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199
벽력신장과 무형검의 접목.
이론은 그럴듯했지만 그게 단시간에 되는 것은 아니었다.
용봉각 뒤 연무장에서 몇 번 더 벽력신장을 연습하면서 궁리했지만 시간이 너무 없었다.
이제 곧 다른 수습무사들도 깨어날 시간.
아쉽지만 무형검 연구는 다음으로 미뤄야 했다.
백하심이 용봉각으로 다시 발걸음을 돌리려던 바로 그 찰나.
중년인 한 명이 빗자루를 하나 들고 천천히 걸어왔다.
왠지 힘없어 보이는 걸음걸이였다.
복장도 남루해 한눈에 봐도 총단 하인임을 알 수 있었다.
‘아침 일찍부터 연무장 청소를 하러 온 것 같군.’
백하심이 주위를 둘러보니 바위 부스러기가 곳곳에 쌓여 있었다.
가루로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그 양이 만만치 않았다. 군데군데 제법 큰 돌조각도 있었다.
‘내가 일거리를 만들었군.’
백하심이 미안한 마음에 자리를 뜨지 않고 있었다.
상황을 봐서 도움을 줄 생각이었다.
연무장에 도착한 중년인은 백하심을 보고 고개를 숙였다.
“새벽부터 무공 연마를 하셨군요. 잠시 비켜주시면 제가 청소를 해드리겠습니다.”
“네. 제가 좀 도와드리겠습니다. 제가 일거리를 만든 것 같군요.”
백하심이 바위 잔해를 가리켰다.
“괜찮습니다. 무거운 것은 나중에 다른 하인들이 처리할 겁니다. 저는 비질만 하면 됩니다. 다만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 공자께서 도와주신다면 최대한 말끔히 치우고 싶긴 하군요.”
“오늘이 마지막이라니요? 총단 일을 그만두시는 겁니까?”
“네. 쫓겨나는 셈이지요. 부맹주께서 그렇게 매몰찰 줄이야······.”
중년인이 불만 섞인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백하심의 반응을 살폈다.
백하심이 가만히 있자 다시 말했다.
“세상에 이런 경우가 있습니까? 저는 괜찮지만 하림이 어머님과 동생까지 모두 쫓아내다니······.”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부맹주님과 관련된 이야기 같은데,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제가 도와드릴 부분이 있으면 도와드리겠습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중년인이 반색했다.
그러면서 당장 오늘 중으로 총단에서 쫓겨나가게 된 사연을 말했다.
일단 그의 이름은 장록(長麓)이라 했다.
한데 그와 함께 쫓겨나가게 된 두 사람은 최씨부인과 진호로 바로 진하림의 어머니와 동생이었다.
그들 세 사람은 백소운이 돌아왔다는 말에 진하림 소식을 알까 해서 맹찬에게 물어봐달라고 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오늘까지 짐을 싸서 총단 밖으로 나가라는 것이었다.
장록, 최씨부인, 진호 세 사람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실제 맹 부총관이 부맹주께 말을 전했다고 하던가요?”
“네. 부총관님 말로는 부맹주께서 공사를 엄격히 해야 한다며 총단에서 쫓아낼 것을 명했다고 합니다. 만나주시지도 않고 말입니다.”
“으음······.”
백하심이 안색을 굳혔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진하림이란 소녀는 백소운과 가까이 지내던 하심무인 중 한 명이 분명했다.
‘아무래도 이상하군. 그렇게 친분이 두터웠는데, 그녀의 가족을 오히려 쫓아내려 한다? 분명 직접 대면하는 것을 꺼려한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부맹주가 가짜란 말인가.’
백하심이 다시 백소운의 진위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하지만 아직 결정적인 증거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지금 그의 처지에 맹찬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다.
“총단에서 나가면 어디 갈 데라도 있습니까?”
“갈 데가 없으니 이러는 게 아닙니까? 부맹주께서 이럴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백리 소저께 도움을 요청하려 했지만, 만날 방도도 없어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쫓겨나게 되었지요.”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사정이 그러하다면 이곳에 계속 있는 것보다 총단 밖으로 나가시는 게 더 나을 수도 있겠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이전에 살던 집도 다 처분해서 정말 갈 데가 없습니다.”
“그게 아니라······ 아닙니다.”
백하심이 말을 얼버무렸다.
차마 총단 안에 있으면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아직은 그의 추측에 불과했다. 자칫 말이 새나가면 자신도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는 동안 장록은 신세 한탄을 계속했다.
