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192
다음 날 아침.
황금장원에서 하룻밤을 지낸 백하심과 왕씨 남매는 함께 모여 식사를 했다.
돈이 없어 가진 돈을 전부 모아 저잣거리로 가서 식재료를 사 왔다.
사흘 정도 먹을 수 있는 양이었다.
“집은 대궐같이 큰데, 돈이 없으니 걱정이구나. 전각만 백여 채다. 비교적 관리가 잘 되어 있어 그나마 다행인 것 같다.”
백하심의 말에 왕인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아요. 이전에 장원 앞으로 지나갈 때가 많았어요. 한 달에 한 번 씩 사람들이 와서 청소를 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랬었군. 하기야 관리를 해둬야 장원이 팔릴 테니까.”
“장원을 팔려고 했다는 게 맞는 건가요? 하기야 금룡각에서 도박 상금으로 정해뒀지만, 전표만은 못하겠지요. 안 그래도 소문이 안 좋았으니······.”
“소문이라니?”
“모르고 계셨어요? 삼년 전 황금장원의 주인이었던 황금노야가 돌아가신 후 갑자기 금룡각주가 장원을 물려받게 되었지요. 그때 유언장이 조작되었다는 소문이 돌았어요. 하지만 증거도 없었고, 황금노야의 후손도 없었던 터라 흐지부지되었지요.”
왕인우가 소문과 관련된 이야기를 상세히 설명했다.
앞으로 황금장원에 살아야 할 그들이었다.
백하심과 왕옥도 주의 깊게 들었다.
“으음, 듣고 보니 소문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을 것 같구나. 하지만 일단 지금은 내 소유가 되었으니, 금룡각주를 상대할 방안을 어서 마련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좋은 방법이라도 있으신가요?”
왕옥이 염려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날이 밝았으니 지금쯤은 금룡각에서도 곽문을 비롯해 금룡각 무사들이 당한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었다.
당장이라도 무사들을 이끌고 이곳으로 쳐들어올 가능성이 농후한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장원의 문을 닫아놓으면 보호진이 가동되어 외부인의 출입을 막을 수 있다는 점이오. 사흘 치 식량을 준비해두었으니, 그때까지 여유가 있는 셈이오. 물도 장원 내 우물이 많아 아무 걱정이 없고 말이오.”
“하지만 사흘은 금방이에요. 근본적인 해결이 없다면 여기서 굶어 죽을 수도 있어요.”
“하하하. 왕 소저.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내게도 생각이 다 있으니까. 사실 보호진 같은 것은 필요 없을지도 모르겠소.”
백하심이 미소를 지었다.
이미 간밤의 운공요상을 통해 내상을 치유한 상태였다.
그리고 무형태극공을 비롯해 자신이 창안한 여러 무공도 한 번씩 점검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무사들이 몰려와도 막아낼 수 있다는 자신이 생겼다.
그때였다.
대문 쪽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백하심 일행이 있는 곳은 황금각(黃金閣)으로 대문과 멀지 않았다.
“벌써 놈들이 쳐들어온 걸까요?”
왕인우가 굳은 안색으로 말했다.
왕옥 역시 안색이 창백해졌다.
두 사람 모두 백하심만 믿고 이곳까지 왔었다.
“걱정할 것 없다. 오히려 잘된 일이다. 대비책이란 게 뭐 별것 있겠느냐? 내 몸이 완쾌되었으니, 그것이 바로 훌륭한 대비라 할 수 있지. 하지만 혹시 위험해질 수도 있으니 두 사람은 여기서 기다리도록 하시오.”
“아니에요. 함께 가겠어요.”
왕옥이 고개를 흔들었다.
비록 무공은 모르지만 백하심과 함께 어려움을 겪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왕인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혼자 가시게 할 수는 없어요.”
“좋다. 함께 가봅시다.”
백하심이 어깨를 펴고 대문 쪽으로 걸어갔다.
왕씨 남매가 굳은 표정으로 뒤를 따랐다.
얼마 후 대문에 도착하자,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더욱 요란해졌다.
“안에 있는 것을 다 안다. 백하심 네놈이 우리 무사들을 죽이고 무사할 줄 알았느냐? 당장 문을 열지 못할까?”
금룡각 총관의 목소리였다.
백하심이 천천히 문을 열어줬다.
끼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자 백여 명의 무사들이 보였다.
