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208
“네놈들은 누구냐? 보통 강시들이 아닌 것 같은데······.”
백하심이 강시들을 향해 물었다.
자명선생의 말대로 강시들의 눈빛이 살아있었기 때문이었다.
“후후후! 우리는 악마강시라 한다. 지옥에서 돌아온 전사들이지.”
천여 강시 중 가장 덩치가 큰 강시 한 명이 대답했다.
백하심이 흠칫했다.
혹시나 해서 물어본 질문이었다.
설마 사람처럼 대답할 줄은 몰랐던 것 같았다.
그때였다.
대청 안으로 들어갔던 무림인들이 다시 대문 쪽으로 나왔다.
백하심이 홀로 강시들을 대적하기 위해 장원 밖으로 나간 것을 진하림이 발견하고 그들에게 알린 것이었다.
자명선생, 화백웅, 백리영 등이 놀란 것은 물론이었다.
그와 함께 백하심이 어떻게 강시들을 상대할지 궁금하기도 해 다시 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매화봉쇄진 경계 밖으로는 나가지 않았다.
다만 닫았던 대문을 다시 열었다.
다행히 진법 발동으로 인해 생긴 푸른 안개는 희미해 시야에 방해를 받지는 않았다.
“죽엽객님. 어서 돌아오세요.”
백리영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소리쳤다.
그녀는 아까 백하심에게 많은 활약을 기대한다고 했던 말이 마음에 걸린 것 같았다.
화백웅 역시 만류했다.
“어서 돌아오시오. 반시진은 견딜 수 있을 것이니, 함께 대책을 세우도록 합시다.”
하지만 백하심은 요지부동이었다.
자명선생이 대표 악마강시에게 물었다.
“네놈들은 마치 지옥맹의 괴수들 같구나. 아까 사람의 말을 한 놈이 바로 너야?”
“그렇다. 나는 우리 이십만 악마강시 중 천 명을 이끄는 천강시다. 우리 악마강시는 이백 명의 천강시들이 이끌고 있지. 우리를 보낸 분은 바로 우리 주군이신 귀혈공자님이시다. 악마강시는 우리 귀혈문의 비밀병기라 할 수 있지. 어떻게 하겠느냐? 지금이라도 투항하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네놈은 강시가 아니구나. 강시부대를 조종하는 놈인 것 같군. 네놈만 죽이면 강시들은 모두 쓸모가 없어질 것이다.”
자명선생이 소리쳤다.
그의 말에 화백웅이 화산파 무사 십여 명으로 하여금 백하심을 돕도록 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화산파 대제자 정기탁이 십여 무사들을 데리고 대문 밖으로 나갔다.
내공을 끌어올리고 있던 백하심은 고개를 조금 끄덕여주었다.
하지만 그들의 가세가 그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니었다.
한 번의 공격으로 강시들을 몰살시키려 했던 그였기 때문이었다.
그 과정에 오히려 화산파 무사들의 안전 때문에 집중이 어려울 수 있었다.
정기탁이 곧바로 장력을 날렸다.
화산파 무사 십여 명 역시 가세했다.
화백웅이 자신들을 보낸 것은 강시들의 무공수준을 정확하게 알아보기 위해서란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군웅들 상당수는 강시들과 한번 싸워보지도 않고 대청 안으로 돌아간 것에 대해 불만이 있었다.
물론 경계를 섰던 화산파 무사들의 처참한 시신을 보긴 했지만, 직접 목격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던 차에 백하심이 용기 있게 나섰고, 군중심리가 발동해 모두 대문까지 나왔던 것이다.
쏴아아.
정기탁 등이 날린 장력들이 악마강시들에게 날아가 그대로 적중했다.
예상과 달리 악마강시들은 전혀 피하지 않았다.
퍼퍼퍼펑.
가죽 터지는 소리와 함께 악마강시들의 신형이 가볍게 흔들렸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오히려 그들의 포악성을 일깨워줬는지 강시들이 장풍을 퍼부었다.
정기탁 등이 장풍으로 대항했다. 하지만 장력이 부딪히는 즉시 아예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을 느꼈다.
화산파 무사들의 몸이 찢겨나가기 직전, 백하심이 우수를 흔들었다.
순간, 압력이 사라지며 화산파 무사들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백하심이 아니었다면 죽은 목숨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 광경은 장원 대문 안쪽에 있던 군웅들이 모두 목격했다.
