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211
회복운공을 위해 백하심에게 주어진 한 시진은 금세 지나갔다.
백하심은 가부좌를 한 채 조용히 묵상에 잠겨 있었다.
그 어떤 변화도 없었다.
지켜보고 있던 유덕, 정기, 막총 진하람 네 사람도 초조한 표정이었다.
이제 곧 지옥검선이 이끄는 오만 무림맹 무사들이 당도할 시기.
백하심도 서서히 대청으로 다시 돌아갈 준비를 해야 했다.
하지만 백하심은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묵묵부답이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백하심이 눈을 떴다.
“괜찮으세요?”
진하림이 급히 물었다.
백하심이 대답 대신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완전히 실패했다. 서두르는 바람에 오히려 내상을 입고 말았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린다면 사기에 영향을 미칠 터. 최후 수단으로 잠력을 모두 발동해 한 번의 공격을 가할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현재는 그것을 기대해볼 수밖에 없다.’
백하심이 마음을 다스리며 계획을 세웠다.
그것은 바로 잠력 발동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그야말로 최후의 수단이었다. 실제 잠력 발동이 될지 안 될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이런 상태에서 잠력을 발동하면 그 후유증이 엄청날 것이 분명했다.
최악의 경우에는 사망에 이를 가능성도 매우 컸다.
‘불사진법과 매화봉쇄진이 위력을 발휘하기를 바랄 수밖에 없겠군. 하루 이틀 정도 더 시간이 주어지면 혹시 반전이 있을 수도 있을 테니까. 하지만 더는 지금처럼 조용히 내 시간을 가지기는 힘들 것이다.’
백하심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였다.
화산파 무사 한 명이 급히 방 안으로 들어왔다.
“부맹주가 이끄는 오만 무림맹 무사들이 장원 앞에 도착했습니다.”
“불사진법은 가동이 되었습니까?”
“네. 다행히 진법으로 진입을 막고 있습니다. 어서 가시지요.”
“네.”
백하심이 담담히 말하며 무사를 따라갔다.
유덕, 정기 등도 급히 뒤따랐다.
* * *
백하심과 유덕 등이 대청 쪽으로 가보니, 벌써 자명선생과 검마왕 등 장원에 있던 무림인들이 모두 대문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백하심은 먼저 산장 주위에 펼쳐져 있는 붉은 안개에 주목했다.
바로 불사진법이었다.
‘저것이 바로 불사진법이로군. 검마왕의 장담대로 매우 강력한 진이다. 한데 저 기운들이 너무 낯익구나. 마교의 흡수대법을 내가 알고 있는 것처럼 설마 불사신공 마저 알고 있는 것인가.’
백하심이 안색을 굳혔다.
황금장원에서 황금탑 기운을 흡수할 때 자신이 흡수대법을 알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이후 여러 마공들이 계속 생각났었다.
한데 불사진법을 보니 불사신공까지 떠오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여러 마공을 익힌 것은 확실하다. 실제 상당한 마공들을 기억해냈으니까. 하지만 불사신공까지 알고 있다는 것은 의외로구나. 물론 마공 말고 여러 정파 무공들도 알고 있긴 하지만, 내 과거 신분이 마교 쪽과 관련이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백하심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이미 무형검의 경지를 되찾으면서 마공 습득에 대한 거부감을 떨쳐낸 지 오래였다.
무형검은 정사마 무공을 초월하는 것이었기에, 그런 식으로 마음을 다스릴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몸 상태가 너무 좋지 못했다.
잠력 발동에 한 가닥 기대를 걸고 있지 않았다면, 오직 절망만이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런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람들은 잔뜩 기대하고 있는 표정이었다.
자명선생이 백하심을 보고 급히 물었다.
“죽엽객님. 어떻게 되었습니까? 회복하셨습니까?”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제 하늘에 맡겨야 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
자명선생이 영문을 몰라 했으나, 더는 묻지 않았다.
자칫 잘못하면 무사들의 사기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아직 시간은 있었다.
자신이 보기에도 불사진법은 완벽했다.
이제 장원을 포위하고 있는 무림맹 무사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만 하면 의외로 쉽게 상황이 풀릴 수도 있었다.
“일단 증언을 해주십시오. 진 소저를 비롯해 네 분도 수고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백하심, 진하림 등이 자명선생을 따라 대문 밖으로 나갔다.
담장 밖 십장 정도 거리까지는 불사진법의 위력이 미치고 있었기 때문에, 담벼락 밑에 원래 산장에 있었던 삼백 무사들이 모두 나와 있었다.