놀랍게도 금룡각 호위무사들을 모두 데려온 것이었다.
그들의 맨 앞에는 금룡각주 금룡노인과 부각주, 그리고 아까 소리를 쳤던 총관의 모습도 보였다.
백하심이 특히 주의 깊게 본 사람들은 바로 그들 옆에 조용히 서 있는 노인들이었다.
모두 세 명이었는데 한눈에 봐도 고수였다.
‘곽문 정도의 고수들이다. 어디서 저런 고수들을 데려온 걸까.’
백하심이 안색을 굳혔다.
내상을 회복했다고는 하지만 고수 세 명의 합공을 막아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걱정되는 것은 아직 실력을 드러내지 않은 각주의 무공이었다.
처음에는 몰랐었다.
하지만 간밤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각주의 무공이 심상치 않았다.
‘어쩌면 황금노야를 각주가 직접 죽였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큰 장원을 소유했을 정도라면 황금노야라는 분의 무공도 굉장했을 터. 절대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다.’
백하심이 정신을 바짝 차렸다.
총관이 말했다.
“백하심! 우리가 이곳에 온 이유를 알겠지? 설마 했지만, 네놈들이 겁도 없이 황금장원에 들어갈지는 꿈에도 몰랐다.”
“무슨 소리요? 내 집에 내가 들어오는 데 누구의 허락을 받아야 한단 말이오?”
“네 이놈! 곽 방주와 집행반장, 그리고 십여 명의 우리 호위들을 죽이고서도 그런 말이 나오느냐?”
“공격은 그들이 먼저 했소. 나는 방어를 했을 뿐이오. 오늘 이렇게 무사들을 데리고 온 것 역시 날 죽이려는 목적이오?”
“후후후! 네놈이 곽 방주까지 죽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본각의 무사 전원을 데리고 왔다. 그리고 이분들은 본각의 고문들이시지. 네놈이 여기서 살아날 수 있을 거로 생각하느냐?”
“날 죽여 장원을 회수하려는 그대들의 속셈을 모를 줄 아시오? 애초에 장원을 내줄 생각이 없었던 게 아니오?”
“후후후! 이제 알았느냐? 네놈이 비록 시합에서 이겼다고는 하나, 속임수를 쓰지 않았느냐? 주사위 열 개를 모두 박살 내고 총합이 영이라니, 개가 웃을 일이다. 하지만 우리 각주께서 네놈을 이렇게 처단하기 위해 당시에는 일부러 봐주신 것이지.”
“그것이 속임수라면 각주 역시 속임수를 쓴 것은 매한가지였소. 사실 나는 재시합을 생각했었소. 하지만 그대들은 살수를 보내 날 죽이려 했기에 순순히 패배를 인정한 것이었소. 그야말로 소인배의 흉악한 마음이었지. 왜 말이 없소? 각주 그대가 계획한 일이 아니오?”
“곧 죽을 놈이 시끄럽구나.”
금룡노인이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긴장을 풀지 않는 표정이었다.
부각주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각주님. 곽 방주를 죽인 놈입니다. 보통 놈이 아니니 절대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
“알고 있다. 하지만 곽문 그자는 사실 그렇게 고수가 아니었다. 정말 무공이 강했다면 어찌 본각에 몸을 의탁했겠느냐? 폐관 수련을 한 것도 내상을 당해 그것을 치료하기 위해서라고 알고 있다. 곽 방주가 저놈에게 당한 것은 마침 내상이 도졌기 때문이겠지. 백하심! 집문서와 열쇠부터 내놓아라. 가지고 있느냐?”
“지금 내 몸속에 없다. 네놈들이 올 줄 알고 간밤에 은밀한 곳에 숨겨두었지.”
“거짓말 마라. 누굴 속이려 하는 것이냐?”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해라. 하지만 네가 한 가지 일을 사실대로 밝히면 집문서와 열쇠를 보여주겠다.”
“무엇을 알고 싶은 것이냐?”
“삼년 전 황금노야를 죽여 장원을 강탈한 것이 사실이냐? 유언장을 조작했다는 말이 있어 묻는 것이다.”
“후후후! 곧 죽을 놈이 그게 그렇게 알고 싶으냐? 좋다. 네놈이 집문서와 열쇠를 먼저 보여주면 가르쳐주마.”
“네놈의 명예를 걸고 약속하겠느냐?”
