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195
다음 날 아침.
식사를 마친 백하심은 서둘러 수습서고로 향했다.
서고 안에 들어가 무공 비급을 열람하는 첫날이었다.
기본적은 무공 원리 습득에 대한 갈망이 대단한 상태라 평소답지 않게 서두르는 표정이었다.
출입증을 제시하자, 제1서고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제 식사 때를 제외하고 이곳에서 계속 열람을 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면 언제든 연무장에서 직접 연마하는 것도 가능했다.
하지만 제1서고에만 이만 권의 책이 있었다. 그걸 모두 보는 데도 시간이 없는 게 사실이었다.
수습기간은 영웅대회 날까지이기 때문에 이제 석 달도 남지 않은 상황.
다음 단계 서고도 네 개가 더 있다고 하지만, 현실은 대부분 제1서고에서 수습기간 내내 보낼 가능성이 높았다.
다만 높은 단계 서고에 들어가는 시험에 실패해도 기존서고에 지낼 수 있어 때가 되면 도전할 사람은 많았다.
백하심 역시 마찬가지 생각이었다.
‘굳이 미리 포기할 필요는 없지. 일단 비급들부터 보자. 그야말로 기초 무공서라 했으니 비급이라고 말하기도 좀 그렇군.’
백하심이 제1서고 안에 들어간 후 서가에 꽃인 방대한 서적들을 봤다.
한데 벌써 백여 명의 수습무사들이 와서 비급을 열람하고 있었다.
아마도 좋은 비급을 선점하기 위해 식사도 거르고 온 것 같았다.
하지만 백하심이 가까운 서고에 꽂힌 책들을 보니 동일한 책들이 대여섯 권 있었다.
필사를 해둔 것 같았다. 그 정도 숫자면 굳이 먼저 보겠다고 다툴 필요는 없어 보였다.
‘총 십만 권이라고 하지만 중복을 제외하면 그렇게 많지는 않겠구나. 서두르지 말고 처음부터 시작하자.’
백하심이 가장 가까운 서가에 꽃인 책부터 읽기 시작했다.
첫 책은 호흡에 관한 것이었다.
운기행공(運氣行功), 운기조식(運氣調息), 운기토납(運氣吐納) 등으로 표현되는 이러한 호흡법은 내공심법의 기초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너무 기초적인 부분이었다.
상승비급에 목말라 하는 수습무사들이 대충 읽어보고 내팽개친 책이기도 했다.
게다가 그 내용이 너무 많았다.
제목은 ‘호흡법(呼吸法)’으로 너무 단순해 흥미를 끌기 힘들었다.
하지만 백하심은 첫 장을 넘기는 순간 깊이 빠져들고 있었다.
가장 기초적인 것이 바로 궁극에 달한다는 자신의 생각과 같기 때문이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기초적인 내용이었다.
‘어쩌면 굳이 다른 책은 볼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구나.’
백하심은 많은 책에 대한 욕심을 버리며 찬찬히 읽어 내려갔다.
너무 빨리 읽다가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시간이 점점 흘러갔다.
서가 옆에 놓여 있는 책상에 앉아 그는 첫 책을 열심히 연구했다.
사실 내용을 모두 암기한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의 기억력은 충격적일 정도로 좋았던 것이다.
그냥 빠르게 책장을 넘기며 일별만 하면 모든 내용이 기억되었다.
하지만 그는 ‘호흡법’을 끝없이 반복해서 읽었다.
이미 기억을 했지만 직접 읽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 되풀이 읽기를 한 것이다.
시간이 점점 흘러갔지만, 백하심의 독서는 끝나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오백 명에 가까운 수습무사들이 들어와 무공서들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백하심이 읽고 있는 책은 여전히 찬밥 신세였다.
수습무사 시험을 통과한 그들에게는 사실 다 아는 내용이었다.
백하심은 이에 개의치 않고 계속 재독했다.
벌써 백번 넘게 읽은 그였다. 최소한 오늘 하루는 다른 책을 보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점심 식사도 거른 백하심이 책을 놓은 것은 저녁 식사 전이었다.
‘저녁 식사 후 방에 돌아가 명상을 통해 기본 원리를 정리하도록 하자.’
백하심이 수습서고를 나와 용봉각 지하 식당으로 향했다.
참고로 저녁 식사는 무조건 참가해야 했다.
이는 그때 필요한 공지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총관의 교육 날짜도 그때 알려준다고 했기 때문에 반드시 가봐야 했다.
교육은 일종의 수업으로, 수업에 빠지면 탈락사유가 되었다.
