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209
“죽엽객님은 아직 그대론가요?”
“네. 너무 무리하신 것 같아요. 하지만 맥은 정상이니 때가 되면 일어나실 거예요.”
진하림의 대답에 백리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악마강시들이 공격을 가해왔다가 백하심에게 전멸을 당한 지도 벌써 한 시진이 흘렀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백하심이 의식을 잃는 바람에 분위기가 다시 무거워졌다.
무엇보다 아직 귀혈공자가 나타나지 않은 점이 문제였다.
물론 그들이 기다리고 있는 귀혈공자는 가짜로 추정되고 있는 상황.
하지만 아직 많은 사람이 그 점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어 확실한 증명이 필요했다.
“귀혈공자가 반드시 나타날 거예요. 죽엽객님이 의식을 잃고 있는 지금 그자가 나타나면 어떻게 대책을 세워야 할지 걱정되는군요.”
백리영이 안색을 굳히며 대청 안에 모인 삼백여 무림인들을 쳐다봤다.
그들은 다시 대청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자명선생이 물었다.
“매화봉쇄진은 이제 쓸모가 없게 된 겁니까?”
“네. 한번 발동되면 사흘이 지나야 재가동이 됩니다.”
화산파 장문인 화백웅이 대답했다.
형산파 장문인 정자가 말했다.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총단으로 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귀혈공자가 나타나고자 했으면 아까 강시들과 함께 왔을 겁니다. 기관도 파괴되고 보호진도 없는 지금 다시 강적들이 들이닥친다면 화를 피하기 힘들 겁니다.”
“정 장문인의 말씀도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부맹주 측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확실한 증거가 필요합니다. 공개질의를 통해 부맹주를 압박하더라도 그게 꼭 필요합니다. 게다가 아직 죽엽객님이 깨어나지 못하고 계시니 넉넉잡고 내일까지 기다렸으면 합니다. 총단으로 가는 문제는 그때 가서 다시 논의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화백웅이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다.
백리영과 자명선생 역시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시했다.
정자가 말했다.
“하기야 죽엽객 그분이 깨어나는 게 급선무일 것 같군요. 지금 보면 부맹주와 겨룰 수 있는 유일한 고수인 것 같으니까요. 한데 왜 그런 고수를 아직 모르고 있었을까요? 진 소저. 혹시 죽엽객께서 다른 신분을 숨기고 있었던 게 아니오?”
“무슨 말씀인가요?”
진하림이 얼굴을 조금 붉혔다.
유덕, 정기, 막총 세 사람은 지금 내원에서 백하심을 돌보고 있었다.
그녀는 연락을 받고 백하심의 상태를 알리기 위해 온 것이었다.
“죽엽객님에게 다른 신분이 있지 않은가 물어보는 것이오.”
“특별히 알아야 할 이유라도 있나요?”
“물론이오. 우리는 지금 구심점이 필요하오. 부맹주 측과 맞서기 위해서 우리도 절대고수를 내세워야 다른 무림인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말이오. 말씀을 들어보니까 다른 신분이 있는 것 같이 들리는데, 지금 말씀해주시겠소?”
“그게······.”
진하림이 갈등했다.
백하심이 자신이 무명객임을 밝히지 말라고 했지만, 현재 구심점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 말 못할 이유가 없어. 무명객이란 사실이 밝혀지면,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아 대세를 형성할 수 있을 거야.’
진하림이 결심을 굳히고 말하려는 바로 그때였다.
경계 무사 한 명이 급히 대청 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이냐? 또 적이 침입했느냐?”
“그게 아니고, 마교 특사단이 왔습니다.”
“마교 특사단이 이곳에?”
화백웅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자명선생이 급히 말했다.
“너무 놀라지 마십시오. 특사단에 기별을 전한 것은 접니다. 한데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군요. 고수들이 필요한 시기에 잘된 일입니다. 어서 나가보지요.”
자명선생이 서둘러 대문 쪽으로 가자, 나머지 사람들도 뒤따랐다.
다들 흥분과 기대감이 어린 표정이었다.
그들의 추측대로 백리천을 죽인 귀혈공자가 가짜라면 그 진위 여부를 누구보다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바로 마교 무사들이었다.
