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201
“금마석이 분실되었다고요?”
백하심이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어제의 약속대로 아침 일찍 같은 장소로 나왔는데, 맹찬이 금마석 분실을 알린 것이다.
대각대사의 피습으로 맹 전체가 어수선한 상황이었다.
일부러 시간을 내어 참관한 자명선생과 백리영도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천화를 시켜 사정을 알아보게 한 결과 금마석 분실은 사실이었다.
간밤에 맹의 창고에 있던 금마석 백여 개가 모두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누군가의 침입 흔적이 있었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무맹창고에는 금마석 말고도 여러 가지 중요 물건들이 많아 경계가 철저했다.
한데 금마석만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것은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게다가 그 시기도 교묘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백하심이 심사를 받는 것을 방해하려는 의도로 보였다.
맹찬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금마석을 찾을 때까지 심사는 미뤄질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백 대주는 따로 할 말이 있는가?”
“······.”
백하심이 대답 대신 안색을 굳혔다.
그로서도 전혀 예상 밖의 일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간밤에 어떻게든 자신의 마공 연마 여부를 알아내려 했던 그였다.
하지만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했다.
갑자기 나타났다가 사라졌던 대정록처럼 뭔가 특별한 경우가 생길 것으로 기대했으나, 별 소득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운에 맡기자는 생각으로 오늘 나왔다. 한데 뜻밖에도 금마석이 사라진 것이었다.
‘어쩌면 누군가 절대적인 힘으로 금마석 자체를 아무 흔적 없이 제거했을지도 모른다. 나로서는 위험부담을 던 셈이나, 총회 참석 권한을 회복할 길이 요원해졌구나. 하지만 총군사님과 백리 소저 두 분이 있으니······.’
백하심이 마음을 다스렸다.
이미 일어난 일에 집착할 필요는 없었다.
자명선생과 백리영 역시 다른 뾰족한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맹찬을 비롯해 심사위원들이 돌아간 이후 백하심이 백리영에게 물었다.
“대각대사께서는 괜찮으십니까? 정말 이번에도 귀혈공자의 짓으로 판명된 겁니까?”
“방장께서는 아직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셨어요. 소림 대환단을 복용하셔서 목숨을 건지셨으나, 충격이 크셨는지 언제 깨어날지 모른다고 하네요. 그리고 귀혈공자가 다시 나타난 것은 맞아요. 이번에도 여러 목격자가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아버님 시해 때와 유사한 상황이라, 확신할 수는 없어요.”
“아직은 귀혈공자의 짓이 아니라고 믿는 것 같군요.”
“네. 그나저나 금마석이 분실되어 어쩌죠? 부맹주 측에서 손을 쓴 것 같아요. 증거는 없지만 말이에요. 생각보다 백 대주님을 많이 의식하는 것 같네요. 역시 고수를 알아보는 것 같아요.”
“제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제가 총회 참석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겁니다. 괜찮겠습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비록 대각대사께서 피습을 당하셨으나, 영웅대회가 취소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출신 맹의 지휘부 고수들이 각자 사문의 명을 받아 대회 사수를 하기로 의견을 모았답니다. 부맹주 역시 대회는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공언하셨고요. 다만 문제는 정마동맹 파기예요. 이번 대각대사님 습격이 정말 귀혈공자의 짓으로 판명이 되면 동맹파기는 불가피할 것 같아요.”
“일종의 타협이군요. 알겠습니다.”
백하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알고 무공연마나 열심히 하세요. 백 대주의 힘이 필요할 때 부탁을 드리겠어요. 그때 도와주시면 돼요.”
“알겠습니다. 언제든 연락 주십시오.”
“그럼.”
백리영과 자명선생이 서둘러 연무장을 떠났다.
어디론가 급히 가는 모습이 처리해야 할 문제가 산적한 것 같았다.
백하심이 안색을 굳혔다.
뭔가 도움이 되고 싶었다. 한데 일이 어중간하게 마무리된 것 같았다.
한 가지 소득이라면 그가 벽력신장을 연마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하루 만에 그를 보는 눈길이 많이 달라졌다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금룡각 무사들을 단신으로 해치운 사실도 점점 알려지고 있었다.
