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183
“하심무인이라 하면 총단 하인 출신 무인을 뜻함이 아니오?”
“그렇소이다. 알고 있군요.”
“어찌 모를 수 있겠소? 본맹의 부맹주이신 백소운 대협께서 바로 하심무인 출신이지요.”
위징의 말에 백하심이 반색했다.
백소운에 대해서는 그 역시 여러 번 들은 적이 있었다.
그 무공이 귀혈공자와 쌍벽을 이룰 정도로 높다는 것과 실종이 되어 무림맹 측에서 애타게 찾고 있다는 정도였다.
“백소운 대협께서 바로 하심무인 출신이셨군요. 그분에 대해서는 여러 번 들었소이다. 성도 저와 같고 여러모로 뵙고 싶은 분이오.”
“그렇구려. 백 공자. 한데 왜 하심무인에 대해 묻는 것이오?”
“그건······.”
백하심이 안색을 조금 굳혔다.
잃어버린 자신의 기억을 되찾기 위해서라고 말하기가 좀 그랬던 것이다.
“왜 하심무인 중에서 찾는 분이 계시오?”
“그렇소이다. 백소운 대협 말고 다른 하심무인 분은 또 누가 있소?”
“그건 잘 모르겠소. 우리는 그동안 총단 경계를 맡아왔기에 저번 출정에도 참여하지 못했소이다. 하심무인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다면 내부총관을 만나보는 게 가장 빠를 것이오.”
“내부총관?”
“그렇소. 맹찬이란 분인데 하심무인에 대해서는 그보다 잘 아는 사람이 드물 것이오. 이것이 내가 아는 전부요.”
“고맙소이다. 한데 맹찬 그분을 만나려면 어디로 가야 하오?”
“그야 물론 총관실이 아니겠소? 하하하.”
위징이 껄껄 웃었다.
강호초보처럼 행동하는 백하심이 그다지 싫은 표정은 아니었다.
잠자코 이야기를 듣던 고화포가 말했다.
“하심무인 출신 누구를 만나려는 것이오? 이름을 말해보시오. 어쩌면 우리가 아는 사람일 수도 있으니까.”
“이름은 모르오. 다만 석 달 전쯤 실종된 사람이란 것만 알고 있소.”
“으음, 이름도 모르면 찾기 어려울 것이오.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하오.”
“아니외다. 친절하게 답해줘서 고맙소이다.”
백하심이 고개를 조금 숙여 감사의 표시를 했다.
방사약이 말했다.
“보기보다 비밀이 많은 분 같군요. 백하심 공자라고 하셨지요? 무림인도 아니라면 무슨 일을 하시는 분이죠?”
“아무 일도 안 하오. 하지만 이제 할 일을 찾을 생각이오.”
“흥! 지금 말장난하는 건가요? 우리가 시간이 남아돌아 이곳 객잔에 있는 줄 아세요? 위 무사님. 고 무사님. 어서 가요.”
“그렇게 하지.”
위징과 고화포, 방사약 세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하심이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으로 배웅했다.
하지만 어쩐지 뒷맛이 좋지 못했다.
‘기억을 잃었다고 솔직히 말할 걸 그랬나. 본의 아니게 이상한 사람이 되었군.’
탁자에 홀로 남은 백하심이 식사를 마저 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바쁜 것 같았다.
다행히 자리가 조금씩 비어 백하심이 앉은 자리에 다른 손님이 오지는 않았다.
식사를 마친 후 그는 점소이를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며칠 묵으려는데 빈방이 있나?”
“네. 소인을 따라오십시오.”
“고맙네.”
점소이의 안내로 들어간 곳은 이 층에 있는 작은 방이었다.
음식 값과 방값을 치른 그는 방 안에서 조용히 휴식을 취했다.
주머니를 뒤져 갖고 있는 은자를 살려보니 두 냥뿐이었다.
은자 한 냥으로 네 식구가 한 달을 살 수 있다고 하지만, 물가가 높은 낙양에서는 부족한 액수였다.
