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185
백하심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방문들을 살펴봤다.
이곳 낙양으로 오면서 각 지역에서 막일을 했기 때문에 구인방문 보는 데는 익숙했다.
잠시 보는 것만으로도 어떤 일인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인지 감이 오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예상대로였다.
구할 이상이 하루 임금을 주고 사람을 구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다 문득 한 방문을 보고 눈을 빛냈다.
‘금룡각이라. 도박하는 곳인가. 은자 두 냥이라면 내가 지금 갖고 있는 돈의 액수와 같구나. 입장료가 엄청 비싸군.’
백하심이 다시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도박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다만 지금 가지고 있는 전 재산으로 겨우 출입할 수 있는 곳이라 하니 호기심이 일었다.
백하심이 옆에서 금룡각 방문을 뚫어지라 보고 있는 대머리 대한에게 물었다.
“금룡각이란 곳은 어떤 곳이오? 사람을 구하는 곳이 아니라 도박장 같은데, 맞소?”
“금룡각도 모르오? 이 낙양에서 금룡각을 모르는 사람은 형장이 유일할 것이오.”
“산속에서 살다가 내려와 모르는 것이 많소. 간단히 설명해주겠소?”
“금룡각은 형장 말대로 도박장이오. 운만 좋으면 은자 수십만 냥도 딸 수 있지. 하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오. 은자 두 냥은 적은 돈이 아닌데, 대박을 바라고 저곳에 갔다가 돈만 날린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오.”
“그래도 따는 사람이 있으니 사람들이 가는 게 아니겠소?”
“그렇기는 하오. 하지만 백 명에 한 명 꼴로 딴다고 보면 될 것이오.”
“어떤 방식으로 하는 것이오? 입장료가 있다는 게 조금 색다르구려.”
백하심이 물었다.
갈 생각은 없었지만, 그 방식에 대해 궁금증이 일었던 것이다.
기억을 잃은 상태라 하나라도 더 알려는 욕구가 강해 보였다.
“방식은 간단하오. 한번 이길 때마다 두 배로 상금이 불어나오. 입장료 은자 두 냥이 첫 판돈이라 보면 되오.”
“그럼 첫판에서 따면 은자 네 냥이 된단 말이오?”
“그렇소. 다만 은자 백 냥이 넘어가야 돈을 찾을 수 있소. 계산해보면 알겠지만 여섯 판을 이겨야 은자 백 냥이 넘소. 그전에 포기하면 한 푼도 받을 수 없소.”
“으음, 들어보니 다른 도박장에 비해 크게 유리한 것도 없구려. 오히려 각종 제한이 붙어 불리한 것 같소. 입장료도 너무 비싸고. 한데 사람이 몰리는 이유가 있소?”
“물론이오. 금룡각만의 장점이 있소. 그것은 다른 곳과 달리 상금의 한계가 없다는 것이오. 매판을 이길 자신만 있다면 은자 백만 냥도 가능하오. 다른 곳은 실질적으로 은자 천 냥만 넘어가도 압력이 들어와 중단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오. 하지만 금룡각은 황금을 그야말로 쌓아두고 있는 곳이라 얼마든지 끝까지 할 수 있소. 물론 비공식적이지만 금룡각 내부 규칙에 의하면 은자 백만 냥이 한계라고는 하오.”
“절묘한 상술이군요.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은자 두 냥만 있으면 은자 백만 냥까지 벌수 있으니까.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들이 몰려들 수밖에 없을 것 같소.”
“하지만 미친 짓이오. 최소한 여섯 판을 연속해서 이겨야 돈을 찾을 수 있소. 거기에서 벌써 대부분이 돈을 잃고 마오.”
“물론 따는 사람도 있겠지요?”
“간혹 은자 백 냥 넘게 벌어가는 사람이 있긴 하오. 하지만 더 욕심부리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는 사람이 대부분이오. 이론적으로 은자 백만 냥은 스무 번 가까이 연속해서 이겨야 하는데, 사람 욕심이 끝이 없어 결국 빈털터리가 되고 마는 것이오.”
“도박 방식은?”
“그건 의외로 간단하오. 상자 속에 든 작은 공의 색깔만 맞추면 되오. 흰색 아니면 검은색 두 개밖에 없다오.”
“설명 감사하외다.”
“가보실 생각이오?”