‘오늘 수습대주(修習隊主)를 뽑는다고 했던가.’
백하심이 어제 저녁 식사 때 들은 이야기를 떠올렸다.
닷새마다 새로운 수습무사들이 들어온다고는 했지만, 아무래도 어제 들어온 사람들이 주축이었다.
그래서 그중에서 대표를 뽑는 것 같았다.
사실 어제 바로 뽑으려고 했으나, 예기치 않은 백리영의 방문 때문에 미뤄진 것이었다.
하지만 백하심은 수습대주가 되는 것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그런 것보다 오로지 무공 연마에만 열중할 생각이었다.
한데 뜻밖에도 식사 후 맨 먼저 추천을 받은 사람은 바로 백하심이었다.
그것도 총주방장의 추천이었다.
“하하하. 어제 보니 백리 소저와 친분이 있는 것 같은데, 백하심 공자가 수습무사들의 대표가 되는 게 좋을 것 같소.”
“말씀은 감사하지만 사양하겠습니다. 저는 여러모로 부족해 그런 자리를 맡을 수 없습니다.”
“무슨 소리요? 어제 모든 사람이 똑똑히 들었소. 백리 소저가 공자에게 언제든 도움을 청하겠다고 말이오. 그 말은 공자의 무공이 매우 뛰어나다는 뜻이 아니겠소?”
“아닙니다. 아직 기초도 부족한 상태라······.”
백하심이 다시 사양했다.
총주방장도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기야 내가 간섭할 일이 아니지. 수습무사들끼리 정해야 할 일이지. 알아서 결정하시오.”
총주방장이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백리영의 부탁을 받아 영웅대회 전까지 수습무사들의 저녁 식사를 책임지고 있었다.
백하심이 사양하자, 수습무사 중 덩치가 큰 사내 한 명이 일어났다.
“하하하. 겁쟁이 녀석이로군. 사내 녀석이 뭐가 그리 배짱이 없나? 수습대주 자리는 내가 맡겠소.”
사내의 이름은 배거도(裵居道)라 하며, 유명한 낭인무사였다.
바로 정식무사, 그것도 조장급에도 들어갈 수 있는 실력을 지닌 그가 수습무사가 된 것은 의외였다.
하지만 그 나름대로 고충은 있었다.
흑도에 가까운 그의 지난 과거 행실이 문제였다.
정식무사 시험을 보려 했으나, 심사위원들이 인성을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수습무사가 될 것을 권했던 것이다.
배거도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내친김에 수습무사의 대표가 되어 지휘부의 눈에 띄는 것을 노린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에게 가장 방해가 되는 인물은 바로 백하심이었다.
총주방장의 추천에 수습무사들이 대거 동조하는 분위기를 느꼈던 것이다.
백하심은 배거도가 자신을 비웃자, 심기가 조금 불편해졌다.
하지만 참았다.
굳이 분란을 조장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백하심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배거도가 껄껄 웃었다.
“하하하. 내 짐작대로구나. 네놈이 백리 소저와 어떤 관계인지 모르나 필시 속임수를 써서 환심을 샀을 터. 그 말은 네놈의 무공이 형편없다는 뜻이 아니겠냐? 네놈의 부모가 그렇게 가르쳤느냐? 하기야 보나 마나 부모 역시 사기꾼이 틀림없을 것 같구나.”
“말이 조금 심한 것 같소.”
백하심이 무심히 말했다.
기억은 상실했으나, 그렇다고 부모에 대한 모욕까지 참을 수 없었다.
배거도가 다시 한번 껄껄 웃었다.
“하하하. 꼴에 사내라고 화를 내는 것이냐? 좋다. 네가 사내라면 나와 무공 대결을 벌이는 것이 어떻겠냐? 우리 중 승자가 대표가 되는 것이다. 시합에 나설 다른 분이 있소?”
배거도가 두 눈을 부릅뜨고 수습무사들을 쳐다봤다.
하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배거도는 일류고수였다.
수습무사들은 알고 있었다.
배거도가 백하심을 희생양 삼아 대표가 되려는 것을.
한 번의 대결도 벌이지 않고 대표가 되는 것과는 그 위상 면에서 천지차이였다.
백하심이 눈을 빛냈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구나. 어제 잠시 들으니 수습대주가 되면 총단 안팎의 출입이 자유롭다고 했던가. 황금장원에도 잠시 가볼 수 있으니, 한번 해볼 만하겠군.’
백하심이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좋소. 비무를 받아들이겠소. 우리 중 승자가 수습대주가 되는 것이오.”