더군다나 그가 묵고 있는 중원객잔의 음식과 방값은 비싼 편이었다.
무림맹 총단과 가까운 이곳은 그 특징상 손님 대부분이 무림인이었다.
그 때문에 씀씀이가 큰 편이었다.
‘이 돈으로는 이곳에서 오래 지내는 것은 어려울 것 같구나. 일단 그 맹찬이란 분을 만나봐야 할 텐데, 만나줄지도 모르겠구나.’
백하심이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이 과거의 일을 기억 못한다는 것이 이렇게 막막한 줄은 그도 미처 알지 못한 표정이었다.하지만 이내 마음을 담담히 하는 그였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지금이다. 현재에 충실한 삶이 바로 무심(無心)으로 가는 길이지. 너무 조급해할 필요가 없다. 모든 것은 인연에 맡기고 마음을 편히 하자. 분명 길이 열릴 것이다.’
어느새 가부좌를 틀고 조용히 묵상에 잠겨 있는 그였다.
하지만 이제 겨우 점심을 먹고 난 후라 계속 방 안에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 내일까지 기다리지 말고 바로 무림맹 총단으로 가보자.’
백하심이 천천히 일어나 객방에서 나왔다.
일 층으로 내려가자 다시 손님들로 왁자지껄했다.
혹시 몰라 객잔 안을 살폈으나, 위징 일행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였다.
객잔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더니 한 사내가 안으로 들어왔다.
“영웅대회 날짜가 정해졌소이다! 석 달 후 총단에서 새 맹주를 뽑는다고 하오. 현 맹주이신 백리 맹주께서는 맹주 직을 사임하고 태상맹주가 되셨다고 하오.”
“아!”
“정말 영웅대회가 열리는군.”
손님들이 너도나도 한마디 씩 했다.
그중에는 석 달이란 기간이 너무 길다고 불평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천하 각지의 고수들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려면 어쩔 수 없었다.
누군가 물었다.
“맹의 신입 무사는 언제부터 뽑는다고 하오?”
“오늘부터라고 들었소. 누구나 응시할 수 있다고 하니 어서 총단 대연무장으로 가보시오. 지금 사람들이 모두 그쪽으로 가고 있소.”
“구경이라도 해야겠군.”
사람들이 급히 일어나 객잔 밖으로 나갔다.
백하심도 그들과 합류했다.
어차피 총단으로 갈 생각이었기에 잘됐다는 표정이었다.
‘신입무사라. 혹시 하인도 새로 뽑지 않을까. 역용술 말고 아는 무공이 없으니 무림맹 무사는 힘들 것 같고. 아니다. 일단 맹찬 그분을 만나보고 결정하자. 굳이 하인까지 될 필요는 없을 것 같군.’
백하심이 걸음을 빨리했다.
벌써 총단으로 향하는 길에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백하심은 흥분한 그들을 보며 눈을 빛냈다.
‘무림맹 무사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하기야 이번에 관문을 조금 완화한다고 들었으니, 무림맹 무사를 꿈꾸는 사람에게는 좋은 기회일 것이다.’
얼마 후 도착한 무림맹 총단은 어느새 소문을 듣고 찾아온 무림인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대문 앞에 수백 명이 모여 있었다.
하지만 총단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허락되지 않고 있었다.
백하심 역시 들어갈 수 없었던 것은 물론이었다.
무림맹 무사 한 명이 소리쳤다.
“모두 돌아가십시오. 무림맹 신입무사 선발 시험은 모레 시작됩니다. 정식 공고문이 내일 아침에 붙을 것이니 그 절차대로 지원하면 될 겁니다.”
“오늘부터 시험을 본다고 해서 왔습니다. 그게 아니었습니까?”
“모레부터입니다. 확실하지 않은 말을 듣고 오셨군요. 본맹에서 그렇게 일을 두서없이 처리하겠습니까?”
예의 무림맹 무사가 소리쳤다.
