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181
핏빛으로 물든 백소운의 모습은 그야말로 악마 그 자체였다.
얼굴이 변한 것은 아니지만 그 분위기가 공포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지옥검선이 안색을 굳혔다.
“네놈이 정말 악마가 되었구나. 스스로 악마가 되기로 결심하지 않는 한 악마검이 절대 뽑히지 않거늘.”
옆에 있던 지옥노인이 급히 말했다.
“놈이 악마력으로 공격해온다면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먼저 지옥혈교와 천룡궁 출신 무사들로 하여금 놈을 막아내도록 하십시오. 일각만 버티면 놈은 반드시 주화입마되어 죽고 말겁니다. 지옥악마신께서 승인하지 않는 한 진정한 악마가 될 수 없기 때문이지요. 놈도 그 사실만은 몰랐을 겁니다.”
“하하하! 그렇다면 일각만 막아내면 되겠군. 어서 조금 전 말한 대로 시행하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지옥노인이 지옥혈교와 천룡궁 출신 무사들에게 공격지시를 내렸다.
그들의 수는 무려 이십 만이었다.
지옥맹 원조 무사들보다 많은 숫자였다.
그 때문일까.
백소운을 죽이라는 명을 받았음에도 물러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지옥검선이 소리쳤다.
“귀혈공자 저놈을 죽인 사람에게는 큰 상을 내릴 것이다. 모두 공격하라!”
와아아아.
지옥혈교와 천룡궁 무사들이 일제히 함성과 함께 백소운을 향해 덮쳐갔다.
마치 거대한 해일이 덮치는 것과도 같았다.
워낙 많은 숫자라 별다른 작전도 필요 없어 보였다.
검마왕이 흠칫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급히 백소운을 봤지만 이미 악마가 되어 말이 통할지도 의심스러웠다.
그래도 그냥 당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정말 악마가 되었는가? 내 말을 알아듣겠는가?”
“네. 태상교주께서는 뒤로 물러나십시오.”
백소운이 담담히 말했다.
겉모습과 달리 정신은 아직 멀쩡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의 안색은 굳어 있었다.
‘지옥노인 저자의 말이 사실이다. 어쩔 수 없이 악마가 되는 것을 선택했지만, 내 몸속에 있는 무형공력과 충돌해 일각 후면 실성악마(失性惡魔)가 되고 만다. 이를 어떻게 한단 말인가.’
진퇴양난이었다.
앞에서는 지옥맹 무사들이 공격해 들어오고 있었다.
내부적으로는 주화입마의 위험에 처한 극한 상황이었다.
검마왕이 지옥검선을 향해 일장을 날린 것은 그 직후였다.
백소운의 상태가 심각한 것을 깨달은 그가 물러나는 대신 적의 우두머리를 공략한 것이었다.
쏴아아.
불사신공을 대성한 그의 장세는 가히 살인적이었다.
사실 처음부터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정마동맹 무사들이 꼼짝 못하고 있는 지금 설사 출구를 발견해도 물러날 곳이 없었다.
지옥검선이 껄껄 웃었다.
“하하하! 검마왕! 네놈이 불사신공을 대성했다고 간이 부었구나. 어리석은 놈!”
지옥검선이 장력으로 맞받아쳤다.
꽈앙.
“으윽!”
검마왕이 피를 흘리며 세 걸음 물러났다.
심한 내상은 아니나 타격을 입은 것은 분명했다.
“네놈이!”
검마왕이 지옥검선을 노려봤다. 하지만 이미 기혈이 흔들린 터라 재공격은 하지 못했다.
그때 백소운이 악마검을 휘둘렀다.
지옥맹 무사들을 막아내기 위해서였다.
악마검에서 악마의 불길 같은 화염이 솟구쳤다.
지옥맹 무사들이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여 널브러졌다.
아무리 지옥혈교와 천룡궁 출신이라 하지만 아예 상대가 되지 못했다.
“으윽!”
“크윽!”
“악마화(惡魔火)다! 모두 피해라!”
누군가 급히 소리쳤으나, 불길은 더욱 거세질 뿐이었다.
백소운이 계속해서 악마검으로 불길을 일으켰다.
화르르륵!
화르르!
악마의 불길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한번 붙은 불은 지옥맹 무사 수만 명을 한꺼번에 불태웠다.
그것은 한편의 지옥도였다.
그리고 그 불길은 지옥맹과 정마동맹 무사들 사이에 장벽을 만들었다.
이는 백소운이 의도한 것으로, 실성악마가 되기 전에 정마동맹 무사들을 대피시키기 위해서였다.