“약속하마. 어차피 여기에 있는 우리 무사들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으니, 숨길 이유가 없지.”
“좋다. 믿겠다. 집문서와 열쇠는 내가 가지고 있다.”
백하심이 품속에서 집문서와 열쇠를 꺼내 보여줬다.
“후후후! 역시 갖고 있었구나.”
“이제 말해봐라. 황금노야를 네가 죽였느냐?”
“그렇다. 황금노야는 선친의 친구였다. 하지만 후손이 없었지. 그래서 삼 년 전 나는 노야의 양자가 되려 했다. 하지만 거절을 당하고 말았다. 노야가 젊은 사람을 양자로 삼으려 하자, 내가 직접 죽인 것이다. 유언장은 그때 내가 직접 작성했지.”
“짐승 같은 놈. 부끄럽지도 않으냐?”
“부끄러울 게 뭐가 있느냐? 나는 노야를 정말 친부처럼 모셨다. 하지만 그는 막대한 재산을 모아놓고도 내게는 한 푼도 줄 생각을 안했다. 결국 나는 이 장원이라도 물려받을 생각으로 노야를 죽인 것이지.”
“정말 얼굴에 철판을 깔았군. 노야가 네놈을 양자로 들이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다. 그것은 바로 사갈 같은 네놈의 마음씨 때문이지. 오로지 유산을 목적으로 접근하는 네놈의 수작을 그분이 몰랐을 것 같으냐?”
“후후후! 나를 모욕까지 하다니.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혹시 네놈이 노야의 숨겨둔 재산을 발견한 것이 아닌가 싶어 이야기해준 것인데, 그것도 아닌 것 같으니 더 이상 입을 놀리도록 내버려 둘 수 없겠군. 금룡삼로(金龍三老)께서 처단해주십시오.”
“허허허. 알겠소. 각주는 마음을 편히 하시오.”
금룡삼로 중 대형인 금일로(金一老)가 미소를 지었다.
옆에 있던 금이로(金二老), 금삼로(金三老) 역시 여유 있는 미소를 지었다.
이들 세 명은 흑도 출신이긴 하나 그 무공이 엄청난 자들이었다.
금룡노인이 소문을 듣고 거금을 들여 영입했다.
지금처럼 상대하기 힘든 고수가 있을 때 깨끗하게 처리해주곤 했다.
도박장을 운영하다 보면 예상하기 힘든 고수와 싸움이 붙을 때가 있는데, 그 뒤처리를 하는 데는 제격이었다.
물론 이들이 나서는 것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였다.
곽문이 죽지 않았다면 절대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 금룡삼로는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었다.
그들이 여유를 가지고 있는 것은 바로 백하심의 기도 때문이었다.
겉으로 보기에 백하심은 내공이 전혀 없는 사람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백하심이 어제 곽문과의 싸움으로 내상을 입어 아직 회복 못한 것으로 판단했다.
지금 강하게 나오는 것도 모두 허장성세로 판단한 것이다.
“백하심이라고 했나? 지금이라도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면 각주께서 목숨만은 살려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저들 남매도 목숨을 구하지 않겠느냐?”
금일로가 자상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언제든 출수할 준비를 했다.
금이로, 금삼로 역시 마찬가지였다.
만에 하나의 경우를 대비해 합공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아는 것이오. 어제 곽문 그자도 당신들처럼 거만하게 굴다가 내게 당했소.”
백하심이 두 손을 들었다.
바로 무형태극장을 날리기 위해서였다.
금룡삼로 역시 장력을 날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세상은 넓고 고수는 많다. 네놈이 아직 어려 세상이 넓은 것을 모르는구나. 깨끗하게 일장에 죽여주마. 그래도 우리 금룡삼로의 합공을 받고 죽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해라.”
“말이 너무 많소. 어서 시작합시다.”
백하심이 말을 하며 눈짓으로 왕씨 남매를 뒤로 물러나게 했다.
그때였다.
금룡삼로가 품자 형으로 다가오며 일제히 장풍을 날렸다.
쏴아아.
거대한 해일과도 같은 장력이 백하심의 전신을 향해 쏟아졌다.
백하심이 무형태극장으로 맞받아친 것은 그 직후였다.
꽈앙.
엄청난 폭음과 함께 장원 전체가 흔들릴 정도의 진동이 느껴졌다.
사람들이 급히 결과를 봤다.
한데 금룡삼로가 그 자리에서 고꾸라져 절명해 있지 않은가.
