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214
“죽엽객! 죽기 전에 남길 말이 있으면 해라.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말이 많구려. 말이 많은 자가 이기는 경우는 드문 법이오.”
백하심이 무형태극장을 펼치기 위해 두 손을 들었다.
뒷일은 생각하지 않고 이번 한 수에 반드시 지옥검선을 죽일 작정을 한 그였다.
그 기세는 가공했다.
뭔가 위압적인 기운이 흘러서가 아니라 조용히 상대를 제압하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이것이 바로 지옥검선이 섣불리 출수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내상이 깊어 보이기에 도전을 받아들였는데, 놈이 예상대로 잠력을 발동했구나. 최종 승리는 내가 거두겠지만 이렇게 되면 나 역시 내상을 입는 것을 피하기 힘들다. 무서운 놈. 마치 이전의 귀혈공자를 보는 것 같구나.’
지옥검선이 안색을 굳혔다.
눈치가 빠른 천공도인이 급히 말했다.
“부맹주님. 어찌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쓰려 하십니까? 놈은 특별호법들로도 충분히 제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대결을 받아들였소. 신의를 지켜야 하지 않겠소?”
“마교와 결탁해 무림 질서를 어지럽히는 저런 가증스러운 놈과 무슨 신의를 지킨단 말씀입니까? 부맹주께서는 지옥맹의 배후인 지옥악마신과 겨루기 위해 힘을 아끼셔야 합니다. 무림을 위해 잠시 물러나주십시오.”
“으음, 총군사가 그렇게 말하니 어쩔 수 없구려.”
지옥검선이 뒤로 물러났다.
신형을 아예 돌려 등을 보이는 바람에 백하심은 선뜻 출수하지 못했다.
작전이 어긋난 것이었다.
하지만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원래는 은자림 고수들에게 특별호법들을 맡기려 했으나, 아무래도 불안했었다.
‘이렇게 된 마당에 특별호법들까지 모두 제거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군. 문제는 잠력을 분산하여 그 힘을 아끼는 것인데, 잘될지 모르겠구나.’
백하심이 내공을 분산해 열 손가락, 즉 십지에 나눴다.
무형태극지로 일단 특별호법들부터 제거하려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특별호법 스무 명 정도가 앞으로 나왔다.
자명선생, 백리영 등이 항의하려 했으나 백하심이 손을 저어 그들을 제지했다.
천공도인이 소리쳤다.
“놈을 죽이시오!”
쏴아아.
스무 명의 특별호법이 일제히 장력을 날렸다.
악마강시 천여 구가 백하심 손에 제거된 사실을 알고 있는 그들이었다.
지니고 있는 공력을 모두 쏟아내는 그들의 목에는 힘줄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백하심이 조금의 동요도 없이 그대로 무형태극지를 날렸다.
그것도 십지 모두에서 지풍을 날리는 십지풍이었다.
픽픽픽.
열 가닥의 지풍이 그대로 특별호법들의 머리를 관통했다.
특별호법들이 날린 장풍은 지풍의 위력에 소리 없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크윽!”
“으윽!”
특별호법들이 쓰러지자, 백하심이 연이어 지풍을 날렸다.
나머지 열 명의 특별호법들이 이를 피하지 못하고 머리에 구멍이 뚫리며 즉사했다.
와아아.
장원을 등지고 있던 삼백 무림맹 무사들과 마교 무사들이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반면 오만 무림맹 무사들의 안색은 굳어졌다.
천공도인이 소리쳤다.
“특별호법들은 모두 공격해 저놈을 죽이시오!”
“명을 받들겠습니다.”
특별호법들이 떼를 지어 나가 백하심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이번에는 장풍뿐만 아니라 지풍, 검강 등이 총망라되었다.
기이한 것은 그 많은 공격이 중첩되지 않고 포위망을 형성하며 백하심의 사혈을 노렸다는 점이었다.
백하심으로서는 전력을 다해야 할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큰일 났다. 몇 십 명씩 나눠서 제거하면 힘을 보존할 수 있으나, 이렇게 되면 잠력을 한꺼번에 모두 사용해야 한다.’
백하심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곧바로 무형태극장을 극성으로 날렸다.
무형태극장을 대성하게 되면 장심뿐만 아니라 전신을 통해서도 그 힘을 발출할 수 있게 된다.
지금 백하심의 몸속에서 깨어난 잠력의 힘은 매우 강했다. 전신 모공을 통해 마치 수많은 침을 발사하듯 장풍이 발사되었다.
쏴아아아.
콰콰콰쾅.
지축이 뒤흔들리는 폭음.
그리고 썩은 짚단처럼 쓰러지는 특별호법들.
