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188
“으음, 이럴 수가······.”
부각주가 안색을 굳혔다.
그는 백하심의 승리를 믿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기관 장치를 통해 분명히 검정색 공이 나오도록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 역시 고도의 속임수라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부각주가 백하심을 쳐다봤다.
백하심은 태연한 표정이었다.
부각주로서는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축하드리오. 그만하시겠소?”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소. 아까도 밝혔지만 급히 돈이 필요해서 말이오. 계속하다가 모두 잃으면 그야말로 큰일이 아니겠소?”
“실례가 안 된다면 당장 필요한 돈의 액수가 얼마인지 말씀해주실 수 있겠소? 얼마 안 된다면 먼저 그 돈을 드리고 시합은 계속하였으면 하오. 은자 백만 냥을 따고 싶지 않소?”
부각주의 제의에 백하심이 흠칫했다.
내심 바라던 바였던 것이다.
“으음, 지금 꼭 필요한 돈은 은자 백 냥이오. 백 냥을 지금 주시면 계속할 수 있을 듯하오.”
“하하하. 고작 은자 백 냥이었소? 좋소. 그 돈은 그냥 드리겠소. 다만 남은 판은 은자 백만 냥이 될 때까지 해야 하오. 어떻소? 본각의 규율에 따라 앞으로 열 판만 더 이기면 정확히 은자 백만 냥을 드리겠소. 정확하게 계산하면 백만 냥이 넘겠지만, 본각의 한계 상금이 그 정도라 백만 냥으로 정하는 게 깔끔할 것이오.”
“앞으로 열 번을 연속해서 이겨야 하는 것이오? 도중에 포기하면 어떻게 되오?”
“포기하더라도 따로 은자 이백 냥을 드리겠소. 다만 최소 세 판은 무조건 해야 하오. 이후 도전을 계속하다가 지면 그때는 한 푼도 없소.”
“좋소이다. 일단 은자 백 냥부터 주시오.”
와아아.
짝짝짝.
구경하던 손님들이 다시 함성과 함께 박수를 보냈다.
백하심이 속으로 생각했다.
‘손해 볼 것은 없다. 애초 끝까지 해보고 싶었으니까.’
부각주가 수하를 시켜 은자 백 냥짜리 전표를 가져오게 한 후 물었다.
“은자 백 냥을 어디에 사용하려는지 가르쳐 줄 수 있겠소?”
“금룡각에 돈을 빌린 사람이 있는데, 그 돈을 내일까지 갚지 못하면 기루로 팔려갈 위기에 처해 대신 갚으려는 것이오.”
백하심의 말에 사람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금룡각에서 고리대금업에 손을 대고 있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런 일이 있었소? 하지만 본각에서는 돈을 갚지 않았다고 해서 강제로 기루로 파는 그런 짓은 하지 않소. 뭔가 오해가 있었던 것 같소.”
부각주가 안색을 조금 붉혔다.
많은 사람이 있는 곳에서 치부를 들킨 것 같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도박장을 전담하고 있어 고리대금에 관한 일은 잘 몰랐다.
고리대금 쪽에는 따로 책임자가 있었다.
백하심이 말했다.
“그렇소? 그러면 이 자리에서 그 차용증서를 찢어버리면 될 것 같구려. 왕옥이라는 소녀에 관한 것인데, 찾을 수 있겠소?”
“총관. 한번 찾아보게.”
“네.”
총관이 서둘러 집무실 쪽으로 갔다.
그러는 동안 백하심은 은자 백 냥짜리 전표를 받을 수 있었다.
사실 그가 공개적으로 왕옥 이야기를 꺼낸 것은 일을 확실하게 마무리 짓기 위해서였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차용증을 찢을 수만 있다면 그보다 확실한 마무리는 없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훨씬 빨리 총관이 차용증 하나를 들고 왔다.
“내일 집행할 것이라 바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집행반에 물어보니 기루 이야기는 그냥 겁을 준 거랍니다. 실제 그렇게 할 계획은 전혀 없었다고 하더군요.”
“하하하. 그럼 그렇지. 본각이 흑도도 아니고 그런 짓을 할 리가 있나.”
부각주가 껄껄 웃으며 차용증을 받았다.
백하심은 그들이 평판 때문에 서로 말을 맞춘다는 것을 알았지만 가만있었다.
대신 부각주에게 부탁해 바깥에 있던 왕인우를 불렀다.
얼마 후 왕인우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들어왔다.
백하심이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정식으로 은자 백 냥을 갚고 차용증을 찢어 없앴다.