그들의 가슴에는 하나 같이 큰 구멍이 나 있었다.
금룡노인이 검을 뽑으며 소리쳤다.
“모두 공격해 놈을 죽여라!”
[제64장] 황금장원(黃金莊園) 4“명을 받들겠습니다.”
총공격 명령을 받은 금룡각 무사들이 일제히 검을 뽑고 백하심을 포위했다.
고도의 훈련을 받은 그들은 서두르지 않았다.
품자 형의 포위망은 상승진법인 금룡진법(金龍陣法)이란 것이었다.
이 금룡진법은 금룡노인이 거금을 들여 서역 무림에서 사들인 것이었다. 그 위력은 소림의 달마나한진에 버금갈 정도였다.
가장 큰 특징은 바로 무사 백여 명의 내공을 한 사람이 모두 모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 있었다.
한데 이들 금룡각 호위들은 모두 일류고수들이었다.
그들의 결집된 힘이란 상상을 초월했다.
다만 그렇게 모든 힘을 결집해 공격을 가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번뿐이었다.
한 번의 공격을 가하게 되면 대부분 탈진하게 된다.
이후 사흘이 지나야 본래의 내공을 회복할 수 있었다.
‘금룡진법은 천하무적이다. 백팔 명의 무사가 함께 펼치는 금룡백팔공(金龍百八功)은 절대 막아낼 수 없지. 앞으로 내가 천하 상권을 장악하기 위해 비장의 무기로 준비해둔 것인데, 고작 저놈에게 처음 사용하게 되다니.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곽문과 금룡삼로 모두를 죽인 놈이니, 대접을 해줄 수밖에······.”
금룡노인이 눈을 빛내며 백하심을 노려보았다.
그가 백하심을 반드시 죽이려는 것은 역시 황금장원 때문이었다.
아직 비밀을 밝혀내지는 못했지만, 장원 안에는 엄청난 재물이 숨겨져 있었다.
돈으로 따지면 한 나라를 살 수 있을 정도로 큰돈이었다.
하지만 황금노야는 죽기 전까지 그 비밀을 털어놓지 않았다.
다만 생전에 그와 관련한 이야기는 한 적이 있었다.
황금장원에 막대한 재물이 숨겨져 있는 것은 사실이나 자신도 그 보관 장소를 모르고 있다고.
그러면서 선대로부터 내려오는 말에 의하면 오직 인연이 닿는 자만이 그 재물을 취할 수 있다고 했다.
조상들 역시 그 재물의 원주인은 아니며 인연자를 위해 잠시 보관하고 있는 중이라고도 했다.
이 말은 금룡노인을 비롯하여 극소수의 사람만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직 금룡노인 한 사람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그 사실을 아는 자는 모두 금룡노인에게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았던 걸까.
금룡노인은 수하들을 시켜 장원을 팔려고 내놓았다는 소문을 퍼뜨리게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팔 생각이 전혀 없었다.
어떻게든 장원 내에서 보물이 숨겨진 장소를 찾아내야 하기 때문이었다.
‘보물만 찾게 되면 상단을 사들여 단숨에 상계의 제일인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다음 고수들을 대거 영입해 무림까지 장악하는 것이지. 그래서 금룡진법까지 사들여 초고수들을 상대하려 하지 않았던가. 귀혈공자나 백소운 같은 절대고수를 언제든 죽일 수 있어야 내 목적이 달성될 테니······.’
금룡노인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그 자신도 엄청난 무공을 연마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최후의 수단이었다.
금룡진법을 가동할 수 없을 때 사용할 비장의 무기였던 것이다.
‘그래도 안심할 수는 없다. 금룡백팔공이 펼쳐질 때 내가 왕씨 남매를 공격해 놈의 주의를 분산시켜야겠군. 의외로 그게 주효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금룡노인이 검 끝을 백하심의 뒤에 서 있는 왕씨 남매를 향해 겨누었다.
금룡각 무사들의 공격을 기다리고 있던 백하심이 흠칫했다.
금룡노인이 왕씨 남매를 노리는 것을 간파했기 때문이었다.
‘큰일이군. 왕씨 남매까지 보호하다가는 놈들의 공격을 제대로 방어하기 힘들 수도 있다. 아무래도 놈들이 합체 공격을 가할 것 같은데, 지금 나의 실력으로 왕씨 남매까지 구하는 것은 힘들 것 같구나. 이를 어떻게 한다?’
