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189
백하심과 부각주의 대결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승리는 백하심의 것이었다.
새롭게 연속해서 여섯 판을 했지만, 그때마다 극적으로 승리를 거둔 것이다.
그 방식 또한 계속 바뀌었다.
공과 주사위뿐만 아니라 장기, 바둑, 마작 등 도박으로 사용할 수 있는 여러 물건들이 사용되었다.
하지만 그 방식들의 공통점은 역시 무공을 사용해 속임수를 쓰는 것이었다.
부각주는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비기를 모두 사용했다. 하지만 백하심의 반격이 더 대단해 결국 마지막 한 판만 남게 된 것이었다.
와아아.
짝짝짝.
환호성과 박수가 도박장을 가득 메웠다.
수백 명의 손님이 모두 백하심을 주목했다.
“한판 남았다!”
“은자 백만 냥짜리 판이다!”
너도나도 흥분하며 웅성거렸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백하심은 태연했다.
그는 느끼고 있었다.
마지막 판이야말로 이기기 어렵다는 것을.
이는 부각주의 태도에서도 느껴지고 있었다.
한 판밖에 남지 않았음에도 그는 그다지 초조해하지 않았다.
다만 언제부터인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금포노인을 의식해 고개를 조아릴 뿐이었다.
금포노인은 후덕한 인상의 노인으로 바로 금룡각의 각주였다.
세간에는 금룡노인(金龍老人)으로 잘 알려져 있었다.
부각주가 고개를 숙이며 뒤로 물러났다.
“죄송합니다. 각주님. 면목이 없습니다.”
“허허허. 괜찮네. 이렇게 한 번씩 최종도전자가 나와야 홍보도 되는 것이지. 그래 아무래도 마지막 판은 내가 주재해야겠지?”
“물론입니다. 저는 각주님만 믿고 있었습니다.”
“알고 있네. 자네가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백하심 공자라고 했소?”
금룡노인이 백하심을 쳐다봤다.
“그렇습니다. 각주님이시군요.”
백하심이 존대를 했다.
부각주와 같은 노인이지만 금룡노인의 나이가 훨씬 많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허허허. 먼저 마지막 판까지 오게 된 것을 축하드리는 바이오.”
“감사합니다. 하지만 마지막 판을 지게 되면 한 푼도 건지지 못하게 되지요. 물론 먼저 받은 은자 백 냥은 예외이겠습니다만.”
“차용증 이야기는 아까 들었소. 내가 정식으로 사과하겠소. 돈을 받으러 다니는 실무자 중에서 아직 옛날 버릇을 버리지 못한 사람이 있었던 것 같소. 하지만 다시 말하지만 본각에서는 절대 돈을 못 갚는다고 어린 소녀를 기루에 파는 일은 없소. 오해가 있었던 것 같소.”
“아무리 겁을 주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듣는 사람 처지에서는 무척 무서워했을 겁니다. 그 일은 잘 해결되었으니 그만 하고 시합에만 집중하도록 하지요.”
“그렇게 합시다. 허허허. 시합을 하기 전에 물어볼 말이라도 있소?”
금룡노인이 여유 있는 표정을 지었다.
마치 승리는 이미 정해졌다는 것 같았다.
백하심이 물었다.
“은자 백만 냥짜리 전표를 먼저 구경하고 싶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분이 궁금해하더군요. 실제 제가 이겼을 때 지급 능력이 있는지 확인시켜 주시겠습니까?”
“허허허. 당연한 질문이오. 하지만 은자 백만 냥짜리 전표는 없소.”
금룡노인이 총관을 시켜 상금을 가져오도록 했다.
얼마 후 총관이 금색 상자를 가져오자, 그 안에서 두툼한 문서 하나를 꺼냈다.
“이것은 집문서요. 백 공자가 승리하면 이 집문서를 받게 될 것이오.”
“그 집이 은자 백만 냥짜리란 말씀입니까?”
“그렇소. 황금장원(黃金莊園)의 시가가 은자 백만 냥 이상이란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으니, 확실할 것이오. 사실 전표 대신 집문서를 준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는데, 아직 모르고 있었소?”
“몰랐습니다. 규정이 그렇다면 저 또한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습니다.”
백하심이 눈을 빛냈다.
‘안 그래도 장원 한 채를 사는 것이 목표였다. 한번만 더 승리하면 낙양 최고의 장원을 갖게 되겠구나. 하지만 쉽지 않을 것이다.’
백하심이 안색을 조금 굳혔다.
마음을 비웠을 때는 여유가 있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는 말이 생긴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무욕대안(無慾大安)이라고 했다. 욕심을 버려야 편안할 수 있다.’
백하심이 마음을 진정하는 동안.
