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217
낙양 무림맹 총단.
영웅대회를 사흘 앞둔 이곳에서는 지금 수많은 사람으로 북적이고 있었다.
그리고 총단 내 한 곳인 수습서고 앞에서는 삼천 명에 달하는 수습무사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지난 석 달간의 수습 기간을 마무리하는 자리였다.
영웅대회 사흘 전에 수료식을 거행하는 이유는 대회까지 남은 기간 각자 마지막 정리를 할 시간을 주기 위해서였다.
영웅대회가 시작되면 수습무사들에 대한 평가가 시작된다.
그 시험을 통과해야 정식무사 자리가 주어질 예정이었다.
“마무리 정리를 잘해 정식무사 시험에 모두 꼭 합격하기를 바라오. 비상시기를 고려해 수습기간을 끝낸 여러분에게는 한 번의 시험만 통과하면 정식무사가 되는 특전이 주어졌소. 합격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할 것이오. 하지만 정식무사가 되지 않았다 해도 그렇게 실망할 필요는 없을 것이오. 이번 영웅대회가 끝나면 수습무사들로 이루어진 수습대 역시 신선계 출정에 참여할 것이기 때문이오. 여러분 모두의 무운을 비오.”
짝짝짝.
축하 인사를 하러 와준 자명선생의 말에 수습무사들이 박수를 보냈다.
자명선생이 고개를 끄덕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지난번 신검산장에서 천공도인이 죽은 후 다시 총군사 자리에 복귀한 그였다.
이후 두 달이 넘는 기간 맹의 정비를 책임지고 해온 그는 오늘 수습대 수료식에도 참여한 것이다.
단상에 마련된 귀빈석에는 백리영의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그녀의 안색은 조금 굳어 있었다.
옆에 앉은 천향이 물었다.
“백하심 대주를 아직 기다리고 계시는 건가요?”
“물론이에요. 무명객께서 지옥검선을 쫓아간 후 아무 소식이 없는 지금 한 명의 고수라도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요? 정말 백 대주는 어디에 갔을까요? 설마 그때 지옥맹 놈들에게 당한 것은 아니겠지요?”
“저도 잘 모르겠지만 당시 백 대주가 신검산장에 간 것은 확실합니다. 하지만 산장에서 그의 모습을 볼 수는 없었지요. 당시 상황을 고려해보면 산장으로 가다가 변을 당했을 가능성이 가장 큽니다. 아쉽지만 그게 현실입니다.”
“그렇게 쉽게 당할 분이 아니에요. 반드시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오늘 수료식에도 못 온 것을 보면 무슨 일이 있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수습대주 신분으로 오늘 수료식에 참석하지 못하면 대주 자리도 다른 사람에게 넘겨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천향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그녀 역시 백하심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안타까움은 더했다.
백리영이 고개를 저었다.
“그 문제는 아직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예요. 총군사께 말씀드렸어요. 백 대주의 귀환 시기를 영웅대회 때까지 연기해달라고요. 어차피 수료식도 원래는 영웅대회 기간에 있을 예정이었는데, 신선계 출정 때문에 앞당겨진 것이잖아요?”
“아, 그랬습니까? 잘된 일이군요. 저 역시 어쩐지 백 대주가 영웅대회 때 모습을 보일 것 같습니다. 살아있다면 말이지요.”
“분명 살아있을 거예요.”
백리영이 눈을 빛내며 수습무사들을 쳐다봤다.
수료식이 끝나고 해산 중이었다.
대부분은 그들의 거처인 용봉각으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일부는 가족들과 지인들을 만나기 위해 총단 밖으로 갈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이소절도 있었다.
‘백하심 이 친구가 오늘도 역시 안 왔군. 정말 무슨 일이 있는 것인가.’
이소절이 안색을 굳히며 백리영에게 걸어갔다.
인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백리영은 주기적으로 자신에게 와서 백하심의 소식을 물었기에 오늘도 답변을 해줘야 했다.
“백 대주의 소식은 아직 없나요?”
백리영의 물음에 이소절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 친구가 돌아오면 분명 저에게 들리기로 했는데, 아무 소식이 없군요.”