백하심이 안색을 굳혔다.
자신의 안위는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시간이 없었다.
결국 그의 선택은 공격의 폭을 넓혀 금룡노인까지 공격하는 것이었다.
‘이럴 때 고수 한 명만 도와줘도 큰 힘이 될 텐데······.’
백하심이 아쉬워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면 자신의 계획이 성공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래, 높게 쌓을 때는 반드시 아래서부터 시작한다고 했던가. 기본에 충실하면서 변화에 대응한다면 어떤 공격도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백하심이 마음을 가라앉히자, 그와 비례하여 내공이 모이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그가 펼칠 무공은 무형태극장이었다.
조금 전 금룡삼로를 죽이는 데 성공했듯이 상대적으로 숙달된 무공이 바로 그것이었다.
“쳐라!”
금룡노인의 명이 떨어졌다.
쏴아아.
금룡각 무사 백팔 명이 일제히 백하심을 향해 검을 뻗었다.
순간, 검기가 각 검에서 발출되었다.
정확하게 백팔 개의 검기였다.
한데 그 검기가 모두 정 중앙에 있는 사람 앞으로 모이는 게 아닌가.
모인 검기들은 구슬 모양의 강력한 검강을 만들었다.
대표 무사가 들고 있던 검을 그대로 앞으로 던지자, 통합된 검강이 폭발하며 백하심을 덮쳐갔다.
그것은 빛의 폭사와도 같았다.
백하심이 피할 수 있는 방위를 모두 차단하고 있었기 때문에 피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백하심이 안색을 더욱 굳혔다.
예상했던 공격의 강도보다 배는 더 강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동시에 발출한 금룡노인의 검기였다.
그는 놀랍게도 검 하나로 두 개의 검기를 쏘았다. 왕옥과 왕인우를 향해 화살보다 빠르게 날아갔다.
금룡백팔공과는 다른 방향에서 날아왔기에 백하심 역시 방어를 두 군데로 할 수밖에 없었다.
백하심의 좌우 손바닥에서 강력한 장풍이 분출되었다.
쏴아아아.
바로 무형태극장이었다.
콰콰콰쾅.
엄청난 폭음과 함께 무사들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으윽!”
“크윽!”
왕씨 남매가 놀라서 보니 백하심과 금룡노인을 비롯한 금룡각 무사들 모두 쓰러져 있었다.
“아저씨!”
왕인우가 급히 백하심을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백하심은 이미 정신을 잃은 후가 아닌가.
그때였다.
열린 대문을 통해 일단의 무사들이 들어왔다.
복장으로 봐서 바로 무림맹 무사들이었다.
모두 백여 명이었다.
그들을 이끌고 온 사람은 한 소녀였다.
한데 그녀는 바로 백리영이 아닌가.
아무래도 뭔가 신고를 받고 달려온 것 같았다.
하기야 이번에 천마성에서 돌아온 이후 그녀는 맹의 후기지수들이 주축이 된 와룡대(臥龍隊)의 대주 직을 맡고 있었다.
이전 대주였던 정기탁의 자리를 물려받은 셈인데, 그 외에도 총단 안팎의 중요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중 주된 임무는 혹시 모를 지옥맹 잔당의 토벌이었다.
하지만 실제는 총단 안팎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을 해결하는 데 전념하고 있었다.
특히 영웅대회를 앞두고 불순 세력들이 무림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을 막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한데 그 불순 세력 중에는 금룡각도 포함되어 있었다.
사실 삼 년 전 황금노야의 죽음은 무림맹에서도 관심사였다.
황금노야는 생전에 비밀리에 군자금을 총단에 대던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의 죽음에 관심을 두고 흉수를 추적 중이었다.
용의자는 금룡노인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정마대전 때문에 제대로 된 조사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렇게 지금까지 시간이 흘렀다.
금룡각 동태를 감시하는 담당 무사는 여전히 있었다.
오늘 금룡각 무사 전원이 황금장원으로 몰려갔다는 보고가 그녀에게 간 것도 그 때문이었다.
“우리는 와룡대 무사들이에요. 어떻게 된 건가요?”
백리영이 왕씨 남매를 보며 물었다.
그러면서 대원들로 하여금 금룡각 무사들의 상태를 살펴보게 했다.
