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22
“헉! 저럴 수가!”
평소 침착함을 잃지 않던 유덕의 놀란 목소리였다.
함께 대청 밖으로 나온 백소운 일행이 일제히 하늘을 쳐다봤다.
총지부 전각들 지붕 위를 새까맣게 뒤덮고 있는 그것은 바로 거대말벌 떼였다.
한데 사람들이 놀란 것은 그 수였다.
백년죽림에서 봤던 말벌 떼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추측을 한다면 수백만 마리 정도.
마치 먹장구름처럼 원형을 이루며 총지부 하늘을 뒤덮고 있는 말벌 떼가 주는 공포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게다가 위위윙, 하는 말벌의 울음소리는 천둥소리와도 같았다.
무사들의 진기가 진탕되었음은 물론이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아직 공격을 가해오지는 않고 있었다.
그 바람에 무림맹과 천룡궁 무사들은 대오를 갖출 수 있었다.
총지부장 계박이 말했다.
“저놈들이 바로 거대말벌이오?”
“그렇습니다. 조금이라도 쏘이면 바로 죽게 되고 한 줌 혈수로 변하게 되지요.”
장덕수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대책은 없소? 곧 놈들이 공격을 가해올 것 같은데······.”
계박의 말에 장덕수가 고개를 저었다.
“없습니다. 그때는 원인모를 방어막으로 놈들을 퇴치했지만, 지금은 수가 너무 많아 힘들 듯합니다.”
“그래도 일단 그 방어막이라도······.”
계박이 방어막을 요청했다. 하지만 장덕수가 그것을 만들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한편 백소운은 거대말벌 떼를 보며 자연스럽게 내공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자신 이외에 놈들을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처음 거대말벌을 본 사람 중에는 만만하게 보는 사람도 있었다.
“몸집이 제법 크긴 하나 불로 다스리면 되지 않겠소?”
궁반척의 말이었다.
천룡공자가 중요 부위에 내상을 입고 아직 깨어나지 못한 상태라, 천룡궁 무사들은 모두 그의 지휘를 받고 있었다.
“화공을 말씀하시는 것이오?”
“그렇소이다. 벌레나 곤충들은 모두 불을 무서워하지요. 일단 화염장(火焰掌)으로 놈들을 공격해보겠소이다.”
궁반척이 양손을 높이 들었다.
순간 그의 장심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거센 불길이 십여 장 허공으로 치솟았다.
화르르르.
비록 백소운에게 당한 적은 있었으나 역시 천룡궁 장로답게 놀라운 위력이 아닐 수 없었다.
그때였다.
불길에 닿은 말벌들이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일제히 하강했다. 그리고 천룡궁 무사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크아악!”
“아악!”
말벌에 쏘인 천룡궁 무사들의 비명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궁반척 등이 깜짝 놀라 그들을 쳐다보니 어느새 한 줌 혈수로 변해 있지 않은가.
눈 깜짝할 사이에 수십 명의 무사가 죽임을 당한 것이었다.
게다가 말벌들은 불에 조금도 손상을 입지 않았다.
오히려 더 흉포해진 것 같았다.
‘안되겠군.’
백소운이 더 이상 미루지 않고 보호강기를 일으켰다.
물론 이번에도 어디서 보호막이 생겨났는지 아무도 모르게 했다.
“아, 보호막이다!”
저번에 보호막 때문에 살아났던 무사들이 환호성을 터뜨렸다.
백소운 역시 기뻐하는 척하며 마치 덮개처럼 총지부 하늘을 보호막으로 감싸기 시작했다.
그러자 말벌 수백 마리가 기다렸다는 듯 보호막을 향해 돌진했다.
파파파팍!
불꽃이 튀며 말벌들이 다시 한 줌 재로 변해버렸다.
와아아!
무사들이 또다시 탄성을 터뜨렸다.
하지만 정작 백소운의 안색은 조금 굳어있었다.
보호막을 말벌들이 시험해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배후에 조종자가 있구나.’
백소운이 말벌구름을 쳐다보며 눈을 빛냈다.
그의 추측이 적중한 걸까.
말벌구름의 중앙이 벌어지며 거대한 몸집의 말벌 한 마리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다른 말벌과 똑같이 생겼으나, 그 몸집이 집 한 채 정도나 되는 놈이었다.
한데 더욱 놀라운 일은 다음에 벌어졌다.
놈이 말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 놈이냐? 보호막을 형성한 놈이! 지난번에 우리 애들을 죽인 놈과 같은 놈이렷다!”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내공이 약한 무사 수백 명이 비틀거렸다.
놀랍게도 그의 음파가 보호막을 뚫고 들어온 것이었다.
‘보통 놈이 아니군. 혹시 마도의 인물이 둔갑술을 펼친 것인가.’
백소운이 유심히 거대말벌 수괴를 쳐다봤다.
그때 계박이 소리쳤다.
“네놈은 누구냐? 인간이냐? 괴수냐?”