“아니오. 그냥 궁금해서 물어봤을 뿐이오.”
백하심이 말한 후 다른 일자리 방문을 읽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에 드는 일자리는 없었다.
하기야 좋은 일자리는 대부분 인맥에 의해서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이런 곳에 있는 방문은 대부분 막일을 하는 사람을 구하는 것이었다.
‘낙양이라고 해서 다를 게 없구나. 일단 객잔에 돌아가서 점심이나 먹고 다시 생각해봐야겠다.’
백하심이 영웅광장에서 나왔다.
객잔으로 가는 도중 저잣거리 구경을 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물건을 사고파는 것을 보면서 백하심이 눈을 빛냈다.
‘다들 열심히 사는구나. 하루속히 나도 마음을 다잡고 최선을 다해야겠다. 중요한 것은 늘 지금이니까.’
백하심이 미소를 지었다.
곧 무림맹주가 될 거라는 백소운과 자신의 처지가 너무 비교되어 솔직히 의기소침했던 그였다.
하지만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의 평안이 찾아왔다.
‘그래. 이 마음이면 충분하다. 서둘지 말고, 역용술부터 다시 연구해보자. 내공을 수반하는 무공이라고 하니, 역으로 연구하면 내공심법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지, 서점에 들러 기초적인 무공서라도 보는 게 더 빠를 수도 있겠군.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운기토납법을 익힌다면 내 몸속에 잠재해 있는 기운을 활용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백하심이 두리번거렸다.
바로 서점을 찾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저잣거리가 너무 복잡해 단번에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저잣거리 한구석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무에게나 서점의 위치를 물어볼 생각으로 그곳에 걸어갔다.
수십 명의 사람 앞에 한 소년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남루한 마의를 입은 소년은 십이 삼세 정도로 보였다.
한데 연신 눈물을 흘리며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 게 아닌가.
“제발 제 누나를 구해주세요. 누나를 구해주시면 평생 제가 주인으로 모시겠습니다.”
“네깟 녀석을 어디다 쓰려고? 그래 누나가 어찌 되었기에 이러는 것이냐?”
한 사내가 묻자, 소년이 급히 말했다.
“부모님께서 병으로 돌아가시고 누나와 저 두 사람만 남게 되었습니다. 한데 갑자기 금룡각에서 부모님께서 생전에 빚진 돈 대신 누나를 기루에 판다고 통보를 해왔습니다. 내일까지 은자 백 냥을 갚지 않으면 강제로 누나를 데려간다고 했습니다.”
“은자 백 냥? 무슨 돈을 그렇게 많이 빌렸단 말이냐?”
“어머니 약값으로 은자 열 냥을 아버님께서 빌렸는데, 이자가 붙어 백 냥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어머님께서 돌아가시고 아버님도 얼마 후 병이 들어 돌아가셨지요. 어떻게든 꼭 갚을 테니 은자 백 냥만 도와주십시오.”
마의소년이 눈물로 호소했다.
어린 나이에 하루 만에 은자 백 냥을 구할 방도가 없어 이렇게 거리로 나온 것 같았다.
백하심은 사정도 딱하지만 터무니없는 이자를 받으려는 곳이 금룡각이라는데 화가 났다.
‘도박장 개설로 그렇게 돈을 많이 번다는데, 고리대금업까지 손을 대고 있단 말인가.’
백하심이 애써 자제를 하며 소년을 쳐다봤다.
은자 백 냥이 있어야 소년의 누나를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수중에 있는 돈은 은자 두 냥뿐이었다.
그나마 이 돈도 서점에서 비급을 사는 데 사용하면 얼마 남지도 않을 것 같았다.
‘나중에 검도 한 자루 사려면 돈이 빠듯할 것 같다. 사정은 딱하지만 내가 도와줄 상황은 아닌 것 같구나. 차라리 은자 두 냥이 필요하다면 그냥 줄 수도 있는데······.’
백하심이 발길을 돌리려 했다.
영웅협객도 아니고, 그렇다고 부자도 아닌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면서.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좀 더 소년의 말을 듣고 싶었다.
누가 나서서 도와주는 것을 봐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대한 한 명이 소년에게 물었다.
“네 누나는 지금 어디 있느냐? 왜 너 혼자서 이렇게 도움을 청하고 있는 것이지?”
“누나는 충격을 받아 몸져누워있습니다. 제발 좀 도와주세요.”
