압할 수 있을 것이오. 모습을 드러내든 말든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지. 그리고 자신이 있다면 그 악마주를 이제 던지시오. 계속 주저하는 것은 아직도 날 이길 자신이 없는 것이 아니오?”
백소운이 천마검을 앞으로 겨누었다.
지옥검선이 흠칫했다.
백소운의 말대로 아직 확신이 없기 때문일까.
아니면 지옥악마신을 기다리려는 걸까.
하지만 무작정 머뭇거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지옥노인이 말했다.
“맹주님. 지옥악마신의 악마력이 강해지기 위해서는 맹주께서 먼저 천무마시를 확보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으음, 그렇군. 내가 그 생각을 미처 못 했다. 그렇다면 결국 저놈과 승부를 겨뤄야 한단 말인가?”
“네. 악마주가 있는데 무슨 걱정입니까? 어서 사용하십시오. 아니면 천무마시부터 확보하십시오.”
“그럴까?”
지옥검선이 좌수를 들어 천무마시를 가리켰다.
흡입력으로 천무마시를 끌어당기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는 백소운 처지에서 보면 기가 찰 노릇이었다.
분명히 중립지대에 천무마시를 두고 대결을 벌여 그 승자가 갖기로 하지 않았던가.
“저놈이! 저대로 내버려 둘 건가?”
검마왕이 다급히 백소운에게 물었다.
“괜찮습니다. 이미 약속의 힘이 작용해 저자에게 무작정 끌려가지 않을 겁니다.”
“약속력(約束力)! 정말 그렇다면 보통 법보가 아니군.”
검마왕이 감탄하며 천무마시를 봤다.
백소운의 예상대로 천무마시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있었다.
지옥검선이 공력을 더 끌어올렸지만 마찬가지였다.
“역시 약속력이 작용하고 있군.”
지옥검선이 안색을 굳혔다.
사실 그 역시 천무마시에 그런 구속이 가해진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 시험해본 것인데 역시 예상대로였던 것이다.
“후후후! 그렇다면 역시 악마주를 사용할 수밖에 없겠군. 잘 가라. 네놈은 정말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지옥검선이 악마주를 던졌다.
쉬이익.
수평선으로 날아가는 악마주.
보기에는 별 것 없어 보였다.
하지만 백소운은 알고 있었다.
악마력이 담긴 악마주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그것은 인간이 아니라 신의 힘이 담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백소운에게는 신념이 있었다.
‘상대가 신이라 해도 내가 반드시 패배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바로 우주이며 대자연이기 때문에.’
백소운이 천마검에 자신의 모든 힘을 집중했다.
순간, 검 끝인 검봉에서 금빛 광채가 뻗어 나오며 악마주를 막았다.
꽈아앙.
엄청난 폭음과 함께 악마광장 전체가 뒤흔들렸다.
사람들이 놀라서 보니 악마주가 그대로 부서지고 있었다.
한데 그 부서진 파편들이 마치 연기처럼 피어오르며 한 자루 검으로 변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 검은 곧바로 백소운을 향해 날아갔다.
“앗! 전설의 악마검(惡魔劍)이다!”
누군가 소리치는 것과 동시에 유령 같은 악마검이 백소운의 가슴에 그대로 박혔다.
“으윽!”
백소운이 신음과 함께 비틀거렸다.
“오라버니!”
진하림이 찢어질 듯한 목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지옥검선이 껄껄 웃었다.
“하하하! 이제야 알겠느냐? 악마검에 찔린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 아니, 살 방법이 하나 있긴 하지. 스스로 악마가 된다면 생명을 부지할 수 있을 것이다.”
“괜찮은가?”
검마왕이 안쓰러운 표정으로 백소운을 쳐다봤다.
백소운이 무너지게 되면 남은 사람은 자신뿐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지옥검선을 상대할 자신은 없었다.
불사신공을 대성했다고 하지만, 지옥검선의 무위라면 아예 육신을 소멸시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마지막 남은 악마주를 소비한 것이 변수이긴 했다.
하지만 그전에 백소운의 상태부터 살펴야 했다.
비록 악마검에 찔렸지만, 아직 쓰러지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허공에 떠 있던 천무마시 역시 아직 자신의 주인을 고르지 않고 있었다.
승부가 결정되었다면 약속의 힘이 스며든 천무마시 스스로가 주인을 찾아갈 것이었다.
그 때문일까.
지옥검선이 안색을 굳혔다.
“끈질긴 놈! 결국 네놈을 가루로 만들어야겠구나.”
지옥검선이 우수를 앞으로 내밀었다.
백소운은 여전히 비틀거리고 있었지만, 안색은 비교적 평온했다.
물론 충격은 극심했다.
하지만 악마검이 심장을 관통한 순간.
왠지 모를 상쾌함을 느꼈다.
그것은 바로 죽음의 순간에 문득 이기고 진다는 마음을 버렸기 때문이었다.
‘다툼이 없다면 스스로 편안한 것이다. 악마 역시 내 마음 속에 있는 것. 악마도 없고 나도 없다. 모든 것은 공(空)이다.’
백소운이 미소를 지었다.
사실 이미 여러 번 깨달은 내용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악마검 때문이었다.
그가 악마검을 그대로 뽑았다.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악마가 되어야 한다면······ 악마가 될 수밖에.”
순간, 악마검이 핏빛으로 변했다.
덩달아 백소운의 전신도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