자명선생이 소리쳤다.
“내가 뭐라고 했소? 저놈들은 특수 강시들이라 우리가 상대할 수 없소. 화 장문인! 어서 물러나라고 하십시오. 대책을 세워 조종자를 제거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철수하라.”
“네.”
정기탁 등이 대답과 함께 다시 장원 안으로 돌아왔다.
강시들이 다시 장력을 퍼부었으나, 이번에도 백하심이 우수를 흔들어 막아주었다.
콰콰콰쾅.
엄청난 폭발음이 일어났다.
하지만 백하심은 태연히 서 있었다.
충격을 그다지 받지 않은 것 같았다.
다만 강시들의 공격은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계획대로 한 번에 몰살키지 못하면 큰 위험에 부딪힐 것이 분명해 보였다.
“진 소저. 죽엽객이란 분의 무공이 정말 대단한 것 같소. 혼자서 놈들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으니 믿기 어렵구려.”
자명선생이 감탄했다.
진하림이 말했다.
“저분의 무공은 대단하니 믿고 기다려도 될 거예요.”
“그래도 우리가 도와야 하지 않겠어요? 공격하는 강시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어요.”
백리영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진하림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에요. 오히려 저분에게 짐이 될 뿐이에요.”
“진 소저 말대로 좀 더 두고 봅시다. 한데 정말 저놈들이 귀혈공자가 보낸 놈들일까요?”
화백웅이 물었다.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아마도 부맹주 측에서 보낸 놈들일 겁니다.”
자명선생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백하심과 악마강시들의 장력 대결은 계속되고 있었다.
어느새 품자 형으로 백하심을 포위한 강시들은 무지막지한 장력을 퍼부었다. 백하심은 같은 장력으로 이를 막았다.
한데 양측의 공격이 군형을 이루고 있었다.
백하심은 미동도 없었고, 강시들 역시 건재했다.
하지만 지켜보는 사람들은 애가 타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 백하심이 강시들의 공격을 막아내는 것에만 급급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강시들의 우두머리인 천강시가 소리쳤다.
“강시진법을 펼쳐라. 내가 직접 놈을 제거할 것이다.”
천강시가 맨 앞으로 나왔다.
순간 강시들이 앞이 뾰족한 세모꼴로 대형을 바꾸더니 일제히 두 손을 뻗었다.
순간, 강시들의 장심에서 붉은 기운이 뿜어져 나와 천강시의 등으로 흡수되었다.
천강시가 등 뒤 명문혈을 통해 천여 강시의 힘을 자신에게 집중시킨 것이었다.
이렇게 강시 한 명에게 집중하면 본래 공력의 두 배 이상의 위력이 나타나게 되어 있었다.
백하심이 눈을 빛냈다.
‘기다린 보람이 있구나. 이제 천강시 저자만 죽이면, 나머지 강시들 역시 무력화가 된다.’
그랬다.
그가 기다린 것은 지금과 같은 때였다.
한 번에 강시들을 모두 제거하게 되면 그 후유증은 매우 클 것이고, 자칫하면 백하심 자신이 당할 우려가 컸다.
하지만 강시들 스스로가 한 몸이 되어 준다면 사정은 달랐다.
비록 강시들의 위력이 두 배 이상으로 커지지만, 백하심의 무형태극장 역시 집중력을 가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천강시 저자는 진짜 강시가 아니다. 혹시 특별호법 중 한 명이 아닐까. 특별호법이 아니라도 비슷한 부류일 것이다. 강시들을 자신의 수족처럼 부릴 수 있도록 특수대법으로 연결된 것 같구나. 지금이 최적의 연결 상태라 할 수 있겠군.’
백하심이 내공을 다시 끌어올렸다.
황급탑의 기운을 흡수한 그의 내공은 보통 내공이 아니었다.
무형공력의 성질을 지니게 된 것이다.
‘내공이면서 내공이 아니다. 다만 그 이름이 내공일 뿐이지. 내공 역시 공(空)이니까.’
백하심이 무형태극장을 펼칠 준비를 하면서 마음을 편히 했다.
그때였다.
천여 악마강시들의 힘을 모두 모은 천강시가 두 손을 앞으로 뻗었다.
쏴아아아.
붉은 강기 하나가 천천히 백하심에게 날아갔다.