마교 특사단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했다.
특사단은 아무리 많아 봐야 삼백여 명 정도가 최대였다. 한데 마교 특사단은 자그마치 일만이었다.
게다가 마교의 정예 무사 일만 명을 이끌고 온 대표는 놀랍게도 마교 태상교주 검마왕이었다.그의 딸이자 마교 성녀인 임소혜가 대표라고 알고 있었던 무림맹 사람들이 놀란 것은 물론이었다.
물론 임소혜 역시 특사단에 포함되어 있었다.
“검마왕께서 직접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자명선생이 놀랍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하지만 그 가운데 반가운 기색이 역력했다.
검마왕이 껄껄 웃었다.
“하하하. 자명선생. 오랜만이오. 내 어찌 내 딸을 사지로 혼자 보낼 수 있겠소? 무림맹에서 지금 동맹을 파기할 움직임을 보이고, 실종된 본교의 교주를 모함하고 있는 마당에 부득이 나 역시 오지 않을 수 없었소. 다만 내가 모습을 드러낸 것은 조금 전이었소. 본교 교주를 음해하고 있는 세력에게 대처할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 일반무사로 역용을 해 왔던 것이오. 하지만 여러분이 진실을 파헤치려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본인 역시 정체를 드러내기로 한 것이오.”
“잘 오셨습니다. 안 그래도 고수분들이 필요했습니다. 일단 들어오시지요.”
자명선생이 대청 안으로 들어갈 것을 권유했다.
“산장 안에 우리 무사들이 머물 곳이 있겠소?”
“네. 대연무장이 무척 넓어 삼만 명까지 수용할 수 있습니다. 막사는 가져오셨겠지요?”
“하하하. 물론이오.”
검마왕이 껄껄 웃으며 장원 안으로 무사들을 들여보냈다.
그리고 자신과 임소혜 등 마교의 지휘부 고수 백여 명은 자명선생 등을 따라 대청으로 들어갔다.
이제 그곳에서 당금 상황에 대해 서로 의논을 나누고 적절한 대책을 수립하게 될 것이었다.
한편 진하림은 안색을 굳히고 있었다.
역용을 풀고 본모습을 보이고 있어 그녀와 유덕, 정기, 막총 네 사람을 마교 측에서 알아보지는 못할 것이었다.
다만 그녀가 걱정하고 있는 것은 백하심이었다.
‘아무래도 무명객님의 정체를 밝히는 것은 보류해야겠다. 검마왕이 무명객에게 당한 수모를 갚으려 할 가능성이 크니, 내 마음대로 밝혀서는 안 될 것이다. 그 문제는 무명객님이 스스로 알아서 하실 일이다. 내가 하마터면 실수할 뻔했구나.’
진하림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면서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백하심이 누워있는 방으로 향했다.
* * *
백하심이 깨어난 것은 마교 특사단이 오고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진하림이 소식을 전하러 방으로 왔는데, 마침 그가 깨어난 것이었다.
“으으······ 이곳은?”
백하심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유덕, 정기, 막총, 진하림 네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진하림이 빠르게 설명을 해줬다.
특히 조금 전 검마왕을 비롯한 마교 특사단이 온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그러면서 자신이 백하심이 실은 무명객이라는 사실을 말할 뻔했다는 이야기도 했다.
“죄송해요. 제가 자칫 실수를 할 뻔했어요.”
“아니오. 무명객임을 밝혔어도 장점이 있었을 것이오. 하지만 검마왕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르니, 그 문제는 본인에게 맡겨줬으면 하오.”
“알겠어요.”
진하림이 얼굴을 붉혔다.
유덕이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대청으로 가보시겠습니까?”
“네.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요.”
백하심이 상체를 세워 몸 상태를 점검했다.
한데 내공을 전혀 사용할 수 없는 게 아닌가.
백하심의 안색이 굳어졌다.
하지만 원래 그의 내공은 외부에서 느낄 수 없는 특수한 것이라 표가 나지는 않았다.
“왜 그러시나요?”
진하림의 물음에 백하심이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백하심이 다시 운기를 시도하며 몸 상태를 살폈다.