“이 공자께 들리기로 한 것은 황금장원에 있던 분들의 소재를 알기 위해서라고 하셨지요?”
“네. 하지만 이제 그들 모두 황금장원으로 돌아갈 겁니다. 오늘 저녁 장원에서 만나기로 했지요.”
“잘 생각하셨어요. 그동안 지옥맹 잔당들의 움직임도 거의 보이지 않았으니, 안전에는 큰 문제가 없을 거예요. 한데 백하심 공자와 무명객 두 분이 친분이 있다는 소문이 사실인가요?”
“저는 잘 모르는 일입니다. 하지만 진하림 소저가 그렇게 말했다고 하더군요.”
“아마 맞을 거예요. 그리고 이건 제 추측인데 이번에 황금장원으로 돌아가시면 손님들이 무척 많이 올 거예요.”
“알고 있습니다. 그게 다 무명객님을 기다리는 분이 많기 때문이지요. 백 대주와 친분이 있다고 하니 혹시 황금장원으로 오시지 않을까 하는 기대 말입니다.”
“어떻게 할 건가요? 기존 장원 식구들 말고 다른 분들도 받아들일 건가요?”
“네. 백하심 그 친구가 제게 장원 관리를 맡긴 셈이니, 그러는 편이 그 친구의 뜻에 맞을 거로 생각합니다. 사실 이미 많은 분이 제게 부탁을 하기도 했고요.”
“혹시 마교 무사들도 황금장원에서 지내기로 한 건가요?”
“하하하. 정말 소식이 빠르군요. 맞습니다. 어제 임소혜 소저가 직접 제게 찾아왔더군요. 이번 영웅대회 때까지 황금장원에 마교 무사들을 묵게 하고 싶다고요.”
“하기야 총단에 마교 무사들이 계속 거주하면 대회 참석하러 온 무림인들과 뜻하지 않은 마찰을 빚을 우려가 있지요. 잘하셨어요. 황금장원은 백만 명도 수용이 가능한 곳이니, 물과 식량만 준비된다면 아무 문제가 없을 거예요.”
“이미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하더군요. 대회 당일에는 이십만 마교 본진 무사들이 이곳 낙양에 도착할 거라고 하던데, 그들까지 모두 수용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당연하지요. 이번 영웅대회에서 새로운 무림맹주가 탄생하면 즉시 정마동맹의 기치 아래 연합무사들이 신선계 출정을 떠날 거예요. 이번에 천마성에서 올 이십만 마교 무사들이 지낼 곳은 총단에 미리 마련해뒀어요. 그러니 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거예요.”
“네. 사실 제가 그런 일들을 처리할 권한도 없고 힘도 없습니다. 앞으로는 백리 소저께서 많이 지도해주십시오.”
“아니에요. 하지만 제가 내일 황금장원으로 가서 도울 것이 있으면 돕도록 할게요. 마교 측 사람들과 의논할 일도 있으니까.”
“네. 감사합니다. 그럼 내일 장원에서 뵙겠습니다. 마교 측 무사들도 내일 올 겁니다.”
이소절이 인사한 후 총단 대문 쪽으로 향했다.
그때였다.
수습무사 한 명이 그에게 다가왔다.
“이 공자님. 잠깐만요.”
이소절이 고개를 돌려보니 아름다운 소녀 한 명이 싱긋 웃고 있었다.
한데 그녀는 바로 은하장주의 여식 담소소가 아닌가.
이전에 백소운이 무명객으로 활동할 때 그녀를 위험에서 벗어나게 해준 일이 있었다.
한데 이렇게 전격적으로 수습무사가 되어 있을 줄은 몰랐다.
“아, 담 소저.”
이소절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자신에게 반갑게 대하는 이유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늘 황금장원으로 들어가신다죠?”
“그렇소. 소문도 빠르구려.”
“잘됐어요. 저번에 약속하셨듯이 저도 장원 안에서 지내게 해주세요.”
“그래봤자 사흘이요. 그동안 무명객께서 장원으로 오신다는 보장은 전혀 없소이다.”