금룡노인은 부각주와 전음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각주님. 만에 하나 놈이 승리하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황금장원을 놈에게 넘기실 겁니까?」
「그럴 리가 있나? 내가 질 가능성은 없지만, 그래도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저놈을 죽일 수밖에. 곽문은 어디에 있나?」
「밀실에서 대기 중입니다. 아까 언질을 주었으니 준비하고 있을 겁니다.」
「뭐라고 하던가?」
「밥값을 하겠다고 하더군요. 하기야 그동안 영웅방 무사들이 사사천교를 따라 천마탑에 가서 몰살당한 후 곽문 혼자 본각에서 무위도식했지요. 한데 그자의 무공은 믿을 만합니까?」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가? 곽문은 영웅방주였네. 백대고수에 들 정도였으니, 그 실력은 틀림없네. 웬만한 살수보다는 훨씬 낫지. 폐관수련 때문에 합류하지 않았었다고 하던데, 그 때문에 목숨을 구한 셈이지. 우리가 거금을 들여 그를 영입한 것은 이런 경우에 사용하기 위해서였네.」
「하기야 곽문 정도면 안심이지요. 백하심 이놈은 무공도 잘 모르는 것 같은데, 반항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그건 아닐세. 자네는 제삼의 인물이 도와줬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내 생각은 다르네. 백하심 이자는 상당한 고수네. 하지만 곽문의 상대가 될 수는 없지. 아무튼, 본각의 밑천이라 할 수 있는 황금장원을 잃어서는 절대 안 될 것이야.」
「명심하겠습니다. 비록 황금노야(黃金老爺)의 유언장을 조작해서 장원을 가로챘지만, 그 사실은 아무도 모르니 반드시 장원을 사수해야 합니다. 하기야 보나 마나 각주님께서 승리를 거두실 것인데. 제가 괜한 걱정을 하는 것 같습니다.」
「허허허. 자네 말이 맞네. 내가 반드시 이길 걸세. 아니 이길 수밖에 없는 시합이지.」
금룡노인이 전음을 보낸 후 백하심을 쳐다봤다.
백하심 역시 마음을 다잡았는지 담담히 서 있었다.
주위를 둘러싼 군중도 마지막 시합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특히 아직 그 시합의 내용이 무엇인지 밝혀진 바가 없었기에 다들 궁금한 표정이었다.
“마지막 판을 시작하겠소.”
금룡노인의 말에 사람들이 모두 그를 주목했다.
하지만 그의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았다.
백하심 또한 의아한 표정이었다.
금룡노인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마지막 판은 바로 주사위 열 개를 던졌을 때 그 합친 숫자가 가장 적은 자가 이기는 방식이오. 주사위 하나에 일부터 육까지 적혀 있느니 가장 큰 숫자는 육십이 될 것이오. 이해했소?”
“네.”
백하심이 담담히 대답했다.
예상했던 것보다는 간단한 방식이었다.
‘가장 적은 숫자는 일이니까, 총합이 십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해야겠구나.’
백하심이 머릿속으로 주사위를 굴리는 연습을 했다.
이미 여러 판을 거쳐 오면서 주사위를 조절하는 방법을 어느 정도 터득한 그였다.
하지만 왠지 모를 함정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없어지지 않았다.
‘관건은 순서가 되겠군.’
백하심이 어떤 일이 있어도 뒤에 던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금룡노인이 총관으로 하여금 주사위를 가져오게 했다.
“아무거나 좋네. 열 개만 가져오게.”
곧이어 총관이 주사위 열 개를 가져와 탁자 위에 놓았다.
“누가 먼저 던질지 정해야겠군.”
금룡노인이 미소를 지었다.
백하심이 말했다.
“제가 뒤에 던지겠습니다.”
“허허. 먼저 내 점수를 보고 결정하겠다는 것이로군. 하지만 나 또한 뒤 순서를 희망하오.”
“그럼 어쩌자는 겁니까? 순서를 정할 방법이라도 있습니까?”
“으음, 아니오. 내가 먼저 던지겠소. 대신 조건이 있소. 먼저 던지는 대신 동점이 나오면 내가 이기는 걸로 하겠소. 어떻소?”
“그건 싫습니다. 차라리 주사위를 더 가져와 동시에 던지는 게 어떻겠습니까?”
“허허허. 좋소. 역시 은자 백만 냥에 도전할 만하군. 총관. 주사위 열 개를 더 가져오게.”
“네.”
총관이 다시 사무실로 가서 주사위를 가져왔다.
나중에 가져온 주사위는 백하심에게 전달되었다.
동시에 던져야 하기에 탁자 역시 두 개가 준비되었다.
백하심과 금룡노인 두 사람이 각각 주사위 열 개를 손에 들고 던질 준비를 마쳤다.
누군가 소리쳤다.
“합이 십이면 이기겠군. 동점이면 다시 던지고 말이야.”