백하심이 그 무사의 얼굴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까 점심때 객잔에서 합석했던 위징이었기 때문이었다.
위징 옆에는 함께 봤던 방사약, 고화포 등 무림맹 무사 삼십여 명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그들은 사람들이 이렇게 몰려온 데 대해 무척 당황하는 표정이었다.
위징이 다시 소리쳤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돌아가십시오. 지금 돌아가지 않는 분은 출전권을 박탈당할 수도 있습니다.”
“아! 그럼 가아지.”
“난 구경만 하려고 왔습니다.”
사람들이 그제야 발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사실 그들 중 대다수는 실제 응시자가 아니라 구경꾼이었다.
사람들이 돌아가자, 위징 등 무림맹 무사들이 한숨을 돌렸다.
그때 백하심이 위징에게 다가갔다.
“여기서 또 보는군요. 정말 무림맹 무사분이셨군요.”
“아, 그대는 백 공자?”
위징이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그렇소이다. 맹찬이란 분을 만나볼 수 있겠소?”
“내부총관은 총관실에 계시오. 하지만 무작정 만날 수는 없소.”
“그럼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합니까?”
“만나고자 하는 용건을 서면으로 작성해주시오. 그러면 무사 한 명이 총관실에 전달할 것이오. 사람을 찾는다고 했소?”
“그렇소이다.”
“그 정도면 긴급 상황이 아니니 역시 서면으로 면담 신청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오. 신청서를 작성하면 우리가 전해주겠소.”
“고맙소이다.”
백하심이 고개를 조금 숙인 후 신청서를 작성했다.
그 내용은 하심무인에 대해서 물어볼 것이 있으니 내부총관을 만나고자 한다는 것이었다.
“저곳 대기막사에서 기다리시오.”
위징이 대문 한쪽 편에 있는 막사를 가리켰다.
막사 안에 의자들이 비치된 것으로 봐서 그곳이 바로 대기막사인 것 같았다.
“방 무사. 백 공자를 안내해주시오.”
“네.”
방사약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백하심을 대기막사로 안내했다.
그러는 동안 총단으로 몰려 온 사람들은 모두 돌아갔다.
돌아가면서 그들이 정확한 시험 개시날짜를 알렸음인지 더 이상의 사람들은 몰려들지 않았다.
백하심은 다른 목적으로 왔기 때문에 이에 개의치 않고 막사에 들어가 의자에 앉았다.
대기막사에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경계 무사 역시 한 명이라도 있어야 하는지, 방사약도 함께 있었다.
백하심이 말했다.
“고생이 많소. 나 한 사람 때문에 소저가 함께 기다려야 한다니 미안하오.”
“경계 임무는 순찰당 무사로서 당연한 거예요.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방사약이 냉랭하게 말했다.
백하심은 개의치 않는 듯 미소를 지었다.
방사약이 물었다.
“하심무인 누구를 찾는다고 했지요? 아, 맞다. 이름도 모른다고 했지요?”
“그렇소. 석 달 전 실종된 사람이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소?”
“알고 있어요.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았는데 제가 까먹었다고 생각하셨나요?”
“그건 아니오. 사실 소저께 말씀드리지 못한 것이 있소.”
“그게 뭔가요?”
“그 찾는 사람이 바로 나요. 석 달 전 기억을 잃었는데,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하심무인이란 말뿐이었소. 그래서 이곳까지 찾아온 것이오.”
백하심이 기억을 잃은 사실을 밝혔다.
물론 처음부터 이야기를 해줄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기다리기가 무료해 자신도 모르게 사정을 털어놓은 것이다.
물론 위험성이 있어 자세한 사실은 말해주지 않았다.
방사약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다시 코웃음을 쳤다.
“흥! 지금 그 말을 믿으라는 건가요?”
“믿지 않아도 어쩔 수 없소. 하지만 소생이 한 말은 모두 사실이오.”
“좋아요. 믿어드리지요. 하지만 그 정도 내용만 가지고 단서가 될 만한 내용을 알기는 어려울 거예요. 석 달 전 어디에서 정신을 잃었나요?”