‘어쩌면 부맹주가 노린 것은 정마동맹 파기 하나였을지 모른다. 그의 실력으로 영웅대회에 나가 우승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니, 굳이 편법을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지. 이러한 상황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일단은 수습서고에 있는 비급들을 최대한 빨리 독파하자. 나의 투시력과 암기력이라면 얼마 걸리지 않을 것이다.’
백하심이 눈을 빛내며 수습서고로 들어갔다.
간밤에 느꼈던 것이지만 호흡법 책 한 권만으로는 역시 많이 부족했다.
물론 기초를 닦는 데 큰 도움이 되었었다. 하지만 역시 다독이 중요함을 새삼 느낀 것이었다.
그래서 간밤에 생각한 것이 바로 투시술을 통해 십만 권에 달하는 책들을 모두 독파하는 것이었다.
이 투시술을 사용하면 굳이 다음 단계 서고로 들어가기 위해 시험을 치를 필요도 없었다.
다행히 단계별 서고는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그 거리는 모두 투시 범위에 있었다.
게다가 간밤에 마공을 기억하려고 애쓰다가 한 가지 특수한 대법을 기억해 냈다.
그것은 전체 투시법으로 내공을 사용해 공간 전체를 투시하는 비술이었다.
쉽게 말해 수습서고에 있는 책 모두를 한꺼번에 펼쳐 그대로 기억하는 것이었다.
다만 이 비술은 내공 소모가 매우 심해 탈진할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백하심은 더 이상 수습서고에 있을 생각이 없었다.
백소운의 정체에 대해 본격적으로 조사하는 등 할 일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무리가 따르겠지만 오늘 끝낸다.’
* *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백하심은 종일 수습서고 중심에 앉아 전체투시를 하고 있었다.
이제는 해가 질 무렵이었다.
이소절이 몇 번이나 다가와 무얼 하는지 물어봤다. 하지만 백하심은 대답하지 않고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아니 대답할 수 없었다.
그의 시야에는 지금 십만 권의 책이 동시에 펼쳐지고 있었다.
그 내용을 모두 머릿속에 넣고 있으니 딴짓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그 책장이 넘어가는 속도는 한권의 책을 볼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상당히 느린 편이었다.
하지만 결국 끝은 있게 마련이었다.
지금 그는 가장 두꺼운 비급을 마지막으로 보는 중이었다.
그 비급은 제5서고에 있던 비급 중 가장 강한 무공이 수록된 것이었다.
현재 그가 앉아 있는 곳은 제1서고.
이미 제1서고부터 제4서고까지의 모든 책은 섭렵한 상태.
마지막 한 권만 남은 백하심은 비교적 여유가 있었다.
그것은 시간적 여유이자 정신적 여유였다.
대부분 기초적인 내용들이라 기억과 동시에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그 결과 그가 바라던 완벽한 기초를 이루게 된 것이었다.
그때였다.
십만 권째의 비급의 마지막 장을 독파하자, 백하심이 옆으로 천천히 쓰러졌다.
마침 옆에 있던 이소절이 급히 그를 부축했다.
“왜 이러나?”
이소절이 백하심을 흔들었으나, 이미 실신을 한 상태였다.
너무 무리해서 탈진한 것이었다.
“무슨 일이오?”
서고 관리무사 한 명이 다가왔다.
“백 대주가 너무 무리해 정신을 잃었습니다. 방으로 데려가 눕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시오.”
“감사합니다.”
이소절이 백하심을 등에 업고 수습서고에서 나왔다.
그때였다.
백하심이 천천히 깨어났다.
“으으······.”
“정신이 드는가?”
“아, 내가 깜박 졸도했었군. 나는 괜찮으니 내려놓게.”
“정말 괜찮겠나? 안색이 너무 안 좋네.”
“괜찮네. 탈진했을 뿐이네. 나 혼자서 방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게.”
“무슨 소리인가? 어차피 나도 오늘 비급을 볼 만큼 봤으니, 함께 저녁 식사나 하러 가세.”
“벌써 저녁 식사 시간인가?”