마교의 일만 무사들은 담장 위에 배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공간이 협소해 그중 천여 명 정도만 모습을 보였다.
물론 나머지 구천 명의 마교 무사들도 장원 안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전면전은 절대 안 된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당할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대문 밖으로 나오니, 자욱한 먼지와 함께 오만 무림맹 무사들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얼마 후 삼십 장 정도 되는 거리에서 무림맹 무사들의 진군이 멈췄다.
그들 앞에는 천공도인과 지옥검선 두 사람을 비롯해 무림맹 지휘부 고수들의 모습이 보였다.
화백웅이 짐짓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부맹주님과 총군사께서 어인 일이십니까? 이렇게 많은 무사들을 대동하고 저를 마중 나오신 겁니까?”
“지금 그 이유를 몰라서 묻는 것이오? 마교와 결탁해 반역을 꾀하는 것이 아니라면 즉시 이쪽으로 오시오.”
천공도인이 소리쳤다.
수레에 타고 있는 지옥검선은 옆에서 그저 미소만 짓고 있었다.
백하심이 보니 지옥검선 뒤에는 삼백 명에 육박한 노인들이 무심히 서 있었다.
한눈에 봐도 그들이 특별호법들임을 알 수 있었다.
백하심이 황금장원 인근에서 처단한 특별호법들과 기운이 매우 유사했다.
‘저번에 내가 제거한 자들보다 적어도 두 배 이상 강하다. 그 가운데 십여 명은 지옥검선과도 그 무공이 비슷한 것 같구나. 이거 큰일 났군. 잠력을 발동해 지옥검선을 처치해도 저들이 건재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백하심이 적잖이 당황했다.
한 번의 공격으로 모두를 제거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무림맹 오만 무사들의 마음을 돌린다면 상황을 바꿀 수도 있었다.
화백웅의 반론이 이어졌다.
“여기 계신 분은 마교 특사단분들입니다. 우연히 이곳에서 만나게 되었지요. 마교의 검마왕 태상교주님이 직접 특사단을 이끌고 오셨지요.”
“하하하. 내가 바로 검마왕이오. 아직 본교 고수들을 모르는 분들이 있는 모양이니, 간단히 소개를 해주겠소.”
검마왕이 비릿한 미소를 지은 후 임소혜와 괴추노인 등 마교 지휘부 고수들을 소개해줬다.
하지만 지옥검선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표정의 동요도 거의 없었다.
그 점이 검마왕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그대의 명성은 익히 들었소만, 이렇게 거만한 사람인지는 몰랐소. 역시 네놈은 가짜 백소운이었군. 네놈이 실은 지옥맹주 지옥검선이란 사실을 모를 줄 알았느냐?”
검마왕의 다소 이른 폭로에 무림맹 오만 무사들이 술렁였다.
반면 마교 무사들은 미리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비교적 침착했다.
천공도인이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기껏 음모를 꾸민다는 것이 그런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이오? 검마왕 그대는 귀혈공자와 손잡고 본맹을 무너뜨리려 했소. 무엇보다 귀혈공자가 본맹 태상맹주님을 시해한 사실은 너무나 명백하오. 백리 소저! 어서 검마왕을 죽이시오. 부친의 원수를 갚지 않을 생각이오?”
“제 원수는 바로 지옥검선 저자예요. 당신 역시 지옥맹 고수이지요. 그리고 함께 있는 노인들은 바로 그 특별호법 같은데, 역시 지옥맹 고수들이지요.”
“무슨 근거로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이오? 소저는 지금 마교 놈들에게 속고 있는 것이오. 놈들이 일만 정예 병력을 대동하고 이곳까지 온 이유가 무엇이겠소? 특사단이란 명목 하에 본맹을 공격하기 위함이 아니겠소?”
“우리게는 증인들이 있어요. 그렇게 당당하면 시험에 응하면 될 것이 아닌가요?”
백리영이 고개를 돌려 유덕, 정기, 막총, 진하림 네 사람을 쳐다봤다.
일단 그들 네 명으로 하여금 지옥검선에게 질문해 가짜임을 밝힐 계획이었다.
물론 가장 강력한 증언을 한 사람은 백하심이었다. 하지만 지옥검선 측에서 부인하면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반면 유덕, 정기 등은 달랐다.
“저들은?”
천공도인이 인상을 찌푸렸다.
진하림이 말했다.