하지만 살아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금룡백팔공을 펼쳤던 백팔 명의 무사는 물론이고 금룡노인 또한 즉사한 상태였다.
그나마 백하심이 살아있는 것을 본 백리영이 옆에 있던 천향에게 말했다.
“천 대원. 이분을 조금 일으켜 주세요.”
“네. 대주님.”
천향이 백하심을 일으켜 앉혔다.
천향은 백리영의 호위였지만 이번에 와룡대원으로 들어온 바 있었다.
이는 여전히 백리영의 개인 호위로 활약하기 위해서였다.
백리영이 백하심의 맥을 짚은 후 곧바로 등 뒤 명문혈에 진기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바로 내공치료였다.
막힌 혈맥을 가장 빨리 뚫을 수 있는 응급방책이기도 했다.
하지만 백리영이 진기를 넣어준 것은 백하심의 상태가 전혀 파악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실신은 대개 기혈의 문제이기 때문에 내공 치료는 일반적인 수순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밥 한 끼 먹을 시간이 되어갈 무렵.
백하심이 천천히 깨어났다.
“으으······.”
“정신이 드세요?”
백리영이 기뻐하며 미소를 지었다.
“아저씨!”
“공자님!”
왕인우와 왕옥 역시 매우 기뻐했다.
백하심이 고개를 돌려 금룡각 무사들의 시체들을 봤다.
시체들은 와룡대 무사들이 하나하나 장원 밖으로 옮기고 있었다.
“걱정 마세요. 놈들은 모두 죽었으니까. 사실 안 그래도 본맹의 비밀 후원장로(後援長老)이셨던 황금노야를 살해한 죄로 금룡노인을 체포하려고 했어요. 이제 몸은 괜찮으세요?”
“네. 괜찮습니다. 치료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데 누구신지?”
“어머. 제 소개도 아직 못했네요. 저는 와룡대주 백리영이라고 해요. 이들은 와룡대원들이지요. 죽은 금룡노인이 자신의 범행을 인정한 이야기는 들었어요.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몸조리를 잘하세요. 아, 그리고 이곳 황금장원의 소유는 이제 공식적으로도 백 공자님이세요. 본 맹에서 이번 사건을 처리하는 데 도움을 주신 보답으로 공인해드리겠어요. 뭐 이제 시비를 걸 사람도 없으니 문제가 없겠지만 말이에요.”
“감사합니다. 다만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뭔가요?”
“제가 금룡노인을 비롯해 곽문 등을 죽인 사실을 공표하지 말아 주십시오.”
“왜요? 소문이 퍼지면 공자님의 명성이 올라갈 텐데요.”
“저는 조용히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사실 수습무사에 도전할 계획이었거든요.”
“수습무사요? 공자님 무공 정도라면 바로 장로가 될 수도 있어요. 원하신다면 제가 추천해드릴게요.”
“아닙니다. 좀 더 생각을 해봐야겠지만 제가 무림맹에 들어간다면 그 시작은 수습무사가 될 겁니다. 기초가 좀 부족해서.”
백하심이 미소를 지었다.
생각지도 않게 무림맹의 도움을 받을 수 있어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알겠어요. 그럼 저희는 가볼게요. 어려운 일이 있으면 연락하세요. 아, 그리고 나중에라도 여유가 생기시면 후원장로가 되시는 것도 한 번쯤 생각해주세요.”
“네. 지금은 장원을 제외하고 무일푼이지만 여유가 생기면 반드시 황금노야의 뜻을 이어 가겠습니다.”
“감사해요. 그럼.”
백리영이 몸을 일으켜 총단으로 복귀하려던 찰나였다.
무림맹 무사 한 명이 사색이 된 채 급히 장원 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인가요?”
“큰일 났습니다. 태상맹주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아!”
백리영이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하지만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비보를 가지고 온 무사를 쳐다봤다.
백리천이 죽은 이유를 어서 말하라는 뜻이었다.
“목격자에 따르면 마교주 귀혈공자가 잠입해 시해했다고······.”
“귀혈공자 그자가······.”
백리영이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일단은 확인이 우선이었다.
얼마 후 백리영을 비롯한 와룡대 무사들이 황급히 총단으로 복귀했다.
장원에는 다시 백하심과 왕씨 남매만 남게 되었다.
백하심이 안색을 굳혔다.
‘무림에 풍파가 다시 오겠구나. 내가 백리 소저의 도움을 받았으니,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