그 결과 내공을 전혀 사용할 수 없는 상황임을 확실히 깨달았다.
그 외 이상은 없었다.
다만 내공을 사용할 수 없게 되어 극히 평범한 사람이 되었을 뿐이었다.
순간 백하심이 갈등했다.
바로 대청으로 가볼 것인지, 아니면 홀로 운기를 하면서 내공을 되찾을 것인가의 여부였다.
‘내공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 다만 심마에 당한 후유증으로 모든 기운이 세맥으로 숨어버렸다. 완전한 잠복 상태가 된 것이다. 내가 다시 깨달음을 얻어 안정감을 보이지 않으면 그 기운들을 다시 이끌어내기 힘들겠구나.’
백하심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악마강시들을 상대할 때를 떠올렸다.
당시 그는 자포자기 심정이 되어 출수 자체가 어려웠다.
말로만 듣던 심마의 무서움을 몸소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그는 출수했고, 그 결과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문제는 순간적인 깨달음으로 위기를 벗어났던 당시 상황이 지속적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깨달음 자체도 뭔가 특별한 게 있는 게 아니었다.
단지 막다른 길목에 몰린 그가 무의식적으로 어떤 한계를 돌파했을 뿐이었다.
따라서 그것은 깨달음이라기보다 일시적인 무심(無心) 상태였다.
‘기억의 불완전함 때문에 그랬던 것 같군. 위기에 몰리자 내가 원래 갖고 있던 능력이 발휘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위기가 지나가자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 것이지. 문제는 돌아갈 때 그나마 발현되었던 내 모든 힘을 데리고 숨어버렸다는 점이다.’
백하심의 안색이 굳어졌다.
세맥에 힘이 잠복되었다고 해도 그가 그것을 끌어낼 방법은 지금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무형검 자체가 내공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물론 그의 내공은 특수한 것이라 일반적인 내공과 무형공력이 합쳐져 있는 상태였다.
전체적으로 무형공력이라 부를 수 있지만, 아무래도 일반적인 내공의 힘도 무시할 수 없었다.
백하심이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은 일반 내공이 아니라 순수 무형공력이었다.
‘지금이라도 깨달음으로 순수 무형공력을 끌어낼 수만 있다면, 일반 내공 역시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될 것이다. 그 열쇠는 바로 무심에 있지. 천하만물이 유(有)에서 나오지만, 그 유가 바로 무(無)에서 나오니까. 무는 모든 것의 근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마음을 비우는 것이 해답인가.’
백하심이 순간적으로 여러 생각을 했다.
하지만 단시간 내에 치유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는 최대한 단 한 번의 깨달음으로 모든 것을 복구하고 싶어 했다.
일반내공과 순수 무형공력은 물론이고, 잃어버렸던 기억까지.
모두 한 번에 회복할 수 있는 깨달음을 원했다.
황금탑의 기운을 흡수한 그로서는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황금탑의 기운이 모든 힘을 하나로 연결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한데 이런 시기에 대청에 가보려니 조금 주저가 되었다.
‘분명 무공이 필요한 상황이 있을 것이다. 지금 몸 상태로 적절히 대처할 수 있을까. 아니다. 일단 부딪혀 보자.’
마음을 정리한 그가 방문 밖을 나섰다.
유덕, 정기 등이 조용히 뒤따랐다.
바로 그때였다.
대문 쪽에서 다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더니 무사들이 황급히 뛰어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진하림이 급히 그 무사 중 한 명을 불러 이유를 물어봤다.
“또 무슨 일이 생긴 건가요?”
“네. 무림맹 무사들이 대거 몰려오고 있습니다. 정찰 무사에 따르면 최소한 오만은 넘어 보인다고 합니다.”
“아, 그럼 부맹주가 직접 무사들을 이끌고 오는 건가요?”
“네. 부맹주를 비롯해 무림맹 지휘부 고수들 대부분이 직접 이곳으로 오고 있다는 보고입니다.”
“그렇군요. 알겠어요.”
진하림이 말을 한 후 백하심 등을 쳐다봤다.
백하심이 담담히 말했다.
“어서 대청으로 가봅시다.”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