생각보다 평범해 보이는 장력이었다.
하지만 이를 보고 있던 군웅들은 모두 숨이 막히는 느낌을 받았다.
거대한 해일 앞에 홀로 서 있는 초가집처럼 금세 무너질 것 같았다.
‘인간의 힘이 아니다. 그들이 말하던 마신의 힘인가.’
백하심이 흠칫했다.
순간, 자신감이 조금 엷어졌다.
마음의 무공이라 할 수 있는 무형검에 접어든 그였다.
하지만 아직 제대로 실력을 검증할 기회가 없었다.
자신의 정체 역시 아직은 오리무중이었다.
무명객이 바로 자신이었다는 사실만 이제 겨우 알았을 뿐, 무명객에 대해 아는 것 역시 거의 없었다.
자신감이 사라지니 곧 절망이 찾아왔다.
애초에 혼자서 나설 것이 아니었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좀 더 정비를 한 후에 나서도 되는 것인데, 내가 너무 서둘렀구나. 이렇게 죽는 것인가.’
천강시가 날린 장력은 지척까지 와 있었다.
하지만 백하심은 아직 반격을 못 하고 있었다.
이미 패배를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패배할 것이라면 굳이 반격을 하고 싶지 않았다.
무의미한 반격을 하느니 그냥 이대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고 싶었다.
그야말로 자포자기(自暴自棄)의 상태가 된 것이었다.
백하심은 그런 마음이 심마(心魔)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분명 악마강시들의 공격에는 그런 심마를 일으키는 기이한 힘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악마력의 특징 중 하나였다.
그래서 심한 경우에는 마음만으로 상대를 죽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백하심이 눈을 감았다.
손은 여전히 뻗고 있는 상태.
이제 자신 역시 무형태극장을 날리면 되었다.
그 결과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먼저 심마를 없애야 했다.
이미 악마강시들과의 장력 대결에서 악마력의 기운에 당한 그의 마음이 치유되어야 했다.
하지만 그 방법을 몰랐다.
‘어쩔 수 없단 말인가. 이번 한 번만 이겨내면 다음부터는 당하지 않을 것 같은데······.’
백하심이 안타까워했다.
심마에 빠져 무기력하게 당하고 말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행동이 되지 않았다.
마치 마혈에 찍혀 신체가 마비된 것처럼 그의 정신 역시 마비가 된 것이었다.
그렇게 천강시의 장력이 그의 머리를 부수기 직전, 그의 눈이 다시 떠졌다.
동시에 두 손에서 무형태극장이 발출되었다.
꽈아앙.
지축이 흔들리는 폭발음과 함께 비명 하나가 터져 나왔다.
바로 천강시의 것이었다.
“크윽······ 이럴 수가. 분명 심마에 당했는데······.”
천강시가 불신의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몸이 쩍쩍 갈라지며 산산조각이 났기 때문이었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몸 전체가 폭발하며 즉사했다.
동시에 그에게 힘을 집중했던 천여 구의 악마강시들이 썩은 짚단처럼 쓰러졌다.
힘을 잃은 듯 쓰러진 채 부들부들 몸을 떨고 있었다.
도검불침이었던 놈들의 몸 역시 광채를 잃고 피부가 벗겨졌다.
하지만 숨은 끊어지지 않았다.
순간, 뒤에서 보고 있던 군웅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와아아.
자명선생이 소리쳤다.
“모두 나가 강시들의 목을 베시오. 놈들은 지금 항거불능 상태이니, 서둘러야 할 것이오.”
와아아.
삼백여 군웅들이 일제히 장원에서 나와 강시들의 목을 베기 시작했다.
댕강, 댕강.
썩은 무를 자르듯 거침이 없었다.
목이 잘린 강시들은 펑펑, 소리를 내며 전신이 터져 즉사하고 말았다.
그 가운데 백하심은 겨우 신형을 바로 잡을 수 있었다.
너무 무리한 탓이었다.
얼마 후 강시들이 모두 제거되었을 때.
긴장이 풀렸는지 그가 다시 비틀거렸다.
진하림이 그런 그를 부축했다.
“괜찮으세요? 안으로 들어가 쉬도록 하세요.”
“고맙소.”
백하심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진하림의 목소리가 매우 편하게 들렸다.
‘이제 조금 쉬어도 되겠지.’
백하심이 진하림의 품속으로 쓰러지며 정신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