“그래도 좋아요. 황금장주인 백하심 대주 그분이라도 돌아오면 무명객님 소식을 알 수 있을 테니까요.”
“백 대주 역시 전혀 소식이 없소.”
“저도 알고 있어요. 저는 아직 그분을 본 적이 없지만, 듣자 하니 금룡각 무사들을 혼자서 처치한 절세고수라면서요?”
“그럴 것이오. 이미 약속을 했으니 본인을 따라오시오.”
“감사해요.”
담소소가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얼굴에는 기대감이 잔뜩 어려 있었다.
그녀가 수습무사가 된 것은 오직 무명객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무명객이 신검산장에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한에서 이곳 낙양까지 단신으로 온 것이었다.
부친인 은하장주 담학에게는 몇 달 여행을 하고 오겠다는 서신을 남겨두긴 했다. 하지만 장원 전체가 발칵 뒤집어진 게 사실이었다.
이를 모를 리 없는 담소소는 부친의 걱정을 덜기 위해 얼마 전 서신을 다시 보냈다.
그 내용은 바로 자신이 이번 영웅대회에 참석할 거라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담학을 비롯해 은하장 사람들이 이곳 낙양으로 오는 중이었다.
‘총단에 머물기만 하면 무명객 그분을 만날 줄 알았는데, 아쉽게도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다. 하지만 꼭 돌아오실 것이다. 항간에는 지옥검선과 동귀어진하셨다는 소문도 있지만 절대 사실이 아닐 것이다. 무명객 그분은 무적이시니까. 그리고 내 예감이 맞는다면 분명 황금장원으로 오실 것이다.’
담소소가 미소를 지었다.
반면 이소절은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그에게는 무명객보다는 백하심의 안위가 중요했다.
하지만 그 역시 무명객을 통해 백하심의 안부를 알고 싶었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이라도 와야 할 텐데······.’
이소절이 상기된 얼굴로 총단 대문을 나섰다.
담소소 역시 빠르게 그를 뒤따랐다.
* * *
이소절과 담소소가 황금장원으로 가는 그 순간, 사내 한 명이 낙양성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평범한 용모의 그 사내는 모든 것이 평범했다.
‘벌써 석 달이 다 되었구나. 그래도 영웅대회에 늦지 않아서 다행이다. 지옥악마신의 감시망이 가동되고 있을지 모르니, 당분간은 다른 얼굴로 지내는 것이 좋겠군.’
관도 주위를 다니는 사람들을 둘러보는 사내.
그는 바로 백하심이었다.
완전히 새로운 얼굴로 다시 역용한 그가 낙양으로 돌아온 것이다.
백하심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무저곡에 있을 때를 떠올렸다.
보호강기 덕분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지만, 곧바로 가사 상태에 빠진 그였다.
그가 다시 정신을 차린 것은 불과 며칠 전이었다.
다행히 몸은 저절로 회복되어 있었다. 이후 경공을 펼쳐 무저곡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원래는 무저곡 위의 독 안개 때문에 도저히 탈출할 수 없었지만, 가공할 그의 내공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무공은 완전히 회복된 것 같다. 하지만 두 달 훨씬 넘게 잠들어 있었으니, 그동안 어떻게 상황이 변했는지 모르겠구나. 하나하나 차근히 해결해 나가야 하겠는데, 대체 무엇부터 해야 할지······.’
백하심이 안색을 굳혔다.
사흘 후 영웅대회가 개최되고 예정대로 새 맹주가 선출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대회가 끝난 후 마교와 함께 신선계 출정을 나간다는 것도.
정마 연합 무사의 병력은 각각 이십만씩 해서 사십만 정도.
신선계로 가는 길잡이 역할은 옥려군과 자운신녀 두 사람이 맡기로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하지만 백하심은 자신이 신검산장에 나타난 죽엽객임을 아직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보다 근원적인 자신의 본체를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전처럼 그 때문에 괴로워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옥악마신이라는 강력한 적이 있는 상태에서 자신이 드러나는 것이 조심스러웠다.