백하심이 식당 중앙 쪽으로 나왔다.
중앙에 그나마 비무를 벌일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어느새 다시 주방에서 나온 총주방장이 볼거리가 생긴 듯 즐거워했다.
“내가 증인이 되겠소. 두 사람은 정정당당히 무공을 겨루시오.”
“네. 총주방장님.”
백하심이 고개를 조금 숙였다.
“흥!”
배거도가 아니꼽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는 백하심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삼장을 거리에 두고 대치한 두 사람.
배거도가 두 주먹을 쥐고 말했다.
“한 방에 보내주마. 밖에서라면 죽였을 것이나, 맹의 규율상 그럴 수는 없겠지. 운이 좋은 줄 알아라. 먼저 넘어지는 쪽이 진 것으로 하는 게 어떻겠느냐?”
“좋소.”
백하심이 담담히 말하며 자세를 잡았다.
상대가 권법을 사용할 기미를 보여, 그 역시 무형태극권을 사용할 생각이었다.
“이제 시작하지.”
배거도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백하심에게 다가갔다.
스스슷.
미끄러지듯이 나아가는 그의 신법은 역시 보통이 아니었다.
상대에 반격을 가할 기회조차 주지 않을 정도의 빠르기였다.
그 때문일까.
관전하던 사람들이 놀라기가 무섭게 그의 양 주먹이 백하심의 관자놀이를 가격하고 있었다.
강도를 조절했다고 해도 위험한 부위임은 틀림없었다.
더욱더 안타까운 것은 백하심의 움직임이었다.
배거도의 양 주먹이 날아왔지만 꼼짝도 못 하고 있었다.
상대의 공격이 너무 빨랐던 때문으로 다들 생각했다.
그때였다.
백하심의 오른 주먹이 올라오는가 싶더니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으윽!”
사람들이 놀라서 보니 배거도가 턱을 잡고 쓰러져 있었다.
상당한 타격을 받은 듯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신음을 내뱉었다.
“으으······.”
와아아.
짝짝짝.
수습무사들의 함성과 환호가 쏟아졌다.
아무도 백하심의 주먹이 날아가는 것을 정확히 보지 못했다.
이는 총주방장도 마찬가지였다.
‘보통 무공이 아니다. 백리 소저가 관심을 가질만한 인물이구나.’
총주방장이 담담히 서 있는 백하심을 쳐다봤다.
그때였다.
식당 안으로 한 사람이 들어왔다.
바로 맹찬이었다.
그는 수습무고 관리 책임과 함께 수습무사들 관리까지 맡고 있었다.
“이 무슨 짓이냐?”
맹찬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총주방장이 냉랭한 표정으로 말했다.
“무엇이긴 무엇이겠소? 수습무사들끼리 자체적으로 대표를 뽑은 것이오. 저기 백하심 공자가 수습대주로 뽑혔소.”
“흥!”
맹찬이 총주방장과 말을 섞기 싫다는 표정으로 코웃음을 쳤다.
대신 백하심에게 물었다.
“지금 그 말이 사실인가?”
“네. 제가 비무를 통해 수습대주가 되었습니다.”
“으음, 알겠네. 백리 소저와 친분이 있는 것 같으니 잘 되었네. 날 따라오게. 안 그래도 오늘 대표를 뽑으려고 했는데, 벌써 끝났군.”
맹찬이 다소 못마땅한 표정으로 백하심을 쳐다봤다.
자신의 입맛에 맞는 대표를 뽑고 싶었다. 하지만 다소 부담되는 백하심이 뽑힌 것이다.
“오늘 아침 부맹주님의 귀환이 있었네. 오늘 밤 맹의 긴급총회가 열리니, 수습대주인 자네도 참가해야 하네.”
“저도 말입니까?”
“그러하네. 전쟁이 터지면 수습대원들도 참가해야 하네. 수습대(修習隊)라는 공격부대가 창설되는 것이지. 무슨 뜻인지 알겠나?”
“네.”
“그래. 어서 따라오게. 미리 총회가 열리는 취의청에 가서 기다리는 게 좋겠네.”
“네.”
백하심이 대답 후 맹찬을 따라 식당을 빠져나갔다.
취의청으로 가는 백하심의 얼굴이 조금 상기되었다.
바로 백소운 때문이었다.
‘드디어 부맹주를 보게 되는군. 어떤 인물인지 직접 보면 판단이 설 것이다. 한데 왜 이렇게 내가 그를 의식하는 걸까. 설마 나와 무슨 관련이라도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