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190
“여기가 저와 누나가 사는 집이에요.”
왕인우가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을 가리키며 미소를 지었다.
백하심이 고개를 끄덕였다.
낙양에서 가장 후미지고 언덕 위에 지어진 초가집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왕인우와 왕옥 두 사람에게는 가장 편안한 곳이었다.
“누나!”
왕인우가 마당으로 뛰어 들어갔다.
백하심 또한 뒤따라갔다.
금룡각에서 나오자마자 두 사람은 곧바로 왕인우의 집으로 온 것이었다.
물론 이는 왕옥의 안위 때문이었다.
내일이 기한이라고 하지만 집행반 사람들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누나!”
왕인우가 다시 한번 소리치며 방문을 열었다.
“어! 어디 갔지?”
왕인우가 의아해했다.
왕옥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누나가 안 보여요. 벌써 잡혀간 게 아닐까요?”
왕인우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왕옥이 몸져누워있어 혼자서는 거동하기 힘든 상태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설사 잡혀갔다 해도 돈을 이미 갚았으니 풀려날 것이다.”
백하심이 왕인우를 안심시켰다.
설마 하며 집까지 따라온 것이었다.
왕옥이 보이지 않으니 그로서도 난감했다.
하지만 얼굴도 모르는 소녀를 그가 찾기는 어려웠다.
왕인우가 말했다.
“제가 집 주위를 한번 살펴보고 올게요. 아저씨는 여기서 기다려주세요. 누나가 돌아올 수도 있으니까요.”
“알겠다. 곧 해가 질 것 같으니 빨리 돌아오너라. 누나도 별 탈이 없으면 곧 올 것 같으니까.”
“네.”
왕인우가 급히 집 밖으로 나갔다.
초가는 언덕 위 외딴곳에 있어 주위에 인가는 보이지 않았다.
백하심은 마당을 거닐며 주위를 둘러봤다.
그의 품속에는 황금장원의 집문서와 대문 열쇠가 있었다.
그의 안색이 조금 굳어졌다.
‘내가 승리했다고는 하지만 누가 봐도 명확한 것은 아니었다. 주사위를 모두 가루로 만들고 그 합이 영이라고 했으니 억지가 다분했지. 솔직히 무승부로 만들어 다시 시합할 생각이었는데, 의외로 각주가 패배를 인정했지. 그것은 내가 모르는 다른 음모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백하심이 언덕 밑을 내려다봤다.
누군가 미행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인기척 또한 느껴지지 않았다.
‘기우인가.’
백하심이 실소하며 마당 한복판에 있는 평상에 앉았다.
왕인우가 돌아올 때까지 운공을 하기 위해서였다.
비록 그가 오늘 무형태극공을 창안했다고는 하지만 구체적인 운기방법 등 대부분이 불명확했다.
언뜻언뜻 떠오르는 기억으로 무공을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다른 내공심법서를 구해서 볼 생각은 아직 없었다.
실전무공들은 모르겠지만, 심법만은 꼭 스스로 완성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운기조식을 하다 보면 저절로 완성이 될 것이다.’
가부좌를 튼 백하심이 무형태극공을 운기했다.
혈도를 따라 기가 흘러갔다.
단전 부위 기해혈과 정수리 쪽 백회혈, 그리고 발바닥의 용천혈 등이 그 중심축이었다.
‘항상 자연스럽게, 무엇에도 걸림이 없이. 구름은 가고 머무는 것에 거리낌이 없는 법이지.’
백하심이 마음을 집중하며 일주천에 성공했다.
이제 남은 것은 권법과 장법, 지법, 보법, 경공술이었다.
백하심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 무공들을 연습했다.
하지만 실전무공은 확실히 서툴렀다.
그래도 그나마 가장 능숙한 것은 장법과 지법이었다.
기의 발출 원리를 확실히 깨달은 덕분이었다.
권법과 보법, 경공술도 전혀 엉터리는 아니었다.
마음으로 기를 움직이는 그의 무공 특성상 갈수록 능숙해졌다.
스스슷.
휙휙.
몸이 앞뒤로 움직이는가 싶더니, 한 자 이상 공중에 떠서 앞으로 나아가기도 했다.
좁은 마당에서의 연마이지만, 제법 실속이 있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연마하면 할수록 그 성취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가속도가 붙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그가 일차적으로 완성한 무공은 다음과 같았다.
무형태극공. 무형태극권(無形太極拳), 무형태극장(無形太極掌), 무형태극지, 무형태극보(無形太極步), 무형태극비(無形太極飛)가 바로 그것이었다.
물론 아직 검법 같은 병장기를 사용하는 무공은 연마하지 못했다.
몸만 사용하는 무공과 달리 검술 등은 더욱 명확하게 구결과 초식이 필요한 때문이었다.
‘서두를 필요 없다. 하루 만에 이 정도면 대박이라 할 수 있지. 이제는 기본 무공들을 습득할 때가 된 것 같구나. 수습무사라 했던가. 영웅대회 때까지 기본 무공을 습득할 수 있다고 했으니, 그야말로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물론 정식무사가 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겠지만. 그 문제는 차차 생각해보기로 하자.’