사람들이 놀라서 보니 삼백 명에 육박한 특별호법들 모두가 몸이 터져 즉사한 채 쓰러져 있었다.
특별호법 중 건재한 사람은 공격에 가담하지 않았던 만통도인 한 명뿐이었다.
지옥검선과 천공도인 역시 이런 결과에 매우 놀란 표정이었다.
하지만 백하심 역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보고 지옥검선이 미소를 지었다.
‘어차피 신선계에 본맹 고수 십만이 있고, 악마강시도 이십 만에 육박하다. 특별호법들이 아깝기는 하지만 부담이 되었던 죽엽객 저놈과 동귀어진 했으니 남는 장사라 할 수 있겠군.’
천공도인 역시 빠르게 안색을 회복하고 있었다.
“부맹주님. 특별호법들을 모두 잃었으나 놈 역시 죽은 것 같습니다.”
“그런 것 같소. 하지만 특별호법 모두가 전사한 것은 아니오. 만통도인이 남아 있지 않소? 만통도인. 그대는 어서 가서 죽엽객 저놈의 목을 베어 오시오. 그래야 안심이 될 듯하오.”
“존명!”
만통도인이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그의 손에는 보검 한 자루가 들려 있었다.
한편 백하심이 쓰러지자 삼백 무림맹 무사들과 마교 무사들의 안타까움은 극에 달했다.
가장 먼저 달려가 백하심을 부축한 사람은 바로 진하림이었다.
“죽엽객님!”
진하림이 백하심을 흔들었으나 미동도 없었다.
급히 맥을 짚어 보니 매우 약했다.
“어서 모시고 돌아와요!”
백리영이 소리쳤다.
만통도인이 검을 들고 다가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진하림이 백소운을 등에 업고 진영으로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이를 그대로 내버려둘 만통도인이 아니었다.
특별호법의 수장이었던 그는 수하들이 모두 죽은 지금 복수심에 불타고 있었다.
좌수를 앞으로 뻗으니, 진하림과 백하심 두 사람이 빨려들 듯 그에게로 끌려갔다.
“갈!”
화백웅과 화백범 두 사람이 신형을 날리며 장력을 퍼부었다.
그 상대는 물론 만통도인이었다.
“흥! 가소로운 놈들!”
만통도인이 검에 내공을 주입해 검강을 날렸다.
꽝꽝.
“으윽!”
“크윽!”
화백웅과 화백범 두 사람의 몸이 공중에서 휘청하더니 그대로 추락했다.
“아버님!”
“아버님!”
화미앙과 화부용이 급히 달려가 각자의 부친을 받았다.
하지만 이미 큰 타격을 입어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목숨에는 지장이 없으나 공격력을 상실한 것은 물론이었다.
그러는 동안 진하림과 백하심은 만통도인 바로 앞까지 끌려들어갔다.
그때였다.
가부좌를 틀고 운공요상을 하고 있던 검마왕이 양손을 내밀었다.
순간, 끌려가던 진하림과 백하심 두 사람이 다시 산장 쪽으로 날아왔다.
어느 정도 회복을 한 검마왕이 개입한 것이었다.
“흥!”
천공도인이 코웃음을 치며 양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다시 진하림과 백하심 두 사람이 만통도인 쪽으로 끌려갔다.
바로 그때였다.
허공에서 인영 하나가 나타나더니 피리 소리가 들렸다.
삘리리리.
“앗! 천상옥음!”
천공도인이 놀라서 하늘을 쳐다봤다.
사람들 역시 쳐다보니 소녀 한 명이 가부좌를 튼 채 구름 비슷한 것에 올라타 있었다.
한데 그녀는 바로 옥려군이 아닌가.
등선맹주 옥평의 딸이기도 한 그녀는 지난날 여의공자로 활동해 명성을 떨친 적이 있었다.
등선맹 고수들이 모두 악마진법에 갇혀 활동을 못 하고 있는 지금 그녀만이 유일하게 탈출했다고 전해졌다. 한데 바로 지금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으윽!”
“으윽!”
천상옥음의 위력 때문일까.
우세를 점하고 있던 만통도인과 천공도인이 신음과 함께 비틀거렸다.
그때 백리영과 임소혜가 급히 날아가 진하림과 백하심을 데리고 진영으로 돌아갔다.
“네년이!”
천공도인이 인상을 찌푸리며 옥려군을 쳐다봤다.
지면에 내려선 옥려군이 지옥검선을 쳐다봤다.
“지옥검선! 네놈이 백소운 공자 행세를 하고 있다더니 그게 사실이었구나. 다른 사람은 속여도 내 눈은 못 속인다.”
