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197
“영웅대회를 취소하지 않으면 필시 귀혈공자 그놈이 얼굴을 숨기고 참가해 맹주 자리를 차지하려 할 겁니다. 놈이 무림맹주가 되어도 좋다는 말씀입니까?”
백소운이 언성을 높였다.
회의 참석자들이 안색을 굳혔다.
백소운이 지금까지 이렇게까지 흥분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자명선생이 담담히 말했다.
“그게 아니라는 것을 부맹주께서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영웅대회를 취소하게 되면 당장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로부터 큰 반발이 있을 겁니다.”
“그들 역시 본맹의 일원이 아닙니까? 이 모든 것이 무림대의를 위한 것이거늘, 어찌 자파의 이익에만 몰두한단 말입니까? 게다가 귀혈공자가 아니라면 당금 천하에 저의 적수는 한 명도 없습니다. 그 뜻은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에서 맹주가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지요.”
“그렇게만 볼 것은 아닙니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에는 숨은 고수들이 매우 많습니다. 그들 모두 오랜 세월 무림맹주를 꿈꿔왔던 고수들이지요. 한데 귀혈공자를 핑계로 영웅대회를 취소한다면 큰 반발이 생길 겁니다.”
“반발이 있어봤자 무슨 대수겠습니까? 아, 물론 그들의 문파 독립성은 관례적인 것이라 잘 알고 있습니다. 저번 출정에도 자파 방어를 핑계로 그 수장들이 대거 불참했다지요? 하지만 본맹이 무너지면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역시 각개 격파되어 멸문되고 말 겁니다. 무림이 있어야 문파도 있을 게 아닙니까? 결론적으로 동맹파기와 영웅대회 취소는 꼭 필요합니다. 오늘 총회에서 반드시 결론을 내려야 합니다. 그 절차는 어떻게 됩니까?”
“정식 맹주가 되시면 둘 다 맹주 권한으로 단독 처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부맹주께서는 맹주 대행이라 총회 참석 인원의 만장일치 동의가 필요합니다.”
자명선생이 안색을 굳혔다.
“좋습니다. 그럼 바로 의사를 확인하지요. 동맹파기와 영웅대회 취소에 반대하시는 분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십시오. 단 한 분이라도 반대하면 오늘은 제가 의견을 철회하겠습니다.”
백소운이 말을 한 후 참석자들을 쳐다봤다.
그들 중에는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출신도 상당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 대다수는 자파를 떠나 맹에 몸을 담은 지 오래였다.
차기 맹주로 유력한 백소운의 눈 밖에 나게 되면 출세는 물 건너가게 될 것은 자명했다.
그 때문일까.
취의청에는 정적이 감돌뿐 일어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명선생이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반대 의견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 역시 군사직을 걸어야 했다.
“부맹주님.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정말 영웅대회에서 귀혈공자와 겨루게 되면 자신이 없으십니까?”
“하하하. 그건 아닙니다. 제가 우려하는 것은 놈의 암수입니다. 천마대장경에는 그런 절대적인 암수무공이 있을 겁니다. 그래서 만에 하나의 경우를 대비하자는 겁니다. 하지만 대회 비무와 달리 제가 일단 정식맹주가 되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저는 철저히 대비를 할 것이며, 저를 도와줄 분들도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저와 귀혈공자의 승부는 감히 예측하기 힘듭니다. 백중지세로 보는 게 맞을 겁니다. 그래서 안전을 기하기 위해 대회를 취소하고 바로 제가 맹주가 되려는 겁니다. 이후 무림에 평화가 찾아온다면 저는 미련 없이 자리에서 물러나 초야에 은거할 생각입니다. 부맹주 자리도 처음에는 극구 사양했던 저입니다. 하지만 오해를 불러일으키더라도 무림대의를 위해 제 의견을 주장하는 겁니다. 다들 깊은 이해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좋습니다. 부맹주님의 뜻이 그렇다면 굳이 반대하지 않겠습니다.”
자명선생의 말에 참석자들이 웅성거렸다.
마지막까지 망설였던 몇 명이 이의제기를 포기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절차는 확실히 거쳐야 했다.
자명선생이 말했다.
“총회 규율에 따라 지금부터 열을 세겠습니다. 그때까지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람이 없으면 정마동맹을 파기하고 영웅대회를 취소하는 안건을 통과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아, 물론 영웅대회를 취소하게 되면 현 맹주 대행인 부맹주께서 곧바로 맹주 자리를 승계하게 되실 겁니다.”
“바로 제가 맹주가 되는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 결정이 있게 되면 공포를 하게 되고, 보름 후 정식으로 발효가 됩니다. 그동안 이의제기를 받게 되나, 특별한 자격 상실 사유가 발견되지 않는 한 총회 결정이 바뀌는 일은 없을 겁니다.”