백하심이 앞으로의 일을 계획했다.
수습무사가 되어 무공의 토대를 확실히 하려는 마음이 생긴 것은 안전 때문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금룡각이 이대로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게다가 앞으로 황금장원 같은 넓은 곳의 주인이 되면 반드시 무공이 필요할 것 같았다.
‘이제 확신한다. 내가 이전에 무림인이었다는 것을. 무형태극공을 비롯하여 내가 창안한 무공들도 사실 이전에 머릿속에 잠재되어 있던 것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나저나 인우 이 녀석이 왜 아직 안 올까. 왕옥이라는 소녀도 안 오는 것을 보니 분명 무슨 일이 생긴 것 같구나. 나도 찾아봐야겠다. 인적인 드문 곳이니, 소녀가 발견되면 그 사람이 바로 왕옥일 것이다.’
백하심이 초가 밖으로 나가려는 찰나.
오십 대로 보이는 흑의인 한 명이 들어왔다.
백하심이 흠칫했다.
분명 조금 전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지 않았던가.
흑의인은 마치 유령처럼 나타난 것이다.
스스슷.
흑의인이 미끄러지듯이 다가왔다.
“누구요?”
백하심이 뒤로 물러났다.
여러 무공을 창안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실전경험이 전무한 그였다.
게다가 상대는 엄청난 고수였다.
백하심은 직감적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물론 마음 한구석에는 반발심도 생겼다.
즉, 상대가 공격하면 그대로 당하지는 않겠다는 의지의 발로였다.
흑의인이 말했다.
“역시 무공을 알고 있었군. 무슨 무공인지 잘 모르겠지만 열심히 연마하더군. 기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는 무공이라.”
흑의인이 담담히 말했다.
“누구냐고 물었소.”
“나? 나는 밥값 하려는 사람이지. 미안하지만 죽어줘야겠어. 황금장원 집문서와 열쇠는 가지고 있겠지?”
“금룡각에서 보낸 것이오?”
“그렇다.”
“일반 살수 같지는 않은데 이름을 밝힐 자신도 없소?”
“하하하. 곧 죽을 놈이 배짱은 좋구나. 나는 석 달 후 열릴 영웅대회에 출전해 무림맹주가 될 사람이다. 돈이 조금 필요해 금룡각에 식객으로 지내고 있지. 혹시 영웅방이라고 들어봤나?”
“잘 모르오. 들어본 것은 같소.”
“그래? 나는 영웅방주 곽문이라고 한다. 무림백대고수 중 한 명이지. 자화자찬은 좀 그렇지만, 지금은 무림십대고수 자리를 넘볼 정도가 되었다고 본다. 한데 말이야. 폐관 수련을 끝내고 나와 보니 방도들이 모두 죽었더란 말이야. 내 아들도 원한을 산 자의 칼에 찔려 죽고 말이야. 그러니 내가 화가 나지 않겠나?”
“그 화를 내게 풀려는 것이오?”
“아니. 아까도 말했듯이 밥값을 하려는 것이다. 내 원수는 천마탑과 함께 사라진 귀혈공자 그놈이니까. 내가 무림맹주가 되고 놈이 살아있다는 소식이 들리면 반드시 복수할 것이다.”
“개인적인 사정은 듣기 싫소. 하지만 날 쉽게 죽이지는 못할 것이오. 마침 무공을 연마했으니까.”
“후후후! 아까 그 평범한 동작들 말이냐? 아이들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힘이 실리지 않은 공격에 누가 당하겠느냐?”
곽문이 초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누굴 찾는 것이오?”
“아까 나갔던 꼬마 녀석은 아직 안 왔고. 원래는 꼬마 놈의 누나도 있다고 했던가.”
“어쩔 생각이오?”
“어쩌긴 뭐 어째? 그들 남매도 죽여야지. 그렇게 해야 조용히 일이 마무리되지 않겠나? 이거 참 오랜만에 직접 이런 일을 하려 하니 정말 어색하군. 옛날에는 하룻밤에 백 명을 죽이는 것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말이야.”
곽문이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왔다.
백하심은 물러서지 않았다.
대신 무형태극공을 운기했다.
공격해오면 무형태극장으로 맞받아칠 생각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무림맹주를 꿈꿀 정도로 고수였다.
영웅방에 대해서도 생각이 좀 더 났다.
영웅방 패거리가 사라져 살 것 같다는 어떤 사람의 이야기가 떠오른 것이다.
‘죽어 마땅한 자로군. 살려두면 왕씨 남매가 위험해진다. 하지만 과연 내가 이길 수 있을까?’
곽문이 말했다.
“거참 괴이하군. 어떻게 보면 정말 초고수 같단 말이야.”
“······.”
백하심이 말하지 않았다.
