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226
백소운의 선언은 모두에게 충격을 주었다.
혼자서 본선 출전자 고수 모두를 상대한다는 그의 말에 다들 믿기 힘들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진정으로 하는 말씀이오?”
자명선생의 확인에 백소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왕 말이 나왔으니 지금 바로 시작했으면 합니다. 오늘 제가 자비신승을 제외한 모든 분을 격퇴한 후 내일 최종전을 벌이는 게 좋을 듯합니다. 아, 물론 내일 백소운 부맹주께서 나타나지 않는다는 전제 하의 말씀입니다.”
“좋소이다.”
자명선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백소운이 자신감을 보이자 그 역시 원하는 대로 해주려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백소운의 승리를 점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백소운이 말했다.
“한명 한명씩 하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니 한꺼번에 상대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오.”
자명선생이 다시 수락하자, 백소운이 천천히 비무대 위로 올라갔다.
한편 자하검선을 비롯한 삼십여 명의 고수들은 어이가 없는 표정이었다.
“미친놈의 말에 그대로 따라주다니. 총군사께 실망했습니다.”
자하검선이 항의했으나 자명선생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마음에 안 드시면 상대를 격퇴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무저공자를 비무대 밑으로 떨어뜨리면 합의추대가 성사될 겁니다. 만약 반대로 여러분이 패하면 내일 무저공자와 자비신승의 결승전이 거행될 겁니다.”
“어쩔 수 없군.”
자하검선이 인상을 찡그리며 비무대 위로 올라갔다.
그러자 나머지 출전자들도 따라 올라갔다.
하지만 정말 백소운을 합공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들 중 아무나 한 명만 나서도 충분히 격퇴할 수 있다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 대표는 은연중 자하검선이 맡는 형국이 되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무림대의를 위한 길에 잡음이 생기는 것은 원치 않는다. 영웅삼관을 통과했다면 기본실력은 있을 듯하니, 지금이라도 우리 뜻에 따라 자비신승님을 합의 추대하는 것이 어떻겠냐?”
“거절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여러분 모두를 한꺼번에 공격할 겁니다. 비무대 밑으로 모두 떨어뜨릴 생각이니 최선을 다해주십시오.”
“건방진 놈!”
쏴아아.
자하검선이 장풍을 날렸다.
무지막지한 장력이었다.
애초 자비신승과 함께 우승 후보로 거론되던 그였다.
그런 그의 공격을 백소운이 막아낼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도무지 믿기 힘든 결과가 나타났다.
자하검선이 신음과 함께 비무대 밑으로 떨어진 것이었다.
“으윽!”
자하검선이 곧바로 일어났으나 이미 패한 후였다.
어떻게 당했는지 그조차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그때 백소운이 천천히 양손을 들어 나머지 고수들을 향해 장력을 날렸다.
일부러 천천히 날렸다. 이는 상대 고수들로 하여금 방어를 충분히 할 수 있는 시간을 준 것이었다.
“갈!”
“이놈!”
삼십여 명의 고수들이 일제히 장력을 날렸다.
자하검선이 일장에 나가떨어진 것을 본 그들이었다.
백소운이 사술을 썼다고 생각한 그들이 최대 공격을 가한 것이었다.
꽈아앙.
“으윽!”
“으음······.”
비명과 함께 드러난 결과는 매우 충격적이었다.
백소운을 제외한 모든 고수들이 비무대 밑으로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내상을 입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동정어옹이 패배를 시인했다.
“우리가 패했소. 정말 대단한 무공이오. 혹시 무형검을 연마했소?”
“그렇습니다.”
백소운이 담담히 말했다.
순간, 엄청난 함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와아아!
짝짝짝!
공식적으로 무형검의 고수가 탄생한 셈이니 열광할 만도 했다.
자명선생이 매우 기뻐하며 말했다.
“무저공자의 승리요. 그럼 약속대로 내일 자비신승과 대결을 준비하도록 하시오.”
“감사합니다.”
백소운이 포권한 후 비무대 아래로 내려왔다.
백만 군웅의 시선이 그에게 몰렸으나, 그는 영웅각 쪽으로 몸을 움직여 사라졌다.
이제 영웅각에 머무를 자격이 있는 사람은 그와 자비신승뿐이었다.
그 결과 영웅각은 상대적으로 조용히 지낼 수 있는 곳이 되었다.
* * *
깊은 밤.