“이제 너희 집에 빚은 없다. 여기 있는 분들이 모두 증인이 되어 주실 것이다.”
“아, 그럼 정말 누나가 팔려가지 않는 건가요?”
“그렇다. 그러니 안심하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아니에요. 저도 끝까지 남아 아저씨를 응원해드릴게요.”
“그래? 그러면 옆에 있어라.”
“네.”
왕인우가 매우 기뻐했다.
부각주가 말했다.
“차용증 문제는 해결되었으니 바로 시작합시다. 다시 한번 정리하면, 세 판은 무조건 연속으로 해야 하오. 네 판째부터는 포기가 가능하오. 포기하더라도 아까 말한 대로 은자 이백 냥을 지급하겠소. 이해가 되오?”
“물론이오. 아, 그리고 아마도 포기는 하지 않을 것 같소. 세 판을 더 이기게 되면 확보하게 되는 금액이 팔천 냥이 넘게 되는데 고작 이백 냥을 받고 포기할 사람이 있겠소?”
“하하하. 마음대로 하시오.”
부각주가 껄껄 웃었다.
그러면서 속으로 비웃었다.
‘어리석은 놈. 그냥 은자 천 냥을 받고 그만뒀더라면 하는 후회를 반드시 하게 될 것이다.’
부각주가 금룡함 하나를 다시 가져오게 했다.
한데 이전 판에 사용했던 것과는 모양이 달랐다.
백하심이 흠칫했다.
이번에도 격공역용술을 펼치려 했던 계획이 어긋난 것이다.
“일곱째 판부터는 시합 방식이 조금 달라지오. 단순히 색깔을 맞추는 것을 계속하는 것은 시시하지 않겠소?”
“······.”
백하심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까 끝까지 공의 색깔을 맞추는 방식이라고 정해진 바는 없었다.
‘이미 급한 일은 해결했으니 초조할 필요는 없다. 즐기면 되는 것이다.’
백하심이 안색을 펴며 여유를 가졌다.
그러면서 금룡함 안을 투시해보니 주사위 하나가 있었다.
부각주가 금룡함을 열어 주사위를 꺼냈다.
“이번에는 주사위를 던져 숫자를 맞추는 시합이오. 짝수와 홀수 둘 중 하나에 걸면 되오.”
“알겠소.”
“어디에 걸겠소?”
“홀수”
“홀수라······.”
부각주가 주사위를 손에 들고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주사위를 던져 자신이 원하는 숫자를 나오게 하는 비결을 터득한 그였다.
그 비결은 사실 무공에 있었다.
미세하게 보이지 않도록 기파를 보내 굴러가는 주사위를 조절하는 것이었다. 이는 무림고수라 해도 아무나 할 수 없는 비기 중의 비기였다.
부각주 자신도 수십 년 이상 각고의 노력을 통해 터득한 것이었다.
그가 부각주 자리에 오른 결정적 이유이기도 했다.
‘후후후!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숫자를 조절하는 것이지.’
부각주가 주사위를 던졌다.
여섯 개의 숫자가 적혀 있는 주사위가 데굴데굴 굴러갔다.
백하심은 처음부터 직감적으로 부각주의 의도를 간파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 대비한 대책은 없었다.
격공역용술로 숫자를 바꿀 수는 있었지만, 공개된 자리라 모두를 속일 수는 없는 것이다.
가능한 방법은 역시 부각주처럼 기로 주사위의 움직임을 제어하는 것이었다.
‘기를 몸 밖으로 배출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장법이나 지법 등이 가능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아직 그런 것들을 구사하지 못하지 않은가. 아니다. 역용술 또한 내공을 사용하는 것이다. 원리는 같다. 일단 마음 가는 대로 시도해볼 수밖에 없겠구나. 시간이 너무 없다.’
백하심이 주사위가 굴러가는 순간 기를 일으켰다.
바로 조금 전 창안한 내공심법인 무형태극공이었다.
아직 일주천을 하지 못해 확실하게 안착하지는 못했지만, 그 원리는 명확했다.
‘마음으로 기를 움직인다.’
백하심이 마음을 냈다.
단전 부위 기해혈에서 기운 한 가닥이 다시 일어났다.
그 기운은 그의 혈도를 따라 오른손 검지로 빠르게 흘러갔다.
그리고 소리도 없이 검지를 통해 배출되었다.
바로 지법이었다.
‘무형태극지(無形太極指)라 불러야겠군.’
지법의 이름까지 만든 백하심은 막 육이란 숫자에서 멈추려는 주사위를 움직여 오에 멈추게 했다.