곽문이 자신을 떠보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이번 대결이 첫 대결이자 마지막 대결이 될 수도 있다.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이렇게 죽는다는 것은 좀 그렇지 않은가.’
백하심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기억을 잃어버렸지만 최대한 긍정적으로 살려고 했었다.
장원 한 채를 사서 편안하게 사는 것이 꿈이라면 꿈이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는 죽음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
아무리 그가 창안한 무공이 뛰어나도 실전경험이 없는 것이 치명적이었다.
곽문 역시 망설이고 있었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으나, 백하심의 무공에 대해 이상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백하심과 왕인우 두 사람을 미행했을 때부터 그 두려움은 시작되었다.
숨어서 백하심이 연마하는 무공들을 볼 때 극에 달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결론짓고 은신술을 푼 것이 바로 조금 전이었다.
‘뭘 망설이는가. 놈이 나보다 뛰어난 실력자라는 것은 정말 어처구니없는 생각이다. 내가 지척에 숨어 있던 것도 모르던 놈이다.’
곽문이 눈을 빛내며 일장을 날리려 했다.
바로 그때였다.
초가 인근에서 인기척이 나며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곽문이 손을 거두고 뒤로 물러나서 그 사람들을 쳐다봤다.
백하심 역시 그들을 봤다.
십여 명의 사람들이었다.
기형도를 든 대한들이었는데, 놀랍게도 그중에 왕인우와 그의 누나로 보이는 소녀 한 명이 있었다.
두 사람은 혈도를 찍힌 채 포승줄에 묶여 있었다.
척 봐도 대한들이 왕씨 남매를 붙잡아 여기까지 온 것 같았다.
“아저씨!”
왕인우가 백하심을 보고 소리쳤다.
“인우야. 어떻게 된 일이냐?”
“저와 제 누나를 구해주세요. 누나가 붙잡혀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저까지 잡혔어요.”
“이 무슨 짓이오?”
백하심이 노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그도 그럴 것이 왕씨 남매가 포박된 모습이 너무 안쓰러웠다.
거기다 구타를 당했는지 왕인우의 얼굴에는 멍까지 들어있었다.
하지만 심각한 것은 바로 왕옥의 상태였다.
얼굴에 상처는 없었으나 병색이 완연해 핏기 하나 없었다.
아무래도 방안에 누워있는 상태에서 잡혀간 것 같았다.
“후후후! 역시 여기 있었구나. 각주님께서 전서구를 보내 연락을 주셨다. 백하심 네놈이 이놈들 집에 와있을 거라고 하시더군. 한데 곽 방주께서 먼저 와 계셨군요.”
눈매가 날카로운 중년인 한 명이 곽문을 보고 고개를 조금 숙였다.
“어험. 어찌 자네들까지 보냈는가?”
“각주님이 저희보고 뒤처리하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지금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뭐 잘되었습니다.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쓸 필요가 있습니까? 저희가 놈을 죽이겠습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마음대로 하게.”
곽문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안 그래도 백하심의 무공을 시험해보고 싶었던 차였다.
“감사합니다.”
중년인이 고개를 조금 숙인 후 백하심을 노려봤다.
“일단 먼저 황금장원의 집문서와 열쇠를 내놔라. 그러면 왕씨 남매의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네 말을 어떻게 믿겠느냐? 한데 날 죽이라고 보낸 사람이 각주냐?”
“후후후! 그렇다. 각주님께서 직접 명을 내리셨지. 그러게 왜 잘난 척을 했느냐? 은자 백만 냥이란 말도 안 되는 거금을 따고 무사할 줄 알았느냐?”
“너는 누구냐?”
“나는 집행반 반장이다. 네놈 때문에 우리 입지가 줄어들었다. 돈을 갚지 못하면 기루에라도 팔아야 마땅한 것이 아니냐? 이때까지 우리가 알아서 잘해왔거늘, 네놈 때문에 당분간 눈치를 봐야 한단 말이다.”
“말이 많군. 그래서 결론은 나를 죽이겠다는 말이 아니냐? 인우야! 이자들이 돈 갚으라고 위협한 자들이냐?”
“네. 아저씨.”
퍽!
“으윽!”
집행반장에게 턱을 한 대 맞은 왕인우가 쓰러졌다.
“인우야!”
왕옥이 핏발 선 눈으로 소리쳤다.
정신이 희미한 가운데서도 동생의 안위가 걱정된 모양이었다.
백하심이 무심히 말했다.
“상종 못 할 놈들이군. 어린 애를 그렇게 때리다니!”
“후후후! 좋다. 모두 죽여주지. 어차피 네놈들 모두를 죽여 증거를 없애라 하셨다. 명대로 따를 수밖에.”
집행반장이 옆에 있던 대한 두 명에게 눈짓했다.
대한들은 하나같이 덩치가 크고 우락부락하게 생겼다.
들고 있던 기형도도 몹시 위협적이었다.
“놈을 죽여라!”
“알겠습니다. 반장님.”
대한 두 명이 고개를 숙인 후 백하심에게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