“무슨 헛소리냐? 나는 백소운이다. 뭣들 하느냐? 저 계집 역시 마교와 한통속이다. 어서 죽여라!”
지옥검선이 소리쳤다.
하지만 무림맹 오만 무사 중 그 명을 즉각 따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만큼 옥려군의 등장이 극적이었다.
형산파 장문인 정자가 다시 태도를 바꾸며 소리쳤다.
“백 부맹주! 옥 소저는 등선맹 고수로 거짓말을 할 분이 아닙니다. 좀 더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정자! 네놈이 바로 간자구나.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것을 보니까. 네놈을 죽여 본보기로 삼겠다.”
지옥검선이 우수를 흔들어 장풍을 날렸다.
정자가 급히 맞받아쳤으나 역부족이었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정자의 몸이 그대로 터지며 즉사했다.
지옥검선이 소리쳤다.
“무림대의를 위해 사소한 희생은 불가피하다. 옥려군으로 자칭하는 저 계집 또한 가짜다. 어서 저년을 죽여라. 명을 듣지 않는 자는 즉결 처형하겠다.”
“흥! 네놈이 사내라면 나와 일대일 대결을 벌이는 게 어떻겠냐?”
옥려군이 피리를 비스듬히 들었다.
지옥검선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간신히 몸을 바로 한 만통도인이 앞으로 나섰다.
“제가 저년을 처리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오.”
“저 또한 합세하겠습니다.”
천공도인 역시 앞으로 나갔다.
검마왕이 몸을 날려 옥려군 옆에 섰다.
“내가 합세해야 균형이 맞겠군.”
“감사해요. 검마왕이신가요?”
옥려군의 물음에 검마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의 안색은 매우 좋지 못했다.
아직 내상을 회복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이렇게 한 번의 공격이라도 하려고 나선 것은 불사신공 때문이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불사신공의 놀라운 회복력으로 약간이나마 내공을 회복한 것이다.
옥려군이 눈을 빛냈다.
앞에 있는 천공도인과 만통도인 두 사람은 이미 자신의 음공에 당해 내상을 입은 상태였다.
그 때문에 자신과 검마왕 둘이서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바로 지옥검선이었다.
옥려군 자신 역시 등선맹 고수들의 도움으로 그 무공이 급상승했지만, 지금 보니 지옥검선의 무공은 더욱 강해져 있었다.
그런 면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백하심이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그녀 역시 봤던 것이다.
허공에서 은신술을 펼치고 있었던 그녀는 백하심이 특별호법들을 제거하는 것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백하심이 의식을 잃고 그 목까지 잘릴 위기에 처하자 부득이 그녀 역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일단 저놈들부터 제거하자. 지옥검선 저자 혼자 남으면 무사들의 마음이 돌아설 것이다.’
옥려군이 결단을 내리고 곧바로 피리를 앞으로 내밀었다.
강력한 경력이 피리 끝을 통해 분출되었다.
검마왕 역시 모아두었던 내공을 모두 사용해 장풍을 날렸다.
천공도인과 만통도인 역시 장력으로 이에 맞섰다.
바로 그때였다.
방관하고 있던 지옥검선이 우수를 들어 가볍게 원호를 그렸다.
순간, 옥려군과 검마왕이 흠칫했다.
무형의 올가미 같은 것이 두 사람의 전신을 감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되자 두 사람의 공격은 이어지지 못했다.
그들이 천공도인과 만통도인의 장력을 맞고 튕겨 나간 것은 그 직후였다.
파파파팡.
“으윽!”
“크윽!”
십여 장이나 날려간 옥려군과 검마왕이 바닥에 쓰러졌다.
“아버님!”
임소혜가 급히 검마왕을 부축했다.
하지만 이미 백하심처럼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
옥려군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이미 내상을 입은 듯 입가에 피가 계속 흐르고 있었다.
“비겁한 놈! 이러고도 네놈이 백소운 공자라고 자처하느냐? 백 공자는 절대 네놈같이 그런 암수를 사용하지 않는다.”
옥려군이 소리쳤다.
하지만 이미 기혈이 흔들려 그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지옥검선이 말했다.
“악인을 제거하는 데 그 수단은 어떤 것이든 상관없는 것이다. 나 백소운은 네놈들을 모조리 제거해 무림의 정의를 세울 것이다.”
그때였다.
한 줄기 바람과 함께 한 사람이 나타났다.
한데 그는 바로 백소운이 아닌가.
졸지에 백소운이 두 사람이 된 것이었다.
지옥검선이 깜짝 놀란 것은 물론이었다.
새롭게 나타난 백소운이 담담히 말했다.
“내가 바로 백소운이오. 지옥검선 그대는 이제 가짜 흉내를 그만두는 게 어떻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