육에 맞춰 기를 발산했던 부각주가 흠칫하며 다시 주사위를 움직이려 했다.
그의 비술은 마치 주사위에 보이지 않는 실을 연결시켜 놓은 것과 같았다.
백하심의 무형태극지에 주사위가 반응한 것에 놀랐지만 곧바로 반격을 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주사위 주위에는 이미 거대한 보호막이 있었다.
무형태극지의 기운이 주사위를 감싸 외부의 기운이 침입하는 것을 막은 것이었다.
결국 주사위가 ‘오’에서 멈췄다.
“홀수다!”
“또 이겼다!”
환호성과 박수가 다시 터져 나왔다.
“2048냥이다!”
은자 이천 냥이 넘었다는 누군가의 말에 사람들이 더욱 환호했다.
그들 대부분은 백하심의 편이었다.
부각주의 안색이 굳어진 것은 물론이었다.
‘누군가 훼방을 놓았다. 설마 저자의 짓이란 말인가.’
부각주가 백하심을 쳐다봤다.
겉으로 보기에 백하심은 전혀 무공을 익힌 것 같지 않았다.
태양혈도 밋밋했고 고수가 풍기는 기도도 느껴지지 않았다.
‘누군가 도와주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부각주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수백 명의 손님 중에서 그 사람을 특정할 수 없었다.
‘그래, 아직 판은 많이 남았다. 열 판을 했으니, 아직 아홉 판이나 남았군. 후후후! 네놈이 무슨 수를 썼는지 모르겠지만 아홉 판을 모두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특히 각주님이 주재하시는 마지막 판은 절대 이길 수가 없지.’
부각주가 안색을 회복하며 다시 주사위를 들었다.
이번에는 공력을 더 쏟아부을 생각이었다.
“자, 다시 거시오.”
“이번에도 홀수에 걸겠소.”
“좋소.”
부각주가 다시 주사위를 던졌다.
이번에는 좀 더 높이 던졌다.
휙.
그러면서 자신의 비기를 이용해 주사위 숫자를 육에 맞췄다.
하지만 백하심 또한 가만있지 않았다.
겉으로 표시는 나지 않지만 이번에도 무형태극지가 펼쳐졌다.
두 번째라 그런지 더 능숙했다.
부각주는 공력을 더 높였음에도 불구하고 패배했다.
다시 ‘오’라는 숫자가 나온 것이다.
와아아.
“얼씨구!”
“4096냥!”
백하심이 다시 승리했다.
열 받은 부각주가 곧바로 재개를 요청했다.
백하심이 이번에는 짝수에 걸었다.
하지만 결국 승리는 백하심의 것이었다.
부각주가 최대한의 공력을 사용했으나, 백하심 또한 더욱더 능숙하게 기를 발출했던 것이다.
특히 이번에는 일주천까지 성공했다.
일주천이란 기가 처음부터 끝까지 길을 따라 통하는 것으로, 막힌 혈도가 없기 때문에 자유자재로 기를 발출할 수 있었다.
시합 방식이 더욱더 어려워질 것을 대비해 과감하게 모험을 했는데, 운 좋게 성공한 것이었다.
“8192냥!”
연속으로 세 번을 승리하자, 확보한 은자는 팔천 냥이 넘었다.
말이 팔천 냥이지 엄청난 액수였다.
이제 남은 판은 모두 일곱 판.
지금부터 포기도 할 수 있었지만, 이미 백하심이 거부한 상황이었다.
그래도 부각주가 한 번 더 확인했다.
“정말 끝까지 할 것이오?”
“물론이오. 포기는 절대 없소. 팔천 냥을 확보했는데 고작 이백 냥 받고 포기한다면 너무 어리석지 않겠소?”
백하심의 말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뼉을 쳐주었다.
짝짝짝.
“맞는 말이지!”
“은자 백만 냥까지 가보자!”
군중들의 응원까지 받게 된 백하심이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돈을 땄기 때문이 아니라 뜻하지 않게 무공을 터득했기 때문이었다.
‘지법이 가능하면 장법도 가능할 것이다. 무형태극의 원리를 이용한다면 권법과 보법, 경공술 등 다른 무공도 성공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진다. 내가 이렇게 무공의 천재였다니. 그보다 내 몸속에 있는 내공의 양이 추측되지 않을 정도로 많구나. 겉으로는 측정이 안 되는 특수한 내공 같은데, 확실히 이전에 내가 무림인이었던 것 같군. 무엇보다 기운도 사마의 것과는 거리가 있다. 아니 정사마를 모두 초월했다고나 할까. 아무튼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