영웅대회 첫째 날도 거의 다 지나갈 무렵.
영웅각 백소운의 방에 한 사람이 찾아왔다.
한데 그는 놀랍게도 자비신승이 아닌가.
영웅각에 단둘이 거처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층이 달라 만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미타불. 무저공자. 이렇게 불쑥 찾아와 놀라게 해서 미안하오.”
“아닙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백소운이 담담히 말했다.
자신의 말 그대로 그렇게 놀란 표정은 아니었다.
자비신승이 기이한 미소를 지었다.
“아미타불. 내일 있을 비무 때문이 아니겠소? 우리 둘 중 한 명이 무림맹주가 될 것 같은데, 무공 대결을 벌이게 되면 그 후유증이 클 것 같소. 분열 보다는 통합이 필요한 시기에 그런 모습은 되도록 피하는 게 좋지 않겠소?”
“맞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말씀입니까?”
“빈승이 맹주 자리를 양보하겠소. 대신 부맹주 자리를 내게 주시오. 어차피 신임 맹주가 부맹주 역시 새로 뽑아야 하니,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오.”
“부맹주는 백소운 대협이 있지 않습니까? 비록 실종상태라고는 하나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는 이미 죽었소.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은 것을 보면 말이오. 아, 그리고 빈승이 부맹주 자리를 맡으려는 것은 딴 뜻이 아니오. 오로지 화합을 위해서요. 신선계 출정을 앞두고 내부 분열을 초래해서야 되겠소?”
“분열은 안 되겠지요. 하지만 이런 식의 거래는 거절하겠습니다. 제가 오늘 굳이 합의추대에 반대하고 비무에 나선 이유를 아십니까?”
“모르오. 모두가 빈승의 덕이 부족한 탓이 아니겠소?”
“그 이유는 바로 대사께서 자비신승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처럼 저에게 찾아올 줄도 미리 알고 있었지요. 귀하는 지옥맹 사람입니까?”
“······.”
자비신승이 안색을 굳혔다.
백소운이 다시 말했다.
“자하검선을 비롯해 오늘 제가 겨뤘던 삼십여 고수들의 특징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 모두 정신이 혼미한 상태였다는 겁니다. 물론 극히 일부라 자신들조차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지만, 아마도 세뇌가 있었던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 그게 무슨 말이오? 도무지 이해할 수 없구려.”
“분명 어젯밤 귀하는 그분들을 특수 대법을 통해 세뇌를 시켰을 겁니다. 그 결과 합의추대를 끌어냈을 것이고요. 그리고 귀하와 자하검선 등과는 어떤 비무도 없었습니다. 모두가 환상이고 착각이었지요. 저는 그것을 간파하고 그분들의 정신을 치료해주려 했으나 실패했습니다. 다만 유일한 방법을 알아내긴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귀하를 죽이는 겁니다.”
“미쳤구려. 그대의 말을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오. 빈승이 그대를 찾아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만 해도 얼마나 황당한 말이오?”
“그것은 독심술을 통해 알고 있었지요. 오늘 저를 찾아와 같은 방법으로 세뇌를 시키려 한다는 것을. 세뇌를 당하게 되면 조금 전 귀하가 말한 반대로 제가 부맹주가 되겠지요. 무림맹주가 된 그대는 때를 봐서 저를 죽이려 할 것이고요.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남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대의 정체입니다.”
“상태가 심각하구려. 이만 가보겠소이다. 내일 비무 때 봅시다.”
자비신승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소운이 담담히 말했다.
“돌아갈 수 없소. 지옥신조!”
순간, 자비신승이 우수를 뻗어 백소운의 목을 부러뜨렸다.
우두둑.
목뼈가 부러진 백소운이 그대로 절명했다.
“후후후! 드디어 죽었구나. 무형지독보다 수천 배 강한 지옥독(地獄毒)에 당한 줄은 몰랐을 것이다. 그렇다. 나는 네 말대로 자비신승이 아니라 지옥신조다. 지옥악마신님의 명에 따라 무림을 접수하러 왔지. 진짜 자비신승은 내가 이미 죽였고 말이다.”
자비신승, 아니 지옥신조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거대한 괴조의 모습을 하고 날아다니던 그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할 말이 많은 듯 이미 죽은 백소운을 향해 이야기를 이어갔다.