“그러하네. 자네 점심도 건너뛰고 오늘 너무 무리했네. 물론 가만히 앉아서 두리번거리기만 했지만 말일세.”
“내가 그랬던가.”
백하심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대만족이었다.
불가능할 것 같았던 십만 권의 독서를 하루도 채 안 되어 달성한 것이다.
다만 내공 소모가 심했다.
‘너무 무리했다. 하지만 이제부터 정리만 하면 되니까 한결 수월할 것이다.’
백하심이 이소절의 부축을 받으며 용봉각 지하식당으로 향했다.
얼마 후 도착한 식당에는 백여 명의 수습무사들이 맛있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백하심과 이소절 두 사람은 한쪽 구석에 있는 탁자에 자리를 잡았다.
배식받은 음식을 먹고 있을 때.
맹찬이 들어왔다.
그는 득의한 표정이었다.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백하심에게 다가갔다.
“백 대주! 조금 전 긴급총회가 열렸었네. 알고 있었나?”
“몰랐습니다.”
백하심이 뜻밖이란 표정을 지었다.
비록 총회 참석권한이 정지된 몸이지만, 그렇다고 상황이 발생하면 어떻게든 조처를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미 새로운 총회가 열려 그 결과가 나온 것 같지 않은가.
“총회에서 새로운 결정이 내려졌습니까?”
“그러하네. 총회 참석자들의 만장일치 의견으로 정마동맹을 파기하기로 했네. 다만 그 시기는 잠시 미루기로 했네. 마교에서 특사단을 보냈다고 하니, 그들의 해명을 들어보고 시원치 않으면 바로 파기가 될 걸세. 원래는 바로 파기하려 했으나, 백리 소저가 강력하게 주장해 그렇게 된 것이지.”
“영웅대회는 예정대로 열립니까?”
“물론이네. 부맹주께서 양보를 하셨네. 정말 도량이 넓은 분이시지.”
“그나마 다행이군요. 그런 사실을 굳이 제게 말씀해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줄을 잘 서라는 말은 하고 싶었네. 백소운 대협은 곧 무림맹주가 되실 분이네. 조만간 정마동맹이 공식적으로 파기되면, 아마도 영웅대회 때 새 맹주 선출과 함께 곧바로 제2차 정마대전이 발발할 것일세. 그때가 되면 자네도 참전해야 하지 않겠나?”
“참전 말입니까?”
“그러하네. 무림대전이 발발하면 수습대는 공격부대로 편성되어 후방지원을 맡게 될 것이네. 공을 세우게 되면 대원들 모두가 정식무사가 될 것이네. 그렇게 알고 그때까지 대원들 관리를 잘하고 있게. 무슨 말인지 알겠나?”
“참고 하겠습니다.”
백하심이 무심히 대답했다.
묻고 싶은 것이 있긴 했으나 나중에 자명선생이나 백리영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맹찬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말했다.
“아, 그 소식도 전해줘야겠군. 이번 총회에서 총군사 자리가 바뀌었네. 자명선생이 자리에서 물러나고 그 자리를 천공도인께서 물려받으셨네.”
“자명선생님은 어디 계십니까?”
“모르네. 총단을 바로 떠난 것으로 알고 있네. 이제 부맹주께 반기를 들면 어떻게 되는지 알겠지?”
“······.”
“후후후! 왜 말이 없나? 아무튼, 그렇게 알고 매사 행동에 조심하도록 하게. 자네의 무공이 생각보다 강한 것 같아 앞으로 잘 지내보자는 뜻에서 하는 말이네. 하지만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반드시 후회하게 될 걸세. 그럼.”
맹찬이 냉소를 한번 지은 후 다른 탁자로 향했다.
이소절이 말했다.
“총군사께서 결국 자리에서 쫓겨나셨군. 하기야 군사를 바꾸는 일은 맹주 대행의 권한이기도 하지. 하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인사권을 행사할 줄이야. 아무래도 지휘부 구성에 큰 변화가 생길 것 같네. 자네는 어떻게 할 건가?”
“······.”
백하심이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더는 미룰 수 없을 것 같구나. 피곤하지만 오늘 밤 부맹주 처소로 잠입해 그의 실체를 밝혀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