“그건······.”
백하심이 주저하며 말을 못했다.
지옥맹 잔당으로 오인 받을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방사약이 아미를 찌푸렸다.
“그만두죠. 역시 비밀이 많군요. 확실하게 말씀드리지만, 본 맹 총단에는 신원이 불확실한 사람은 들어갈 수 없어요. 가뜩이나 지옥맹 잔당을 찾아내기 위해 다들 신경이 날카로운 지금 잘못하면 간자로 오인당할 수도 있어요. 제 말 아시겠어요?”
“참고하겠소. 여러모로 미안하오. 나름대로 고충이 있으니 이해해 주시오.”
“알겠어요. 사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이것저것 묻기가 좀 그렇긴 했어요. 아, 저기 총관실 무사가 나왔네요.”
방사약이 손으로 대문 쪽을 가리켰다.
막 총단 안에서 무사 한 명이 나왔는데, 총관실 소속 무사인 것 같았다.
총관실 무사가 바로 대기막사로 왔다.
“하심무인을 찾는다는 사람이 귀하요?”
“그렇소이다. 내부총관께서 뭐라고 하시던가요?”
“찾고자 하는 하심무인의 이름을 알아오라 하셨소.”
“이름은 모르오.”
“그럼 신체 특징이라도 말씀해보시오. 원래는 이런 사소한 일에 신경을 쓸 내부총관님이 아니시지만 하심무인 출신인 백소운 대협 때문에 특별히 물어보는 것이오.”
“특징은 따로 없소.”
“몸에 점이라든가 문신 같은 것도 없소?”
“전혀 없소이다. 한데 석 달 전쯤 실종된 하심무사가 아무도 없소?”
“전혀. 아무래도 안 되겠소. 이만 돌아가시오. 바빠 죽겠는데 별 이상한 사람이 다 있군.”
총관실 무사가 투덜대며 다시 총단 안으로 들어갔다.
백하심이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간청을 하든지 어떻게든 맹찬을 직접 만나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으로는 별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
“이만 돌아가겠소.”
“객잔에서 머무실 건가요?”
방사약이 딱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연민을 느낀 것일까.
하기야 기억 잃은 사내 백하심의 표정이 쓸쓸하게 보이긴 했다.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소. 여러모로 고맙게 생각하오. 위 무사와 고 무사 두 분께도 감사 인사를 전해주시오. 그럼 가보겠소.”
“그러지 말고 혹시 무공을 배웠다면 무림맹 무사 시험에 응시해보세요. 이번에 기준이 무척 완화되었으니, 한 가지 재주라도 있으면 수습무사 정도는 가능할 거예요. 어떻게든 총단에 있어야 나중에라도 기억을 되찾을 수 있지 않겠어요?”
방사약이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백하심 역시 미소를 지었다.
“사실은 하인으로라도 총단에 들어가려고 했었소. 내가 하심무인 출신일 수도 있기 때문이오. 하지만 소저의 말씀을 들으니 무사로 들어가는 것도 흥미가 생기는구려. 한데 수습무사는 어떤 것이오? 처음 듣는 것 같구려.”
“수습무사 제도는 이번에 처음 채택한 것으로, 모레부터 석 달 가량 매일 시험을 통해 선발할 거예요. 물론 실력이 있으면 바로 정식무사가 되겠지만, 그러지 못한 사람이 대다수이지요. 맹주님, 아니 이제 태상맹주가 되셨지요. 태상맹주께서는 그런 사정을 헤아려 약간의 무공만 있어도 기회를 주기로 하셨어요. 수습 기간은 영웅대회가 열리는 때까지며, 그때까지 기본적인 무공을 자기 능력껏 연마할 수 있을 거예요. 무공 연마 기간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빨리 될수록 유리하겠죠? 자세한 것은 내일 발표될 공고문을 참고하세요. 이상이에요.”
“고맙소. 인연이 있다면 다시 봅시다.”
“그래요. 잘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