“사실 제가 이곳으로 오기 전 빌린 돈이 많아 그 돈을 갚느라······ 하림이 집도 마찬가집니다. 그나마 조금 있던 돈도 제게 빌려줘, 우리 세 명 모두 총단에서 쫓겨나가면 생계가 막막합니다. 경기가 어려워 어디 가서 일할 데도 없고, 그나마 집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이렇게 하시지요. 제가 거처하실 곳을 마련해드리겠습니다. 제가 쓴 소개장을 가지고 가시면 방을 내드릴 겁니다. 물론 공짜입니다.”
“그곳이 어딥니까?”
“황금장원입니다.”
* * *
장록에게 소개장을 써준 백하심은 곧바로 용봉각으로 돌아왔다.
소개장이라고는 하지만 왕씨 남매에게 보내는 서신이었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 왕씨 남매에게 서신에 적을 특이한 표식을 가르쳐주었던 것이다.
물론 수습대주 자격으로 총단 밖에 외출이 허용되어 있었다. 하지만 당장 오늘내일 중으로 나갈 계획은 없었기 때문에 소개장을 써준 것이었다.
장록은 당연히 매우 기뻐했다.
황금장원에 대해서는 그 역시 잘 알고 있었다.
백하심이 황금장원의 주인이라는 말에 오히려 앞으로 장원 관리를 하면서 살 수 있도록 부탁까지 했다.
백하심은 흔쾌히 수락했다.
물론 그 수락은 최씨부인과 진호 두 사람에 대해서도 해당하였다.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두 사람 역시 찬성할 것이 틀림없었다.
‘골동품이 아직 많이 있으니 그들 모두를 먹여 살리는 데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나중에 부맹주의 실체를 밝히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백하심이 미소를 지으며 지하 식당으로 내려갔다.
아침 식사를 하는 동안 수습무사들이 그를 보며 수군거렸다.
벌써 어젯밤 총회에서의 일이 알려진 것 같았다.
대부분 백하심을 멀리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낭인 계열의 수습무사들은 오히려 적극적으로 호감을 표시했다.
무림맹 지휘부 고수들이 가득한 자리에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다는 것.
그것은 그만큼 배포가 크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걱정이 되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부총관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네. 대책을 세워야 하네.”
수습무사 한 명이 백하심에게 말했다.
그는 이소절(李蘇節)이란 자로 처음부터 백하심에게 호감을 보였었다.
그 역시 아무 배경 없이 스스로 무공을 익혔기 때문이었다.
백하심이 수습대주가 되자 자기일인 양 기뻐하기도 했던 그였다.
“알고 있네. 안 그래도 오늘 적격 심사를 한다고 하더군.”
“적격 심사? 그자들이 자네를 쫓아내려고 작정을 했군. 보나 마나 확실한 무공을 보여주지 않으면 자네를 대주 자리에서 물러나게 할 거야. 아니 어쩌면 아예 쫓아낼 수도 있지.”
이소절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신원 내력이 불분명한 것은 그 역시 걱정거리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일반 정식무사는 그렇게 엄격한 심사를 하지 않기 때문에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다만 백하심은 수습무사들의 대표였다.
물론 아직 정식 계급이 아니라 수습대주 사이에서도 위계질서 같은 게 없었다.
지금 이소절이 백하심에게 편하게 대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말게. 쫓겨나면 쫓겨나는 것이지.”
“하기야 이제 소문이 퍼졌으니 영웅대회가 취소되는 일은 없을 것이야. 어제 소림 출신 무사에게 잠깐 들으니 소림방장 대각대사께서 오늘 중으로 총단에 도착하신다고 하더군.”
“대각대사께서?”
백하심이 놀라면서 반색했다.
“그러하네. 어디 대각대사뿐인가? 인근에 있던 화산장문인께서도 곧 오신다고 하네.”
“매화신검 화백웅?”
“그러하네. 대각대사와 화 장문인 두 분 모두 이번 영웅대회에 자파의 전대 고수를 출마시키려는 것이지.”
“전대고수?”
“그러하네. 소림에서는 달마동에서 삼십년 간 폐관수련을 하던 자비신승(慈悲神僧)께서 출전을 결심하셨다고 하지. 화산 역시 전대 화산제일검이었던 자하검선(紫霞劍仙)께서 준비 중이라고 하네. 사실 두 분 모두 강호에서는 이미 돌아가셨다고 소문이 나 있었지.”
“가히 은자림급 고수들이군.”