“후후후. 나는 지옥맹(地獄盟)에서 온 말벌왕이라고 한다. 둔갑술을 풀지 않은 지 너무 오래되었구나. 모습은 이렇지만 인간은 맞다.”
말벌왕의 말에 사람들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지옥맹이라니? 당금 강호에 그런 단체가 있었느냐? 혹시 네놈은 배교의 고수냐?”
계박이 정신을 바짝 차리려는 듯 두 눈을 부릅떴다.
한편 그러는 동안에도 거대말벌 수백 마리가 보호막을 뚫으려다가 재로 변해버렸다.
아무래도 보호막의 성분 자체가 말벌들로 하여금 돌진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본 말벌왕이 인상을 찡그렸다.
“공격은 내 지시에만 따르라고 했거늘. 안 되겠구나. 보호막부터 제거해야겠다. 그러면 미꾸라지처럼 숨은 놈도 저절로 나타나겠지.”
말벌왕이 날개를 흔들었다.
그러자 날개 표면에서 붉은 실 같은 것이 수천 가닥 넘게 쭉쭉 뽑혀 나왔다.
그 길이가 끝없이 늘어나더니 보호막에 달라 붙어버렸다.
“으음······.”
백소운이 그 모습에 내심 신음성을 발했다.
붉은 실그물이 보호막의 위력을 약화시켰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보호강기를 더욱 강화하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말벌왕이 혼자 보호막 아래로 내려올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말벌 떼가 말벌왕에게 종속된 것으로 보여, 놈을 우선 제거하는 것이 효율적으로 보였다.
‘우두머리인 저놈만 제거하면 나머지 놈들은 저절로 사라질 것 같구나.’
백소운이 눈을 빛내며 좀 더 내공을 끌어올렸다.
그의 내공은 매우 특별한 것이라서 여전히 외관상 아무 표시도 나지 않았다.
한편 말벌왕은 백소운의 예상대로 보호막을 뚫고 천천히 하강했다.
보호강기의 위력 때문인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그의 모습은 기괴하고 공포스러웠다.
“너무 무서워.”
진하림이 겁을 집어먹고 백소운 뒤로 몸을 숨겼다.
그때 무림맹 무사 십여 명이 일제히 검을 들어 말벌왕을 공격했다.
조금 전 계박이 은밀하게 명을 내린 때문이었다.
그들 역시 말벌왕을 먼저 제거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았다.
슈우욱! 슉!
십여 자루의 검이 부챗살처럼 퍼지며 빠른 속도로 말벌왕의 전신을 찔러왔다.
비록 스스로 인간을 자처했지만 누가 보더라도 괴수 그 자체였기 때문에, 검 끝엔 자비가 없었다.
“후후후! 어리석은 놈들!”
말벌왕이 코웃음을 치더니 온몸에서 붉은 섬광을 뿜어냈다.
반원형의 섬광은 그대로 날아드는 검을 덮었다. 순간 검이 그대로 녹아내리며 무사들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사람들이 깜짝 놀라 보니 공격을 가했던 무사들이 모두 즉사해 한 줌 혈수로 변해버린 것이 아닌가.
그뿐만이 아니었다.
말벌왕이 본때를 보여주려는 듯 허공을 날며 연속해서 붉은 섬광을 뿜어냈다.
그러자 수백 명의 무사가 녹아내렸다.
“크아악!”
“아악!”
계박과 궁반척 등 고수들이 일제히 장풍과 지풍을 날리는 등 반격을 가했으나 모두 허사였다.
말벌왕 역시 자체 보호강기를 갖고 있는 것인지 전혀 타격을 주지 못했다.
급기야 흑백쌍로가 노성을 터뜨리며 말벌왕을 향해 연속해서 삼장을 날렸다.
쏴아아아.
두 사람의 공력이 가득 담긴 경력이 날아간 곳은 바로 말벌왕의 눈이었다.
하지만 말벌왕은 신경도 쓰지 않는 표정이었다.
“무림맹 장로들이라 했던가.”
이미 흑백쌍로에 대해 알고 있었던 걸까.
말벌왕이 비웃는 표정을 지으며 꼬리 부분에 달린 독침으로 독을 발사했다.
찍찍.
마치 암기처럼 날아간 독액이 빠르게 흑백쌍로의 가슴을 관통했다.
이미 흑백쌍로가 날린 경력은 무형의 기운에 의해 해소된 지 오래였다.
“으윽, 이런 경우가······.”
“크으윽.”
흑백쌍로가 믿기 어렵다는 듯 두 눈을 뒤집으며 그대로 즉사했다.
물론 곧바로 둘 다 한 줌 혈수로 변한 것은 물론이었다.
“아······.”
계박과 장덕수 등 지휘부 고수들이 탄식을 터뜨렸다.
흑백쌍로는 지금 이곳에 있는 고수 중에서 가장 강하다고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데 그런 그들이 맥도 못 추고 죽었으니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다.