‘실성악마가 되면 적과 우군을 가리지 않고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을 죽일 것이다. 차라리 정마동맹 무사들을 대피시키고 놈들과 함께 죽는 것이 낫다. 불사신공을 익혔으니 운이 좋으면 부활할 수 있을 것이다.’
백소운이 결단을 내리고 악마화를 더욱 일으켰다.
순식간에 삼사만 명이 불에 타 즉사한 지옥맹 무사들은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지옥검선과 지옥노인도 백소운의 무위에 놀란 표정이었다.
악마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그 위력이 어떠한 지는 그들도 확실히 모르고 있었다.
“맹주님. 어떻게 하실 겁니까? 놈이 너무 강합니다. 곧 놈이 주화입마되면 완전히 미쳐버려 예상과 달리 우리 모두가 전멸할 우려가 있습니다.”
지옥노인의 다급한 말에 지옥검선이 안색을 더욱 굳혔다.
“좋은 방법이 없겠나?”
“일단 놈을 한번 공격하십시오. 의외로 맹주님께 당할 수도 있으니까요. 놈을 죽이면 천무마시도 얻을 수 있고 나머지는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그렇군.”
지옥검선이 몸을 허공에 띄웠다.
악마화가 거세게 타고 있어 백소운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였다.
허공에서 보니 백소운이 미친 듯이 악마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백소운 역시 마음과 달리 자신을 완전히 통제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원래 백소운은 악마화로 지옥맹 무사들을 공격하면서 천무마시를 확보하려했었다.
하지만 그게 뜻대로 되지 않고 있었다.
악마검을 통해 악마력을 조절 없이 발산하다 보니 주화입마의 속도가 더 빨라진 것이다.
‘이때다!’
지옥검선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일장을 날렸다.
쏴아아.
평범해 보였지만 그의 모든 공력이 담긴 공격이었다.
반쯤 미친 상태의 백소운이 이를 막을 수는 없었다.
꽈앙, 하는 폭음과 함께 백소운이 피를 뿌리며 뒤로 날아갔다.
쿵.
운기조식을 취하고 있던 검마왕이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그 전에 백소운이 벌떡 일어나 몸을 솟구쳤다.
눈빛이 다시 빛나는 것이 조금 전의 타격으로 정신이 오히려 맑아진 것 같았다.
‘지옥검선 저놈을 죽여야 천무마시를 얻게 된다.’
백소운이 불가사의한 속도로 날아가 악마검으로 지옥검선의 가슴을 찔렀다.
“으윽!”
지옥검선이 비명과 함께 지면으로 떨어졌다.
지옥악마신을 숭배하고 있던 그였기에 악마력이 담긴 악마검에 속수무책이었던 것이다.
“빌어먹을! 으으······.”
지옥검선이 곧바로 결단을 내리고 가슴에 박힌 악마검을 뽑았다.
그 역시 악마가 된 셈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지옥맹주의 신물인 지옥파천기(地獄波天旗)가 있었다.
이 지옥파천기는 원래 마계의 법보였다.
일개 깃발에 지나지 않았으나, 악마력을 자신의 내공으로 만들어주는 효능이 있었다.
그 외에 다급할 때 지옥악마신과 연락을 취하는 효능도 있었다.
둘 다 지옥검선으로서는 당장 필요한 것이었다.
하지만 다시 힘을 재정비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 차이가 승부를 갈랐다.
천무마시가 백소운 쪽으로 날아가 버린 것이다.
백소운과 지옥검선 두 사람의 대결에서 백소운의 손을 들어준 것이었다.
지옥노인이 소리쳤다.
“어서 지옥악마신께 도움을 청하십시오. 놈이 탑을 무너뜨리면 끝장입니다.”
“지옥악마신이여! 도와주소서.”
지옥검선이 지옥파천기로 악마력을 흡수하면서 입으로는 지옥악마신에게 도움을 청했다.
천무마시가 백소운에게 넘어갔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는 주문 같은 것을 계속 암송했다.
이는 지옥신조에게 배운 주문으로, 정말 위급한 때 지옥악마신과 통할 수 있었다.
다만 지옥악마신의 봉인 해제가 불완전해 절대 남용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가 있었다.
지옥신조의 말로는 단 한번만 사용이 가능하다고 했다.
한편 백소운은 한계에 달해 막 주화입마되어 실성악마가 되기 직전이었다.
한데 천무마시가 그의 손에 들어오자 사정이 변했다.