“딱하기는 하지만 은자 백 냥이 보통 돈이냐? 혹시 은자 두 냥도 없느냐? 그 돈만 있으면 금룡각에서 가서 운을 시험해보는 것도 좋을 텐데······.”
“금룡각에는 가기 싫습니다. 우리 누나를 팔아먹으려 하는 놈들이 운영하는 곳이잖아요?”
“금룡각에 가서 돈을 따면 놈들에게 복수도 하는 셈이 되고 네 누나도 구할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 아니냐? 내 말을 듣고 은자 두 냥을 구해 금룡각으로 가거라. 금룡각에서 오늘 중으로 은자 백 냥을 만들어 바로 갚는다면 네 누나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은자 두 냥이라도 좀 도와주십시오. 돈을 따면 두 배로 갚겠습니다.”
마의소년이 예의 대한에게 손을 벌렸다.
하지만 대한은 코웃음을 쳤다.
“나는 방도만 알려줬을 뿐이다. 은자 두 냥도 큰 액수인데, 어찌 처음 보는 네게 빌려줄 수 있겠느냐? 그리고 네까짓 게 어찌 돈을 딸 수 있단 말이냐? 험험.”
대한이 기침을 한번 한 후 떠나버렸다.
구경하던 다른 사람들도 자신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할까 봐 모두 가버렸다.
사실 이런 소년은 천하 각지 어느 곳에 가도 있었다.
그리고 그 상당수는 거짓말로 구걸을 하는 소년들이었다.
말은 안하지만 사람들이 그냥 떠나버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얼마 후 소년의 앞에는 백하심만 남고 말았다.
의기소침해진 소년은 눈물을 흘릴 뿐 백하심에게 말을 건네지도 못했다.
하지만 누나를 생각해 어렵게 말을 꺼냈다.
“대협. 제 누나를 구해주세요.”
“가자.”
“네?”
“나를 따라 금룡각으로 가자. 금룡각에 너 같이 어린 아이는 혼자서 들어갈 수 없을 것이다. 내게 마침 은자 두 냥이 있으니, 한번 운을 시험해보자. 어떻게 하겠느냐? 여기서 계속 있을 테냐? 아니면 나를 따라가겠느냐?”
“대협을 따라가겠습니다.”
“나는 대협이 아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저는 왕인우(王鱗羽)라고 합니다. 제 누나는 왕옥(王玉)이라고 하지요.”
“누나가 평소에 몸이 아팠냐?”
“네.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충격으로 누워 있을 정도라면 평소에 몸이 허약했을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너 혼자 이렇게 거리로 나와 도움을 청하게 했겠느냐?”
“네. 대협의 존함은 어떻게 됩니까?”
“대협이 아니라고 했다. 대협은 백소운 대협 같은 분이지. 나는 백하심이라고 한다,”
“저에게는 아저씨께서 더 영웅이십니다.”
“녀석, 말은 잘 하는구나. 어서 가자.”
“네.”
백하심과 왕인우 두 사람이 금룡각으로 향했다.
다행히 왕인우가 금룡각의 위치를 알고 있었다.
백하심이 눈을 빛냈다.
‘공의 색깔을 맞추는 거라면 어쩌면 대박이 터질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그 투시력이 어쩌다 되는 거라서 그게 걱정이구나.’
백하심이 문득 며칠 전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어느 객잔에서 면사를 쓴 여인을 본 적이 있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느낌이 있어 그녀의 면사를 집중해서 봤었다.
한데 얼마 지나지 않아 면사 뒤의 얼굴이 보였던 것이다.
깜짝 놀라 다른 곳을 봤지만 그것이 투시력이란 것을 모를 리 없었다.
이후 비슷한 일이 몇 번 더 있었다. 투시력은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문제는 그 투시력이 일정하지 못하고 들쭉날쭉하다는 점이었다.
그래도 정신이 맑을 때는 잘 되는 편이었다.
백하심은 이러한 능력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는 않았다.
오해를 살 수 있었고, 자신을 꺼려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한데 금룡각의 도박 방식을 들어본 결과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돈을 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분까지 생기자 주저할 필요가 없었다.
‘변수는 공을 넣어두는 상자의 재질이다. 두꺼운 철판 같은 것은 아직 성공한 적이 없었는데 걱정이 조금 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