한편 백소운 역시 빠르고 강력한 살육에 놀란 표정이었다.
예상 밖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무의식적으로 유덕과 정기 등 하인들부터 보호하느라 다른 무사들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
‘또 늦었구나.’
그때 천향의 호위를 받으며 한쪽 구석에 있던 백리영이 입을 열었다.
“멈춰라.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후후후. 그래 이쯤 해두지. 아, 그러고 보니 네년이 바로 백리영이구나. 몸매가 좋군. 음기도 충만하고. 보약이 따로 없겠어.”
말벌왕이 입맛을 다셨다.
그런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우리 아이들을 죽인 보호막을 만든 놈이 누구냐? 그놈만 내주면 나머지는 살려주겠다. 아직 본맹이 이곳 무림을 접수할 때는 아니니까.”
“그게 사실입니까?”
기가 죽은 궁반척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렇다. 혹시 네가 바로 천룡궁의 장로 궁반척이냐?”
“네. 저를 아십니까?”
궁반척이 반색하며 공손하게 말했다.
그의 갑작스러운 태도에 계박과 장덕수 등이 인상을 찌푸렸다.
“물론이다. 천룡궁은 장차 본맹에 충성하는 일꾼이 될 것이니, 내 어찌 장로들을 모를 수 있겠느냐?”
“아, 그러고 보면 우린 남이 아니었군요. 좋습니다. 이 시각부터 저희 천룡궁은 이번 사건에서 손을 떼도록 하겠습니다. 물러나도 되겠습니까?”
“그렇게는 안 된다. 보호막을 만든 놈이 누군지 알아내기 전에는.”
말벌왕이 고개를 저었다.
그때였다.
참다못한 계박이 소리쳤다.
“궁 장로. 이 무슨 해괴한 짓이오? 힘을 합쳐야 할 때에 오히려 놈에게 빌붙다니.”
“시시비비는 본궁의 궁주께서 결정할 일이오. 그보다 어서 보호막을 만든 자를 내놓으시오. 안 그러면 우리 모두 죽음을 맞이할 것이오.”
“흥. 알고 보니 비겁한 소인배였군. 천룡공자는 아직 정신이 들지 않았소? 공자의 생각을 듣고 싶소.”
계박이 노한 표정을 지었다.
한편 백소운은 더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해 은밀히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놈의 정체가 대체 무엇이기에······.’
백소운이 신중히 처리하기 위해 말벌왕을 봤다.
그때 그의 눈앞에 상태창이 나타났다.
‘최절정이라니 당금 강호에 그 정도 고수가 있었던가.’
백소운이 매우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최절정은 유형검의 마지막 단계이기 때문이었다.
얼마 전 유형검 수련을 모두 마친 그로서는 절대 방심할 수 없는 상대인 것이다.
참고로 절정과 최절정의 차이는 매우 컸다.
일반적으로 최소한 열배 이상의 수준차가 난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 때문에 당금 강호에 최절정 고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대체적인 견해였다.
당대 최고수였던 검마왕이나 백리천 역시 절정고수로 평가받고 있었으며, 최절정 고수로 알려진 사람은 고금제일인으로 평가 받는 초대 무림맹주가 유일했다.
‘장법으로 승부를 보는 게 낫겠군. 바로 마지막 단계인 금단팔장을 펼쳐야겠다.’
백소운이 더는 지체하지 않고 금단장을 소리 없이 날리려는 찰나.
어디선가 피리 소리가 들려왔다.
삘리리리.
양 사방에서 들리는 그 소리는 매우 맑았다. 빠르지도 늦지도 않았다.
그래서인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효력이 있었다.
하지만 단 한 명.
말벌왕은 예외였다.
그는 안색이 흙빛으로 변해있었다.
“천상옥음(天上玉音)이다! 설마 그녀가 나타났단 말인가. 우리만 통로를 알고 있는 게 아니었구나. 빌어먹을······.”
말벌왕이 주위를 여러 차례 두리번거린 후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하늘로 솟구쳤다.
그리고 급히 북쪽으로 사라졌다. 말벌 떼 역시 그를 따라가 버리고 말았다.
사람들이 놀란 것은 물론이었다.
하지만 적이 사라진 격이라 기뻐하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이윽고 피리 소리가 그치자, 백소운 역시 방어막을 거두며 눈을 빛냈다.
하지만 이번에도 사망자가 많이 생겨서인지 안색이 밝지 못했다.
‘생각도 못 한 일들이 벌어지는구나. 확실히 말벌왕인가 하는 그자의 무공은 검마왕과 맹주님 이상이었다. 한데 피리 소리를 듣고 두려워하다니, 그 피리의 주인은 또 얼마나 강하단 말인가. 아무래도 이전부터 생각해온 대로 천외천(天外天) 고수들일 가능성이 높은 것 같다. 무형검 연마에 더욱 박차를 가하지 않을 수 없을 듯하구나. 분명 나보다 강한 자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