잠시지만 머리가 다시 맑아졌다.
‘어서 무사들을 풀어주고 대피시켜야 한다. 그 다음 탑을 무너뜨리면 된다.’
백소운이 목표의식을 강하게 가지자, 순간 천무마시에서 금빛이 솟아났다.
원래는 금빛과 붉은 빛이 섞여 있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금빛 일색이었다.
아무래도 천무시와 천마시 중 전자가 주도권을 잡은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걸 따질 때는 아니었다.
천무마시에서 나온 금빛이 향한 곳은 정마동맹 무사들이 있는 곳이었다.
한꺼번에 그들 모두를 덮쳤던 것이다.
“헉!”
“앗!”
정마동맹 무사들이 놀라서 소리를 냈다. 하지만 이내 그 목소리는 탄성으로 바뀌었다.
꼼짝도 못하던 자신들의 몸이 자유롭게 변한 것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천무마시에서 나온 금빛은 정마동맹 무사들의 뒤편 벽까지 도달해 거대한 통로를 만들었다.
그그긍, 소리와 함께 벽이 갈라지며 출구가 생긴 것이었다.
‘보통 법보가 아니군. 내 생각을 한꺼번에 수행하고 있다. 그렇다면 탑 역시 무너지겠구나.’
백소운이 안색을 굳히며 소리쳤다.
“태상교주님. 곧 탑이 무너질 겁니다. 무사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십시오.”“자네는 어떻게 하고?”
기력을 약간 회복한 검마왕이 급히 물었다.
“저는 놈들을 막다가 나중에 빠져나가겠습니다. 그리고 모든 무사들은 들으시오. 지금부터 아무 질문도 받지 않을 것이니, 태상교주님과 백리 맹주님의 인도로 속히 이곳을 떠나시오. 즉시 실행하시오.”
“명을 받들겠습니다.”
마교 무사들이 먼저 출구 쪽으로 향했다.
검마왕이 그들을 인도했다.
무림맹 무사들 또한 백리천의 인솔 하에 탑을 빠져나갔다.
그 과정에 유덕, 정기, 막총, 진하림 네 사람은 끝까지 남으려 했다.
하지만 백소운이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마침 적의 수중에 잡혀 있던 매소청까지 구해낸 그는 그녀를 진하림에게 인계한 후 모두 빠져나가게 했다.
한편 지옥맹 무사들 역시 가만있지 않았다.
사태를 파악하고 자신들도 빠져나가려 했다. 하지만 악마화로 만든 거대한 불길 장벽 때문에 실패했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악마광장이 드디어 흔들리기 시작했다.
“탑이 무너진다!”
지옥맹 무사들이 기겁을 했다.
그때 지옥검선이 지옥파천기를 흔들어 악마화를 끄는데 성공했다.
그때는 정마동맹 무사들이 모두 빠져나간 후였다.
불길이 사라지자 지옥맹 무사들을 막고 있는 사람은 백소운 한 사람뿐이었다.
지옥검선이 말했다.
“어서 비켜라. 탑이 무너지고 있으니 밖으로 나가서 겨루자. 탑이 무너지면 네놈도 죽는다.”
“보내줄 수 없소.”
백소운이 말을 한 후 눈을 감았다.
천무마시 덕분으로 맑아졌던 정신이 다시 혼란해졌다.
주화입마의 원인을 해소하지 못해 다시 실성악마가 되기 직전이었다.
백소운이 천무마시와 천마검 등 몸에 지니고 있던 물건을 모두 금단비고에 넣었다.
이미 무너지고 있는 악마광장에 최후의 힘을 가해 완전히 탑을 무너뜨리려는 생각이었다.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이냐?”
지옥검선이 급히 공격을 퍼부으려 했다.
지옥파천기 덕분으로 악마력을 흡수해 원래 공력보다 열 배 이상 강해진 그였다.
악마화도 그 힘으로 끌 수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백소운 정도는 충분히 죽일 수 있는 자신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조금 늦고 말았다.
백소운의 전신에서 폭풍 같은 금빛 광채가 동심원 모양으로 뿜어져 나왔다.
일종의 자폭공이었다.
금빛에 당한 지옥맹 무사 수만 명이 가루로 변했다.
지옥맹 총군사 지옥노인의 육신이 터져나가며 즉사했다.
“으윽!”
악마광장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곳곳에서 비명이 난무했다.
무너져 내리는 돌덩이와 먼지에 가려 백소운의 모습은 보이지도 않았다.지옥검선이 절규했다.
“지옥악마신이시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