“보름이라. 알겠습니다. 그 기간이라면 저를 도와주고 계시는 분들을 모두 모을 수 있겠군요.”
“도와주시는 분들이라 하심은?”
자명선생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사실 신선계에 있을 때 제게 도움을 준 수도자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분들은 신선계 내에서도 깊이 은거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등선맹에 가입하지도 않고 계셨지요. 그래서 악마진법에 갇히지 않았는데, 은둔 수도자로 불리는 분들입니다. 아마 그분들이 없었다면 지옥악마신과의 싸움에서 제가 승리하지 못했을 수도 있을 겁니다. 모두 삼백 분인데, 앞으로 무림 평화를 다지는 데 큰 도움을 주실 겁니다.”
“아, 잘된 일이군요. 신선계에 은둔고수들이 있다는 이야기는 저도 들었습니다. 그분들이라면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할 수 있을 겁니다.”
“사태라 하심은?”
“부맹주께서도 우려하고 계시는 일입니다. 바로 마신들이 봉인을 깨고 세상에 나오는 일이지요. 지옥악마신은 이미 제거되었다고 하나, 그보다 훨씬 강한 다른 마신들은 아직 봉인 상태라고 하니 대비해야 할 겁니다.”
“하하하, 총군사님 말씀이 맞습니다. 그래서 저는 은둔 수도자 삼백 분을 본맹의 특별호법으로 모셔 그에 대한 대비를 할 생각입니다.”
“그분들도 약속하신 겁니까?”
“네. 다만 제가 맹주가 되어야 돕겠다고 하셨지요. 봉인된 마신들을 완전히 소멸시키는 문제는 매우 위험하고 복잡한 일이라, 제가 맹주가 되지 않는 한 믿고 도움을 주시기 힘든 것 같았습니다. 예를 들어 귀혈공자 같이 야심이 큰 자가 무림맹주가 된다면, 그분들이 어찌 도움을 주시겠습니까?”
“아, 급히 맹주가 되시려는 이유가 또 있었군요. 좋습니다. 숫자부터 세어 이번 논의를 마무리하겠습니다. 하나, 둘, 셋······.”
자명선생이 마침내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열을 셀 동안 반대하는 사람이 없으면 백소운의 주장이 관철될 것이었다.
“······ 일곱, 여덟, 아홉.”
자명선생이 아홉까지 살렸을 바로 그때였다.
취의청 맨 끝에서 한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적처럼 반대자가 나온 것이었다.
한데 그는 바로 백하심이 아닌가.
맹찬이 매우 놀라 손짓을 했으나, 백하심은 다시 앉지 않았다.
“반대합니다.”
“이 미친놈이!”
맹찬이 더는 참지 못하고 버럭 고함을 질렀다.
백하심 한 명 때문에 이번 안건이 무산되게 되면 그 화가 자신에게 미칠 가능성이 높았다.
맹찬이 뛰어와 백하심의 뺨을 후려쳤다.
말이 좋아 수습대주이지 백하심의 신분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반면 그는 엄연히 부총관의 신분.
충분히 백하심의 행동을 저지하고 나무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전에 백리영이 지풍을 날려 이를 저지했다.
“으으······.”
내상을 입을 정도는 아니나 맹찬의 손이 지풍을 맞고 다시 내려졌다.
“무슨 짓인가요? 저분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 것뿐이에요. 이유도 묻지 않고 다짜고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여기 계신 모든 분을 욕되게 하는 거예요.”
“맹 부총관! 백리 소저의 말씀이 옳네. 자리로 돌아오게.”
총관 왕지의 말에 맹찬이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저놈을 이곳에 데려오는 게 아니었는데, 제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저 사람은 누구요?”
자명선생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백리영이 대신 대답했다.
“저분은 이번에 황금장원의 주인이 된 백하심 공자예요. 수습무사가 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여기 데려온 것을 보니 아마 수습대주가 된 것 같군요. 그렇지 않나요?”
“그렇습니다.”
맹찬이 붉어진 얼굴로 대답했다.
자명선생이 말했다.
“백하심 대주! 말씀해보시오. 정말 이번 안건에 대해 반대하는 것이오?”
“네.”
백하심이 담담히 말했다.
회의 참석자들이 다시 웅성거렸다.
사실 이번 총회는 백소운이 대회 참가 없이 맹주가 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 할 수 있었다.
총회 참석 권한이 있는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수장들이 소식을 듣고 다음 총회부터 참석하게 된다면 안건이 통과되기 어려운 것이다.
“반대 이유를 물어봐도 괜찮겠소?”