“무저공자라고 했지만 네 놈의 정체는 바로 백소운일 것이다. 백소운이면서 무명객, 귀혈공자, 무명서생, 백하심, 죽엽객이기도 하지. 나는 신탁을 통해 네놈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아, 물론 네놈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은 몰랐다. 하지만 네놈의 치명적 실수는 바로 지옥독을 간과한 것이다. 분명 이상한 기운을 느꼈을 텐데 만독불침의 신체를 믿고 무시했던 것이지. 그 점이 네놈의 죽음을 초래했다. 지옥독을 어디서 구했냐고? 물론 지옥에서 가져온 것이지. 백만 구가 넘은 시체를 분해해 만든 인독(人毒)의 정화라 할 수 있지. 이미 죽었지만 원귀가 될 것 같아 알려주는 것이다. 참고로 나는 지옥악마신님의 배려로 이미 인간이 되었다. 그것도 초인의 힘을 가지고 말이다. 후후후! 잘 가라! 완전히 태워주마.”
지옥신조가 입을 벌렸다.
순간, 초록색 화염이 뿜어져 나오며 백소운의 시체를 완전히 태워버렸다.
화르르.
초록색 불꽃과 함께 백소운의 시체는 한 줌 혈수로 변해버렸다.
마치 화골산에 당한 것과 같은 모습이었다.
“끝이 났군. 사실 지옥악마신께 알리지 않고 내 독단으로 이번 영웅대회에 왔지만, 결국은 무림을 나 혼자 힘으로 장악하게 되는구나. 지옥악마신께서 아시면 큰 상을 내릴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 모든 것을 알고 계셨을 것이다. 그분은 인간이 아니라 신이니까. 후후후!”
지옥신조가 껄껄 웃은 후 방에서 나가려 했다.
한데 문이 열리지 않았다.
평범한 나무로 된 문이었지만 열리지 않는 것이다.
그때 그의 뒤에서 담담한 목소리가 들렸다.
“역시 지옥신조였군. 괴수 주제에 정말 인간이 되었다고 생각했느냐?”
“앗!”
지옥신조가 매우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한데 혈수로 변했던 백소운이 멀쩡한 모습으로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어떻게 네놈이······?”
지옥신조가 불신의 눈빛을 보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재빨리 우수를 내밀어 백소운의 목을 잡아갔다.
다시 목뼈를 부러뜨리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손이 나아가지 않았다.
마비가 온 것이었다.
손뿐이 아니었다.
온몸이 마비되어갔다.
백소운이 말했다.
“지옥신조 네놈에 의해 자비신승께서 돌아가셨으니,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그분의 시신을 어디에 두었느냐?”
“후후후! 모른다. 설사 나를 죽여도 너는 경쟁자를 암살한 죄로 맹주가 되지 못할 것이다.”
입만 마비가 안 된 지옥신조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이미 백소운의 무형지기에 당해 온몸이 소멸하고 있는 그였다.
무형검 중에서도 최상승 경지에서 펼친 이번 공격은 별다른 특징도 없었다. 하지만 지옥신조를 제거하는 데는 충분했다.
백소운이 말했다.
“자비신승님의 유체가 있는 장소는 이미 알았다. 조금 전 독심술을 통해서 말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묻겠다. 아직도 내가 천족의 후예라고 생각하느냐?”
“그렇다. 천족의 후예가 아니라면 절대 이런 힘을 가질 수 없다.”
“나의 친부모님이 누군지 아느냐?”
“그건 나도 모른다. 하지만 네놈이 천족의 후예인 것은 확실하다. 정확히 말해 천혈(天血)이 섞여 있는 것이지. 크윽!”
지옥신조가 비명과 함께 몸이 쩍쩍 갈라지며 가루로 변했다.
그리고 그 가루 속에서 한 마리 작은 새의 사체가 발견되었다.
바로 지옥신조의 본체였다.
하지만 곧바로 화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불이 붙어 그대로 소멸해버렸다.
지옥신조의 완전한 최후였다.
“으음······.”
백소운이 비틀거린 것은 그 직후였다.
지옥독을 해독하느라 무리한 탓이었다.
‘운공요상이 필요하겠군. 잠시 쉬었다가 자명선생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해줘야겠다. 그나저나 이번에 천리안과 독심술의 경지가 깊어지지 않았다면 큰일 날 뻔했다. 과연 지금 상태에서 지옥악마신을 상대할 수 있을지 걱정이구나.’
백소운이 가부좌를 한 채 운공요상에 들어갔다.
밤이 점점 깊어갔다.