“우리는 백소운 부맹주님과 마찬가지로 하심무인 출신이에요. 부맹주님과는 오래도록 함께 지내왔으니, 가짜가 아니라면 우리 질문에 올바른 대답을 해줄 거예요. 반대로 똑바로 대답을 못하면 그것은 자신이 가짜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지요. 어떻게 하겠어요? 우리 질문을 받는 것 자체를 거부하는 것도 마찬가지 결과라는 점을 명심하세요.”
“요망한 계집! 부맹주님! 모두 한통속입니다. 설사 진심이라 해도 마교의 특수대법에 당해 제 정신이 아닌 것 같습니다. 어떤 대답을 해도 틀렸다고 할 것이니, 어서 공격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비록 불사진법이 가로막고 있으나 특별호법들이 쉽게 파훼할 수 있을 겁니다.”
천공도인이 지옥검선의 결단을 촉구했다.
지옥검선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니오. 내가 당당한데 무엇을 두려워하겠소. 얼마든지 질문을 하라고 하시오. 하지만 무작정 시간을 끌 수 없으니 질문은 한 가지만 받겠소.”
“으음, 알겠습니다. 들었느냐? 너희가 하심무인 출신임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보니 너희 얼굴을 아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 것 같으니 말이다. 하지만 너희 역시 마교 측에 세뇌를 당하고 있다. 일단 질문을 한 가지 해 보거라. 부맹주께서 일시 너희 상태를 올바르게 회복시켜 줄 것이니, 대답이 맞으면 맞는다고 확인해주길 바란다.”
천공도인의 말에 이제 모든 사람의 시선은 진하림 등에게 쏠렸다.
단 하나의 질문만 허용되었다.
“정 아저씨가 하세요.”
진하림이 정기에게 질문권을 넘겼다.
유덕, 막총 두 사람 역시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정기가 비장한 표정으로 한 걸음 앞으로 나갔다.
이미 한 가지 질문을 준비하고 있었기에 거리낌이 없었다.
“저는 정기라고 합니다. 운이를 갓난아기 때부터 키워왔지요.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제 생일이 언제인지 말해보십시오. 매년 제 생일날 운이는 저에게 미역국을 끓여주며 축하를 해주었지요. 어서 말해보십시오.”
정기의 말에 지옥검선이 그의 눈을 쳐다봤다.
정기가 이를 피하지 않고 마주 본 순간, 머리가 텅 비는 느낌을 받았다.
지옥검선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정 아저씨. 왜 이러십니까? 아저씨께서는 태어난 날짜를 모른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제 말이 틀렸습니까?”
“아!”
정기가 탄식했다.
그러면서 비틀거렸다.
“왜 그러세요? 저자가 한 말이 사실인가요?”
“그렇다.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았는지 모르겠구나. 하지만 나는 확신한다. 저자는 절대 소운이가 아니다.”
정기가 소리쳤다.
천공도인이 말했다.
“분명 본인 입으로 대답이 맞다고 했으니 그걸로 끝난 것이오. 부맹주께서는 네 분의 안전을 무척 염려하고 계시오. 자칫 검마왕 저자가 인질로 삼을까봐 일부러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아시오? 이제 증명이 되었으니 나머지 분들도 어서 이쪽으로 오시오. 그렇지 않고 계속 마교 놈들과 함께 있으면 반역죄로 다스릴 수밖에 없소이다.”
“흥! 증인은 저분들만이 있는 것이 아니에요.”
임소혜가 소리쳤다.
보다 못한 그녀가 나선 것이다.
“마녀로구나. 또 무슨 억측을 하려는 것이냐?”
“저자가 지옥검선이란 사실을 증명해줄 분이 있다는 말이다. 직접 보고 들었으니 확실할 것이다. 죽엽객님. 어서 말씀해주세요.”
“알겠소이다.”
백하심이 천천히 앞으로 나왔다.
전면전을 막기 위해서는 자신이 나설 도리밖에 없었다.
“본인은 죽엽객이라 하오. 지금부터 내가 보고 들은 바를 이야기하겠소.”
백하심이 지존각에서 지옥검선과 천공도인이 나눴던 이야기를 했다.
산장에 있던 사람들에게 한 것과 그 내용이 같았다.
무림맹 무사들이 동요한 것은 물론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지옥검선은 태연했다.
천공도인이 말했다.
“하하하.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일방적인 이야기라 대꾸할 가치도 없지만, 무엇보다 부맹주님과 나 두 사람의 이목을 숨기고 대화를 엿들을 능력이 있는지 모르겠군.”
“모르는 소리! 이분 죽엽객님은 혼자서 악마강시 천여 구를 해치운 분이시다.”
진하림이 다시 소리쳤다.
지옥검선의 안색이 처음으로 조금 굳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