‘내 예상으로는 지옥악마신은 신선계에서 정마연합 무사들이 오기를 기다릴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지옥악마신을 내버려 둔다면 두고두고 후환이 될 터. 정마동맹이 다시 유지되고 있는 지금 총공격을 가하는 것 자체는 필요하다. 하지만 구심점이 너무 없다. 결국 내가 나서야 하는 것인가.’
백하심이 한숨을 내쉬었다.
무공을 회복했다고는 하지만 두세 달을 잠만 잔 격이라 뭔가 허허로운 느낌이 컸다.
‘일단 객잔으로 가보자. 사정을 좀 더 알아보고 앞으로의 행보를 결정하자.’
백하심이 눈에 보이는 객잔 한 곳에 들어갔다.
영웅대회가 사흘 앞으로 다가온 지금.
낙양의 모든 객잔은 초호황이었다.
백하심은 운 좋게도 구석진 곳에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같은 탁자에는 중년인 한 명과 소녀 한 명이 있었다.
한데 그들은 바로 무림맹 서안 지부장 곽직과 그의 여식 곽어언이 아닌가.
그들 역시 백소운이 무명서생으로 행세할 때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로, 당시 백소운은 곽어언의 병을 치료해준 적이 있었다.
“합석 좀 하겠습니다.”
백하심이 담담히 말했다.
“그렇게 하시오.”
곽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영웅대회에 참석하게 된 것은 맡고 있는 서안지부가 섬서성 총지부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무림맹 총단 지휘부에서 공문을 돌려 각 지부장들을 대거 불러들였고, 그중 총지부장은 의무적으로 참가해야 했다.
한데 문제는 그의 딸인 곽어언이었다.
이번 대회에 자신도 무조건 가겠다고 떼를 쓴 것이었다.
물론 이제 매우 건강해져 못 데려갈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곽어언이 이곳까지 온 이유는 바로 무명서생 때문이었다.
자신을 치료해 준 무명서생, 즉 백소운을 만나보기 위해 이렇게 온 것이었다.
물론 그녀는 아직 백소운이 무명서생임을 모르고 있었다.
함께 식사하는 도중 백하심은 곽씨 부녀에게 자연스럽게 그런 이야기까지 듣게 되었다.
“아, 그러니까 화평회주였던 무명서생 그분을 만나기 위해 오신 거군요.”
백하심이 장단을 맞춰주자, 곽어언이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무명서생 그분 정도 실력자라면 이번 영웅대회에 참가하시지 않을까 해서요.”
“그럴 수도 있겠군요. 아무쪼록 곽 소저의 은공이라 할 수 있는 그분을 찾기 바랍니다.”
“감사해요.”
곽어언이 말한 바로 그때였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대한 한 명이 불쑥 끼어들었다.
“방금 무명서생이라고 했소?”
“네. 그분을 아시나요?”
“화평회주 무명서생이 누군지 아직 모르고 있었단 말이오?”
“네. 다른 신분이 있었나요?”
곽어언의 목소리가 떨렸다.
“하하하. 무명서생은 바로 백소운 대협이오. 며칠 전 백 부맹주와 함께 다녔던 진하림 소저가 그 사실을 밝힌 것으로 알고 있소.”
“아!”
곽어언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쩐지······ 하지만 백소운 그분은 아직 실종상태이지 않나요?”
“그렇소. 안 그랬으면 이번에 무림맹주가 되실 건데 안타깝소. 무명객도 사라진 마당에 백 대협이 유일한 희망인데 말이오.”
대한이 안타까워하며 술을 마셨다.
백하심이 눈을 빛냈다.
‘여기서 다시 백소운 그 사람 이야기를 듣는구나. 한데 곽씨 부녀가 낯설지가 않다. 그것참 이상한 일이군. 하기야 내가 무명객이라면 백소운 그 사람에게 무공을 가르쳐주었을 것이고, 그 때문에 그와 관계되는 사람들과 나 역시 친분이 있을 수도 있겠지. 너무 복잡하게 신경 쓰지 말자. 지금은 내가 대회 출전을 해서 무림맹주가 될 것인지 아닌지를 어서 결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