“네. 이유는 바로 명분이 약하다는 겁니다. 우선 정마동맹의 파기는 지금 시급한 것이 아닙니다. 시급한 것은 철저한 조사를 통해 태상맹주님을 죽인 자를 밝혀내는 겁니다. 물론 지금으로서는 그 범인이 귀혈공자일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하지만 설사 귀혈공자가 범인이라 하더라도 섣불리 동맹을 파기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이번 암살이 귀혈공자 한 사람의 짓이라면, 동맹은 계속 유지되어야 할 겁니다.”
“귀혈공자는 마교주 신분인데, 어찌 동맹을 계속 유지할 수 있겠소? 물론 이 역시 귀혈공자가 진범이라는 가정하에서 하는 말이지만······.”
“진범이라는 것이 밝혀지면 마교주 자리에서 물러나게 해야지요. 검마왕이 다시 교주가 되어 우리 무림맹과 계속 동맹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무림 평화를 위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귀혈공자 한 사람 때문에 또다시 수많은 무림인이 피를 흘리는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영웅대회 취소는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왜 그렇소?”
자명선생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백하심의 말이 답답했던 자신의 마음을 풀어주고 있었다.
“영웅대회는 이미 공포가 되었습니다. 한데 부맹주께서 밝힌 이유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겁니다. 귀혈공자가 맹주가 되는 것이 그렇게 걱정이 된다면 대회 당일 철저한 대비를 하면 될 겁니다. 부맹주를 도와주고 있다는 은둔 수도자분들을 대회에 초청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으음, 그대의 말도 일리가 있소. 하지만 부맹주님의 말씀도 근거가 없는 게 아니오. 하지만 백 대주가 반대함으로 인해 이번 안건이 부결된 것은 사실인 것 같소. 부맹주님. 인정하시겠습니까?”
자명선생이 백소운을 쳐다봤다.
백소운은 의외로 태연했다.
그는 아까부터 백하심을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백하심 또한 눈을 돌리지 않고 그를 주시했다.
백소운이 껄껄 웃었다.
“하하하. 좋습니다. 규칙대로 해야지요. 제가 조금 서두른 감이 있었던 것 같군요. 한데 수습대주가 총회에 참석할 권한이 정말 있는 겁니까?”
“네. 규정상 참가가 가능하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맹주 자리가 공석이 된 비상 상황이기 때문이지요.”
“알겠습니다. 아직 대회 때까지는 시간이 있으니, 오늘은 제가 의견을 철회하지요.”
“네. 하지만 특별한 사정없이는 같은 안건을 심사할 수 없다는 것도 아셔야 할 겁니다.”
“그런 규칙이 있습니까? 하하하. 좋습니다. 그래도 모르지요. 특별한 사정이란 게 생길지도. 오늘 회의는 여기서 끝내는 게 좋겠습니다.”
백소운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소운이 취의청 밖으로 나가자, 자명선생이 백하심에게 다가왔다.
“백 대주 덕분에 우리 모두 생각할 시간을 번 것 같소. 하지만 이 일로 부맹주님의 눈 밖에 나게 되었으니, 조심하는 게 좋겠소.”
“저는 괜찮습니다. 제가 주제넘게 나선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니오. 이제 소문이 퍼져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수장들 일부라도 총단에 오게 되면 영웅대회 취소는 절대 없을 것이오.”
“동맹 파기는 어떻게 될까요?”
“그것은 귀혈공자가 진범인가 여부로 갈릴 것이오. 그가 진범이라면 동맹 파기는 불가피할 것이오. 귀혈공자를 마교주 자리에서 끌어내릴 사람이 아무도 없을 테니까.”
“그렇군요. 제가 그 점은 생각이 조금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저는 귀혈공자가 진범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범인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도 있소?”
“아직 없습니다. 하지만 조만간 알아낼 겁니다.”
“알겠소. 아무튼, 오늘 잘 나서주었소. 하지만 확실한 것은 현 무림에서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고수는 바로 부맹주님 한 사람뿐이란 사실이오. 내 생각에 부맹주께서 너무 조급한 마음에 이번 안건을 처리하려 했던 것 같소. 원래 총명한 분이니, 앞으로는 오늘처럼 무리하게 일을 추진하지는 않을 것이오.”
“그렇게 되면 저도 더 이상 나서는 일은 없을 겁니다.”
“······.”
자명선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총회가 끝났음을 선포했다.
참석자들이 서로 의견을 나누며 취의청 밖으로 나갔다.
백하심 역시 인사를 하고 용봉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따가운 것은 사실이었다.
‘너무 신경 쓸 필요 없다. 바른길을 걸어가면 그만이다. 더 이상 무슨 걱정을 한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