“볼만하겠군.”
웅성대는 사람들의 소리와 함께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백하심이 생각했다.
‘열 개의 주사위 모두 일이 나오도록 던지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기로 조절하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데 왜 이리 불안할까. 아무래도 주사위를 던졌을 때 각주가 훼방을 놓을 것 같구나. 아니면 내가 생각 못 하는 수가 있거나.’
백하심이 집중했다.
처음 해보는 방식이라 초조한 쪽은 그였다.
금룡노인은 여전히 여유 있는 표정이었다.
“시작!”
총관의 시합 개시 선언이 있자, 두 사람이 각각 주사위를 던졌다.
백하심은 혹시 몰라 주사위를 최대한 높이 던졌다.
금룡노인은 가볍게 던졌다.
결과는 금룡노인 쪽이 먼저 나왔다.
타타타탁.
주사위 모두가 ‘일’이란 숫자를 맨 위로 드러내며 탁자에 내려왔다.
한데 놀랍게도 주사위 열 개가 모두 수직으로 겹쳐져 있는 게 아닌가.
“앗! 총합이 일이다!”
“절묘하군!”
놀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사람들이 예상했던 십이 아니라, 일이었다.
물론 이는 총합의 숫자였다.
주사위를 수직으로 겹쳐 세워 맨 위 주사위 숫자만 보이게 한 것이었다.
한편 금룡노인의 주사위가 탁자 위에 모두 일직선으로 쌓일 때 백하심의 주사위는 그제야 하나씩 떨어졌다.
놀랍게도 그 주사위 역시 모두 일을 가리키고 있었다.
하지만 금룡노인의 것과 달리 주사위는 모두 개별적으로 탁자에 자리 잡았다.
모두 ‘일’이었으니, 총합은 ‘십’이었다.
“하하하! 각주님의 승리입니다.”
“아! 저럴 수가!”
“저런!”
탄성이 터져 나왔다.
백하심을 응원하는 사람들의 실망하는 목소리가 대부분이었다.
주사위가 모두 멈추자, 금룡노인이 껄껄 웃었다.
“허허허. 이거 미안하게 되었소. 백 공자가 너무 정직하게 주사위를 던진 것 같소. 하지만 열 개 모두 일을 던지는 데 성공한 것도 무척 대단한 일이오. 내 특별히 위로의 선물로 은자 백 냥을 주겠소.”
“승부는 아직 가려지지 않았습니다.”
“무슨 소리요? 사람들이 모두 보고 있소.”
“저 역시 마지막에 변형을 가했습니다. 보십시오.”
백하심이 말을 했을 때.
어디선가 바람 한 줄기가 불어왔다.
한데 바로 그 순간 백하심이 던진 주사위 열 개 모두가 먼지가 되어 사라지는 게 아닌가.
원래 가루가 되어 부서졌는데 멀쩡한 것처럼 보였던 모양이었다.
“제 총합 점수는 영입니다. 제가 이겼습니다.”
와아아.
짝짝짝.
함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금룡노인을 비롯한 금룡각 지휘부 사람들이 어이없어했다.
하지만 먼저 술수를 부린 쪽은 금룡노인이었다.
총관과 부각주가 거세게 항의했다.
“속임수요! 인정할 수 없소!”
“속임수가 아니라 기술이오. 특별한 기술은 각주께서 먼저 사용하지 않았소? 많은 사람이 보고 있으니 억지를 부릴 생각은 하지 마시오.”
백하심이 엄한 표정을 지었다.
군중들이 박수로서 그를 지지했다.
짝짝짝.
총관과 부각주가 다시 불복하려 하자, 금룡노인이 말렸다.
“그만두게. 지혜의 싸움이었네. 내가 진 것 같군. 깨끗하게 승복하겠네. 여기 황금장원의 집문서가 있소. 그리고 이것은 대문 열쇠요.”
금룡노인이 황금장원의 집문서와 열쇠를 백하심에게 주었다.
“감사합니다.”
백하심이 고개를 숙였다.
짝짝짝.
다시 박수가 쏟아졌다.
금룡노인이 말했다.
“본각의 재산은 여러분이 상상하는 것 이상입니다. 황금장원도 그 재산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지요. 앞으로도 계속 본각을 방문해서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짝짝짝.
다시 박수가 쏟아졌다.
이번에는 금룡노인을 향한 찬사였다.
금룡노인이 포권으로 인사하며 부각주에게 은밀히 전음을 날렸다.
「곽문에게 백하심 저놈을 뒤따라가 죽이라고 전하게. 물론 집문서와 열쇠는 회수해야 할 걸세.」
「존명.」
부각주가 급히 밀실로 들어갔다.
바로 곽문에게 명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백하심과 왕인우는 축하의 박수를 받으며 금룡각에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