“그러하네. 물론 이번에 동정어옹, 남북쌍괴 등 은자림 고수들도 대거 출전을 결심한 모양이야.”
“그분들까지 말인가?”
“그렇다고 하네. 그리고 이건 내 생각인데 대회 출전하려는 고수들이 시간이 갈수록 많아질 것 같네.”
“그 이유는?”
“그건 바로 부맹주님 때문이지. 어제 총회에서도 독단으로 안건을 밀어붙이려 했다지?”
“자네는 참석도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았나?”
“삼백 명인 넘는 인원이 참여한 자리네. 소문은 금방 나게 마련이야. 자네가 용기 있게 반대를 해 안건이 일시 무산된 것 또한 금방 알려졌지.”
“하긴 그랬었지. 아무튼 고맙네. 신경 써줘서.”
“당연한 게 아니겠나. 자네야말로 조심하게. 특히 오늘 있을 적격심사가 고비가 될 것 같네. 물론 대비책은 있겠지?”
“어느 정도······ 식사를 마쳤으니 수습서고로 어서 가세.”
“그러지.”
백하심과 이소절 두 사람이 식당에서 나와 수습서고로 향했다.
두 사람 중 백하심은 서고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대기실에 있어야 했다.
전날 맹찬이 아침 식사 후 그곳에서 기다리라고 했던 것이다.
“무운을 비네.”
이소절이 서고 안으로 들어가자, 백하심은 대기실에서 차를 마시며 앉아있었다.
조금 긴장도 되긴 했으나 벽력신장을 연습해두었기 때문에 여유가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반 시진 정도 지난 후 맹찬이 왔다.
그 옆에는 세 사람이 더 있었다.
바로 심사위원들이었다.
수습무사 시험 때 심사를 맡았던 맹의 중견고수들이었다.
“오셨습니까?”
백하심이 일어서서 맹찬에게 고개를 숙였다.
“흥!”
맹찬이 코웃음을 치며 인사도 받지 않았다.
“긴말할 것 없고 바로 적격심사를 하겠네. 수습대주는 총회 참석권한이 있는 중요한 직책이라, 자네가 정파인이라는 명확한 증거가 있어야 하네.”
“심사 장소는 어딥니까?”
“무공을 봐야 할 것이니 연무장이 좋겠군. 나가지.”
“네.”
백하심이 묵묵히 뒤따라갔다.
적격 심사는 세 명의 심사위원들이 하게 된다.
불행 중 다행으로 맹찬이 직접 심사를 맡지는 않았다.
하지만 미리 심사위원들에게 엄격한 심사를 주문해 놓은 것은 사실이었다.
‘아무래도 어렵겠군. 벽력신장을 펼쳐도 트집을 잡을 가능성이 있겠다. 이럴 때 공정한 판단을 할 수 있는 참관인이 있으면 좋으련만······.’
백하심이 아쉬워했다.
연무장이라 하지만 수습서고에 붙어 있는 연무장은 평소 개방이 되지 않는 곳이었다.
서고 옆이라 시끄럽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 바람에 구경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얼마 후 도착한 연무장.
백하심은 정 중앙에 무심히 섰다.
맹찬과 세 사람의 심사위원은 조금 떨어진 뒤쪽에 있었다.
“시작하게. 자네가 백도 인물이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무공이어야 하네. 물론 지금이라도 기권을 하면 일반 수습무사 자격은 유지할 수 있게 해주겠네.”
“스스로 대주 자리에서 물러나라는 말씀입니까?”
“그러하네. 어제 자네가 총회에서 저지른 일을 생각하면 그 책임으로 대주 자리에서 물러나는 게 좋지 않겠나? 자네의 앞날을 위해서도 말이야. 어떻게 하겠나?”
“못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다만 공정한 심사를 해주십시오.”
“뭐라고? 다시 말하지만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면 대주 자리는 물론이거니와 수습무사 자격까지 박탈당할 것이네. 자격도 없는 놈이 총회에서 무림의 큰일을 방해했으니, 그 정도는 각오해야겠지.”
“······.”
백하심이 대답 대신 천천히 두 손을 들어 올렸다.
마침 전방에 제법 큰 바위 하나가 있었다.
바로 벽력신장을 펼칠 생각인 것이다.
그때였다.
인기척이 나더니 연무장에 세 사람이 왔다.
한데 그들은 바로 자명선생과 백리영, 그리고 천향이 아닌가.
백리영이 말했다.
“늦지 않았군요. 백 대주에 대해 적격심사를 한다고 해서 참관하러 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